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마태복음강해

(마태복음18:3) 천국의 조건

이요나 2007. 12. 8. 16:52

(마태복음18:3) 천국의 조건

(18:3)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우리는 17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과 도래할 천국의 속성을 살펴 보았다.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주께서 승천 땅에 나타날 장래의 일들을 미리 보여 주신 것이다. 또한 우리는 주께서 승천하신 땅에서 펼쳐질 믿음 없고 패역한 교회의 현실을 목도하였다. 이것은 실로 오늘의 우리의 문제들이다. 18장은 17장과 이어진 내용으로서 천국을 주도할 제자들이 마땅히 세상에서 해야 일들에 대하여 기록되었다. 이것은 오늘 우리의 사명이며 우리의 천국에 거한 초월 믿음을 가진 자들의 자세이기도 하다.

 

I.  제자와 천국(1-14)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1)

 

A. 어린아이와 천국

우리는 서두의 제자들의 질문을 참으로 황당한 상황을 목격하게 된다. 예수님은 이제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장로들과 제사장들에게 붙잡혀 죽게 것을 말하시며 이후에 일들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시며 그들이 온전한 믿음에 서기를 바라고 계신데 제자들은 천국에서의 누가 큰지 세상의 권세에 관심을 갖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가 요한복음에서 바와 같이 야고보와 요한은 어머니와 함께 주께 나아와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하여 주소서”(10:37) 부탁을 하였다. 말을 들은 제자들도 이를 갈았다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모두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오늘날 교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모두가 서로 도토리 재기를 하고 있지 않는가? 서로 교세를 확장하며 세계 최고의 목사가 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는가? 그러하여 교회가 분열되고 반목되어 세상 사람들의 눈총을 받고 있지 않은가?

 

주님은 이미 앞에서 이러한 소모적인 논쟁의 무익함을 책망하여 믿음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하셨고 아들들은 세를 면할 것이라 말씀을 통하여 장차 주의 나라의 통치구조가 세상과는 다를 것을 언급하셨는데 제자들은 아직도 세상의 습성에 매여 있음을 있다.

 

이에 주님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자니라”(3,4) 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은 제자들의 생각과 상반된 말씀이다. 아마 세상 같으면 자기가 따르는 지도자가 이런 말을 한다면 모두 떨어져 나갈 것이다. 여기서 주님은 천국의 통치의 질서는 겸손에 있음을 언급하신 것이다. 이미 주님은 산상수훈에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7”12) 하셨고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네게 배우라”(11:29) 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그만큼 세상의 권세의 욕망을 향한 속성이 얼마나 강한 것인가를 있다.

 

최근 우리는 대선구도에서 권세의 속성들을 목격한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원수가 되고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이 동원된다. 이것이 최고 지상주의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권세의 속성은 겸손과 온유다. 모든 것을 내려 놓아야만 것이다. 모든 권세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B. 실족의

계속하여 주님은 누구든지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소자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리니라”(5,6) 하셨다.

 

여기서 주님은 순전한 어린아이들의 마음과 겸손한 자세를 말씀하신 것이다. 어린아이들이 이처럼 순전하고 온유하며 겸손한 것은 그만큼 세상에 물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어린아이들이 세속적으로 물드는 것은 어른들의 잘못된 가르침 때문이다. 우리는 텔레비전을 통해서 지난번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을 북한에서 주최한 아리랑 축전을 보았다. 수천명의 어린아이들이 꼭두각시처럼 춤추는 모습을 보며 경악하였다.

 

어린 것들이 얼마나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였으면 사상과 표정, 모든 동작에까지 일치할 있단 말인가? 그들은 어린아이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모든 같은 사상과 이념과 어법과 표정이 모두 동일하다. 이들의 사상과 이념과 언행은 모두 김정일 위원장으로부터 나온다. 그는 모든 사람들의 우상이며 군중의 인격인 것이다. 이로서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들의 고유한 인격은 사라지고 우상화된 인격이 입혀진 것이다.  

 

주님은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7) 말씀하셨다. 주께서 말씀하신 실족이란 새들을 잡기 위한 덫과 같은 것을 뜻한다. 무엇인가 잘못된 것을 가르쳐 잘못된 길로 넘어지게 하면 그는 용서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께서 말씀하신 실족은 유혹의 과정을 범죄를 뜻한다. 사실 말씀은 참으로 두렵기 그지없다. 세상에 어느 누가 완벽하여 다른 사람을 실족케 하지 않을 있단 말인가?

 

여기서 주께서 말씀하신 실족에 관한 것은 잘못된 가르침으로 사람들의 영혼을 실족시킨 것을 뜻한다. 누가 말하되 사람의 본체는 영이니 육이 범죄한 것은 괜찮다 가르쳤다면 아이들은 모두 음행에 빠지고 도둑질을 일삼으면서도 자신들은 죄없다 것이다. 육은 죽어 없어질 것이라 배웠기 때문이다.

