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로마서강해

(로마서8:17)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리오?

이요나 2007. 8. 14. 17:37

(로마서8:17)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리오?

 

(롬8:17) 자녀면 또한 후사니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I.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법(12-17)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14)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위치의 승격을 의미한다. 죄의 아들에게서 하나님의 아들로의 자격 변환을 말한다.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이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의 의에 이르러 하나님의 양자됨을 의미한다.

 

  A. 육과 영의 전쟁

그러나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생명의 성령의 법을 받은 우리에게 분명한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먼저 그는 너희가 육신으로 살면 반듯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과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는 증거하였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큰 문제는 영으로 살지 못하고 육신으로 산다는 것이다. 입으로는 그리스도인이라 말하며 성령을 외치지만 그들의 삶의 방법은 육신적 삶이라는 데 있다. 거짓말하고 도둑질하고 음행과 간음에 빠져 부끄러운 줄 모르는 생활을 하면서도 자칭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이 육신으로 살면 반듯이 죽을 것이다 기록하였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산다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여기서 산다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의미한다. 이로서 그리스도인의 실체가 나타나는 것이다.

 

나는 서른 살에 예수를 믿었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지 못하였다. 그렇다고 내 믿음에 대하여 부인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나는 다른 성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진정으로 주 예수를 내 구원의 주로 믿었고 감당할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하였다. 그 누구도 나의 믿음을 부인할 수 없다. 나의 이름은 분명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 속에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때의 나의 믿음을 믿음이었다고 말할 수 없다. 내 믿음은 나의 몸을 죄 가운데서 이끌어 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최근 나는 동성애에 고통받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상담을 받고 있다. 물론 그들은 나와 같이 그리스도의 사람들이다. 그들이 크리스챤임에 대하여는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구원을 향한 그들의 입술의 고백과 마음의 탄식은 보통 사람들보다 더욱 강렬하고 또 주를 사모하는 마음 또한 남들보다 더욱 열정적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죄의 문제를 끌어 안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체 죄와 함께 살고 있다. 나는 그들을 대할 때마다 내게 그들에게 손을 얹어 그들을 회복할 수 있는 권능이 있었으면 하는 안타까움을 버릴 수 없다. 애타게 몸의 구원을 소망하는 그들에게 나는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바울은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14) 하였다. ㄱ그렇다. 나 또한 담대하게 말할 수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분명한 하나님의 자녀이며 또한 지금 당신의 안에는 하나님의 생명의 성령의 법이 역사하고 있으며 이제 그 책임은 주 예수를 믿는 당신에게 있는 것이라고.. 이제 당신은 스스로 깨어나 그의 영의 인도함에 복종하여 하나님의 소망을 성취하는 것이 남았을 뿐이다.

 

  B. 성령의 인도함

성경에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하여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은 이 땅의 죄의 사람들이 주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까지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하여 주께 인도한다. 이것으로 보아 구원받은 사람들은 모두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먼저 사도바울을 보자 그는 유대교의 지도자로 장차 랍비가 될 사람으로 그 당시 세상을 시끄럽게 하던 예수 그리스도교도들을 핍박하여 스테반의 죽음의 당연성을 증명하던 사람이다. 그는 제사장들의 명을 받아 사방으로 흩어진 예수 그리스도인들을 잡기 위해 다메섹으로 향하였다. 그는 그 광야에서 예수를 만나 죽음을 체험하고 다시 살아나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사도로 세움을 받았다.

 

또한 사도행전 10장에는 아탈리야 백부장 고넬료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성경은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행10:2) 라고 소개하였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으나 그때까지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을 아시는 주께서는 그를 성령으로 사도 베드로에게 인도하여 그에게 복음을 듣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이 사건들은 어떠한 사람들을 주께서 복음의 세계로 인도하는가를 자세히 알려 주고 있다.

 

요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은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요6:44) 하셨고 다시 선지자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 오느니라(요6:45) 하셨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에게 있어 어떠한 믿음생활이 중요한 것인지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나는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이 속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되기를 소망한다. 비록 그들이 깨닫지 못하여 육신의 생각에 이끌려 살지라도 그의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언젠가 그들도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그들도 우리와 같이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게 되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으나 영은 의로 인하여 살게 될 것이다.

