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마태복음강해

(마태복음20:33) "땡잡은 사람들"

이요나 2007. 12. 22. 16:10

(마태복음20:33)  너는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20:33) “가라사대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가로되 주여 우리 뜨기를 원하나이다

 

마태복음 20장은 19 말씀에 부연된 것이라 있다. 주님은 19장에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가기 위한 믿음생활의 기본원리와 필수원리를 말씀하셨다. 그것은 어린아이와 같이 온전한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며 또한 율법에 기록된 모든 계명들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천국에 들어 가는 뿐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그리스도의 날에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의 보좌에 앉는 것이다.

 

I. 뜻대로 것이 아니냐?(1-16)

이와 같이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자로서 나중되리라”(16)

 

A. 하나님 나라의 입성(1-2)

주님은 19 마지막 절에서 이와 같이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자로서 나중되리라”(16) 말씀하셨다. 말씀은 남보다 먼저 되는 세상 원리와 반하는 것으로 열심을 다해 최선을 달려 사람들에게는 충격을 주는 말씀이다. 이에 주님은 포도원의 비유를 들어 천국의 원리를 설명하셨다.

 

주님은 비유를 들어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 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주인과 같으니 저가 하루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 보내고 삼시에 나가보니 장터에 놀고 섰는 사람들이 있는지라 저희에게도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 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리 하니 저희가 가고 제육시와 제구시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섰는 사람들이 있는 지라 가로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냐 가로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다. 가로된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2-7) 말씀하셨다.

 

여기서 포도원은 성경적 해석으로는 하나님의 백성된 이스라엘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나의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5:1) 기록하였고 다시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공평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의로움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5:7) 증거하였다.

 

말씀은 바로 포도원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의 나라요 포도나무는 포도원의 주체가 되는 포도나무가 된다. 그러므로 천국된 포도원은 포도나무가 가꾸어졌느냐에 따라 값어치가 있으며  그를 위해서는 포도나무를 가꿀 일군이 절대로 필요하다. 따라서 오늘 비유는 천국복음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 대한 메시지가 틀림없다. 다시 말하여 오늘의 우리를 향한 말씀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한 모든 주권에 대하여 생각해 필요가 있다. 그것은 당연히 주인에게 있다. 모든 계획이 모두 그의 뜻에 있는 것이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도다” (103:19) 하였고 또한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중에 거하는 자가 여호와의 것이로다” (24:1)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모든 일을 행하심에 누구와 의논하실 일도 누구의 승인을 받으실 이도 없다. 그가 천지만물을 지으셨고 그와 안에 있는 모든 것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시편기자는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 (115:3) 노래하였고  다니엘 선지자도  땅의 모든 거민을 없는 것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사에게든지 땅의 거민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누가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 자가 없도다” (4:35) 증거하였다. 또한 바울은 사람을 부르심 있어서도  토기장가 진흙 한덩이로 하나는 귀히 그릇을 하나는 천히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9:21) 기록하였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모든 일을 그의 뜻대로 행하신다.

 

B. 정한 동안 계속 찾으심(4-9)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하나님께서는 그의 포도원을 가꾸기 위해 사람들을 계속 찾으신다는 것이다. 이른 아침에도 제삼시에도, 제육시에도  제구시에도 그리고 제십일시에도 나가 놀고 있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셨다. 여기서 제삼시는 오전 9시며, 제육시는 정오이며 제구시는 오후3시이다. 유대인은 시간을 오전6시부터 오후6시까지 12등분하고 오전6시를 제일시로 정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제구시 다음은 제십이시라고 하여야 하는데 제십일시라 기록되었다. 시간은 오늘날 오후5시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이제 한시간만 지나면 낮은 마지막 1시간을 남겨 놓은 있는 시간이 끝난다. 이것은 포도원을 가꾸어야 그의 계획이 끝났다는 의미가 된다. 따라서 품꾼은 그가 세상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지 간에 때를 따라 부르시는 포도원 주인의 음성을 듣고 포도원으로 들어 가기만 하면 된다.

 

주께서 이처럼 일정한 시간동안에 세상에 나가서 품꾼들을 불러 들이신 이유는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서이다. 이미 주님은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일백마리가 있는데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마리를 들에 두고 잃은 하나를 찾도록 찾아 다니니 않겠느냐 (15:4) 하셨고 또한  인자가 곳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19:10) 말씀 하셨다. 어쩌면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4:23) 하신 말씀을 이루기 위하심일지도 모른다.

