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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12:3) 영적은사(2) - 실용편

이요나 2008. 3. 6. 20:05

(로마서12:3) 영적은사(2) - 실용편

 

II. 성령의 은사 일곱 가지 (3-13) 은사에 대한 우리의 태도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3)

 

   A. 믿음의 도리 - 겸손한 사역(3-5)

바울은 3절에서 우리에게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수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권하였다. 이것은 거룩한 영적예배 가운데 나타날 신령한 은사들을 활용할 때의 봉사자들의 태도를 말한 것이다. 여기서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라는 것은 나타나는 은사로 말미암은 생겨난 교만한 마음을 경계한 것이다.

 

성경에는 복음 사역자들을 통해서 나타난 많은 능력들이 기록되어 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 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2:4) 기록하였다. 이처럼 많은 은사들이 우리 교회 가운데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능력을 발하는 하나님의 은사는 개인의 능력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양 떼들을 돌보기 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속한 능력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주께서 성령으로 그의 종들을 세우신 것은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함이라 (4:12) 증거하였으며 베드로 또한 우리에게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4:10) 명하였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 주신 은사는 봉사하기 위한 것이지 자신을 위해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바울이 여기서 말한 믿음의 분량대로라는 말은 무엇인가? 흥미롭게도 이 단어는 다시 6절에서 믿음의 분수대로라는 말로 다시 사용되고 있다. 이는 다시 말하여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것처럼 건방 떨지 말라는 말이다. 사실 요즘 많은 교회의 사역자들이 자신들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만능을 가진 것처럼 으스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데 그들이 정작 하는 짓들을 보면 정말 가관일 때가 많다.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타고만 능력처럼 요술방망이처럼 휘두르고 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런 자들을 향하여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 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뇨” (고전4:7) 책망하였다.

 

바울은 계속하여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4,5) 하였다. 이는 우리에게 주신 은사를 우리 몸의 각 기관의 기능과 같다고 설명한 것이다. 눈과 코와 귀와 심장과 위장과 손과 발과 손가락에서 발톱에 이르기까지 그에 합당한 기능이 있듯이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신 은사는 이와 같이 기능적 기관임을 설명한 것이다. 그러니 어떤 은사를 가졌다고 결코 뽑낼 일은 아닌 것이다.

 

이 말씀들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각 지체에게 주신 은사를 통하여 교회안에서 역사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 나타나는 은사들로 인하여 많은 문제들이 야기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오늘날 우리 교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 중의 대표적인 것이 은사에 속한 것이다.

 

B. 각 은사의 차이와 적용(6-8)

계속하여 바울은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라는 자는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6-8) 증거하였다.

 

바울은 일곱가지 은사를 나열하고 있는 데 물론 우리 가운데 나타나는 은사는 이보다 훨씬 많다. 그러나 바울이 여기서 일곱가지 은사만을 언급한 것은 이 은사들이 우리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은사로서 다른 은사들도 그 적용면에서는 동일하게 사용되면 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먼저 우리가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여 이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심장이 위장의 일을 할 수 없으며 눈이 귀의 역할을 할 수 없고 손이 발톱의 역할을 할 수 없음을 뜻한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교회에 각 사람에게 은사들을 나눠주신 것은 각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각 기능의 일만을 충실히 하기 위한 것이다.

 

최근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권 인수 위원회가 수립되어 각 정책들을 내어 놓고 또 각부 장관들을 세웠다. 그런데 정부 각 기관이 조각되기도 전에 불협화음이 쏟아 지고 있고 또 대통령이 자기와 함께 일을 한 각 부 장관 내정자들이 여러가지 도덕성 검증에 걸려 낙마되고 있는 실정이다.

 

나는 오늘 로마서 12장의 말씀을 보면서 이명박 대통령께서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니 각부 장관을 내정하기 앞서 로마서 12장을 연구하였다면 하나님의 지혜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바울도 로마서 12장에서 우리 교회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끌어갈 중요한 은사를 언급하면서 먼저 영적예배 곧 합당하고 이치에 맞는 예배를 위한 전제 조건을 말하였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말씀이다. 이는 도덕적 검증을 말한 것으로 아무리 능력이 있다 해도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그는 합당치 못한 것이다.

 

주님은 이미 이를 말씀하여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가지 못하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할 것이니 그날에 많은 사람들이 주여주여 내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으며 능력을 행하며 예언을 하였다 하리니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라 하리라(7:21-23) 하셨다. 나는 이 말씀이 아직도 우리 중에 살아 있는 줄 알고 있다.