 

  C. 그리스도인의 위치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영적 위치를 말하여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15) 하였다. 아바란 어린 아들이 아버지를 부를 때 사용되는 아람어다. 요즘 우리 말로 아빠, 파파와 같은 말이다. 성경에서 아바라는 단어는 3번 기록되었는데 한번은 예수님에 의해서 호칭되었고 바울은 주 예수를 영접한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방언의 은사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보지도 못하고 예수를 보지도 못하였지만 하나님을 향하여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것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양자의 영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만약 여러분들 입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것에 의심이 생긴다던가 입이 안떨어진다던가 하면 당신은 당신의 믿음이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지 않는 것으로 당신의 믿음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바 아버지의 이름이 당신의 입술과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면 성령께서 이미 당신의 영으로 더불어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위치는 이미 하나님의 양자에 있는 것이다.

 

바울은 자녀이면 또한 후사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17) 하였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 상속자임을 설명한 것이다. 이 얼마나 큰 영광인가? 죄인 된 우리가 다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양자의 영을 받아 그를 아바 아버지라 부르고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 상속자자 된다니 이것은 거지왕자의 이야기가 결코 아닌 현실 속에 존재한 나의 이야기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상속 받을 것은 두 가지다. 베드로는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잔치 않는 유업을 간직해 두셨으니(벧전1;4) 함과 같이 이 유업은 이 땅에 펼쳐질 천년왕국에서 누릴 유업이 아니라 영원한 세상 새 예루살렘에서의 유업을 말한다. 그러나 로마서 8장17절에서 바울이 언급한 유업은 새 예루살렘의 상속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이 땅에서 통치할 천년왕국을 언급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영광된 상속을 물려 받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고난을 받으셨듯이 우리 또한 그와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8:17b)라 기록한 것이다.

 

바울은 디모데서에서 그러므로 내가 택하신 자를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저희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함이로다(딤후2:10) 하였고 다시 참으면 또한 함께 왕노릇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할 것이라(딤후2:12)  바울은 후일 사도로서 이방과 동족에게 당한 핍박과 고난들을 영광스럽게 자랑하고 있다. 이러한 고난은 인간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육체와 마음과 그리고 영의 고통이 수반된다.

 

이 고난을 말하여 성경은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히10:32) 증거하였으며 계속하여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룬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히10:33-36) 증거하였다.

 

만약 당신이 지금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을 받고 있다면 이미 당신은 이제 곧 나타날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예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이를 힘들게 여겨 포기한다면 주께서는 기뻐하지 않을 것이며 당신에게 약속된 하늘의 영광은 다른 사람에게 돌아 갈 것이다. 이로서 주님은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 하신 것이다.

 

II. 구원의 소망(18-25)

이뿐(그들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23)

 

A.     피조물의 굴욕과 소망

바울은 18절에서 생각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기록하였다. 지금 바울은 우리의 시선을 이상의 세계로 이끌어 가고 있다. 다시 말하여 현실의 세계에서 이상의 세계로 이끌어 가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이상의 세계란 우리 이상 속에 존재 하는 세계만이 아니라 실존의 세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또 하나의 오해는 믿음의 세계를 이상적인 세계로만 치부하는데 있다. 그러므로 어떤 믿는 자들은 믿는 자들 가운데 일어나고 있는 성령의 기적들을 믿으려 하지 않고 또한 장차 우리 앞에 다가 올 대망의 휴거에 대한 성경의 예언을 부인하고 있다. 그들이 이러한 잘못된 사고를 갖고 있는 것은 그들의 믿음이 성경의 가르침에 있지 않고 교단적 교파의 교리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로서 교회의 가르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계속하여 바울은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19)라고 증거하였다.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 곧 예수 그리스도라 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하였다. 이것은 곧 장차 이 땅에 세워질 천국을 소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이 땅은 생명의 충만함을 받아 썩어질 것이 썩지 않음을 입고 또 썩어질 것이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전도가 세상 끝까지 이루어져 온 세상이 그리스도인의 나라가 되는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144000명인 자기들 교회 사람들이라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허구맹랑한 말이다. 썩을 것이 해방될 날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그의 나라 곧 천년왕국에서만 이루어질 것이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바울은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20) 증거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의 영원성을 감지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피조물의 생명은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여기서 말하는 피조물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 하나는 20절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체를 뜻하며, 또 하나는 그 속에 포함된 인간의 옛 성품을 의미한다.  

