신약강해/마태복음강해

(마태8:10-12) 귀신과 말씀의 권세

이요나 2007. 9. 29. 19:53

(마태8:10-12) 귀신과 말씀의 권세

 

(마8:10-12)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I. 치료자 예수 그리스도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시니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1)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시니’라는 기록은 5장 1절과 대치되는 말씀이다. 또한 누가복음 6장 17절의 “예수께서 저희와 함께 내려 오사 평지에 서시니” 라는 말씀은 산상수훈 이후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 이후에 산상수훈의 내용이 나오는 것을 볼 때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유대인 랍비들의 교육방법과 산상수훈의 중요성을 감안 할 때 주께서 산에 올라 가르치신 것을 후일 다시 언급하신 것이라 볼 수 있다.

 

흥미롭게도 산산수훈을 가르칠 동안은 귀신들린 자나 병든 자들을 치료하신 기록이 없다. 그야말로 복음의 제자들 컨퍼런스와 같이 천국을 이끌어나갈 제자들이 지켜야할 명심보감을 강론하신 것이라 하겠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먼저 그에 대한 이론적 지식이 필요하다. 집을 지을 때에도 먼저 설계를 하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을 세움에 있어 먼저 천국 백성들의 삶의 기초와 질서를 이루는 믿음생활의 이론적 토대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제 필요한 것은 생활 현장에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제반 문제들과의 전쟁이다.

 

A. 치유의 성경적 증거

예수께서 인간 세상의 삶의 현장에 내려오신 후 제일 먼저 부딪혀야 했던 것은 문둥병과 질병과 귀신들과의 전쟁이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도 동일하다. 아직도 우리는 질병과 문둥병과 귀신들의 역사 속에서 죽이고 먹히는 끊임없는 전쟁을 치루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질병에 관한 성경적 근거는 출애굽으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내신 후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이집트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출15:26) 하셨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사역에 대하여 베드로는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10:38) 증거하였다. 이 말씀은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하심이라”(사61:2) 하신 이사야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근거로 한 것이다.

 

B. 문둥병자의 정결(2-4)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신 후 첫번째 행하신 일은 문둥병자의 정결이다. 한 문둥병자가 주 앞에 엎드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게 하실 수 있나이다”(2) 하였다. 이에 주님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3) 하셨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이적 중에 이적이 아닐 수 없다. 뭉둥병은 아직까지도 그 병의 원인을 발견하지 못하는 불치의 병으로 성경은 문둥병을 저주 받은 죄로 규정하고 있다.

 

문둥병에 대한 성경적 근거는 레위기 13장부터 15장까지 할애 하였는데, 사람의 피부에 딱지가 앉거나 색점이 생겨 그 피부에 문둥병같이 되면 제사장이 피부의 병을 진찰하여 환처의 털이 희어졌고 환처의 피부가 움묵하여졌으면 문둥병으로 진단하여 별거토록 조치하도록 하였다(레13:1-5).

 

또한 흥미로운 것은 문둥병에 대한 정결 규례가 성경에 기록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문둥병의 환처가 나았으면 제사장은 산 새 두 마리와 백양목과 홍색실과 우슬초를 가져오게 하고 새 하나는 흐르는 물 위 질그릇 안에 잡게하고 다른 새는 산대로 취하여 백향목과 홍색실과 우슬초와 함께 가져다가 흐르는 물 위에서 잡은 새의 피를 찍어 문둥병에서 정결함을 받을 자에게 일곱 번 뿌려 정결하다 하고 그 산새는 들에 놓을지며”(레14:3-7)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제사장은 팔일이 지난 후에 어린 수양의 속건 제물의 피를 취하여 정결함을 받을 자의 우편 귓부리와우편 손 엄지가락과 우편발 엄지가락에 바르고 그 후에 번제와 소제를 단에 드려야 정결하게 되리라’(레14:10-20) 되었다.

