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강좌/휴거 대환난

교회의 휴거와 대환난

이요나 2007. 12. 25. 12:16
 

교회의 휴거와 대환난

-이요나목사-


종말론에 대한 갈보리 채플의 견해


*성경적 교리의 중요성

오늘은 우리 교회가 믿고 있는 종말론 신앙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것은 교회의 휴거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그리고 이 땅에 세워질 천년왕국에 관한 성경적 자료입니다. 때로는 신학적 교리가 믿는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지라도 우리는 성경이 말씀하시는 교훈(교리)이 무엇인가 바르게 깨달아야만 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깨어나라 하신 근거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만연되어 있는 물질 만능주의와 지상 최고주의로 인하여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성경의 가르침을 외면하고 육신의 유혹을 따라 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교회에서는 우리가 주 예수를 믿어 이미 구원 받았으니 지옥에는 결코 가지 않는다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만약 그들의 말대로라면 성경의 가르침은 무익하게 됩니다. 성경은 절대로 범죄한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각 사람들은 내가 육신대로 살 것인가 아니면 오직 영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 것인가 이 두 가지 관점 중 어느 쪽을 선택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결말은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성경에 미리 말씀하신대로 결정된다는 사실입니다.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나는 것입니다. 이에 베드로는 ‘믿음의 결국은 혼의 구원이라”하였고 바울도 말하여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종말론적인 교리가 설혹 우리를 두렵게 할지라도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올바른 가르침이 무엇인가 살펴 보고 진리를 깨달아 그리스도의 날을 준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종말을 말하려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과학자들과 자연학자들과 천문학자들은 종말을 말하는데도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칠 의무가 있는 기독교는 종말에 대하여 침묵을 지키려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 속에 역사하는 사탄의 강력한 속임수 중 하나입니다.


미래에 대한 확실한 소망은 나의 현재를 바꿉니다. 우리가 오늘을 사는데 있어서 확실한 격려와 위로와 소망을 말하라면 그것은 장차 임할 영광스런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이 땅에서 받는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롬8:18) 말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자로서 받을 영광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오늘을 사는 당신이 마음의 눈을 열어 장차 당신에게 임할 영화로운 날을 볼 수 있다면 고난 속의 당신의 인생은 소망을 갖고 온전히 변화된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 교회가 침묵하고 있는 가운데 오늘날 기독교계에는 많은 종말론적 이론들이 존재합니다. 이를 크게 구분하면, 후천년주의, 무천년주의 그리고 전천년주의가 있습니다. 또 후천년주의 안에서도 인본주의적 후천년주의와 복음주의적 후천년주의가 있고, 전천년주의 안에서도 역사적 전천년주의와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로 나뉩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이론들이 나오게 된 원인은 각 교파별로 성경해석의 방법이 서로 다르기 때문인데, 그 중 가장 큰 요인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느냐 영적으로 풀어야 하느냐 하는 해석적 다툼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문제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반문하며 우리가 지금 충실히 잘 살면 되지 종말론 같은 것이 믿는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확실한 소망이 현재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생각할 때 바른 종말론적 이해는 매우 중요한 지식입니다. 성경은 농부가 가을에 수확할 것을 알기 때문에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뜨거운 태양 빛 아래에서도 수고한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바른 종말론적 신앙관을 정립하는 것은 내 영혼의 안식을 위한 가장 중요한 믿음의 틀이 될 것입니다. 우선 간략하게 먼저 설명을 하고 세부적인 설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 대표적인 3가지 견해 -


(1) 무천년설(A-MILLENNIALISM)  성경에 기록된 천년왕국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상징적으로 해석하는 그룹으로 천년 왕국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함께 펼쳐진 교회의 부흥시대라 주장한다. 또 이들은 첫째부활은 성도의 육체적 부활이 아니라 영혼의 거듭남이라 영적해석 한다. 초대교회 교부였던 오리겐이 주장하여 중세의 어거스틴, 존 칼빈 등의 개혁주의자들이 주장하며, 현재도 한국의 장로교회와 카톨릭 등에서 주장한다.


(2) 후천년설(POST-MILLENNIALISM)  이들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함께 전파된 복음이 교회를 통하여 부흥되어 인류의 대부분이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그리스도의 재림 바로 직전1000년 동안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충만하게 되어 교회가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3) 전천년설(PRE-MILLENNIALISM)  성경의 기록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교회는 환난 전에 휴거하며 그리스도께서 7년 대환난 후에 재림하여 성도들과 천년동안 통치하실 것이라 믿는다.


