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마태복음강해

(마태복음13:16) 천국의 비밀

이요나 2007. 11. 18. 11:38

(마태복음13:16) 천국의 비밀

 

(마13:14-16) 이사야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의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우리는 11과 12과에서 유대인에게 배척 당하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살펴 보았다. 요한은 이미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셨으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다(요1:10,11) 증거하였다.

 

주님은 12장 말미에서 심판 때에 나타날 두 가지 현상에 대하여 언급하셨다. 그것은 바로 요나의 전도를 듣고 일어 설 니느웨 사람들과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해 일어난 남방여왕에 관한 비유다. 이 말씀은 이미 우리 중에서 그대로 성취되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심판을 받았고, 이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는 하나님의 지식을 듣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지혜의 수레바퀴는 항상 동일한 방향 가운데 미혹의 걸음을 걷고 있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큰 문제는 더러운 귀신이 나간 것보다 깨끗해진 집을 보전하는 길이다. 그것은 오직 성령의 능력이 항상 내게 있어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는 길이다. 이제 우리는 13장에서 천국의 비밀 곧 하나님이 뜻하신 바를 성취하기 위한 지혜에 대하여 살펴 보게 될 것이다.

 

I. 천국복음의 제자의 복(1-23)

대답하여 말씀하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돠었나니(11)

 

A. 비유의  목적

오늘 우리는 비유에 대한 특별한 메시지를 접하게 된다. 주님은 말씀을 들으려 해변으로 찾아 온 무리를 향하여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셨기 때문이다. 비유라는 헬라어 ‘파라불레’는 배가 항구에 닫다라는 말과 같이 서로 비교하여 사물을 설명하는 수사법이다. 예수께서 씨뿌리는 비유와 같은 일상생활의 사물을 들어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은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계획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다.

 

주님은 여러 가지 비유를 말씀하시는 중에 먼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 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얇은 길가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있는 자는 들으라”(3-9) 말씀하셨다.

 

아마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별 싱거운 말을 다 듣겠네 하고 투덜대며 돌아 갔을 것이다. 그들은 사실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들으러 온 것이 아니고 메시야의 표적을 보기 위해 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하여 제자들은 주께 나아가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10) 하고 물었다. 이에 주님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하셨다.

 

여기서 천국의 비밀이 너희에게 허락되었다는 것은 천국의 비밀이 아무도 알 수 없는 봉해진 비밀이란 뜻이 아니라 누구든지 알고자 하여 주 앞에 나오면 알 수 있는 신비의 계시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여기서 천국에 속한 계시는 그의 제자들에게만 허락되었음을 언급하신 것이다.

 

또한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고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하신 말씀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이것은 신비의 계시는 자신의 것이 아니며 하나 둘 씩 터득해 나가는 미래 지향적 지혜에 속한 것이라서 계속 증가하지 않는다면 갖고 있던 지식도 상실 될 수 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계속하여 주님은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라”(13) 하시며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이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느니라” 하셨다.

 

이 말씀은 이사야서 6장 말씀으로 요한복음 12장과 사도행전28장에서 인용된 말씀으로 복음을 배척한 무리를 향한 메시지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 보아야 할 것은 이사야서 6장에서 언급된 이 말씀은 종말론적 사상을 갖고 있어 장차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의 날인 대환난과 관계가 깊다. 따라서 주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유대인들의 배척의 근거를 통한 새 교회시대를 향한 경계의 메시지인 것이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오늘날 우리는 이 말씀이 유대인이 아닌 주의 성도들에게 다시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갈급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여기저기 찾아 다닌다. 모두가 능력 있는 목사 설교 잘하는 목사, 조직력과 활동력이 많은 교회를 찾는다. 그들은 그곳에서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 열심이다. 그런데 정작 그들과 대화를 해 보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고 다만 자신들이 어느 교회의 성도인 것에 만족하고 자랑을 한다.