 

구약에서 문둥병에 걸린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의 누이 미리암과 엘리사의 종 게하시게와 그리고 웃시야 왕이다. 미리암은 모세가 수넴여자를 첩으로 들인 일을 비방하다 득죄하였고, 게하시는 엘리샤 선지자의 종으로 문둥병에 결린 나아만 장군을 고쳐준 대가를 몰래 갈취한 것으로 득죄하였으며, 웃시야 왕은 교만하여 스스로 제단에 제물을 드리다가 저주를 받았다. 이와 같이 이들은 모두 하나님 앞에 득죄하여 문둥병의 저주를 받았다.

 

또한 엘라사로부터 구원을 받은 시리아의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와 아합왕 때에 문둥병 걸린 두 사람이 시리아 군대에 갇혀 고사직전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한 사건은 우리에게 문둥병과 재물에 얽힌 이야기를 시사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구약 성경 그 어디에서도 문둥병자의 정결의식을 통하여 깨끗함을 받은 기록한 어디에도 없다는 깃이다. 물론 미리암과 나아만 장군이 깨끗함을 받은 기록이 있지만 미리암은 율법이 주어지기 전의 일이며 나아만 장군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므로 이 두 사람은 모두 율법 밖의 사람이다. 그러므로 오늘 문둥병자의 정결은 성경에서 처음으로 소개되는 내용이다.

 

물론 신약성경에는 이후에도 문둥병자의 정결을 여러 번 다루고 있지만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고침이다. 후일 주님은 제자들에게 권세를 주시면서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웠다 하고 병든자를 고치며 죽은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이 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며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10:7,8)고 명하셨다.

 

또한 세례 요한이 옥에 잡힌 후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서 그리스도인가를 물을 때 주님은 그들에게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마11:50) 고 말씀하셨다. 이것으로 보건 데 성경에서 문둥병은 인간의 원죄를 시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의 저주는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이 정결케 씻을 수 있는 권세에 속한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문둥병자를 정결케 하시고 그에게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명하셨다. 이것은 그로 하여금 율법시대의 사람으로서 율법에 따라 정결의식을 치르고 정당한 사회생활 복귀를 위한 조치였다. 만약 그렇지 않고 사람들 속에 소문을 낸다면 예수께서 율법을 경히 여기는 자로 여김을 받고 사회적 문제가 크게 일어날 것을 염려하신 것이다.

 

이와 반대로 누가복음에 소개된 열명의 문둥병자 이야기는 또 다른 의미를 우리에게 부여하고 있다. 이 일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실 때의 일이다. 누가는 “예수께서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눅17:11-14)고 기록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함께 길을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 것을 알고 그 중 한 사람만 돌아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이에 주님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 돌아 온 자가 없느냐”(눅17:17,18) 하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 저주받은 인간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앞에 스스로 나아와 죄인 됨을 고백하고 주 앞에 엎드려야 한다. 이것은 나사렛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들만이 가능하다. 오직 그만이 하나님 앞에 떨어져나간 인간들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기 때문이다. 긍휼하신 예수께서는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자기 앞에 나아 온 모든 사람들을 깨끗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깨끗함을 받은 자의 삶의 태도이다. 그의 삶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되지 않으면 그는 여전히 문둥병자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C. 백부장의 믿음(5-13)

예수 그리스도 앞에 두번째 나아 온 사람은 로마군대의 백부장이다.  그는 하인의 중풍병을 고치고자 예수께 나아와 간구하였다. 나는 새도 떨어뜨릴 권세를 가진 로마 백부장이 중풍으로 고통받는 하인을 위해 예수께 나와 간구한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그 백부장이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깊고 또한 나사렛 예수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갖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백부장의 청을 들은 예수님은 그에게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하셨다. 그러나 그는 한사코 만류하며 “주여 내 집에 들어 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십시요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습니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라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8,9) 대답하였다. 백부장은 여기서 말씀의 권세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권세자의 말씀의 권위에 대하여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내용은 복음의 제자 된 우리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는 말씀이다. 아마 그 현장에 함께 있었던 주의 제자들에게도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이 백부장의 말은 복음을 맡은 그의 제자들에게 커다란 교훈으로서 오늘날 이 땅의 모든 교회들이 다시 한번 살펴봐야 할 귀한 말씀이다.