 

   1. 예언, 섬김, 가르침, 권위의 은사

바울이 말한 입곱가지 은사 속에는 흥미로운 내용들을 발견된다. 먼저 예언의 은사에는 믿음의 분수대로라는 전제가 붙어 있는 것이다. 이 단어는 3절에서도 언급되어 있는데 여기서 바울은 분량이란 단어에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이 말들은 기준, 규칙을 내포한 뜻으로 그들이 갖고 있는 성경적 지식의 분량과 질서를 말한 것이다.

 

또한 흥미롭게도 다른 은사들에는 모두 en이라는 헬라어 전치사가 붙어 있는데 예언 은사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다. 이는 다른 은사처럼 내적인 이는 예언은사 외의 여섯가지 은사가 이 속에 포함되었음을 뜻한다. 사실 여기서 바울이 말한 예언 은사는 성경적 계시와 관계가 있다. 따라서 이는 복음 사역자들을 통해서 나타나는 계시적 메시지인 것이다.

 

나는 예언에  큰 흥미를 느끼고 있다. 사실 내가 안수를 받을 때 주신 말씀이 예언의 은사와 가르치는 은사였다. 그리고 지금 까지 사역 중에서 여러 가지 예언의 은사가 나타난 일이 있었다. 목회 초창기 때에는 감당하기 조차 어려운 예언들을 과감히 쏟아 내어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점점 나약해 지는 것인지 많은 예언들이 내 입안에서 얼버무려 질 때가 있었다.

 

나는 가끔 어떤 사람들의 일들이 미리 알게 될 때가 있다. 그런데 막상 그 말들을 하지 못하고 후일 그 일이 성취된 것을 안 후에야 미리 말했으면 좋았을 것을 하고 후회할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또 그런 일이 있다 해도 참을 것이다. 나로 알게 하신 일을 꼭 입밖에 표출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주께서 그 일을 내게 알게 하신 것은  나로하여 그 일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의 사역 중에는 미리 알게 하신 것을 모두 말로 표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있다.

 

여기 기록된 일곱 가지 은사는 크게 넷과 셋으로 나눌 수 있는데 흥미롭게도 앞에 먼저 언급된 네 은사에는 (if-eite=헬라어) 란 전치사가 붙어 있으며 특별히 섬김과 가르침과 권위의 은사에는 중간에 the라는 전치사로 연결되어 있다. 이로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 네 가지 은사 곧 예언과 섬김과 가르침과 권위는 특별한 은사로서 어떤 사람에게는 모두 나타날 수 있고 각각 주어질 수도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여 사도나 교부들에게는 이 은사가 다 주어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나를 흥분하게 만드는 말씀은 섬김과 가르침과 권위의 은사다. 예언 은사는 영적이 부분에 속한 것이지만 섬김과 가르침과 권위는 목회 선상에서 실제적인 은사에 속한다. 그러면 섬김과 가르침과 권위에만 the로 연결한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말하여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권위하는 자는 권위하는 일로라는 말은 섬김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오로지 목회에만 치중하라는 말로서 섬기는 봉사자는 설교하려고 애쓰지 말하는 것이다. 또한 가르치는 은사를 가진 사람은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고 다른 분야에 힘을 쓰지 말라는 것이며 귄위라는 자도 예언이나 목회나 가르치는 일에 나서지 말고 권위하는 일에 전념하라는 말씀이다. 다시 말하여 너는 그 일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는 말이다.

 

나는 가끔 내게 주신 은사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어떤 목사들처럼 예언은사가 막 터져나와 유명해졌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나는 많은 일들이 내 입안에서 얼버무려지고 지난 후에 후회할 때가 많다. 그러나 그 일이 이루어진 것을 보는 기쁨은 이루 표현할 길이 없다. 이때마다 감사가 쏟아져 나온다. 또한 나는 다른 것보다 가르치는 것을 좋아한다. 평생 가르치는 일만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나는 하루 종일 하나님의 말씀과 씨름을 하며 성경 속에 묻혀 지내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많은 목사들이 모두 설교에 치중하려는 것을 본다. 그런데 정작 그들을 보면 성경의 말씀을 살펴보지 않고 대충 자신들이 목적한 바에 설교를 맞추고 있다. 그러나 자기 준비가 없이는 결코 설교를 할 수 없다.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이 오시면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하셨다(14:26).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가르침을 받지 않았다면 머리 속에 기억된 바가 없으며 생각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르치는 자는 가르침을 받아야만 하는 원리를 설명하신 것이다.

