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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6:22) 죄와 부활의 트랜드

이요나 2007. 8. 8. 18:45

(로마서6:22) 죄와 부활의 트랜드

 

(롬6:22)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서론) 우리는 앞에서 그리스도인과 죄와의 관계에 대하여 살펴 보았다. 바울은 단호하게 그리스도인은 절대로 죄와의 관계를 가질 수 없다는 논지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로마서 주제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의라 하겠다. 이하나님의 의는 그 무엇으로도 인간은 의로워질 수 없음을 전재로 하고 있으며, 바울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하여는 정죄(Condemnation), 의인(Justification), 성화(Sanctification), 안전(Security)의 필연적 관계가 있음을 증거하고 있다. 또한 로마서 6장은 7장과 8장과 함께 조명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로마서 6장에서는 크리스챤과 죄와의 관계, 7장에서는 우리와 율법과의 관계, 그리고 8장에서는 우리와 성령과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I. 그리스도와의 연합(1-11)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5)

 

A. 의롭다 하심을 얻기 위한 조건

바울은 1절에서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물으며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서 살리요 답하였다. 여기서 바울은 죄에서 해방되어 은혜 가운데 사는 우리들의 삶의 태도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이 이처럼 이미 없이 함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죄의 문제를 다시금 언급하는 것은 그만큼 죄의 문제가 아직도 우리 가운데서 끈질기게 역사하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날 우리가 스스로 자신을 돌아 볼 때 나는 바울의 질문과 관계없는 사람이다 라고 자신있게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기서 바울은 주 예수로부터 그의 성도들을 위해 세움을 받은 사도로서 자신을 담보로 하여 이러한 증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아직 죄 속에 거하여 살고 있는 우리를 향하여 단호하게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하고 반문하고 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세례란 비단 침례 뿐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포함하고 있다. 과거 주님은 자신들을 그리스도의 왕국에서 주의 오른쪽과 왼쪽에 세워달라고 청한 야고보와 요한에게 너희가 나의 받을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물으신 바 있다. 이것은 너희가 나에게 예정된 십자가 죽음에 동참할 수 있느냐고 물으신 것이다.

 

B. 죄로부터 구원하는 3가지 원리

이어서 바울은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4) 증거하였다.

 

여기서 바울은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세 가지 원리를 설명하였다. 먼저 그는 세례 곧 침례를 말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침례에 대한 성경적 바른 이해를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교회들이 세례에 대하여 형식적인 의식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잘못된 교리를 지키려는 오랜 교회의 관습에서 비롯된 잘못된 가르침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세례란 곧 침례(Baptism)를 말한다. 이 침례는 세례 요한에게 주어진 권세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맞기 위한 정결의식에 속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께서 그의 사도들에게 명하신 세례는 세례 요한의 세례와 같은 형식이지만 그 의미는 전혀 다르다. 세례요한의 세례가 정결의식이라면 그리스도의 세례는 그리스도의 복음적 사명에 동참하기 위해 그와 하나가 되는 의식이다. 어쩌면 부부가 한 몸을 이루기 위해 갖는 결혼의식과 같다고 하겠다.  

 

바울이 제시한 두번째 원리는 십자가 죽음(Crucifixion)이다. 그의 죽으심이 아니면 그 누구도 인간의 죄를 속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하나님의 구원은 완전하지 않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사심 곧 부활(Resurrection)을 증거하였다. 이로서 우리의 구원은 완성되어 새 생명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새 생명을 얻었다 말하지 않았다. 그는 예수께서 죽으심과 장사되심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목적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만약 우리가 새 생명 가운데 행하지 못하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심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느냐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바울은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선언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연합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연합이란 말은 함께 자라나다 라는 헬라어 쉼퓌오에서 파생된 말로 한 뿌리에서 함께 자란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므로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체성의 관계를 말한 것이다. 성경에서 연합이란 단어가 제일먼저 사용된 곳은 창세기 2장 24절에서 그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에서 사용되었다. 여기서 사용된 히브리어 다바크는 영과 혼과 육의 합일체 곧 삼위일체와 같은 속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였다는 말은 그 무엇으로도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의미한다. 과연 우리는 지금 그리스도와 그러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가? 이론적으로만 그런 것이 아닌가?

