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마태복음강해

(마태복음22:14) “택함을 받은 자”

이요나 2008. 1. 8. 12:38

(마태복음22:14) “택함을 받은

(22: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받은 자는 적으니라

 

우리는 22장에서 성경의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고 있는가에 대하여 공부하였다. 성경의 예언은 구약시대와 같이 오래된 것이든 얼마 전에 기록된 것이든 또는 예수께서 방장에 하신 말씀이든, 앞으로의 일을 말씀하신 것은 모두 하나님의 예정에 따라 성취될 것임을 알았다.

 

여기서 오늘날 종말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성경을 어떻게 읽으며 또한 무엇을 읽어야 하느냐에 대한 성경적 각성이다. 다시 말하여 성경을 읽을 이스라엘 역사로 것이냐 그리스도인의 의인 삶의 경전으로 읽을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의 계시된 예언으로 것이냐인 것이다. 다시 말하여 이것은 육의 눈으로 것이냐 영의 눈으로 보아야 것이냐에 속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복음서에는 예수께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또는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하신 말씀이 많이 소개되고 있다. 말씀들은 모두 제자들 앞에 펼쳐질 계시의 말씀으로 제자된 우리도 함께 살펴 보기를 원하신 예언인 것이다.

 

I. 혼인잔치의 초대(1-14)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 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거늘”(12)

 

A. 심판에 속한 3번째 비유

오늘 우리가 공부할 22장은 21장에서 이어진 것으로 여기서 우리는 세번째 비유를 통해 제자들의 시대에 펼쳐질 천국의 일들을 만나보게 된다. 주님은 앞장에서 아들의 비유(21:28-32) 통하여 아버지께서는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돌아 오기를 원하고 계심을 전하였으며 농부의 비유’(21”33-44) 통하여 하나님 앞에서의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그들의 완악한 현재의 모습들을 깨우치셨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하신 비유들은 그들이 각성하고 깊이 깨달아야 계시의 말씀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주께서 하신 말씀이 자신들을 향하여 하신 저주의 말씀으로 알고 주를 해하려 공모하고 있었다. 이제 예수님은 이들에게 세번째 비유로서 이제 그들 앞에 펼쳐질 천국의 초대의 장면을 펼쳐 놓고 그들이 어떻게 것을 깨우치셨다.

 

B. 초대받은 사람들의 반응

2절에서 예수님은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라고 말문을 여셨다. 그때는 세상이 왕국의 시대이므로 이러한 비유는 듣는 이들에게 현실감이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주님은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을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이이 앞에서 비유로 언급하신 것처럼 주인의 상속자를 죽이게 되면 포도원 주인은 그들을 진멸하고 세를 받힐 다른 농부들에게 포도원을 세로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천국 비유는 거기서 이어지는 농부들의 시대 그들로서 시작되는 천국의 시대에 일어날 일들을 말씀하신 것이다.

 

주님은 종들을 보내어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다시 다른 종을 보내며 가로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저희가 돌아 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동네를 불사르고”(3-7) 하셨다. 말씀은 바로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그들의 앞에서 이미 그대로 성취된 일이다.

 

천국의 시대가 펼쳐진 이래 예수께서 부르시고 택하신 그의 제자들이 나아가 주께서 개최하는 천국 잔치에 들어 오라고 초대를 하였으니 그들은 여러 가지 일로서 핑계를 대고 더욱 강권하는 종들을 죽이고 말았다. 여기서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초대자인 임금의 인내와 성실함이다. 청함을 받은 자들이 거부를 하여도 계속 다른 종을 보내며 천국 혼인잔치에 대하여 더욱 상세히 설명을 하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자기들의 생업을 핑계로 거절하고 보냄을 받은 종들을 능욕하고 죽이기 까지 하였다.

 

여기서 우리를 흥미롭게 하는 것은 임금의 잔치에 아무나 들어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오직 초대받은 사람들만이 들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아들의 잔치에 초대받지 않고 들어 있겠는가? 아무나 들어 있는 때는 거절한 자들이 진멸된 다음에 펼쳐진다. 그러면 처음 초대받은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

 