 

바울은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라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약4:13) 하였고 다시 “저희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딤후3:6,7) 증거하였다. 이 말씀들은 모두 복음을 배척한 자들의 모습을 언급한 것이다.

 

주님은 그 제자들에게 “그러나 너희의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의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16,17) 하셨다. 그렇다. 천국복음은 주의의 백성들에게 허락된 것이다.

 

성경 말하여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히11:13) 증거하였으니 이들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라 할지라도 이들은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본향 곧 예비하신 한 성을 사모하며 이 땅에서 나그네와 같은 생을 살던 사람들이다. 나는 이 말씀을 읽으며 내가 이들 속에 속한 자임을 감사한다. 나로 다른 것보다 주의 말씀을 보는 것을 허락하셨고 그 무엇보다도 주의 말씀을 듣는 것을 좋게 여기게 하셨으니 말이다.

 

B. 씨뿌리는 자의 비유

이에 주님은 저희에게 말씀하신 비유를 설명하여 “씨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리운 자요 들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 곧 넘어지는 자요 가시 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가 되느니라”(18-23) 하셨다.

 

우리가 이 말씀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을 함께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이 씨뿌리는 비유의 메시지는 이 말씀을 받는 대상에 따라 메시지의 강도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주께서 하신 말씀이 각각 다른 것이 아니라 말씀을 전달하는 메신저의 해석과 적용에 속한 것이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성경해석의 원칙과 적용의 범위를 살펴 보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먼저 성경해석의 원칙을 알고 지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성경해석에 확실한 기준을 갖고 있지 않다면 성경의 말씀은 각 시대와 지역적 대상에 때라 중구난방으로 변질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교회는 이와 같은 폐단으로 교회 안에 이단이 생기고 교회가 분열되었던 것이다.

 

마태는 길가에 뿌린 자를 설명함에 있어  우리는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라고 말하였는데 반하여 마가는 악한 자를 ‘사단’(막4:15)이라 하였고, 누가는 ‘마귀’(눅18:12)이라고 기록하였다. 이것으로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악한 자’나 ‘사단’ 그리고 ‘마귀’가 동의어 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계시록에서도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뱀이라도고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계12:9a) 하였으므로 성경이 증거하는 사단의 역사의 영역을 알 수 있으며 이러한 성경해석의 원칙은 성경전체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우리는 신학적 용어로 ‘성경해석의 불변성’이라 말한다.

 

흥미롭게도 19절 말씀에서 우리는 ‘천국말씀은 마음에 뿌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천국복음은 말씀을 듣는 자의 마음과 직결되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여 말씀을 듣는 자의 마음이 하나님께 있느냐 콩밭에 있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우리 말에 콩심은데 콩나고 밭심은데 밭난다는 말과 흡사하다 하겠다.

 

따라서 ‘돌밭에 뿌리웠다’는 말은 돌과 같이 굳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 하겠고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먹고 살아가는 목적을 따라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일 것이며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선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을 맺는 사람들일 것이다.

 

여기서 오늘날 이 말씀을 듣는 우리는 나 자신이 어느 부류의 사람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모두 이 네 종류의 범주에 모두 들어가기 때문이다. 또한 이 말씀을 통하여 자신을 돌아 보는 우리는 모두가 이 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나 또한 길가에 있던 사람이요, 돌밭에 있던 사람이요, 가시덤불과 같은 마음을 가졌던 자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금 당신이 좋은 땅에 있어 열매를 맺고 있느냐에 있다.

