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데살로니가강해

(살후3:2) 믿는 건달들을 조심하라

이요나 2005. 2. 11. 11:14
 (살후3:2) 믿는 건달들을 조심하라

(살후3:2)또한 우리를 무리하고 악한 사람에게서 건지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


오늘로서 데살로니가서도 마지막입니다. 실로 데살로니가서는 우리에게귀중한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바울이 다른 서신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에 관한 예고를 하였다면 데살로니가에서는 재림때의 모습과 그 상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서두에서 바울은 "종말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달음질하여 영광스럽게 되고"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바울은 복음을 맡은 사역자들을 위해 기도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주의 말씀이 끊어지기 않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주의할 것은 적그리스도와 사단의 정체에 대한 분변입니다. 이것은 우리 성도들이 모두 각 개체이며 또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전이 듯이 적그리스도는 한 인간으로 사단의 영을 받아 그의 지배 속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진리의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은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 속에 있고 그의 가르치신 진리의 말씀으로 거룩한 도의 교리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적그리스도는 사단의 지배속에 있으며 진리를 떠난 거짓된 교리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진리를 믿는 우리와 달리 특별한 이단적 교리를 갖고 있는 교회들의 지도자들을 통해서 나타나는 많은 능력들을 보고 있습니다. 바울은 2장9절에서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라"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지식을 갖지 못한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사단의 역사는 그의 정책적 교리를 통하여 그가 지배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이의 주체사상이 사람들을 사로잡듯이 말입니다.

바울은 2절에서 "또한 우리를 무리하고 악한 자들에게서 건지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하였습니다. 여기서 '무리하고'라는 말은 합리적이지 못하고 신분에 합당하지 않은 말을 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다시말하면 자신도 알지 못하는 지식을 아는 척하는  뻔뻔한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지요. 바울은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하였습니다.

사실 이 말씀은 말씀을 가르치는 교회 지도자들과 관계된 말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믿음을 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복음사역이 중단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한 것입니다. 주님은 내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셨습니다. 또한 바울은 그리스도의 강림하신 앞에 일어날 성도의 배도행위를 언급하였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교리와 관계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은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하였습니다. 이것은 택하신 자를 지키시는 주님의 주권적 의지를 시시한 것입니다. 만약 당신을 부르셨고 부름받은 당신이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그의 진리의 말씀 가운데 거한다면 주께서 당신을 지키실 것입니다.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의 제자들을 위하여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요17:15)기도 하셨으며 그에 대한 방법을 말하여 "저희를 진리로 거룩히 하옵소서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셨습니다.  바울도 오직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진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키고 굳게하시는 것은 그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부름을 받는 자들의 온전한 믿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활과 환경의 이유로 주의 가르치심을 떠나 자기의 욕심에 빠지고 있습니다. 이에 바울은  "주께서 너의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당부 하였습니다. 이것은  믿음을 향한 우리의 굳은 의지를 요구하는 말씀입니다. 

 *규모없는 자들(건달들..)
이제 바울은 6절에서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명하노니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하고 경계하였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것은 바울 사도의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명령은 그 받은 자가 지켜야만 그 명령의 권위가 나타납니다. 만약 오늘 이 말씀을 받은 자들이 이 명령을 가벼히 여긴다면 그는 주의 백성이 아닐 것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규모없는 자'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규모없는 자들이란 무질서한 생활을 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이것은 사실 데살로니가서 두번째 주제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교회에는 무질서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일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형제들에게 한 말씀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은 7절에서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 것을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규모없이 행하지 아니하며 누구에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여 함이니"하였습니다.

오늘날도 어떤 젊은 전도사는 자신은 거룩한 주의 종이라 말하면서 세상 일을 하여 생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는 거룩한 종의 의미를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스스로 거룩한 종이라 생각한다면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바울이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주어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라"하였기 때문입니다.

최근 대학교 선교 단체의 간사라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목자임을 내세워 편지를 만들어 회람을 돌리며 헌금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택함에 관한 것을 둘째치더라도 자기 생활을 위해 모금하는 것은 합당치 못한 일입니다. 더우기 대학복음화를 위한 공동체 모임을 졸업 후 사회로 이끌고 나오는 것은 교회의 질서에 위해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지금부터 10년전 제가 갈보리채플을 처음 개척했을 무렵 우리교회에는 십여명의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당시 우리 교회는 미자립이였고 가족의 생계에 문제가 생겼는데도 한국적인 관점에서 그들은 일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모두 택시 운전이라도 해서 가족을 부양하라고 하였습니다. 사모들은 울며 막았지만 그들은 택시를 몰기도하고 과일장사를 나서 생활을 끌어 나갔습니다.

바울은 10절에서 이러한 명령을 다시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너희와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종용히 일하며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첫 사람 아담에게 땀을 흘려 일하라 하셨습니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우리의 주께서 오실 그날까지 우리는 각자의 능력에 합당한 일을 하여 자기와 가족을 부양할 의무와 책임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주의 강림하심이 가까울수록  믿는 자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일을 포기하고 종교적인 일에 매달릴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앞에서 언급된 무리한 자들이 주의 재림에 관한 잘못된 지식을 유포함으로 사람들이 스스로의 생활질서를 망각하고 광신에 빠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13절에서 바울은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하였습니다. 너무 쪼달리며 생활하다 보면 남들은 교회에서 잘먹고 사는데 어째 나는 이처럼 내손으로 일하며 살아야 하는 생각이 들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 그 자체가 선한 일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다시 엄하게 경계하여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그러나 원수와 같이 하지 말고 형제같이 권하라"하였습니다. 여기서 '그 사람을 주목하여'라는 말은 그만큼 우리 주변에 바울이 경계로 가르친 일들을 냉소적으로 대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을 의미합니다. 

 *평강과 은혜
 끝으로 바울은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는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실지어다"하였습니다. 여기서 평강이란 말은 우리의 영혼과 생각과 삶 전체의 온전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평강은 부족한 것이 없는 최선의 안식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일진대  그의 말씀대로 행할 때 주는 우리가 하는 일마나 때마다 평강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바울은 마지막 절에서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이는 편지마다 표적이기로 이렇게 쓰노라"하였습니다. 물론 이 편지는 디모데의 대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이처럼 친필이라는 강한 어조를 더한 것은 사도에게 주어진 말씀의 권위를 더한 것입니다. 

그 편지를 통하여 나타나는 하나님의 표적과 능력이 오늘 우리에게도 함께 하실 것입니다. 바울은 그의 말씀을 순종하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기를 기원하였습니다.


서울 갈보리채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