 

백부장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는 현세의 권세와 대등하게 적응될 것을 알고 있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야 왕국인 천국이 실제로 임한 것을 인정할 때 비로서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장래에 임할 천국이 아니라 그는 이미 천국이 임한 것을 알았고 왕국의 주인이 나사렛 예수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말을 들은 주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10)하셨다. 아마 이 말을 듣고 있는 제자들도 부끄러워지는 숙연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사실 제자들도 그와 같은 믿음을 갖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산상수훈을 들은 제자들로서는 주께서 가르치신 말씀이 삶에 유익한 좋은 교훈이나 선한 스승께서 가르치신 말씀 정도로 여기고 정말 많은 은혜를 받았다고 서로 말했을 것이지만 그 말씀이 이 땅에 세워질 천국 곧 하나님의 왕국의 기초가 되는 권위가 있다고까지는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계속하여 주님은 그들을 향하여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지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니라”(11,11) 말씀하셨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할 예언의 말씀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이 말씀의 뜻을 미쳐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직도 이스라엘은 울며 이를 갈고 있을 뿐이다.

 

13절에는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 고 기록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믿음대로 될지어다가 아니고 믿은대로 되라 하신 것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그의 믿음이 이미 완성 되어 있음을 언급한 것이다. 나는 이 말씀을 읽으며 과연 나는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고 있는가 반문하여 본다. 만약 내게 이만한 믿음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성경을 알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D. 열병과 귀신들린 자 치료

예수께서 세번째 행하신 것은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 그의 장모의 열병을 고치신 일이다. 마가복음에는 예수께서 회당에서 메시지를 전하신 후에 요한과 야고보의 손을 이끌고 들어가신 것으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성경 전체적인 대조에 마음을 쓰는 것보다는 성경 각 권에 의도된 메시지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체적 구조를 연대하다 보면 저자를 통해서 전달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흩으러 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8장에서 이 사건이 세번째로 등장하는 것은 나름대로 특별한 메시지가 포함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에는 다른 많은 사람들의 질병과 귀신을 쫓으신 일들이 기록되었는데도 특별히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이 수선적으로 거론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복음서에는 열병을 꾸짖으시니 열병이 그 시로 떠나갔다고 기록되었다. 그러므로 베드로 장모의 열병은 일반적인 질병이 아니고 어떤 존재의 역사가 틀림없다. 

 

베드로는 특별히 예수께서 신경을 쓰신 제자 중의 하나다. 누가복음을 보면 베드로의 온전한 헌신이 있기까지 많은 번민과 방황이 있었던 것 같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신학교를 공부하고 꺼리김 없이 목사가 되어 복음사역에 나서고 있다. 그러한 중에 나는 갈보리채플로 나오는 많은 헌신자를 보게 된다.

 

흥미롭게도 그들 중 대부분은 가족들의 만류로 도중하차하고 만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갖고 있는 그들은 또 다른 욕망의 열병에 사로잡혀 진리의 말씀으로부터의 사랑을 받기를 거부한다. 사람이 가족의 열병을 뿌리치고 부르심으로 온전히 헌신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가 헌신하기까지는 현실적인 많은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기왕에 이 말씀을 보았으니 후일 또 내 앞에 이런 일이 일어나면 먼저 그 집으로 들어가 열병을 꾸짖어야겠다.

 

16절에는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자를 다 고치시니”라고 기록되었다. 날이 저물면 귀신들의 역사는 더욱 강력해 진다. 오늘날 악한 귀신들의 역사도 모두 어둠의 세력 속에서 역사한다. 주님은 간음현장에서 붙잡혀 온 여인에게 “나는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 하셨다.

 

또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자를 다 고치셨다’는 말씀은 매우 의미가 깊다. 오늘날 축사를 일삼는 사람들과 병을 고친다는 사람들은 환자에 머리에 손을 얹고 흔히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아 떠날지어다 소리를 질러댄다. 그러나 귀신은 그 사람 속에서 까르르 웃고 있을 뿐이다.