*후천년주의란 무엇인가?


“후천년주의”의 의미는 “주 예수님의 재림은 이 땅에 천년왕국이 있은 후에 이뤄질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즉 예수께서 초림하여 교회를 세우셨으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땅에 그리스도의 왕국을 세우고 천년 동안 다스린 후에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왕이 없는 왕국이 천년 동안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은 그 말 자체에 모순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이론은 오늘날 감리교 신학의 모체가 된 어거스틴이 기록한 “하나님의 도성”이란 책에서부터 시작하였고, 오늘날 장로교 신학의 모체인 존 칼빈이 제네바에서 이 이론을 실제로 실행하였습니다. 그 결과 정치적으로 하나님의 왕국을 세워보려 군대까지 동원하였지만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고문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후천년주의는 16, 17세기 계몽운동과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교육이 발달하면서 더욱 크게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경제가 발전하고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크게 고무되어 이와 같이 이 땅에 낙원에 세워지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람의 노력과 힘으로 이 땅에 “파라다이스” 곧 “하나님의 천국”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평화로운 세상이 천년 간 지속되면 그때 주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실 것이라 믿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이론을 “인본주의적 후천년주의”라고 부릅니다.


또한 마태복음 24장 14절의 “이 왕국의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가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선포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기록된 말씀을 근거로 “복음주의적 후천년주의”가 생겨났습니다. 복음주의적 후천년주의자들은 물질문명이 발달하는 이 시대에의 흐름에 발맞춰 아직까지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모든 곳에 복음을 전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앞당길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천국의 복음”과 사도바울이 증거한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구분하지 못한 데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이러한 후천년주의적 사상은 다른 말로 하면 “진화론적” 사상과 유사합니다.왜냐하면 사람이 문명과 교육의 발달을 통하여 더 선하고 완전해져서 결국엔 의와 화평의 낙원을 이뤄낼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6,17세기에 세계대전이 거듭하여 터지면서 후천년주의는 커다란 타격을 받았습니다. 잘 건설되어가던 “낙원”이 두 번의 전쟁으로 완전히 무너져 내렸기 때문입니다.


그후 많은 후천년주의자들은 “여기서의 천년은 문자적으로 천년의 기간이 아니라 비유적으로 얼마 정도의 긴 기간을 의미한다.”고 수정하던가 무천년주의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UN이 이 땅에 평화를 이룩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으나 하였으나 UN이 세워진 이래로 더 많은 전쟁이 일어났으며 세계는 지금도 긴장 가운데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UN 회의장에 걸려있는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사 2:4) 하신 말씀은 오직 왕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야 완벽하게 성취될 것입니다.


*무천년주의란 무엇인가?


“무천년주의”는 후천년주의가 전쟁과 이 땅의 많은 사고들로 타격을 입으면서 변형된 이론으로 “문자적인 천년왕국은 존재하지 않고, 영적인 것으로써 이미 우리 안에 이루어졌다”라는 터무니 없는 주장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들은 교회는 이미 영적인 하나님의 왕국에서 왕과 제사장으로서 통치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반대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부요하며 우리 없이 왕노릇하였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노릇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의 왕노릇하기를 원하노라”(고전 4:8)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왕노릇하는 때는 지금이 아니라 장차 실제적이고 물리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이 이 땅에 세워질 때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를 위하여 자신이 지금 고난을 받고 핍박을 당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교회는 처음 복음이 들어왔을 때부터 휴거와 재림에 대한 신앙이 보편화되어 있었습니다. 과거 박형룡 목사,  주기철 목사와 같은 훌륭한 믿음의 지도자들이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며 한국교회를 이끌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장림 목사가 일으킨 다미선교회가 유포한 교회의 휴거사건으로 그들에게 미혹되었던 많은 교회들이 두려운 나머지 각 교단별로 “우리는 휴거를 믿지 않는다”라는 성명서를 냈습니다. 어처구니 없게도 다미선교회의 거짓 종말론 사건이 한국교회를 “무천년주의”로 이끌어 간 것입니다. 또한 갈수록 더욱 심각해지는 것은  미국, 독일, 영국의 자유주의 신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 온 교수들이 신학교에서 잘못된 종말론을 유포하는데 있습니다.


*전천년주의란 무엇인가?