우리는 22 서두에서 비유가 앞에서 질문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말씀하신 것일 진대, 여기서 밭으로 나가던가 상업차로 핑계를 사람들이 누구인지 있다. 임금의 초대를 받은 지도자들로서 예수님 앞에 나와 권세를 운운하던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자기들의 밭을 갈고 자기들의 장사를 위해 통치자인 임금의 명을 거역한 것이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제사장직과 서기관, 율법사, 장로와 같은 종교적 직분을 받은 자들로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의 이스라엘의 두령들이 되었다. 그런데 이들이 통치자의 초청을 거부하고 자기 밭으로, 상업차로 갔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들의 밭은 회당이요 그들의 장사의 터전은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였던가? 예수께서 장사하는 자들을 판을 번이나 엎어 버리지 않으셨던가? 이와 같이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직분을 자기들의 생활 위한 도구와 방법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임금의 초대를 거절한 그들은 주께서 미리 말씀하신 바와 같이 주후 70 로마의 티토 장군이 이끄는 군대에 의해 진멸을 당하고 그들이 귀히 여기는 생업의 터전 예루살렘은 불사라 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이러한 내용들이 제자들에 의해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 따라서 지금 예수님은 이스라엘에게 임박한 진노의 날을 그들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이스라엘의 거룩한 부르심을 생각할 기원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다. 성경은 그의 부르심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12:1-3) 기록하였다. 이처럼 이스라엘 민족은 통치적 권세의 축복을 받고 부르심을 받았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은 오늘의 우리도 그와 함께 영광을 누리는 것이다.

 

호세아 선지자도 이스라엘의 부르심을 말하여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 냈다”(11:1) 증거 하였으나 이제 그들은 완악하여 내가 부를지라도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펼지라도 돌아 보는 자가 없었다” (1:24)하신 말씀을 스스로 이루고 있는 것이다. 바울도 이를 증거하여 이스라엘을 대하여 가라사대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손을 벌렸노라” (10 : 21) 기록하였다.

 

C. 강제로  이끌려 사람들

주님은 계속하여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잔치에 청하여 오라 하니 이에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자리에 손이 가득하였다”(8-10) 말씀하셨다.

 

여기서 주께서 말씀하신 합당치 않은 사람들은 과연 누구를 뜻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양면성이 있다. 앞에서는 이미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 됨은 인하여 함께 청함을 받았으나 주의 초대에 응하지 않은 사람들이며 또한 후일 주의 초청의 은혜를 입고서도 거룩한 의의 옷을 입지 않고 혼인잔치에 들어 사람들이다. 흥미로운 것은 사거리 길에서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데리고 왔다는 것이다. 이들은 사실 초청의 대상은 아니다. 강제 집행된 사람들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혼인잔치에는 신분여하의 차별이 없이 종들의 강권에 이끌려 들어 오면 되는 것이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들어 오는 자는 버림을 당하지 않는 것이다(6:37)

 

계속하여 주님은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새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에 들어 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거늘 임금이 사환에게 말하되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11-13) 하시며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14)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혼인 잔치에 들어 손님이 가득하였는데 숫자가 얼마나 될까? 우리는 후일 주님의 혼인 잔치에서 규모와 얼굴들을 보게 것이다. 그리고 초대는 지금까지도 아직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그날은 끝날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수많은 사람들 중에 사람 예복을 입지 않고 들어 있다는 것이다. 사람 정도야 있지 않느냐 하겠지만 앞에서도 말하셨듯이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일백마리의 전부가 그의 양인 것이다. 한마리도 잃어 버린 것은 용납될 없는 것이다.

 

여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누구일까? 흥미롭게도 임금은 그를 향하여 친구여라고 불렀다. 어쩌면 가룟 유다를 부르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당신의 이름일 수도 있다. 성경은 밥상에 함께 한자가 발뒤꿈치를 들었다 기록하였다. 이미 주님은 천국에 들어 사람은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들어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것이다”(7:20) 하시며 주여 주여 하며 주께 받은 기적의 능력과 예언의 능력으로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향하여 내가 너희를 결코 모르니 내게서 떠나라 명하셨다(7:21).

 

또한 바울은 이들을 따르는 자들을 말하여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살후2:9,11) 증거하였다. 그러므로 예복을 입은 사람은 주의 거룩하심에 순종하지 않은 육신적 사람을 뜻하며 그는 아직 세상의 사람이요 죄의 사람이며 멸망의 아들인 것이다. 이런 사람은 주의 의를 덧입지 않은 가룟 유다일 수도 육체의 더러움을 벗어버리지 못한 당신일 수도 있다.

 

오늘 우리는 처음부터 사거리 가에 있던 사람들임을 알고 있다. 이와 같이 오늘날 교회시대의 성도들은 모두 택하심 밖에 있었던 이방인들이다. 바울은 복음으로 하면 저희가 너희를 인하여 원수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을 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라”(11:28) 하였고 다시 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에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11:30) 증거하였다.

 

   D. 거룩한 무리

우리는 계시록19장에서 거룩한 예복을 입고 들어 아들의 아름다운 신부를 본다. 성경은 우리가 즐거워 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아내가 예비 되었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19:7,8) 기록하였다. 이들은 본래 이스라엘 밖의 사람들로 택하심을 입은 사람들은 아니였으나 주의 긍휼하신 은혜로 말미암아 예수의 뜻을 따라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것이 주께서 바라시는 우리의 모습이다. 택하심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비하신 하나님의 계획이다.