 

C. 사역의 원리(16)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품꾼을 부르셨다는 것이다. 품꾼은 자기가 일한만큼의 정한 품삯을 받는 단순 노동자들을 말한다. 주님은 처음 부른 품꾼들과 하루 데나리온을 약속하셨다. 여기서 데나리온은 당시 하루 노동자의 품삯이다. 다만 우리가 있는 것은 포도원 주인이 찾는 사람들은 자기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놀고 있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또한 흥미로운 것은 때마다 세상에는 항상 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리스도의 날로부터 지금까지 세상에는 항상 복음을 위해 일할 사람들이 준비 되어 있었다. 다만 여기서 우리가 살펴 보아야 사람들은 열한 하루의 마감이 되도록 종일토록 놀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제 한시간이 지나면 시간이 마감되는데도 그들은 자신들을 사람들이 없어 놀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사람들은 세상에서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인정을 받기 위해 세상의 원리를 따라 나선 사람들은 모두 자기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을 터이나 사람들은 자기들을 품꾼으로 사람들이 없어 종일토록 놀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루 마감 시간이 되자 주인은 시간이 되어서 청지기를 불러 품꾼들을 모으고 나중에 들어 사람들로 시작하여 먼저 자들까지 데나리온씩 주라고 명하였다. 이에 먼저 들어 사람들은 한시간 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들이 데나리온 받으므로 자신들은 상당하게 받을 알았으나 그들과 똑같이 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주인에게 우리가 종일 더위를 견디며 수고하였는데 저들과 똑같이 대우합니까? 하고 원망을 하였다.  이에 주인은 친구여 내가 네가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데나리온 약속하지 않았느냐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뜻이니라 것을 가지고 뜻대로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13-15) 답하였다.

 

오늘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는 세상의 계산법과 다른 것을 있다. 만약 세상에서 누가 이런 경영을 하게 되면 그는 당장 노사관계에 시비가 생길 것이다. 그러나 천국은 일을 많이 하였느냐에 무게를 두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맡은 시간 동안 충실했느냐에 있는 것이다. 나중 들어 사람이나 먼저 들어 사람이나 품꾼의 역할인 주인의 뜻을 따르냐에 있는 것이다. 주님은 이미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 것이 아니라 다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7:21) 말씀하셨다. 이것이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자로서 나중 되리라”(16) 하신 말씀에 대한 정의인 것이다. 어쩌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모르던 이방인들이 자신들과 동일한 대우를 받는 것을 부당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양일백마리는 모두 주인의 것인 것이다. 중에 하나도 잃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이다.

 

D. 은혜의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할 때를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55:6) 증거하였으며 또한 그의 날에 주님은 이스라엘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손을 벌렸노라 하셨느니라 (10: 21) 증거하셨다. 그러나 모든 증거는 다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선포되고 있다. 울은 이미 내가 은혜를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노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6:2) 증거하였으니 그의 증거가 참으로 옳다. 지금은 은혜를 받을만한 때로서 이제 잠시 후면 시간은 마감이 되고 것이다.

 

II. 하나님의 계획(17-19)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능욕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박게 하리니 제삼일에 살아나리라”(19)

 

A.      그리스도의 고난(17-19)

여기서 주님은 열두 제자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며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에게 넘겨주어 그를 능욕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박게 하리니 제삼일에 살아나리라”(18,19) 말씀하셨다. 이번으로 메시야 교육은 세번째가 된다.

 

주님은 메시아의 고난은 예루살렘에서 있을 것이라 말씀하셨다. 이미 성경이 선지자는 예루살렘 밖에서 죽는 법이 없다’(13:33)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후일 대환난 때에도 증인이 예루살렘에서 죽임을 당하게 된다(11:8).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도성이다. 장차 주께서도 이곳에서 통치하실 것이다. 이곳에서 종교 지도자들에게 모함을 받아 로마 사람들에게 넘겨져 십자가에 달리실 것이다. 이들이 자기들 손으로 죽이지 못하고 이방인의 손을 빌려야 하는 것은 당시 유대인은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었기 때문이다.

 

B.      부활의 목적 - 제삼일에 부활

주님은 제삼일에 살아 나실 것을 말씀하셨다. 말씀은 듣는 이들에게 상당한 의심을 갖게 한다. 죽은 삼일만에 다시 살아 난다는 자체도 이해할 없는 일이지만 다시 살아 것을 죽느냐는 것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비밀인 것이다. 비밀은 그리스도의 날에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죽어야만 되었던 것이다.

 

주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는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11:25,26) 하셨다. 베드로는 그를 이방인에게 내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사 자기의 그리스도의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3:18) 하였으며 하나님이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3:21) 증거하였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우리의 죄를 사하고 우리의 연약한 병을 고치시기 위함이시다. 베드로는 친히 나무에 달려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을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얻었나니” (벧전2:24)라고 증거하였다.