 

II. 하나님의 계획(24-35)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33)

 

A.         가라지의 비유

예수께서 두번째로 하신 비유는 가라지 비유다. 가라지는 보리 가운데 함께 나서 자라는 독보리를 말한다. 주님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곡간에 넣으라 하리라”(24-30) 하셨다.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먼저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하신 비유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제자들의 시대와 관계된 말씀으로 보아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다고 하신 말씀이다. 앞의 씨 뿌리는 비유에서는 말씀을 받는 사람들의 마음에 비중을 두었는데 여기서는 제 밭에 좋은 씨를 뿌린 사람이 주격이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성경의 말씀 속에서 주된 핵심을 발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난해한 비유의 경우는 어떤 것이 주체가 되고 어떤 말이 보어인지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어떤 말은 우리의 시선을 상대에게 주목하게 하는 것 같은데 실제 의미는 다른 데 있음을 보게 된다. 가라지의 비유가 바로 이와 같은 경우라고 하겠다.

 

사람들은 이 글을 읽을 때 가라지를 뿌리고 간 사단에 시선을 둘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님은 가라지를 뿌리고 간 사단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제 밭의 곡식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것이 씨앗을 뿌리는 주인의 마음인 것이다. 독보리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을 뽑을까 염려하는 것이다. 가라지는 결국 붙태워 버릴 것이지만 곡식은 씨를 뿌려 거둔 열매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더 유심히 살펴야 할 것은 ‘사람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그 종들의 역할을 경계하신 것이다. 사람들로 하여 잠들지 않게 하는 것이 제자들의 임무인 것이다. 주님은 깨어 있으라고 하셨다. 이것이 교회의 역할인 것이다. 성도들이 잠들어 있는 동안 원수 사단이 가라지를 뿌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잘 때에라는 의미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깨달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한 세상 살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사기를 당할 때가 있다. 이러한 사기는 먼저 자신의 욕심 때문에 생기며 또 게으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문제는 전문적인 지식이 없이 사람을 믿기 때문이다. 성경은 예나 지금이나 늘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교사들을 경계하였다. 물론 이들의 배후에는 사단의 영들이 역사하고 있지마는 문제는 성도들이 그들에게 미혹되는 것은 성경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말씀의 바른 지식을 갖고 있었다면 우리의 믿음이 굳건하여 주의 영이 우리를 눈동자처럼 지킬 것이다.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곡간에 넣으라 하리라”(30)는 말씀으로 우리는 알곡을 거두시는 하나님의 추수 계획이 인간에게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알곡을 거두는 것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것처럼 생각하여 곡식이 다치던 말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도사역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도들이 잠들지 않게 하는 것이며 사단이 주인의 밭에 들어 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전도는 하여 교회 안에 사람들이 가득한데 이들이 모두 잠들어 있으니 사단들이 들어와 가라지를 뿌리는 것이다. 그러나 추수 때가 오면 분명하고 확실한 판단이 있을 것이다.

 

  B. 교회의 목적

 주께서 계속하여 하신 비유는 겨자씨와 누룩에 관한 비유다. 여기서도 우리는 이  비유의 주재가 어디에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 이것을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를 교회성장으로 설명하는 목사가 있다면 그는 목사를 당장 그만두어야 할 것이다. 그는 아직 성경해석의 기본적 원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잠간 말했지만 성경해석에 있어 꼭 알아야 할 것은 최초 사용법과 해석의 불변성이다. 이것은 한 켤레의 신발과 같다 하겠다. 성경해석의 최초 사용법이란 어떤 단어를 해석할 때 그 단어가 성경에서 최초로 언급된 내용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며 그 해석의 원리는 불변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창조에 관한 해석의 기준은 창세기 1장의 창조를 기조로 하여야 하며, 한 예로 계시록 12장 1절에 언급된 해를 입은 한 여자는 창세기 37장에서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을 하였다는 요셉의 꿈과 동일시 하여 이 여자는 이스라엘을 지칭하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이 여자를 교회라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어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를 굳이 왜곡 시키려는 사람들이 있다.

 

주님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자지에 깃들이느니라 하시고 다시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33) 하셨다. 여기서도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주께서 공중의 새마귀, 악한 자, 사단로 해석하셨기 때문이다(눅8:5,12; 마13:4,19; 막4:4, 15).

