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교제와결혼

왜 이성교제를 못하게 하는 건데..(3)

이요나 2002. 2. 7. 10:09

왜 이성교제를 못하게 하는 건데 (2)"에 소감을 써 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의 생각은 서로 다를 수 있어서 서로의 분변은 생각지 못했던 것을 깨우쳐 주기도 합니다. 저는 UBF라는 특정 단체를 거론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학생들의 이성교제에 대한 규제는 UBF뿐 아니라 대학 선교회의 모체라고 할 수 있는 CCC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우려하고 있는 것은 현시대에서 대학교라는 위치는 이제 젊은 크리스천 모두에게 연결되는 도그마가 된다는 데 있습니다. 교육의 평준화와 우리의 자녀들은 모두 대학이라는 곳을 통과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대학교 기독교 선교회라는 거대한 단체에서 모두 이성교제를 규제하는 입장을 취한다면 젊은이들의 인식속에서는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으로 인식하게 되고 합당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단체는 그 모임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어떤 규약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성교제는 결혼을 전제로 하는 필수 통로라고 할 때 가장 젊음이 왕성한 시절에 이것을 차단하면 젊은이들은 이성을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국가에서 윤락가를 폐지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것은 선과 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인성교육의 책임을 방치한 것입니다.

 

군대도 이성문제 만큼은 미묘하게 다루고 있어 외출과 외박, 휴가를 통하여 그들의 신체적 본능의 탈출구를 주고 있습니다. 이성에 대한 문제가 가장 활발하고 정당하고 이성적이고 지성적으로 활동할 때가 대학교 시절 말고 언제라고 생각합니까? 남자가 군대를 갔다 오면 이미 이성교제의 시기를 잃고 생존경쟁에 몰두하게 되어 결혼의 시기를 놓치고 맙니다.

 

이성교제의 어떠한 규제보다는 성경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쳐 능력의 말씀이 그들의 이성을 깨우치고 기도와 성령의 역사로 그들의 젊음이 온전한 교제속에서 승화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지요. 조직의 목적과 유지를 위해 무조건 문제점을 규제하고 그 규정을 시행토록 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과 맞물린 구시대적 비합리적 제왕적 제도로서 이제는 개선되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우리는 신체학상으로 12살을 전후로 하여 성인의 체제로 돌입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12살에 성인식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도 12살에 성인식을 하신 것이 누가복음에 기록되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완전한 인성을 갖고 계셨기 때문에 성경을 따라 합리적으로 설정된 유대인의 성인의식을 하셨습니다. 아직도 정통 유대인들은 자녀들의 성인식을 거대하게 치루어 주고 있습니다. 그만큼 성인의 의미는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관점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12살에 성인식을 치루었다고 하여 어른이 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의 신체가 이미 성인으로 역할할 수 있다는 것을 본인 스스로 인식하게 되며 그들의 이성적인 부분이 그러한 육체의 속성을 이해하고 자신을 성숙한 성인이 되기까지 의식하며 준비하고 관리할 수 있게 하여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결혼을 살펴보면 많은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들은 부모들의 혼약과 정혼과 혼인의 3단계를 갖습니다. 혼약은 부모의 구두 언약이고 정혼은 결혼의 단계로서 이 때부터 여자의 몸은 자기 주장을 못합니다. 만약 파혼을 하려면 정상적인 법적 절차를 밟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결혼을 하게 되면 여자의 부모는 딸의 처녀를 증명할 표시물을 신랑집에 제출하여야 했습니다. 또한 신랑집에서는 그녀를 맞는 대가로 합당한 혼수금을 신부집에 주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혹시 간음의 사건으로 이혼 당할 때 미리 준 이혼 위자료이기도 합니다.

 

유대인의 성인식의 의미는 인간의 육체가 12살이 되면 성인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제 성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합당한 이성적인 교육과 준비가 필요함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됩니다. 그 때부터 아버지는 아들의 인성교육을 하게 되며 여자는 어머니로부터 여자의 정결의 도리와 의무를 배우게 됩니다. 예수께서도 아버지 요셉을 따라 목수일을 배우셨습니다. 또한 바울도 장막을 짓는 기술을 터득하였습니다. 이것은 한 사람이 성인이 되기까지 그를 낳은 부모가 맡은 책임과 의무를 말해주는 중요한 교훈입니다.