 

그러나 부활의 비밀은 이것 뿐이 아니다. 바울은 몸의 부활을 소망하는 우리에게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4:8) 증거하였다. 먼저는 사로잡힌 먼저 잠들어 음부로 내려간 영혼을 위하고 산자의 영혼을 위하여 우리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신 것이다. 주님은 이미 제자들에게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리라 내가 떠나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 보내리라”(16:7) 말씀하셨다.

 

III. 땡잡은 사람들(20-28)

인자가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28)

 

A. 제자들의 욕망(21-28)

21절에는 매우 흥미로운 내용이 소개되었다. 예수께서는 이제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 것과 삼일만에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셨는데 예수 그리스도와 혈육적으로 가장 친하다고 있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그의 어머니가 나아와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해달라청을 것이다. 삼년반동안 제자들과 함께 하며 천국을 가르쳐 스승은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실 것을 말씀하시는데 이들은 통치의 권세를 요구하고 있다. 이것으로 보아 이들은 메시아의 왕국이 땅에 세워질 것에 대한 소망과 믿음은 갖고 있었던 같다. 

 

마가복음 10장에는 그들의 어머니가 등장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아 의견은 예수님의 어머니의 동생이며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에게서 나온 같다. 이처럼 땅의 모든 어머니는 자기 아들들이 최고의 수준에 도달하기를 소망한다. 이런 생각이 누구에게서 나왔던지 간에 이들의 청에 열명의 제자들이 분히 여겼다는 기록을 보아 그들도 모두 같은 생각을 했던 같다.

 

이에 주님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있느냐”(22) 하셨다. 이에 그들은 마실 있다답하였다. 그들의 당찬 대답을 들으신 예수께서는 너희가 과연 잔을 마시려니와 좌우에 앉은 것은 나의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23) 답하셨다. 말을 들은 그들은 참으로 허망하였을 것이다. 자신들은 다른 제자들보다 가깝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고 그의 어머니를 봐서라도 자기들의 대우는 다를 것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주님은 앞에서 말씀하신 포도원의 비유를 통하여 품삯의 공평성을 말씀하셨다. 이들은 비유를 듣고서도 아직 말씀이 뜻하는 바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비밀은 그의 계시가 아니면 없도록 봉해진 것이다. 불과 몇일 후에 일어날 일을 앞에 두고도 이들은 마치 소경처럼 설왕설래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주께서 너희가 나의 잔을 마실 있느냐 하신 것은 십자가의 고난을 뜻한 것이다. 그들은 자신있게 잔을 마실 있다 답하였다. 물론 후일 이들도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순교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같은 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 것이지 그들의 죽음이 영혼을 살리고 병을 고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후일 바울은 너희가 떡을 먹으며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고전11:26) 증거하며 다시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며 이로 인하여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든 자도 적지 아니하다’(고전11:29,30) 경고하였다. 

 

B. 권세의 속성

여기서 주님은 제자들을 불러 모으시고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25) 라고 하셨다. 이것은 세상의 통치 속성을 말씀하신 것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집권자들이 임의로 주관하고 지도자들이 권세를 갖고 있다. 그로 하여 모든 사람들은 출세를 하기 위하여 달려 가고 그를 위해 재물을 모으려 혈안이 되어 있다.

 

계속하여 주님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26,27) 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주께서 너희 이라고 하셨음에 주의하야 한다. 이것은 장차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이끌고 나갈 복음의 나라 교회시대를 언급하신 것이다.

 

C. 하나님 나라의 권세

이에 주님은 인자가 것은 섬김을 받으러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28)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의 목적이다. 또한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이기도 하다. 성경은 이미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1:14) 라고 기록하였다.

 

주께서 만물을 아래 복종케 하셨느니라 하셨고 아직 우리가 만물이 복종한 것을 보지 못하였다”(2:8) 하셨으니 이는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2:10)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다.

 

예수께서는 여기서 주께서 지실 십자가를 말하여 대속물이라 하셨다. 이것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의 몸을 제물로 내어 주신 속전을 뜻하신 것으로 바울은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 (딤전2:6) 증거하였으며, 또한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2:14) 증거하였다.

 

이처럼 예수께서 제삼일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자 제자들은 이제 그리스도의 왕국이 되어 자신들의 통치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 고난 후에 제자들 앞에 도래하는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포도원인 것이다. 제자들은 포도나무가 자라도록 물을 주고 가지를 열매가 열리도록 하는 것이다. 이처럼 제자들은 십자가 고난 뒤에 교회시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장차 주께서 통치하실 천년왕국이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주께서 재림하시는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땅에서 천년동안 왕노릇할 것이다(8:17, 20:4).