 

또한 누룩은 율법으로 제사에 드릴 수 없는 금기 된 것으로 죄에 속한다(출12:15). 바울은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5:6) 책망하였고 다시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5:7) 증거하였다. 이와 같이 죄는 누룩과 같은 속성이 있어 모든 사람들을 더럽게 만든다. 그러므로 주께서 비유하신 가라지와 누룩은 장차 오직 성장에 초점을 맞추게 될 교회의 일을 경계한 것이다. 

 

C. 성경 비밀의 열쇠

주님은 무리에게 모든 것을 비유로 말씀하셨다. 마태는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을 들어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을 드러내리라 하심을 이루려 하심이니라(35) 증거하였다. 이것은 내가 입을 열고 비유(마솰)를 베풀어서 옛 비밀한 말을 발표하리니 (시78:2)라 하신 말씀을 근거로 한 것이다. 다시 말하여 성경의 기록은 예로부터 비유이며 비유 속에 하나님의 계시가 들어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도 된 우리는 성경의 비유를 깨닫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겠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모든 비유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인가? 주님의 시대에 살던 유대인 학자들은 서기관이나 제사장들도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여 모두 실족하였는데 이천년이 지난 오늘의 성도들은 성경의 비유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흥미롭게도 예수님은 씨 뿌리는 비유에 큰 비중을 두시며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이 모든 비유를 어찌 알겠느냐(막4:13) 하셨고, 다시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막4:14) 말씀하였다. 이것은 모든 비유를 알 수 있는 원리가 여기에 있음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이미 그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비유로 하나니(11) 하셨고 마가는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저희가 알아 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셨다 (막4:33,34) 기록하였다. 따라서 천국의 비밀이 담긴 비유를 푸는 열쇠는 바로 해석에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눈뜬 장님이 되느냐 아니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느냐가 결정되는 것이다. 이미 앞에서 주님이 말씀하셨듯이 내가 알곡이냐 가라지냐는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있느냐 아니면 잠자고 있느냐에 달린 것이다.

 

III. 성경해석의 중요성(36-43)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말하여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36)

 

A.         씨 뿌리는 자에 대한 해석

예수님은 지금까지 말씀하신 씨 부리는 비유에 속한 중요한 핵심들을 그의 제자들에게 해석하여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이요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37-40) 하셨다.

 

아마 이 말씀을 이해하는 데 어려운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만약 누가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없다면 그는 예수님과의 관계부터 다시 정립하여야 할 것이다. 만약 그가 주 예수를 믿었다면 그의 성령이 그 안에 계시기 때문에 오늘 주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을 이해하였을 것이다. 성령은 우리를 가르치시며 주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며 모든 진리 가운데로 우리를 인도하시며 또한 장래 일을 알리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살펴야 할 것은 마귀라고 하는 원수는 과연 누구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미 우리에게 원수에 대한 해석을 주었다. 원수라는 단어는 창세기 3장15절에서 제일 먼저 나온다. 여기에는 뱀에게 미혹되어 그 아내 하와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아담과 뱀의 심판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은 아담을 유혹한 뱀을 향하여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창3:15) 하셨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원수란 여자의 후손 곧 동정녀 마리아를 통하여 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여 그의 사람들을 실족하게 할 마귀 곧 사단을 뜻한다.

 

오늘 우리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 속에서 계획하신 예정의 때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날에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뿌리신 알곡 곧 천국의 아들들을 거두시기 천사들을 보내신다고 하셨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를 두렵게 하는 말씀은 천사들이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신다는 말씀이다. 이것은 앞에서 미리 말씀하신 것과 같이 주인의 밭에 원수가 덧 뿌리고간 가라지를 뜻한다. 그러니 우리가 말하는 성도라는 사람들 속에 함께 예배들이고 있는 자들이다.