 

나는 몇 년전 정신병원에 갇혀있는 음행하는 더러운 귀신에 사로잡힌 젊은이를 심방한 일이 있었다. 그의 어머니와 함께 수요일과 토요일 두차례씩 한 시간씩 정신병동을 방문하여 그와 함께 출애굽기를 공부한 일이 있었다. 그가 성경을 읽기 시작했을 때 그의 얼굴은 심히 찌그러지며 침을 흘리며 눈을 뒤집어 까는 현상이 일어 났다.

 

그는 그만해요 죽겠어요 소리쳤지만 차분히 성경을 읽어 내려 가던 중 그에게 평안이 깃들기 시작했고 출애굽기 40장이 끝나던 날 우리는 그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 왔다. 할렐루야. 이런 일은 그 후에도 몇번 있었다. 그러나 그 때에 내가 지금과 같이 말씀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면 그 상황을 충분히 이해했을 것이다. 나는 이제서야 말씀으로 귀신과 질병을 쫓아낸다는 말씀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마태는 이 광경을 기록하여 “이는 선지자로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하신 말을 이루려 하심(사53:4) 이더라”(17) 기록하였다. 이는 죄 된 인생을 사로잡고 있는 어둠의 세력이 있음을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말씀이다. 그것은 바로 귀신과 질병이며 그것은 죄로 말미암은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를 위해 친히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II. 통치자  예수 그리스도(18-34)

“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34)

 

A.         누가 후계자인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22)

 

18절에는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쌈을 보시고 저편으로 건너가기를 명하시니라” 기록되었다. 따라서 이 내용은 또 다른 상황에서 전개된 내용이다. 지금까지 전개된 8장 내용의 흐름 가운데 반전되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특별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한 곳에 이르니 한 서기관이 나와서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겠습니다”(19) 말한 것이다. 그 당시 서기관이란 율법을 정리하고 기록하며 가르치는 선생들이다. 요즘의 신학자나 목사들과 같다. 그당시 이들은 존경받는 바리새인들로서 회당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서기관의 헌신은 이스라엘 가운데 이제 새롭게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야 할 예수님으로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헌신 된 제자 한 사람을 찾기 어려운 때에 스스로 어디를 가든지 따르겠다는 준비된 자가 나왔으니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20) 하셨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다. 그 시대에 준비된 헌신자 서기관을 가리켜 여우라고 칭하였기 때문이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 헤롯을 가리켜 여우라고 말한 바 있다. 여우는 사람을 미혹하는 존재로 피를 빨아 먹는 짐승이다. 또한 주님은 마태복음 13장에서 천국의 비밀을 말씀하실 때 길가에 뿌린 씨앗을 먹는 공중의 새를 가리켜 악한자로 하셨으며 마가는 사단, 누가는 마귀라고 기록하였다. 비약된 비유라고 하겠지만 주님은 여기서 서기관을 가리켜 여우와 공중의 새에 비유하신 것은 의도적이시며 사실 그들은 모두 기회주의자로 자기 배만 채우는 자들이다. 가룟 유다가 열두 제자 중에 유일하게 가장 서기관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지금까지 서울 갈보리채플을 개척하는 동안 수많은 목사들이 다녀갔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나를 떠나 또 다른 자기 집을 짓고 있다. 그들은 모두 나에게 왔을 때 “존경하는 이요나 목사님! 저는 목사님과 함께 갈보리채플 사역에 이 한몸 바치겠습니다” 라고 큰소리로 말했었다. 한 사람의 사역자를 얻기 힘든 개척교회에서 신학을 졸업한 사람들의 헌신은 정말 감음에 비를 만난 것처럼 기쁘다. 그러나 그들은 떠날 때 마다 내 발뒤꿈치를 물고 떠났다. 이제는 나도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20)는 말을 할 때가 온 것 같다.