 

바울은 여기서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하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하였다. 여기서 바울은 필연적인 두 가지 사건을 우리에게 대비하면서 특별히 본받아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여기서 본받아라는 말은 모델를 뜻하는 말로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스스로 행하신 믿음의 의지와 순종을 내포하고 있다.

 

계속하여 바울은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6)라고 증거하였다. 이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모두 아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는 믿음의 세계로 들어 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사실을 그대로 실행하지 못하는 데 있다. 여기서 바울이 사용한 멸하여라는 단어는 폐업했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이미 우리의 몸은 죄에 대한 업을 폐한 것이다.

 

이에 대해 바울은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7) 증거하였다. 바로 이 사실이다. 성도들은 자신이 죄가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사실을 알고 있는 것에서 나아가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인 것에 대한 믿음의 확신을 가질 필요성이 있다. 이를 위해 우리는 그의 보내신 제자들을 통하여 믿음으로 세례를 받고 그의 이름에 힘입어 의롭다 하심에 참예하는 것이다.

 

이제 바울은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다(8,9) 증거하였다.

 

여기서 바울은 우리에게 사망에 대하여 다시 언급하였다. 이 사망은 모든 죄인에게 임하는 죄의 삯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망은 지금까지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왕노릇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의 요구를 충족하시고 죄의 값으로 단번에 죽으심으로 우리로 죄없다 하심을 얻게 하시고 하나님에 대하여 다시 사셨으니 우리 또한 그와 같이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인 것이다.

 

II. 지체의 주관자(12-14)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드리라(13)

 

A.     불의의 병기

이제 바울은 우리를 권면하여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의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12,13) 하였다.

 

여기서 바울은 우리의 몸 곧 지체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이것은 우리 인간의 구성이 오직 마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그릇인 몸 곧 지체가 있음을 언급한 것이다. 사실 우리가 범죄하는 데에는 그 원인이 마음에서 솟아나지만 죄를 행하는 것은 지체다. 다시 말하여 우리의 몸의 지체가 죄에서 순종하므로 죄가 우리의 몸의 지배자가 되게 하는 것이다.

 

바울은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 드리지 말라 말하며 다시 오직 다시 산 자 같이 너희 지체를 하나님께 의의 병기로 드리라 하였다. 여기서 병기한 전쟁에 사용되는 무기를 의미한다. 이것은 곧 불의와 의가 서로 대립되어 마치 전쟁을 방불케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로서 사실 인류 속에서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B.     의의 병기

그러면 의의 병기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바로 의의 도구를 의미한다. 다시 말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행하는 도구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매일 의의 도구로서 생활하지 못하고 내 지체의 욕심을 따라 세상의 요구에 이끌려 다니기 일수다. 이것은 참으로 그리스도인의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바울은 우리의 지체를 하나님의 의의 도구로 드릴 때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14) 증거하였다. 이것은 우리 삶의 주관자 곧 지배자가 누구냐는 우리의 지체를 누구에게 순종하느냐에 결정된다는 말이다.

 

여기서 법이란 세상을 살아가는 질서를 세우기 위해 정해 놓은 규약이다. 이 법은 서로 합의된 약속이므로 법을 어기는 자에게는 그에 합당한 법이 주어진다. 이 법이 주어진 것은 인간이 선하게 살아 갈 수 없는 죄의 토대에 세워졌기 때문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죄에서 해방되어 은혜의 세계로 이전 된 우리에게 더 이상 죄가 지배할 수 없는 것이다.

 

III. 죄와 의의 법칙(15-23)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니라(22)

 

A.     순종의 법칙

이제 바울은 16절에서 순종의 법칙을 말하여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증거하였다.