“전천년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교회와 이스라엘의 구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로마서 9,10,11장은 이스라엘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하여 다루고 있는 귀중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석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은 아직은 이스라엘을 위해 예비하신 한 이레(대환난)의 때까지 잠시 유보되어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이는 로마서에 기록된 돌 감람나무와 참 감람나무의 비유에서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환란은 교회를 위한 것이 아니라 메시야를 거부했던 이스라엘을 위해 예비된 ‘70이레 중 남은 한 이레’(단9:24)로서 교회는 그 전에 휴거되어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갖게 됩니다. 또한 성경은 이스라엘은 대환란을 맞고서야 기름부음을 받은 두 증인과 인침을 받은14400명의 증거로 자기들이 십자가에 내어 준 분이 메시야이심을 깨닫고 회개하며 돌아와 적그리스도와 맞서게 될 것이라 기록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경에 기록하신 말씀과 같이 대환난 기간 중 아마겟돈에 모인 이방 왕국들을 멸망시키고 휴거 된 교회와 함께 재림하여 이 땅에 천년왕국을 세우실 것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문자적으로 믿는 그룹들을 신학적으로 전천년주의라고 합니다.


*역사적 전천년주의 무엇인가?


전천년주의는 다시 역사적 전천년주의와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로 나누어졌는데 이 두 그룹은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재림하시면 친히 천년왕국을 세우실 것이다.”라는 성경해석에는 동일합니다. 그러나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와 차이가 있다면 역사적 전천년주의자들은 교회와 이스라엘의 구분을 두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구약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버림받았으므로 그들이 누리던 은혜와 축복의 자리는 신약의 교회가 대치한다고 믿습니다.


이들의 주장은 마태복음 24장 22절의 “택하신 자들”을 교회라고 해석하는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로써 “교회가 대환란을 통과하므로 대비해야 한다”는 교리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들은 “주께서 그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날들을 감하시리라.”(마24:22)하신 말씀을 들어 교회가 대환란을 통과하게 되어 이들 중에서 정결하고 기름을 예비한 택하신 자들이 휴거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주장을 하는 대표적인 분이 계시록의 대가라고 하는 이광복 목사님이십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펴내는 종말론에 관한 책들은 거의 다 역사적 전천년주의거나 무천년주의에 속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란 앞에서 설명한 역사적전천년주의자들과 달리 이스라엘과 교회를 구분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공중재림과 지상재림으로 구분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계시록 19장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서로 견해가 달라지게됩니다만 이들의 해석법을 비성경적이라할 근거 또한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는 지나친 교리적 주장으로 형제 교회들과의 커다란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것에는 주의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논란이 되고 있는 세대주의의 구원론 곧 하나님의 구속사역의 섭리를 무죄세대, 양심세대, 인간왕국세대, 언약의 시대, 율법의 세대, 은혜의 세대, 천년왕국시대와 같이 7단계 구속사에 대하여는 그들의 교리적적용에 따른 성경해석이므로 논란의 대상을 삼지 않고자 합니다.


다만 우리가 찬동할 수 없는 것은 그들 중 극단적 세대주의자들이 생겨나 킹제임스 번역본 성경만이 TR원문 성경이라 주장하며 다른 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다른 번역본의 성경들은 사단이 변개한 것이라 주장하는 모순에 빠져, 주께서 따르라 하신 겸손과 온유의 멍에를 상실하였습니다. 계시록에서 주님은 잘못된 교리에 빠진 사람들과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한 나머지 처음 사랑을 상실한 에베소 교회를 책망하셨습니다.


우리 갈보리채플은 그 어떤 경우에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명하신 형제 사랑을 헤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믿으며 또한 지나쳐 형제를 실족 시키는 일은 주께서 금하신 것임을 깨달아 용서와 겸손함으로 서로의 발 씻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지식이 충만한데 이르기를 소망하며, 주께서 그리스도의 날까지 그의 성령 안에 인치신 성도들을 친히 견인하실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랑을 저해하는 그 어떤 견해를 배격하며 또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경에 기록된 말씀 그대로 믿어야 한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


  *대환란 통과 중간 휴거설이란 무엇인가?