 

유다는 이들을 말하여 “저희가 기탄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 애찬의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없는 가을 나무요”(유1:12)라고 증거하였다. 그러함에도 주님은 우리 중에서 그들을 뽑아 내려다고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여 그대로 세상 끝날까지 내버려 두라 하셨다.

최근 교회들의 활동 근황을 보면 예배는 중히 여기는데 예배의 실체인 성경말씀의 부재현상이 완연하다. 성도들은 온종일 예배에 매달려 있는데 그 강단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흘러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목사의 설교 중에 아멘 아멘하는 소리로 가득찬 것을 보면 이들이 모두 누구의 성도인가 의심을 갖게 한다.

 

B.         성경 해석의 원리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성경해석의 원리이다. 이 원리를 깨닫지 못하면 우리 또한 잠든 자들이 되어 항상 어린아이와 같이 원수들에게 가리워서 자라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이 만약 성경해석의 바른 원리를 안다면 마귀는 감히 하나님의 사람인 당신을 미혹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최초의 사용법의 원리이다. 이것은 성경의 어떤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단어가 성경에서 처음 사용된 곳의 말씀의 뜻을 살펴 보는 것이다. 앞에서 우리가 원수에 대하여 살펴 보았듯이 만약 우리가 창조에 대하여 바른 해석을 얻으려면 창세기 1장 1절을 비롯하여 1장 전체를 조명해 보어야 할 것이다. 이 원리를 통하여 성경해석을 하게 되면 성경 어느 부분에서도 걸림이 없이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게 될 것이다.

 

성경적 해석의 두번째 원리는 해석의 불변성이다. 한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계시록 12장 1절에는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고 기록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 언급된 여자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말하는데 만약 이들의 해석을 따르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이 뒤엉켜 예정하신 하나님의 계획들을 깨닫기에 큰 어려움을 겪에 된다. 

 

물론 그들이 여기서 한 여자를 교회로 보는 것에는 그 나름대로의 성경적 근거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는 이 땅에 두개가 있었음을 먼저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이며 또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가 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이후로 그 아들을 배척한 이스라엘의 교회는 저주를 받아 없어졌지만 우리는 계시록에서 다시 이스라엘의 복권이 성취되고 있음을 성경을 통하여 알 수 있다(단9:24-27).

 

계시록 12장 1절에 기록된 한 여인은 이스라엘을 뜻한다. 이러한 근거는 창세기 37장9절의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제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하신 말씀이다. 이 말을 들은 요셉의 아비 야곱은 너의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미와 네 형제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하였다. 그러나 후일 그들은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에게 가서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므로 계시록 12장에서 해와 달과 면류관을 쓴 열두 별은 이스라엘을 뜻한다.

 

C.         불법을 행하는 자들

예수님은 계속하여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41,42) 하셨다. 여기서의 우리는 불법이 무엇인가를 성경적을 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미 주님은 마태복음7장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는 자들 곧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을 언급하신 바 있었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1-23) 하셨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살펴 봐야 할 것은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를 보아야 할 것이다, 주께서 좋은 나무 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는다(마7:17) 하셨기 때문이다.

 또한 바울은 종말에 나타날 불법을 말하여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니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살후2:7,8) 증거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법이 무엇인지 바르게 알 수 있게 된다. 또한 지금 우리 앞에 펼쳐진 많은 불법들이 무엇인지 무엇이 우리를 힘들게 하고 넘어지게 하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주님은 그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있는 자는 들으라하셨다. 짧은 인생을 욕심 것 살 것인가 영광의 날 속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인가가 교회로 말미암아 결정되는 것이다.

 

IV. 천국 완성의 문(44-58)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리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48,50)

 

이제 주님은 교회와 관련하여 중요한 비유 몇 가지를 말씀하신다. 이 말씀들은 오늘날 우리가 유심히 살펴 보고 마음에 새겨야 할 중요한 내용이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실패를 발견하게 되며 오늘날 우리가 해야할 일들을 깨닫게 된다.