 

계속하여 바울은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에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21) 증거하였다. 이것은 참으로 위대한 선포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 바울은 피조물들을 인격체로 표현하고 있다. 사실 인간의 저주가 있기 전에는 사람들은 짐승들과 의사 소통을 했었다. 따라서 이 선언은 썩어짐에 고통받는 피조물들이 이사야가 말한 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울 것이요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하며 어린 아이가 그들을 이끌리라(사11:6)말한 미래의 세계를 연상케 한다.

 

우리는 바울의 이 선언을 읽으며 피조물들은 공산주의자들보다 나으며, 후천년주의자나 무천년주의자들보다 훨씬 성경적이고 영적인 존재임을 알 수 있다. 사실 그들은 오늘 바울이 말한 바 하나님의 권세와 우리 안에 역사하는 성령의 권능을 이해하지도 또한 알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불행하게도 우리 앞에 놓인 휴거의 영광과 천년왕국의 영광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의 칠년대환난을 고대하고 있는 것이다.

 

B.     성도의 탄식과 소망

계속하여 바울은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22,23) 증거하였다. 여기서 우리가 아나니란 내용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과연 피조물이 함께 탄식하며 고통받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는 것인가? 만약 당신이 이 말씀을 이해했다면 이사야가 말한 바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들이 함께 누울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으리라(사11:7) 는 말씀을 이해할 것이며, 그들은 이미 그들은 나의 모든 거룩한 산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들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11:9) 하신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리라.

 

여기서 우리란 누구인가? 이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다. 또한 양자 될 것이라 하였으므로 이것은 이 땅에서의 상속자로서 실제적인 권리를 말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양자 됨을 영적으로 해석하려 하지만 그리스도와 함께 유업을 받는다는 것은 영적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날 이 땅에서 받을 실제적 통치권의 상속을 말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알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양자 된 우리의 모습에 관한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때에 이 땅에서 우리가 누리지 못했던 부귀영화를 누릴 것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주님은 부활의 때에는 그들은 장가도 시집도 가지 아니하고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천사들과 같으니라(마22:30) 하셨다. 어떻게 보면 육신을 갖고 누리는 달콤새콤한 맛이 없어 밍밍할 것 같으나 성경에 나타난 천사들의 권세를 살펴 보라 그 신비의 세계를 누리고 싶지 아니한가?

 

C.     보이지 않는 소망

이제 바울은 우리에게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24)하고 질문하였다. 바울은 지금 온전한 구원의 실체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주 예수를 믿었을 때 우리의 신분이 죄인에서 의인으로 확정되었듯이 그 구원의 온전한 성취의 때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의 양자의 때 곧 몸의 구속의 때를 말한 것으로 이 땅에 펼쳐질 천년왕국의 영화로움을 의미한다. 이 소망에 대하여는 이 기업의 산 소망이 이 땅에서 펼쳐질 실제적인 사실이라는 진리를 믿을 때 그 바라 봄의 소망이 절실하게 된다.

 

만약 당신이 이 소망에 대한 확실한 근거와 지식을 알고 있다면 잠시 받는 고난으로 인하여  이 소망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짓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며 잠시 후에 썩어 없어질 육체의 소망에 목숨을 거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한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25) 권고하였다.

 

무엇을 향한 소망에 대한 기다림이란 정말 설레이는 꿈이기도하다. 어릴 때 나는 서울 여행을 앞두고 몇 날 밤을 설친 일이 있었다.  생전 처음 서울구경을 하는 설레임 때문에 매일매일 손꼽아 기다렸던 기억이 있다. 만약 당신이 생전 가보지 않던 어느 나라를 여행하게 될 때 그 지역에 대한 많은 지식들은 당신의 실제 여행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의 날에 우리가 받을 양자의 상속에 대한 당신의 지식은 그날을 기다릴 충분한 소망을 안겨 줄 것이며 그 지식들은 보이지 않는 소망을 기다리기에 충분한 인내의 힘을 주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다음 주에 이 완전한 소망을 성취하기 위해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능력의 원천인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하여 공부하게 될 것이다. 부디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당신의 육신을 사로잡고 있는 잘못된 지식으로부터 당신의 믿음을 돌이키게 되기를 소망하여야  할 것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