또한 지방교회에서 주장하는 휴거에 대해 살펴보면 그들은 열매가 익어서 성숙케 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른 성도들만 휴거가 되고 성숙치 못한 성도들은 남아 대환난을 통과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계시록에 나타난 말씀들을 교회시대에 적용하며 결국 교회도 대환란을 통과하게 되어 그들 중 “이기는 자들” 은 환란 중간에 계속해서 휴거되어 올라가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이 땅의 환란과 고난을 받으며 성화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계시록을 통한 설득력이 있는 것 같지만 이들의 주장 중에는 커다란 모순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만약 대환란이 끝났는데도 성숙되지 못하면 천년 동안 바깥 흑암에 던져져 울며 이를 갈며 회개하면서 성숙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순교를 하든지 이기는 자가 되든지 둘 중 하나가 되어야만 그리스도께서 세우실 천년왕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이러한 주장은 부활과 휴거의 주체가 사람의 영적 성숙도나 인간의 노력이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는 사실을 주의하지 않은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첫 열매가 되시며 부활의 주체가 되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실 이 말씀은 가장 육신적인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빛 가운데 속한 모든 믿는 성도들은 그의 부활에 참여한 자가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이며 나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출애굽은 성숙한 사람들만 나온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로부터 장성한 자 모두가 나온 것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을 이 세상으로부터 불러올리실 때 깨어있는 모든 성도들은 강력한 힘에 의하여 들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 안에 내주시하는 성령님께서 보증이 되십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의 날까지 인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 잘못된 교리에 사로잡히지 않고 진리의 가르침을 따라 그의 오심을 소망하는 아들의 영을 가진 모든 주의 성도들은 그분의 나팔소리를 듣고 하늘나라로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고전15:52).


*갈보리채플의 종말론적 믿음


우리 갈보리채플은 성경의 절대 무오함을 믿으며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종말에 관한 신앙에 대하여는 성경에 기록된 바와 같이 교회의 환란 전 휴거를 믿고 기다리며 요한계시록 6장으로부터 18장까지에 언급된 7년 대환란이 있기 전에 교회가 들림을 받을 것에 대한 성경적 믿음을 강력히 지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교회들이 주장하는 무천년설이나, 후천년설 뿐만이 아니라, 칠년 대환란의 중간이나 그 후에 휴거가 있을 것으로 보는 관점에 대하여 동의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 갈보리채플은 철저한 전천년론자들이며 환란전 휴거론자들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대환난에 들어 갈 것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교회가 대환난을 통과한다는 그들의 성경적 근거는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전15:51-52) 하신 말씀에서 계시록 대환난 중에 일곱 나팔 중 마지막 천사가 분 일곱번째 나팔이 마지막 나팔이라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이들은 휴거는 일곱번째 나팔이 불기까지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이것을 증명하려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성경적 증명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첫째로 계시록의 일곱 나팔은 믿지 않는 자들의 심판을 위해 일곱 천사들에게 나팔을 불게 하여 천사들이 각각 나팔을 불 때마다 하나님의 심판이 땅 위에 임합니다. 그러므로 이 나팔들은 말할 것도 없이 천사들이 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휴거를 알리는 마지막 나팔은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고전4:16) 라고 기록된 것과 같이 천사의 나팔이 아니고 ‘하나님의 나팔’입니다.


우리가 굳이 ‘마지막 나팔’에 대하여 해석적 의미를 두려 한다면 마지막 나팔은 문자 그대로 마지막 나팔입니다. 우리는 나팔소리에 대하여 민감하지 못합니다만 성경에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는 많은 나팔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나팔 신호를 통하여 백성들을 모으고, 진군하게 하고, 또 전쟁을 알리기도 하였으며, 성전예배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팔소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나팔은 하나님의 성도인 교회를 인도하는 통신 수단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섭리하기 전에 하나님의 나팔을 불어 하나님의 교회의 휴거를 알리실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게 있어 이 나팔은 마지막인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마지막 나팔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대환난에서 일곱 천사들의 나팔소리를 들어야 할 것입니다.


두번째는 나팔의 목적이 서로 다릅니다. 교회의 휴거를 알리는 하나님의 나팔은 성도의 변화를 알리는 나팔입니다. 바울은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하리니”(고전15:51)라 증거하였습니다. 여기서 변화란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것처럼 원형 그 자체가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계시록에서 일곱 천사의 나팔은 재앙을 알리는 나팔입니다. 사도 요한은 넷째 천사의 나팔이 분 후에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소리로 이르되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로다 이외에도 세 천사의 불 나팔소리를 인함이로다 하더라”(요한계시록 8:13) 기록하였고 또한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분 다음에도 “첫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아직도 이 후에 화 둘이 이르리로다”(계 9:12) 증거하였습니다. 그리고 세번째 화는 일곱번째 천사의 나팔 뒤에 있을 것이 예고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일곱째 나팔은 이 땅 위에 있는 자들에게 화를 알리는 일곱번째 천사의 나팔인 것입니다.