 

계속하여 흥미로운 내용이 기록되었다. “제자 중에 또 하나가 가로되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소서” 말한 것이다. ‘제자 중에 또 하나’라는 말로 보아 앞에서 대부분의 제자들이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그에게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22) 말씀하셨다.

 

‘죽은 자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는 말씀은 참으로 흥미로운 말씀이다. 이 말씀은 두 가지 뜻이 내포되어 있는데 먼저는 주를 따르지 않고서는 모두 죽음을 당할 수 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주님은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라”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부모라 해도 그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면 죽은 자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부모에게 효도한다는 것은 율법을 따라 의를 이루려는 부모들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선물이 보장된 길을 따르는 것이 그와 부모형제들을 구하는 첫 걸음이다.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너희 가족이 구원을 얻으리라” (행16:31) 증거하였다.

 

또한 이 말씀은 복음의 제자 된 사람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위한 일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우선적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이 말은 그 제자가 자신의 부친의 병고 중에 있을 때 한 말이 아니라 십계명에 이르듯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믿음의 근본으로 삼으려는 그의 신앙심의 발로일 것이다. 아마 이 제자는 스스로 아직 자신은 아버지에게 효도를 하지 못한 자가 되어 복음의 제자로 헌신하지는 준비되지 못한 자라고 여긴 것이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주의 부르심에 주저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직 세상에서 할 일이 남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장가도 가야하고 집도 장만해야 하니까 돈도 벌어야 하고.. 여러 가지 핑계를 댄다. 그러나 그러한 마음이 들끓는 상태로 주의 종이 되면 그가 바로 여우이고 공중의 새가 되는 것이다. 주께서 부르시면 모든 것을 내어버리고 주를 따르는 것이다. 이미 그의 말씀이 모두 제자들을 위해 이루었기 때문이다.

 

B. 물질세계의 통치권

"어찌하여 무서워 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26)

 

이제 또 장면이 바뀌어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게 되었다. 예수님은 피곤하여 배 뒤 편 고물에 누워 쉬시고 계셨고 갑자기 큰 폭풍이 불어 물결이 배를 덮게 되었다. 놀란 제자들은 예수를 흔들어 깨우며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소리쳤다. 이에 주께서 일어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며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었다. 이 광경을 목도한 제자들은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기이해 하였다.

 

흥미롭게도 분명히 23절에는 ‘제자들과 함께 하셨다’고 기록되었는데 27절에는 ‘그 사람들이’라고 기록되어 전혀 다른 대조를 보이고 있다. 이것은 아직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가져야 할 온전한 믿음을 갖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그들은 이미 문둥병을 정결케 하시는 장면도 보았고, 백부장의 믿음의 실제도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도 쫓는 것을 보았고, 귀신들을 쫓아내고 무수한 질병들을 고치시는 것을 목도한 주께서 친히 부르신 제자들임에도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에 대하여 완전한 인식을 갖지 못하였다.

 

제자들이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이 땅과 하늘의 주인으로 오신 메시아임을 알았다면, 또한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친히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신 것을 알았다면  그들이 어떤 상황과 환경에 처해 있다할지라도 주께서 자신들을 지키실 것과 또한 묵묵히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였을 것이다.

 

오늘 우리는 과연 어떠한가? 이미 우리는 신구약 성경의 모든 말씀이 주어졌다. 더 이상 우리에게 더하실 말씀도 제하실 말씀도 없다. 성경 66권 안에 하나님의 예정과 계획과 뜻이 모두 들어 있으며 이 말씀은 하나님의 능력이시다. 세상이 모두 그의 말씀의 권세 안에 있음으로 우리가 세상 가운데서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두려워 할 것도 없다. 주님은 너희의 목숨을 죽이고 불어 넣을 권세자를 두려워하라 하셨다. 이분이 과연 하나님이시며 그 모든 권세는 그의 보내신 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 곧 우리 주께서 갖고 계신 것이다. 세상에 어떤 바람과 풍랑이 몰려 와도 그의 제자 된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그가 능히 그 입의 말씀으로 세상의 모든 바람과 풍랑을 잔잔히 순종케 하실 것이며, 이 땅의 평안은 오직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을 것이다.