 

A.         밭에 감추인 보화

주께서 말씀하신 첫번째 비유는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에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44) 하셨다. 세대주의교파 사람들은 이 비유를 들어 밭에 감추인 보화는 이스라엘을 말하는 것이며 뒤에 나오는 좋은 진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말에도 일리가 있겠지만 성경을 이처럼 해석하다 보면 너무 극단적이 되어 마찰을 일으키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이처럼 극단적인 해석보다는 이 모든 말씀은 이 땅에 사는 모든 성도들을 향하신 말씀으로 보는 것이 좋겠다. 주께서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하셨으니 이 보화는 발견하기 전에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하나님의 나라는 찾는 자에게 발견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기 밭이 아니라면 문제는 다르다. 누가 어느 사람의 밭에서 일을 하다가 보화를 발견하였다면 그 보화는 자기 것이 될 수 없다. 그 밭의 주인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발견한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보화를 그 밭에 도로 숨겨 두고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살 것이다. 여기서 요점은 밭째 몽땅 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보화만 사려하다가는 분쟁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과거 일본에서 신학을 하면서 갈보리채플을 만났다. 내 믿음 생활 12년을 통틀어 처음으로 발견한 보화였다. 이 기쁨은 누구에게도 표현할 수 없었고 또 알 수도 없었다. 그러나 내 생각 속에서는 그동안 믿음을 쌓아 둔 교회에 있으면서 그 기쁨을 누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북한에 사는 사람이 한국을 찬양하는 것과 같아서 둘이 서로 용납되지 않았다. 그냥 있으면 편한 길을 갈 것 같고 새로운 길을 택하자니 황막한 광야길과도 같았다. 그러나 나는 내 마음을 사로잡은 그 기쁨을 따라 모든 것을 벗어 버리고 보화가 있는 것을 사기로 결심하였다. 나는 지금까지 이 기쁨을 누리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교회는 개혁이 되지 않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부분적으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천국을 위해 부모와 처자와 전토를 버린 자는 금새에서 배나 받고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다 하셨다.

 

최근 동성애로 고통받는 형제자매들의 상담을 받으며 느낀 것은 그들은 나의 전도를 듣고 기뻐하지만 내가 있는 밭으로 들어 오기는 꺼려한다. 부자 청년이 자기의 가진 것이 많아 주의 초청을 따르지 못하고 근심어린 얼굴로 돌아갔듯이 그들은 자기 것을 다 팔아서 보화를 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 것을 다 팔아서 보화를 산 사람들은 영원한 기쁨과 상금을 받게 될 것이다.

 

B.         좋은 진주와 장사

두번째로 주님은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45) 하셨다. 진주는 돌아 조개 속에 들어가서 오랫동안 조개와 화합하여 만들어진 보석이다. 마치 우리와 같이 세상에 버려진 돌이 귀한 진주가 된 것이다.

 

여기서 장사란 이익을 남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주를 구하는 장사는 좋은 진주를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하며 그 진주를 팔 사람과 관계가 있어야 한다. 좋은 물건을 자기가 지니려고 사는 장사꾼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장사는 진주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전문적인 지식을 갖어야 할 것이고 또 귀한 진주를 살 사람의 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진주를 구하는 장사는 좋은 진주를 만나기까지 계속 노력할 것이며 만나기 전까지는 절대로 중간에 포기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자기가 얻을 이익을 잘 알기 때문이다. 주님은 이미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12) 하셨다. 이와 같이 장사의 목적은 좋은 물건을 찾는 것이며 가장 값지게 살 사람들 아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좋은 진주를 찾는 주인을 알고 있다면 또한 그 값이 얼마나 지극히 큰 것인지를 안다면 좋은 진주를 만나기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좋은 진주를 만나면 모든 것을 다 팔아 살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께서 그의 택하시고 부르신 사람들을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자기 목숨을 팔아 사신 것이다. 바울은 “너희 몸은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20) 하였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진가를 후일 수많은 거룩한 증인들