 

바울은 이를 말하여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 (1:4) 증거하였으며  다시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8:30) 증거하였다.

 

또한 베드로 사도도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벧후1:3) 축복하였고 다시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 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심이라” (벧전2:9) 증거하였다.

 

II. 오해의 원인

예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하였도다”(29)

 

A. 현실법적 모함 - 바리새인(15-22)

비유를 통하여 굴욕을 입은 바리새인들은 이제 어떻게 예수를 죽일까 하고 의논한 끝에 현실적인 법을 이용하여 올무에 걸리게 하기 위해 정치적 종교집단인 헤롯 당원들을 앞세워 예수께 나아와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18) 입이 마르도록 겉치레를 하고  우리의 질문에 당신의 생각을 우리에게 말해 달라 하며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습니까 아니면 불가합니까?’하고 물었다.

 

이에 주님은 저의 악한 마음을 아시고 위선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셋돈을 내게 보이라하시니 그들이 데나리온 하나를 갖고 오니 형상과 글이 것이냐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21) 하셨다. 얼마나 명확한 답변인가? 주님은 여기서 현실 세상와 보이지 않는 나라를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세상과 믿음 안에 설계된 하나님의 나라를 언급한 것이다.

 

누가복음 16장에는 불의한 청지기에 대한 비유가 소개되고 있다. 여기서 주님은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16:11) 하셨다. 말씀은 비록 현실 세계가 불의한 자가 통치하는 세상이지만 삶에 충실하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주님은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하셨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없는 원리인 것이다. 이처럼 현실과 믿음의 세계는 서로 다른 길을 갖고 있는 것이다.

 

B. 교리적 모함 사두개인(23-33)

바리새인의 시험이 실패했다는 소문을 듣자 사두개인들이 묘안을 세워 예수께 나와 왔다. 그들은 현실법이 예수의 지혜를 당할 없음을 알고 자기들이 믿고 있는 부활에 관한 교리를 들고 나와 예수의 발목에 족쇄를 채우려 하였다. 그들은 예수께 나와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동생이 아내에게 장가들어 형의 후사를 이으라 하였는데 우리 중에 형제가 있어 맏이가 후사를 얻지 못하고 죽어 아내가 둘째, 셋째 그리고 일곱째까지 그리하였으나 후사를 얻지 못하고 모두 죽으면 부활의 날에 아내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하였다.

 

 이에 주님은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는 고로 오해하였도다하시며 부활의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30)하셨다. 말씀은 성도가 죽으면 천사가 된다는 말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천사는 서로 다른 속성을 따라 지으셨다. 다만 여기서 주님은 부활한 자들의 속성을 언급하신 것이다. 부활의 때에는 세상에서와 같이 육체적인 속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육체의 지혜를 갖고 있는 우리로서는 부활의 때에 우리의 몸이 어떻게 변화 것인지 없다. 성경은 다만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우리가 순식간에 변화되어 썩지 않을 몸으로 변화될 것이라 기록하였다(고전15, 살전4 참조).

 

여기서 주님은 사두개인들의 비성경적 생활을 책망하신 것이다. 백성들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의 경전인 성경을 너희가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는 말은 참으로 충격이 아닐 없다. 그러나 말씀은 비단 그들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니라 오늘날 교회를 이끌어 가는 택한 자들에게도 함께 하신 말씀이다. 이유는 아직도 수많은 목사들이 성도의 부활을 부인하는 교회의 휴거가 없다는 잘못된 교리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근자의 우리나라 신학교에서는 무천년주의자들과 후천년주의자들이 판을 치고 있다. 이들이야 말로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는 자들이 아닐 없다. 이들이 이처럼 눈을 뜨지 못한 것은 성경을 읽을 그들의 마음이 어두워졌기 때문이다. 그들이 성경을 눈여겨 보며 말씀 속에서 주의 메시지를 발견하였다면 그들도 부활의 때를 소망하는 믿음을 갖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너희가 성경에서 무엇을 읽으며 어떻게 읽느냐 물으셨다.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의문은 초대교회에서도 있었다. 더욱이 성령은사에 충만한 복을 받은 고린도교회에서 있었다. 이것은 그들 속에 잘못된 교리를 가르친 거짓교사들의 역사 때문이다. 바울은 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였으리라” (고전15:12,13) 책망하였다.

 

예수께서는 계속하여 죽은 자의 부활을 의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자의 하나님이시니라”(31,32) 말씀하셨다. 또한 예수께서는 부활을 소망하는 마르다에게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 네가 이것을 믿느냐?” 물으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 속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살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주께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하신 것은 하나님은 믿는 자들의 하나님이며 택하신 자들의 하나님으로서 그들은 영원히 살아 있는 자라 말씀하신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늘을 향한 믿음과 소망을 말하여 저희가 이제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11:16) 증거하였다.