 

C. 영적 권세의 통치권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29)

 

예수 그리스도와 제자들이 바다 건너편으로 건너 가다라 지방에 가시니 그곳에 귀신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 있어 사람들로 그곳을 지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었다.  우리가 마가복음 5장에서 자세히 살펴 보았지만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는 이 지역의 이름이 거라사인의 땅이라 기록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마태가 잘못 기록한 것이라고도 말하고 가다라는 곧 거라사인 땅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마가복음 5장 강해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지역은 헬라시대로부터 데카볼리성 안에 있는 10개의 지역으로 성경 저자가 우리로 특별히 살펴 볼 필요성을 제시해 준 것이라 짐작된다.(이부분은 마가복음 5장 강해를 참조하라).

 

예수님과 제자 앞에 나선 귀신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하고 소리쳐댔다. 귀신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를 알고 있다는 것이 흥미롭기만 하다. 바울도 귀신들로 떨고 있다 증거하였다.

 

또한 귀신들은 자신들이 지옥에 던져져 고통을 받을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아직은 그 때가 아닌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앞에 있는 자신들이 사람들에게서 나와야 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청하여 “만일 우리를 쫓아 내실진대 돼지 떼에 들여 보내소서” 간구하였다. 이에 주님은 저희에게 ‘가라’ 명하시니 귀신들이 나와 돼지에게로 들어 갔고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 몰사하였다. 흥미로운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해야 할 것은 먼저는 두 사람 속에 들어 있던 귀신이 2000여 마리가 되는 돼지들 속으로 들어 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마가복음에서 이 귀신들은 자신의 이름이 레기온 곧 군대라고 말하였다.  레기온이란 로마군단 병력의 단위로서 3000명에서 6000명의 규모이다. 단 두 사람의 몸 속에 들어 있는 귀신의 위력이 한 지역을 능히 멸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사단 세력의 두목들을 보라, 김정일이나 최근 유혈 시위가 일어나고 있는 미얀마 군부 수뇌 탄 수웨에, 등 모두가 악마의 세력들이다. 이태원 밤거리를 장악하고 있는 동성애 무리들, 깡패 조직이나 좌익세력들, 이 모든 자들의 배후에는 거대한 돼지의 무리들을 몰사할 힘을 갖고 있는 것이다. 또 놀라운 것은 귀신들은 사람들의 영혼을 지배하고 있는 영적 존재라는 것이다. 돼지와 같이 동물들 속에는 영이 존재하지 않음으로 들어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귀신이 인간의 영 속에서 역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 우리는 8장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가 누구이며 그 능력은 말씀 가운데서 역사하고 있는 것과 또 귀신들이 죄인 된 인간을 사로잡고 질병을 일으켜 고통받게 하며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을 살펴 보았다. 이것은 모두 세상 임금 사단 곧 마귀가 하는 일이다. 이것을 쫓아내고 사람들과 천지만물을 회복하여 하나님께 드리고자 오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인 것이다. 이제 우리가 성령의 기름 으심으로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으로 능력을 입어 이 땅에 역사하는 귀신들을 쫓아내고 질병을 고쳐내야 할 것이다.

 

*Demon Experience in Many Lands(많은 지역에서의 귀신 경험) 척 스미스 창세기 및 마태복음 8장강해 수록

1947년 필리핀 테레사 소녀가 실제적으로 격은 일 – 졸도 후 일어나니 온 몸에 이빨자국과 마닐라 시장이 정신과 의사에게 분석케 하였으나 원인을 규명할 수 없었음

천주교 사제 밥 맥칼리스터와 레스터 서머럴 두 선교사의 축사로 귀신을 쫓음

*레스터 서머럴의 저서 ‘귀신에게 물어 뜯기다’(Bitten by Demons)

*미국 사사 라이프 잡지에 당시 사진과 내용 기사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