 

C.         바다에 친 그물

예수께서 세번째 비유를 말하여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느니랴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47-50) 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가라지 비유와 씨 뿌리는 비유에서 중간중간 언급하신 내용을 좀더 확실하게 알기 위해 설명하신 것으로 세상 끝에 있을 심판에 관한 메시지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 교회 속에는 악인과 의인이 함께 있다는 것과 주를 믿는 내가 악인 또는 의인 중에 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악인에 대한 개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악인이라 할 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기 쉽다. 사실 그 말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들은 말할 것도 없이 세상 가운데서 주를 미워하고 주의 나라의 오심을 고대하지 않는 자들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악인이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않고 영광을 돌리지도 않으며 불의로 진리를 막는 자들을 뜻한다. 다시 말하여 하나님의 밭에 뿌린 곡식들과 함께 자란 독보리인 것이다. 그들은 불의로 마음을 미혹하고 불법을 행하여 자기의 몸을 키우는 자들이다.

 

주님은 이미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고침을 받고자 하지 않는 자들이다. 우리는 이미 성경에서 하나님을 자랑하고 하나님으로 말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이 있음을 알고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에도 악한 자들이 몰래 들어와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을 훔치고 미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께서 미리하신 말씀과 같이 세상 끝에 그들은 모두 천사들에 의해 묶임을 당하여 불사름을 당하게 될 것이다.

 

D.         천국의 제자의 역할

천국복음의 비유를 제자들에게 설명하신 주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물으시니 그들이 예라고 답하였다. 이처럼 천국복음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 택함을 받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성령으로 그 나라를 알게 하셨으므로 주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천국에 대하여 아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주님은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 것과 옛 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 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하셨다. 여기서 주께서 말씀하신 제자된 서기관이란 스승으로부터 교리와 학문을 가감 없이 배우고 실천하는 학자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천국복음을 위해 부름받은 제자들로서 성경의 바른 말씀을 듣고 연구하고 공부하며 실천하는 종들이다.

 

또한 옛 것과 새 것이란 단편적으로 말할 때 구약과 신약을 뜻한 것이겠지만 성경 전체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어떤 자신의 편견에 휘말리지 않고 바르게 내어 올 수 있는 복음의 청지기를 뜻한다. 청지기는 바로 집주인의 대리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충성하려고 나아가는 것을 본다. 그들의 믿음을 볼 때 정말 감격스럽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그러한 종교활동적 믿음만으로 생활한다면 그들은 결코 천국의 비밀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자시에 귀와 눈이 가리워져 가라지 가운데 속해 있어 마지막 날에 이를 갈며 슬퍼 할 것이다. 나는 그 모든 책임이 교회에 있다고 생각한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주의 가르치심에 따르지 않고 자기도 미쳐 깨닫지 못한 것을 가지고 성도들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E. 자기 고향에서의 배척

53절부터는 흥미로운 내용이 기록되었다. 예수께서 천국비밀을 가르치신 후 고향으로 내려가 그들의 회당에 들어가 말씀을 가르치시게 되었다. 그런데 예수님의 메시지를 들은 사람들이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냐?” 의심하며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뇨”하며 예수님을 배척하였다. 이에 예수님은 저희에게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아니함이 없다”하셨다.

 

우리는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의 증언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난 것을 다시 확인 할 수 있으며, 마리아가 카톨릭 교회가 주장하는 것처럼 성 처녀가 아님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마리아는 성령으로 잉태하여 예수를 낳은 후 요셉과 사이에 네 명의 아들과 또 딸들을 낳았던 것이다. 그 중에 야고보는 후일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으며, 유다는 종말의 성도들을 깨우치는 유다서를 남겼다. 성경은 예수께서그들이 믿음이 없는고로 고향에서는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않으셨다고 기록되었다. 이것으로 하나님의 능력의 나타나심은 믿음과 직결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그 믿음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