 

바울은 종말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3:20,21) 권면하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이미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취득한 자들이다. 이제 우리는 성령을 거스리는 육체의 소욕과 싸워 거룩한 성도의 믿음을 지키고 의로운 생활로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것이다.

 

C. 계명의 우선순위율법사(33-40)

사두개인들이 물러가자 이번에는 율법사가 예수님 앞에 나왔다. 율법사란 모세 율법을 연구하는 학자들로 바리새인들의 두령에 속한 자들이다. 이들은 서기관 또는 랍비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는 예수께 나아와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큽니까?”하고 물었다. 이에 주님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쳇째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이웃을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계명이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37-40) 가르치셨다.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면 태어나면서부터 배우고 외워야 하는 쉐마를 언급하신 것이다. 다시 말하여 너희가 처음부터 배운 것을 다시 공부해야 것이라는 말씀이기도 하다. 쉐마는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6:4)라는 말씀으로 시작된다. 말씀 속에는 우리는 삼위일체하신 하나님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하나님 엘로힘이란 단어가 단수형 복수명사이기도 하지만 여기서 오직 하나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에하드로서 집합적 단일체 (compound unity) 뜻한다.  히브리어에는 하나를 지칭하는 야키드라는 다른 단어가 있는데 이것은 절대적 단일체(absolute unity)  뜻한다. 따라서 오직 하나 에하드 우리 하나님이시므로 우리 또한 하나님과 집합적단일체가 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교회 성도는 하나님과 함께 공동체 집합적 단일체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나라는 개인적 의미는 없다. 그들은 우리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주기도문을 가르치실 때에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하셨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하셨으며 우리가 우리의 죄를 사하여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기도하라 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교회는 하나님과의 집합적단일체인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집합적 단일체가 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1:26) 하시고 그의 형상과 모양대로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의 인격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품성은 사랑이다.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니라 증거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단일집합체인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의 사랑을 통하여 하나님의 품성을 회복하고 그의 사랑을 실천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첫째는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둘째는 이웃을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 성도된 그의 지체는 사랑의 책임과 의무를 갖고 창조 것이다.

 

III. 성경의 영적 깨달음의 필요성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입니다”(42)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모임에서 그들에게 질문하여.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자손이냐물으셨다. 그들은 다윗의 자손입니다답하였다. 이에 주님은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며 말하되 주께서 주께 이르시되 내가 원수를 아래 때까지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43-45) 하셨다.

 

물론 바리새인들은 성경적 답변을 것이다. 그들의 대답은 문자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답변은 아닌 것이다. 성경은 성령으로 그의 종들에게 말씀하신 것으로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들어 있다. 이것이 우리가 성경을 읽으므로 깨닫고 터득해야 하는 핵심인 것이다.

 

여기서 주님은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말하였다하였다. 이와 같이 후일 베드로도 말하여 다윗이 선자자인 고로 미리 보는 것을 말하여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2:30,31) 증거하며 다윗이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그가 말하여 주께서 주께 말씀하시되 내가 원수로 발등상되게 하기까지 너는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2:34,35) 증거하였다.

 

지금 주께서 여기서 말씀하시는 것은 성경과 성령의 역할을 언급하신 것이다. 그들이 율법사로서 오직 문자에 의해서만 성경을 이해하려 하기 때문에 성경을 깨닫지도 못하고 하나님의 능력도 이해하지 못한다 하신 것이다. 이로서 부자 청년인 율법사에게도 네게 부족한 것이 한가지 있으니 영생을 원하건대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신 것이다. 그것만이 성령의 인침을 받을 있게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후일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사람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3:38,39) 증거하였다. 이로서 이들이 택하심의 인침을 받아 만국을 다스릴 제사장의 반열에 이르는 것이다.

 

주님은 오늘 이들에게 먼저 택함을 받은 자들의 거절로 인하여 진노를 받을 것임을 말씀하셨고 이제 다시 많은 사람들을 청하여 거룩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령의 인치심을 통하여 택함을 받게 것을 미리 말씀하신 것이다. 또한 주님은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들이 그리스도를 없었던 것은 그들이 성경을 살펴 보지도 못하였고 살펴 보았다 해도 성령의 가르치심이 없음으로 성경에서 미리 말씀하신 하나님의 메시지를 발견할 없는 사실을 깨우치신 것이다. 이제 오늘에 있어 하나님의 은혜의 초청을 입은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생각해 때이다. 당신이 능히 의롭다 하심과 거룩하심을 얻지 못하면 그리스도의 교회에 초청되어 앉아 있다 해도 당신은 어두운 밖으로 쫓겨나 슬피 울게 것이다. 그것은 당신의 의롭지 못한 생활의 결과로 말미암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