 

누가 천년왕국은 문자대로 것이 아니요 예수님의 오신 날부터 복음이 땅끝까지 이른 날까지를 칭한 것이니 휴거도 없고 대환난도 없을 것이라 가르쳤다면 말씀을 받은 어린아이들은 모두 영생에 이르는 지혜를 얻지 못하고 그들의 믿음은 온전치 못하여 패역한 길로 치우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것인가? 우리가 어떻게 가르쳐야만 하는가?

 

주님은 만일 손이나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손과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7) 하셨다. 정말 두려운 말씀이 아닐 없다.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말씀은 오히려 올무가 있다. 사실 어떤 사람은 말씀을 읽고 범죄한 자신의 손을 잘라버렸다고 한다. 이것은 실족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한 것이다.

 

여기서 주께서 말씀하신 의도는 어떤 경우라도 절대로 죄를 용납해서는 않된다는 것이다. 누구라도 범죄자는 절대로 천국에 들어 없음을 언급한 것이다. 말씀은 범죄의 크고 작은 것을 뜻한 것이 아니라 누룩과 같이 적은 죄라도 자기 안에서 단죄하여 내지 않으면 않된다는 말씀이다.

 

여기서 주님은 영생의 기준을 말씀하신 것이며 범죄는 부분적인 행위로 말미암더라도 지옥에 들어 밖에 없는 사실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 어린아이들을 잘못 가르쳐 그들이 범죄를 하게 하는 것은 그로 영생이 들어가지 못하게 것이므로 그가 차리리 연자 맷돌을 지고 바다에 던지우는 것이 낫다하신 것이다.

 

계속하여 주님은 만일 눈이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눈을 가지고 지옥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하셨다. 대부분의 유혹은 눈으로부터 들어 온다. 위에서 손과 발은 행위의 실행하는 도구이지만 눈은 범죄를 불러 일으키는 원인 제공자다. 하와는 뱀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보았을 보암직도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다 말하였다. 이처럼 눈은 모든 행동을 일으키는 근원이 되기도 한다.

 

유다는 이들의 죄를 말하여 있을진저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1:11) 증거하였다. 여기서 고라는 형제에게 잘못된 예배를 시도하였으며, 발람은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택하신 거룩한 백성의 앞에 음행의 씨앗을 놓았으며 고라는 교만하여 부족을 충동하여 부르심에 반항 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은 모두 하나님을 아는 지도자였다는 것이다.

 

C. 하나님의

주님은 10절에서 삼가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하셨다. 여기서 저희의 천사들은 어린아이들의 현현으로 보아야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말씀을 들어 사람마다 수호천사가 있다고 말하지만 우리가 주의 천사를 말할 그는 주의 현현이며 하나님의 천사라 그는 하나님의 현현이다. 따라서 여기서 저희의 천사란 타고난 죄성은 있으나 범죄의 마음이 없는 어린아이들의 영이 하나님 앞에 있음을 언급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우리 성경에는 11절이 없다. 그러나 킹제임스 성경은 인자가 것은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려는 것이라기록되었다. 또한 요한복음에는 아버지의 뜻을 말하여 이것이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이니 분께서 내게 주신 모든 사람은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라 이것이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이니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생을 얻게 하는 것이라 그리고 내가 그를 마지막 날에 살리리라” (6:39,40) 기록하였다. 이것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은 사람을 정죄하여 지옥에 들어 가게 하심이 아니요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하심인 것을 있다.

 

주님은 제자들의 의견을 물으며 이를 비유로 설명하여 만일 어떤 사람이 일백마리가 있는데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잃은 양을 찾지 아니하겠느냐 진실로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기뻐하리라”(12-13) 하셨다.

 

세대주의자들은 말씀을 들어 잃어버린 이스라엘로 번역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 구약의 관점으로 설명할 그들의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다. 주께서도 제자들을 보내시며 이방인의 길로도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10:5,6) 하셨으며 이방여인에게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15:24) 하셨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교회가 맡은 사명을 말씀하신 것이므로 말씀은 선한 목자를 만나지 못하여 잘못된 길로 나아간 깨닫지 못한 어린아이들을 뜻한다.

 

그러므로 주님은 이와 같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리라”(14) 말씀하셨다. 킹제임스 성경은 잃어지는 망하는 이라 번역되었다. 이것은 그들이 처음부터 잘못되도록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무엇인가로부터 잘못 되어진 것이다. 여기서 소자란 처음부터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말씀은 일백마리의 양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있는 양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가 하나님의 양이며 그들은 잃어버려서도 않되고 망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길잃은 양이 되어 버렸고 망했다. 이것은 그들을 인도한 목자들을 책임이다. 양들이 길을 잃은 것은 올바른 목자를 만나지 못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여 이들에게 잘못된 정보와 지식을 가르쳐 이들의 눈을 유혹하고 이들의 손과 발이 범죄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땅의 모든 사람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으신 하나님의 소유다.

