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12:9) 영적예배(3) - 활용편
III. 성도와의 관계 – 사랑의 정의(9-21)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A. 사랑의 정의 바울은 이제 하나님께서 자기가 택하고 부르신 종들에게 이러한 은사를 주신 이유들을 나열하고 있다. 이는 교회의 목적이기도 하고 교회에게 맡기신 책임과 의무이기도 하다. 바울은 먼저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하였다. 사랑에 거짓이 없다는 말은 사랑은 가면을 쓸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위선적인 사랑은 없다는 말로서 하나님의 사랑은 연극이 아니다 라고 한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광명한 천사의 얼굴을 하고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미 성경은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후11:13-15) 증거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 안에 나타날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여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 (고후6:6)이라 하였고 다시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일3:18) 하였다. 바울이 교회를 향하여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한 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게도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살전5:22)고 명하였다. 또한 선에 속하라는 말은 서신서의 부제이기도 하다. 바울이 이처럼 교회를 향하여 악을 경계하고 선에 거하라 하는 것은 교회에 주신 각양 은사들이 잘못 행하므로써 감당할 수 없는 권세가 나타나 사회 악을 조성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선을 행하여야 할 교회가 도리어 악한 일에 휘말려 버린 증거다. 그러므로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 하며” (고전13:6) 라고 한 것이다. B. 성도간의 우선적 행위(10) 바울은 계속하여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10) 권고하였다. 형제 사랑은 성경의 대주제이며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성취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바울은 성도 된 형제 간에 행하여야 할 두 가지를 말하여 서로 사랑과 존경하되 서로 먼저하라고 하였다. 형제 우애와 존경을 서로 먼저하라는 말씀은 오늘날 우리 교회의 모순됨 점을 찍어 내는 것 같은 말씀이다. 마치 교회가 무슨 권력기관처럼 계급이 형성되어 목회자와 평신도로 나누어져 목회자는 존경받을 자로 군림하고 평신도는 죽도록 봉사하는 자처럼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반대로 복음 사역자들이 죽도록 봉사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교회안에 계급을 만들지 말라는 주의 명령인 것이다. 계시록에서 주님은 에베소 교회에게 나도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한다 하셨다. 이미 이런 계급제도가 사도시대로부터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행위는 주후 300년 후의 버가모 교회 시대에 만연되고 말았다. 콘스탄틴 대제가 교회를 국교로 삼으면서 세상의 계급이 교회안에 정식으로 채택된 것이다. 그로하여 아직도 카톨릭은 국가 제도를 갖고 있으며 개신교도 각 교파를 이루고 교단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C. 봉사의 태도 11절에서 바울은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권하였다. 잠언기자는 “게으른 자의 정욕이 그를 죽이나니 이는 그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함 이니라” (잠21:25) 하였다. 이 말은 영적 게으름은 육체적 속성을 불러 일으킨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여기서 부지런하라는 말은 어떤 환난과 시험과 고통 속에서도 좌절하지 말고 멈추지 말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히6:12) 하였다. 또한 “열심을 품고” 란 ‘끓는 열정’을 뜻한다. 이 일은 어떤 상황에서도 불타는 열정을 갖고 전진하라는 말이다. 사도행전에는 아볼로를 가리켜 “그가 일찍 주 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행18:25) 하였다. 그러한 열정으로 하여 그는 후일 초대교회의 위대한 복음사역자가 되었다. 여기서 “주를 섬기라”는 말은 영적 의식을 상실하지 말라는 뜻이다. 오늘날 교회의 문제는 영적 의식을 상실하여 가는 것이다. 교회가 많은 일에 열심을 내고 있지만 정작 주를 섬기는 일이 아닌 교회가 추구한 일들에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이다. 이에 성경은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골3:17) 기록하였다. 계속하여 바울은 “소망 중에 즐거워 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12) 하였다. 여기서 소망이란 우리 모든 성도들이 바라는 그리스도의 날에 대한 소망인 것이다. 그 날이 있음을 알고 있기에 즐거워하고 환난을 참을 수 있는 것이며 또 기도를 하게 되는 것이다. 바울은 우리에게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인하 여 매임을 당하였노라 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 타내리라” (골4:2-4) 하였다. D. 열정적 봉사 – 영적 뜨거움(13) 바울은 13절에서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하였다. 이는 열정적인 봉사가 어디에 있어야 할 것을 말한 것이다. 이를 읽을 때 오늘날은 우리 교회가 얼마나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히브리서 기자는 손을 대접하기를 힘쓰라 명하며 이를 인하여 부지 중에 천사를 대접한 사례를 증거하였다. 또한 주님은 소자에게 냉수 한 컵을 주는 자가 결단코 상을 잃지 않을 것이라 하셨다. 이와 같이 어려운 자들을 돌보는 것은 주께서 기억하시는 것이다(히13:1) IV. 불신자와의 관계(14-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21) A. 축복의 관계 로마서 12장 마지막 단계는 불신자들과의 관계를 피력하고 있다. 다시 말하여 교회와 적대관계를 갖고 있는 세상과의 관계이다. 바울은 먼저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14) 하였다. 