 

 우리나라도 과거에는 열두세 살이 되면 부모들은 자녀들의 정혼을 서둘렀고 자녀들의 성인교육을 하여 왔습니다. 어머니는 딸들에게 몸가짐을 가르쳐 왔고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남자로서의 의무와 권리 그리고 한 가장의 인품을 가르쳐 왔습니다. 이 나이로부터는 종아리라는 훈장의 교육은 사라지고 이성적이고 지성적인 합리화된 깨우침으로 접근하게 됩니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의 정세는 어떠합니까? 초등학교에서 중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인성교육은 사라지고 출세 지형적인 교육의 노예를 만들어 아이들은 성인의 인성교육을 받지 못한 채 육체만 성인으로 성숙해갑니다 몸은 성인이 되어 가는데 아직 성인으로 갖추어야 할 지성과 이성은 성인에 대한 의식적 깨우침이 없어서 몸은 비대한데 비해 머리는 책가방속의 알파벳과 숫자 놀음으로 가득차 마마보이로 전락되고 있습니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50세의 미소년들이 거대한 무리를 이루어 올바른 결혼 생활은 물론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얼마전에 번역한 히라노 코오이찌 목사가 쓰신 "남자를 이해하기 위하여"(말씀나라)에도 소개되었지만 지금 이러한 문제는 온 인류의 병폐가 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기독교가 앞장서서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가르쳐 젊은 세대들이 영혼육 모두가 이상적이고 합리적인 성인이 되도록 하여야 할 터인데 오히려 성인의 과정 속에서 필히 통과하여야 할 이성교제의 통로를 규제한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막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의 자녀들을 균형있는 성숙한 사람으로 이끌지 못하고 오히려 비합리적인 방법으로 성적인 욕구를 해소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저는 UBF의 신학적인 문제점에 대한 논쟁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UBF의 문제점은 이미 "뉴스앤죠이"라는 인터넷 싸이트와 신문을 통하여 이미 거론되어 그 문제의 삼각성이 발표된 바 있으며 각 교계에서는 UBF가 선교회에서 교회의 조직으로 탈바꿈 한 일에 대하여 조심스럽게 살펴보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것은 택함과 관계된 신학적인 문제입니다. 그러나 나는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선교회들의 이러한 문제를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각 대학교 선교회들이 취하고 있는 이성교제에 대한 규제의 부당성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혹시 저의 주장이 제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성경의 가르침을 놓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교회가 탄생하기 이전에 이 땅에 하나님의 성민을 세우신 이스라엘을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으로 시작된 믿음은 그 민족 속에서 승화되어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뜻인 율법을 헤아리지 못하고 아전인수격으로 사용함으로 유대인은 폐쇄적이고 부패하여 이방의 빛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 속에서는 그들의 숭고한 믿음이 기록되어 있으며 그 믿음속에는 아름다운 부부의 화합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택하신 이스라엘 민족의 결혼 풍조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을 아내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또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부로 비유하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는 가장 완벽한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난다" 하였고 그 이유에 대하여 "이는 하나님의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롬1:18-19) 증거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사람들로 알만한 충분한 신적 계시를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라" 하였습니다. 이러한 결과 하나님은 그들에게 섭리의 질서를 거두어서 여자가 여자로.. 남자가 남자와 함께 부끄러운 짓을 하도록 죄 가운데 버려 두셨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동성애자들의 행위로만 해석하려는 것은 자신들의 불의를 합리화하려는 부도덕한 지식인들의 만행입니다.

 

저는 누가 어떠한 말을 한다고 해도 크리스천의 인성교육은 어떠한 제도나 인위적인 규제를 절대 하여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주권은 창조자 하나님께 있고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성과 지성을 주셨으며 우리를 교육하기 위한 성경을 주셨기 때문에, 성경과 또 세상에 세우진 하나님의 질서로 가르쳐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저의 소견이 젊은이들에게 작은 귀감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많은 격려의 말씀으로 함께 동참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