 

권위의 은사는 우리 교회 안에 매우 중요하다. 이는 낙담한 성도들을 일으켜 세우거나 용기를 붇돋아 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권위 은사는 예언은사와도 관계를 갖게 되는데 앞에서 언급된 예언이 성경적 계시와 관계가 있다면 권위로 나타나는 것은 실천적 예언과 관계가 있다고 하겠다. 다시 말하여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우리는 그 일의 성패를 알지 못하여 망설일 때가 있다. 이때 권위 은사를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한마디를 던지면 이상하게 그 사람이 힘을 얻어 망설임 없이 그 일을 진행하게 된다. 그러므로 권위의 은사는 우리 교회에 아주 귀한 은사 중의 하나이다.

 

2. 구제, 다스림, 긍휼의 은사

위에서 언급된 예언, 섬김, 가르침, 권위가 집을 짓는 데 가장 중요한 토대와 도면과 대들보, 기둥에 해당하는 것이라 하면 구제와 다스림과 긍휼의 은사는 그 집을 지탱하는 벽이나 문이나 그 집안에 있는 필요한 살림 도구들과 같다고 하겠다.

 

구제는 물질적 필요를 나누어주는 은사로 바울은 성실함으로 하라고 명한다. 흥미롭게도 여기서 사용된 성실함이란  단순함을 뜻한다. 다시 말하여 어떤 목적이나 사람들의 반응을 생각하지 말고 하라는 뜻이다.

 

얼마전 우리는 메스컴에서 삼성과 현대의 오너들이 수천억을 기부한 것을 보았다. 정말 아무도 할 수 없는 거대한 재물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들의 행동에 감동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들이 그많은 돈을 사회에 내겠다고 한 것이 정부가 그들에게 사정의 칼을 드리댔을 때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 전 기초생활 수급자로 사는 어느 할머니가 매년 몇백만원씩의 돈을 모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내 놓은 것을 보고 감격하며 그 할머니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내고 있다. 이것이 바로 단순한 구제인 것이다. 주님은 옷 두벌 있는 자는 옷없는 자에게 나눠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것이니라(3:11) 하셨으며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4:28)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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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하라 하였다. 이로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조직적으로 일해야 할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조직을 다스리는 행정수반을 뜻한다. 따라서 무교회 주의자들은 이 말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라 하겠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은사가 없는 것 같다. 게으르기 때문이다. 언젠가 우리 갈보리채플이 크게 형태를 갖추게 되면 나는 섬김의 은사와 다스리는 은사를 가진 사람부터 찾게 될 것이다.

 

바울은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딤전5:12,13)하였으며 감독은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딤전3:4,) 또한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딤전5:17) 하였다.

 

끝으로 바울은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8b)하였다. 이는 불쌍한 성도들을 행한 애절한 마음이다. 앞에서 구제가 사회적이라 할 때 긍휼은 성도 개개인을 대하는 마음이라 하겠다. 예수님께서도 긍휼한 마음으로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 이를 행할 때 즐거움으로 하라는 것은 자원봉사의 기쁨을 뜻한 것이다. 바울은 헌금에 인색한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 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9:7) 권고하였다. 이 또한 교회를 지탱하는데 커다란 은사임을 알 수 있다.

 

A.     은사를 행할 때의 겸손한 태도

앞에서 언급된 일곱가지 은사들을 살펴 볼 때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앞에 언급된 예언, 섬김과 가르침과 권위의 네 가지 은사에 해당되는 자들은 자신이 받은 은사에만 전념하고 받지 않은 은사에 상관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다시 말하여 자신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독식하지 말라 하신 말씀이다. 이로서 교회에 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고 오늘날 우리 교회안에 세습의 일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여러가지 봉사를 맡은 사람들, 다시 말하여 부목사들이나 찬양리더들도 모두 섬김 사역자들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누가 찬양사역에 은사를 갖었다면 그는 설교를 하려하지 말아야 하며 담임을 도와서 신학교 운영을 한다던가 출판사를 운영한다던가 하는 사람들도 다른 사역에 관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한 세가지 은사 곧 구제와 다스리는 것과 긍휼의 은사는 받은 은사를 유용하게 바르게 사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여 단순함과 부지런함과 즐거움으로 행하여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민수기에 나오는 발람 선지자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그가 하나님의 뜻과 자기가 행하고자 하는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 않음을 알고서도 행하고자 했을 때 하나님은 나귀의 입을 열어 그 짓을 못하게 하셨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메스컴의 입을 열어 응덩이에 뿔난 목사들을 책망하고 있다. 이들이 돌이키지 않는다면 자신들이 행한 일들에 대한 엄중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