이들의 세번째 주장은 요한계시록 20장 4절 이하의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계20:4-5)고 기록된 말씀 중 첫째 부활에 속한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하니”란 말씀은 바로 교회를 뜻하므로 교회가 대환난에 들어가 순교를 통하여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잘 읽어보면 4절에 보좌들을 볼 수 있는데 보좌에는 심판하는 권세를 받은 자들이 앉아있습니다. 이 보좌에는 이긴 자들이 앉아 있는데 사데교회에게 주신 메시지를 읽어보면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계 3:21)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들의 주장은 교회가 대환난을 통과하여야 한다는 주장인데 성경을 그 어디에도 하나님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심판하신 경우는 단 한군데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돔성을 멸하시려 천사들을 보내셨을 때 천사들은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소돔성에서 열명의 의인을 찾았으나 얻지 못하고 오직 한 사람 의인 롯을 구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롯이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킨 후에야 임하였습니다. 그 때 천사들은 롯이 피할 때까지 자기들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분명히 말했으며(창 19:22). 예수님께서도 누가복음 17장에서 롯의 구원을 말씀하시면서 롯이 소돔을 벗어나자마자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음을 언급하셨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에서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심으로써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다’고 증거하면서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은 하나님께서 구하셨다고 기록하였습니다. 계속하여 베드로는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실...줄을 아시느니라”(벧후 2:9-10)고 증거하였습니다. 또한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신 것이 진노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라 기록하였으며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라”(롬5:9)고 깨우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된 의인들에게는 진노가 내리시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다시 설명하건데 계시록 20장 4절에서 사도 요한은 교회는 첫째 부활한 자 그룹들 중에 첫번째에 속해 있음을 보았습니다. 또한 요한은 대환난 기간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순교한 자들을 또한 보았는데, 이들은 계시록 7장에서 장로들이 말한 흰 옷 입은 큰 무리입니다. 요한은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7:13-14)고 기록하였습니다. 만약 그들이 교회 성도라면 교회의 사도인 요한과 장로들이 모를리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들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에 서서 밤낮으로 계속하여 섬기고 있음을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의 위치에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분명한 것은 이 둘째 무리들은 대환난 기간동안에 순교를 당한 성도들이라는 것이며 물론 그들도 예수 그리스도 왕국의 한 구성체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미 휴거 했고 보좌에 앉아서 심판할 권세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일곱째 나팔과 교회의 휴거를 알리는 마지막 나팔을 동일시 할 수 없는 증거는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계10:7)에서 천사가 소리 내는 ‘날들’(Days)은 복수입니다(한글성경은 날로 기록되었음). 그러나 휴거는 단 한번 ‘눈 깜짝할 사이’에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나팔’을 계시록의 일곱째 나팔과 관련을 시킬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태복음 24:29-31)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환난 날 이후 예수께서 온 세상에 나타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며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 기록된 ‘큰 나팔’에 대하여도 많은 나팔로 오해를 하려 합니다. 그러나 ‘큰 나팔’이란 단어는 성경에 단 두 번 기록되어 있는데 두 번 모두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불러 모이실 때 사용되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그 날에 큰 나팔을 울려 불리니 앗수르 땅에서 파멸케 된 자와 애굽 땅으로 쫓겨난 자가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산에서 여호와께 경배하리라”(사27:13) 증거한 것 같이 큰 나팔은 주께서 택하신 백성을 불러 모으실 때 사용하셨습니다. 이미 그들은 큰 나팔 소리를 듣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우리는 다른 교파들이 우리와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음은 알고 있지만, 우리는 이 주제에서 있어서는 성경 전체를 통한 문자적 성경해석을 고수하며, 그에 반하는 다른 성경적 대안은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을 통치하시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성도들의 재림은 실제적이라는 것과, 재림은 천년왕국 이전에 있을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시 천사의 증거처럼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임하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믿음을 가지므로 하여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경배와 헌신된 봉사와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공부하는 것과 성도들과 온전한 교제를 갖게 되며, 세례(Baptism)와 성찬(Lord's supper)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갈보리채플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영해(靈解)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무천년설, 곧 요한계시록 20장이 묘사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천년간 지상통치를 부정하는 비성경적 가르침을 배격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리적 충돌로 그리스도의 지체인 형제들이 분열되는 것을 원치 않으며 성령 안에서 하가나 되어 성경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를 힘써 그리스도의 날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이 땅에서 왕노릇할 그날을 사모하며 정진을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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