 

D. 소경의 소망(29-34)

마지막 단락에는 매우 흥미로운 내용이 나온다. 내용은 통치의 권세에 눈이 시뻘겋게 제자들의 얼굴을 시뻘겋게 하는 장면이다. 내용은 필자가 지혜와 지식과 믿음의 선물 기록된 믿음의 선물에 대한 부분을 함께 살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일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 가실 가시는 길에서 가장 낮은 지역 여리고를 지날 일어난 사건이다. 주께서 여리고를 지나신다는 소문이 있자 가에 앉아 있던 소경 둘이 소리질러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하고 외친 것이다. 그러나 주를 따르던 무리들이 꾸짖어 소리를 지르지 못하게 하니 그들은 더욱 소리를 질러 외쳤던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미 앞에서 주께서 소경이나 문둥이나 귀신들린 사람이나 각종 병든 사람들을 고치신 것을 사람들이 소경이 예수를 찾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 그들의 생각은 예수께서 중대한 일을 위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데 보는 소경 나무라기가 훼방을 하는 것이 못마땅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일은 세상에서 분분한 일이다. 지위가 높아질수록 사람들의 눈은 높아지는 것이 세상의 원리이다.

 

여기서 소경들이 말한 다윗의 자손이란 오직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에게 속한 성경적 계시다. 계시는 배움으로 터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게 주신 은혜로서 있는 지혜다. 은혜를 받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가 아무리 높은 위치에 있고 많은 학문과 지식을 터득하였다 해도 나사렛 예수께서 성경에 계시된 다윗의 자손인 것을 없다.

 

계시는 종교적으로도 없고 오직 택하고 부르신 자들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인지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1:17,18) 기도한 것이다.

 

마가복음의 기록으로 보아 소경은 디메오의 아들 바디메오가 분명하다. 여기서 마태가 다른 복음서 저자와 달리 소경이라 기록한 것은 바디메오의 아내나 그의 동료일 것이다. 흥미롭게도 디메오 영광이란 뜻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뜻한다. 이로 보아 디메오의 집은 영광을 추구하던 가문이 틀림없다. 그런데 아들이 소경이 되었으니 가문의 영광은 끝이다. 결국 이들은 거리의 걸인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들 마음 속에는 남들이 갖지 않고 있던 메시야 소망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그들은 소문을 통하여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적들을 들었을 것이다. 문둥병자를 정결케하고 중풍병자를 일으키고 혈루병 여인을 고치며 죽은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일들 그리고 다섯덩이로 오천명을 먹이신 일과 바다 위를 걸으신 소문을 들었을 것이다. 이러한 소문을 듣자 이들 마음 속에서는 나사렛 예수가 바로 성경에 언약하신 메시야이심을 깨닫고 죽기 살기를 간하여 다윗의 아들이여 라고 소리를 것이다.

 

이들의 소리를 들으신 예수님은 그들을 제지하는 사람들을 말리고 그들을 불러 나오게 하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33) 물으셨다. 질문은 참으로 기이한 물음이다. 소경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물으시다니 선문답과도 같다. 이에 그는 주여 우리 뜨기를 원하나이다답하였다. 흥미롭게도 마가복음에는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가라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10:52) 기록되었다. 그들의 소망은 단지 눈을 뜨는데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예수를 따르는 제자가 되고자 했던 것이다.

 

  E. 너는 무엇을 바라는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보고 있다. 그리고 나름대로 주께 무엇을 하여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돈을 많이 벌게 해달라고 기도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좋은 직장을 어떤 사람은 좋은 배우자를 달라고 기도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소망하는 것은 모두 세상 사람들과 조금도 다를 없다. 모두가 세상에서 가락하기 위한 소망이다.

 

주님은 내가 심판하러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한 자들은 보게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이 되게 하려 함이라” (9:39) 하셨다. 이와 같이 당신은 눈뜬 사람으로 눈뜬 장님일 있다. 그러나 이미 주님은 그냥 두어라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구덩이에 빠지리라” (15:14) 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현재의 시간을 가늠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여 이스라엘의 시간을 유심히 필요가 있다. 지금 시간은 제십일시를 가르치고 있다. 이제 시간이 지나면 밤이다. 그러나 주님은 낮이 열두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이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11:9,10) 하셨다.

 

또한 당신은 마지막 세상에 살면서 아직도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사람일지 모른다. 하나님의 포도원에 들어가 일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세상 포도원의 잣대에 미치지 못하여 써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일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서 갈보리채플로 오라 당신이 받을 품삯은 앞서 들어간 사람이나 똑같다. 부르심이 당신에게 임한다면 당신은 그야말로 땡잡는 것이다. 나도 잡은 사람 중에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