 

주께서 손과 발이 너를 범죄케 했다면 찍어 내버리라 하셨고 눈이 너를 범죄케 했다면  빼어 내어버리라 하신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죄의 근거를 용납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내게 아무리 필요한 조건이고 나를 기뻐하는 것이라 해도 단호하게 잘라 내어버리라는 말씀이다. 그것이 다른 사람을 망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누구인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끌고 나갈 복음의 일군인 것이다. 바로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를 맡은 영적 지도자들이다. 이들을 잘못되게 만드는 것은 하지 말아야 것을 하고 가지 말아야 곳을 가고 보지 말아야 것을 보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최고 지상주의를 꿈꾸는 세상의 자녀들과 같지 않아서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하여야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II. 형제의 범죄와 교회의 역할 (15-20)

두세 사람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20)

 

A.       형제의 범죄 ( hamartese)

여기서 주님은 우리에게 죄의 문제를 다루는 방법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이것은 위에서 언급된 것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이다. 다시 말하여 실족한 형제 잃어버린 하나님의 양을 찾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언급하신 것이다.

 

먼저 주님은 제자들에게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사람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형제를 얻은 것이요”(15) 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첫번째 취할 우리의 태도다. 주님은 먼저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라고 하셨다. 유대인에게 있어 형제란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뜻한다. 야곱의 열두 아들 열두 형제로 출발한 족속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믿는 자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형제된 사람들이다. 말씀은 믿는 모든 자들을 언급하신 것이다. 형제가 범죄하면 일단 그에게 가야 한다. 그가 어떤 교단이었던지 간에 형제인 우리는 그를 구원하기 위해 가야 한다.

가서 우리가 해야 것은 사람만 상대하여 권고하여야 한다다른 사람이 개입되어서는 않된다는 것이다. 그를 가르친 사람이나 그와 관계된 사람과도 함께 해서는 않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영적 환경을 조성해야 필요성을 말씀하신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과 같은 입장의 사람들과 함께 하려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어떤 도전을 받으면 자기를 변론할 사람을 찾게 된다. 이렇게 되면 결국 논쟁을 일으키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하신 것이다.

 

나는 믿는 자들 중에 아직도 동성애를 즐기는 사람들과 상담할 때가 있다. 그들은 자신은 동성애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본성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므로 정죄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한다. 이럴 우리가 그와 동일한 사람들과 함께 만나서 문제를 논하면 논쟁을 일으키게 되어 그의 잘못된 주장을 성경적으로 말한다 해도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이미 그에게는 자신의 원리를 증거하는 증인을 얻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의 문제에 대하여 단둘이만 상대해야 하는 다른 이유는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설혹 아직 깨닫지 못하여 범죄하였다 하드라도 그의 인격은 존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서 권고란 부끄럽게 하다는 뜻으로 그의 죄를 성경적으로 책망하라는 뜻이다.

 

성경은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권하라”(딤후4:2) 하였으며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 꾸짖어 나머지 사람으로 두려워 하게 하라”(딤전5:20) 하였고 다시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2:15) 기록하였다. 이와 같이 성경에서의 권고는 책망을 포함하고 있다.

 

B.      권고의  3단계

주님은 두번째 방법으로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하라”(16) 하셨다. 부분은 이단적 가르침에 빠진 사람들을 증거할 취하여야 두번째 방법이다. 말씀을 들어서 여호와의 증인들은 두세 사람이 떼를 지어 믿는 자들을 찾아다니며 파수대라는 이단사설로 사람을 미혹한다.

 

여기서 증인이란 복음의 증인을 뜻한다. 아무나 데리고 가라는 말씀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위해 헌신된 사역자들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여 복음을 위해 목숨을 바친 자들을 뜻한다. 이들과 함께 가서 그가 하는 말마다 증참 진리로 증거하라는 것이다. 부분은 참으로 중요하다. 그리스도의 증인들과 함께 형제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동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불경건한 자들의 책망을 말하여 증거가 참되도다 그러므로 네가 저희를 엄히 꾸짖으라 이는 저희로 하여금 믿음을 온전케 하고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좇지 않게 하려 함이라”(1:13,14) 증거하였다.

 

세번째로 주님은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하셨다. 여기서 교회란 사람의 영혼을 감당할 최고의 기관이며 음부의 권세를 이길 최고의 보루다. 예수께서 교회에게 권세를 주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18) 하셨다. 말씀은 이미 16장에서 예수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한 믿음 위에 세우신 그리스도의 교회에 주신 권세다(16:17,18). 주님은 여기서 다시 교회에 주신 권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주께서 이처럼 여러 단계에 걸쳐 잘못된 길로 빠진 형제들을 구원케 하신 것은 그들이 모두 하나님의 양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을 알되 잘못된 지식에 이끌려 잃은 양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단에 빠진 형제들을 구원하기 위해 힘을 써야 것이며 주께 기도하여야 것이다.