이말씀은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5:44) 하신 말씀과 동일한 말씀이다. 우리가 세상을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우리도 모두 세상 중에 한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상은 교회를 핍박하는 거대한 사단의 물결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우리가 모두 복음을 전할 대상이기도 하다. 성경은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 하니라” (약3:10) 기록하였다. 원래 저주라는 말은 인간에 속한 말이 아니다. 이는 악한 사단과 그를 추종하는 자에게 떨어진 심판이다. 이에 하나님은 사람을 미혹하여 넘어 뜨리 뱀을 저주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를 핍박하는 사람들이라도 저주하지 말고 축복을 하여 그들을 악에서 돌이켜야 하는 것이다. B. 공존의 관계 바울은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16) 하였다. 이는 사람들과 공존의 관계를 형성하라는 말씀이다. 우리가 사람들과 좋은 교제를 이루지 못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높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음이 교만하여 하나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왕을 대적하고 저주하는 아들 압살롬을 알고 있다(삼후15:4). 이는 자기를 스스로 높인 결과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 한 것이다. 또한 요한은 그의 서신에서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게 썼으나 저희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접대하지 아니하니” (요삼:9)라고 편지하였다. 이처럼 교회 안에서는 으뜸이 되고자 하는 교만한 마음을 갖은 자들이 일어서고 있다. 그러나 그는 성경에 기록된 바와 같이 불못에 던져질 것이다. C. 리더쉽 – 사랑의 실천 계속하여 바울은 ‘아무에게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모도하라’(17) 하였다. 이는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악을 악으로 갚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는 악을 심판하는 권세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들로 더불어 평화하라” 하였다. 평화는 하나님의 뜻이며 계획이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속성이기도 하다. 어떤 교단은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잘못된 자들을 모두 무너 뜨려야 한다고 하며 이단을 정죄하기도 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단들과 대항을 한다. 그로하여 교회 안에서도 동성애자들을 적대시 하는 호모포비아가 있으며 그로하여 세상과 커다란 마찰을 일으키기도 한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행하심을 말하여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벧전2:22-23) 라고 기록하였다. 그는 하늘의 열두영들을 불러 올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마치 도살장으로 이끌려 가는 양처럼 묵묵히 십자가를 지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주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5:9) 하셨다. 바울은 19절에서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하였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말하였다. 이 말씀은 “너는 악을 갚겠다 말하지 말고 여호와를 기다리라 그가 너를 구원하시리라” (잠20:22)를 인용한 말씀이다. 원수를 저주하지 않고 또 갚지 않는다는 말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만약 당신의 가족을 행한 사람들에게 당신은 그들을 저주하지 않고 축복할 수 있는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러나 성경은 “원수를 갚지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사랑하기를 네몸과 같이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레19:18) 하였다. 이것이 성경의 핵심이며 믿는 자들의 행하여야 할 최고의 사랑인 것이다. 바울은 20절에서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우라 그리하는 것은 핀 숯으로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는 네게 상을 주시리라” (잠25:21-22) 하신 잠언서의 말씀을 인용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잘못 인용하여 원수의 머리에 핀 숯을 올려 놓는 것은 직접적인 방법이 아닌 우회적으로 원수를 갚는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니다. 이 말은 네 원수가 망하여 먹을 것이 없고 마실 물이 없을 때 그를 도와 주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여 네 이웃이 망하여 불씨가 꺼져 일어 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그가 제기할 수 있도록 불씨를 나누어 주라는 말이다. 과연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하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능히 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우리가 이렇게 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그것이 바로 우리 안에 역사하는 성령의 능력이고 그 능력은 곧 사랑을 위해 주신 하나님의 도구인 것이다. 바울은 우리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5:16) 하였고 다시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라” (갈5:25) 하였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영적예배 가운데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그리스도의 사랑인 것이다. 주여 내게 이러한 사랑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주의 합당한 자가 되기를 원하나이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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