 

이것은 아주 간단한 원리다.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되는 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다. 종이란 몸과 마음이 그에게 순종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죄에서 풀려나 은혜 가운데 있으면서도 계속 죄에게 순종하여 우리의 지체를 그에게 드린다면 결국 우리는 죄의 종이 되어 사망에 이르게 된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의에 참여한 자가 되어 믿음으로 의의 생활에 순종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므로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나희가 본래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17,18) 하였다.

여기서 바울이 말한 훈의 본이란 성경이 가르치는 바른 교리를 뜻한다. 이것은 오늘날 각 교단이 말하는 교리가 아니라 거룩한 하나님의 뜻에 이르는 진리의 말씀을 뜻한다.

 

바울은 여기서 이미 우리가 죄의 종에서 해방된 의의 종임을 선언하고 있다. 이것은 변개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로서 그 증거 된 주의 영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과 함께 오직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

 

계속하여 바울은 우리의 연약함을 말하여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19) 명하였다,

 

주님은 생전에 자신의 십자가 죽으심을 앞에 두고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모두 육신의 연약함에 못이겨 잠들고 있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너희가 한시간 동안도 나와 함께 할 수 없다느냐 책망하셨다. 이처럼 우리 육신은 죄의 사슬의 올무에서 벗어나는데 쉽지 않다. 이것은 우리의 육신이 사단이 지배하는 세상 가운데 발을 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세상이 행하는 부정한 일과 불법한 일에 우리가 순종하느냐 오직 의에게 순종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만약 우리가 세상을 따르지 않고 의의 말씀에 순종한다면 우리는 거룩한 주의 백성인 것이다.

 

여기서 불의란 사람과의 관계를 말하며 불법이란 하나님의 계획과 뜻에 역류함을 의미한다. 바울은 이미 불법의 비밀이 활동하였다(살후2:7) 하였으며 이 배후에 사단의 역사가 있음을 증거하였다. 이에 대하여 주님은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라 할 것이다(마7:20) 하셨다. 과연 나는 불법을 행하지 않는 자인가 심히 두려운 말씀이다.

 

B.     열매의 법칙

바울은 21절에서 너희가 그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묻고 있다. 나는 서른 살에 예수를 믿어 나름대로 정말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자의 본인 것처럼 종횡무진하였다.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고 하였고 교훈이 아닌 것을 교훈으로 알며 육신의 만족을 위해 내 몸을 불의한 일에 드렸었다. 그러나 그 열매는 정말 부끄러운 일 뿐이다. 나는 지금 과연 내가 이런 자를 믿는 자라도 할 수 있겠는가 하고 반문하고 싶다. 그때에 나에게서 하나님의 의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바울은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응 그 마지막이 사망이니라(21) 증거하였다. 나는 주께서 나에 대하여 인내하여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만약 주께서 내게 긍휼하심을 베풀지 아니하셨다면 나는 사망한 자가 되어 내 영혼은 암흑의 구덩이에서 주의 날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바울은 이제 나에게 그러나 이제 너희가 죄에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22,23) 증거하였다.

 

그렇다. 우리는 이 말씀의 최종적인 판단을 계시록 20장11절 이후에서 보게 된다. 그 때는 주께서 주의 의로운 백성들에게 미리 언약하신 이 땅에서의 천년왕국이 끝나고 주께서 세상을 접으실 때 마지막으로 베푸시는 긍휼의 날에 있을 백보좌 심판이다(계20:12-15). 나는 이 말씀을 읽는 의로운 주의 백성들은 이 사망 가운데 들어있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은혜의 법에 살고 있으면서도 당신의 지체를 불의와 불법의 종으로 드린다면 당신의 죄의 값은 여전히 사망이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성경이 말씀하신 교훈의 본이다.

 

사랑하는 주님 나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있게 하셔서 나로 하여금 의에 이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내 호흡이 살아 있는 동안까지 내가 주의 말씀 속에 살아 있어 내게 베푸신 영원하신 새 생명의 은혜를 길이 보전케 하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