 

C. 전제조건 합심의 기도

이에 주님은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19,20) 말씀하셨다. 여기서 다시 말씀하셨다는 것은 16 18 말씀을 다시 상기하신 것이다. 이처럼 영혼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이다.

 

유다는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1:22,23) 하였고 사도 요한도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를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요일5:16) 하였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것은 형제의 범죄를 묵인 하지 말하야 한다는 것이며 권고로 만일 형제가 들으면 형제를 얻는다는 것이다. 주님은 사람이 돌아 것을 기뻐하시는 것이다. 주께서는 의인을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교회의 모순은 자기의 교리와 다른 형제들을 이단으로 정죄하여 내어 쫓는 것이다. 아마 주님이 말씀을 화상하시며 통분해 하실 것이다.

III. 용서의 중심(21-35)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35)

 

A.       번을 용서할 것인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베드로가 앞에 나아와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번까지 하오리까?”(21) 하고 물었다. 참으로 베드로는 당돌한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베드로와 같이 무엇을 생각할 수리적 계산을 하게 된다. 얼마만큼 것인가? 양적인 것에 대한 의문이다. 이처럼 인간 세상은 모든 것에 있어 수리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수리적이 아니다. 이것이 주께서 요구하신 겨자씨만한 믿음의 원리이다. 

 

베드로의 질문에 주님은 네게 이르노니 일곱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지니라"(22) 하셨다. 주님은 용서에 관한 것은 어떤 수리적인 관계가 아니라 무조건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만약 우리의 죄를 수리적으로 계산하여 용서한다면 설혹 일곱번씩 일흔번이라 해도 우리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우리의 죄는 수리적으로 계산할 없기 때문이다.

 

B.       일흔번씩 일곱번

세대주의자들은 여기서 베드로가 말한 일곱번씩 일흔번이라는 수리를 말하여 490번의 의미를 부여하고 애굽에서의 유월절부터 솔로몬까지 490 성전 봉헌부타 바벨론 포로 귀환까지 490년이라 말하며 다니엘의 70이레는 일흔번으로 490일을 뜻하는데 칠칠체계에 의해 하루를 일년으로 계산하면 490일은 490년을 뜻하는데, 바벨론 포로 귀환부터 예수님의 성전입성까지 483년이므로 490년이 되려면 7년이 남게 되는데 그것이 이스라엘의 마지막 시간표인 7 대환난이라 말한다. 어쩌면 이와 같은 그들의 주장도 일리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말씀은 사도 베드로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여기서 베드로가 말한 형제는 유대인뿐이 아니라 주를 믿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를 뜻한다. 여기서 주님은 용서는 무조건이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주님은 비유로 이를 설명하여 천국은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하나를 데려오매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팔아 갚게 하라 한데 종이 엎드리어 절하며 가뢰되 내게 참으소서 갚으리이다 하거늘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빛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종이 나가서 제게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뢰되 빚을 갚으라 하매 동관이 엎드려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동관들이 그것을 보고 심히 민망하여 주인에게 가서 일을 고하니 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빚을 갚도록 저를 옥졸에게 붙이니라”(23-34) 말씀하셨다.

 

C.       중심 - 그리스도의 말씀

말씀 속에는 땅의 모든 사람은 그가 주의 종이든 범죄한 종이든 모두 죄인이라는 뜻이 전재되어 있다. 여기서 동관이란 ’(함께하다) 둘로스’(노예) 합성어로 동료 노예 뜻한다. 다시 말하여 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여 사도인 너희나 후일 너희와 함께 복음의 종이나 모두 용서받은 죄인이라는 말씀이다.

 

바울은 이를 증거하여 그때에 너희가 가운데 행하여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권세를 잡은 자를 따랐으니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라”(2:2) 하였으며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2:5), “너희가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2:8) 증거하였다. 그러므로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져 주어라’(10:8) 하신 것이다.

 

끝으로 주님은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35) 하셨다. 말씀은 사도 교회에게 하신 말씀이다. 교회는 용서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하신 것이다. 과연 오늘날 우리 교회는 어떨까? 자기들과 조금만 달라도 이단으로 정죄하지 않는가? 손가락질로 남을 가리켜 보라 손가락은 자신을 가리킨다. 무든 개가 묻은 개를 흉보는 격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명목이나 어떤 조건으로 용서를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선다면 땅에서 것과 같이 하늘에서도 푸실 것이다. 주여 우리의 믿음을 굳건히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