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마태복음강해

(마태복음28:19) 예수의 부활과 지상명령

이요나 2008. 4. 4. 11:57

(마태복음28:19) 예수의 부활과 지상명령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하리라

 

마태복음 28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전하는 중요한 기록이다. 내용은 사복음서 후미에 모두 기록되었다. 흥미롭게도 복음서 기자들의 내용을 보면 서로 조금씩 다른 내용들이 발견된다. 이런 것으로 하여 복음을 믿지 않는 어떤 사람들은 성경의 진실성을 부인하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복합적인 내용들을 통하여 당시 상황을 더욱 세밀하게 예측할 있게 된다. 우리가 사복음서를 읽을 저자들이 원근법에 의해 작성했음을 인지하여야 한다.

 

마가는 베드로의 제자가 되어 모든 사실들을 베드로에게서 들어 기록하였을 것이다. 마가복음 14 51절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 생전 당시 그는 소년 티를 갖넘은 청년이었음을 짐작할 있다. 또한 누가는 좀더 후일에 유대로 들어 예수님과 함께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취재하였다. 그러므로 누가복음은 다른 서신에는 없는 내용들이 보다 폭넓게 사실적으로 기록되었다.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 요한은 다른 복음서의 기록 상황을 읽으며 그들이 기록한 사실적인 내용 보다는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의 신적 능력과 안에 역사하는 성령의 능력을 기록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이에 비해 마태는 유대인의 관점에서 신앙적 역사 배경을 고찰하며 마태복음을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복음서를 읽을 다른 서신서를 함께 살피며 원근법 차원에서 내용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I. 예수님의 부활 (‘raise’-헬라어 ‘resurrection에서)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10)

 

A. 영적현상

마태는 1절에서 안식일이 다하여가고 안식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라고 기록하였다. 유대인에게 있어 날은 안식일 토요일 오후 6시가 지났으므로 안식일 다음날이 된다. 따라서 믿는 우리에게 있어 안식 첫날이란 예수께서 죽으신 부활하신 첫날 주일 새벽이 된다. 이러한 확실한 근거가 있는데도 굳이 토요일을 주의 날로 섬기려는 안식교도들의 막무가내식 믿음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른새벽 무덤을 찾아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였다. 다른 복음서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와 살로메가 있었다고 기록되었지만(16:1, 24:10) 흥미롭게도 그의 사랑하는 제자들의 이름은 기록되지 않았다. 여인들의 강인한 믿음의 절개는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같다. 더욱이 막달라 마리아는 주께서 일곱귀신 쫓아낸 여인이었다.

 

어쩌면 여인은 누가복음 7장에 소개된 주께서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예수님의 뒤로 곁에 서서 울며 눈물을 흘리며 향유를 부어 머리털로 발을 씻겼던 여인일 수도 있고 어쩌면 요한복음 8장에 간음현장에서 끌려온 여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우리가 있는 것은 예수께서 부활 제일 먼저 만난 여인이라는 것이다.    

 

B. 자연적 이변 지진

이때 놀라운 자연적 이변이 생겼는데 마태는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위에 앉았다’(2) 기록하였다. 지진이 났는데도 그곳에 앉아 있던 여인들이 무사했다는 것은 참으로 기이하다. 여기서 우리는 천사들이 나타날 느낄 있는 신적 상황을 발견할 있는데 먼저 옷이 눈처럼 것과 두려움의 엄습과 지진이다. 베드로와 야고보 형제는 변화산상에서 빛과 같이 희게 변하신 주의 얼굴과 흰옷을 보았다.

 

성경은 하늘의 신적 이변이 땅에서 나타날 지진이 일어나고 있음을 여러 소개하고 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마지막 때에 지진이 있을 것을 예고하셨다(21:11). 아마 말씀하신 일의 신호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주의 부활 첫날에 일어난 지진은 이와 다른 의미가 부여되고 있다. 성경은 이러한 일들을 여러 예고하였는데 사도들의 시대에도 특별한 일이 있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 들어가 복음을 전할 반대세력에 의해 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지진이 일어나 옥터가 움직이고 매인 사슬이 풀어졌다.(16:26). 또한 계시록 기자는 칠년 환난 천사가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도 지진이 있을 것을 예고하였고(6:12) 주의 기름부음은 받은 증인이 복음을 전하다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부활할 때에도 지진이 있을 것이라 기록하였다(11:13). 어디 그뿐인가 주의 재림 바로 직전 마지막 재앙을 알리는 일곱번째 천사가 나팔을 때에도 지진이 있을 것이라 기록되었다(16:18).

 

여기서 우리는 때의 상황을 상상해 보자. 만약 우리 앞에서 지진과 함께 눈같이 옷을 입은 천사 나타나 번개 같은 동작으로 사람들로서는 감당할 없는 봉인 무덤의 돌문을 열었다고 생각해 보라. 모든 일들이 번개 같은 순간적으로 나타날 누구라도 혼비백산할 밖에 없을 것이다. 마태는 수직하던 자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같이 되었다고 기록하였다.

 

C. 천사의 출현(5-7)

천사는 여인들에게 너희는 무서워말라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 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으로 보라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러 그가 죽은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를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5-7) 하였다.

 

 

이날의 일에 대하여 누가는 어찌하여 산자를 죽은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24:5,6) 증거 하였으며 마가는 예수께서 안식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 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셨다’(16:9) 기록하였다. 또한 요한은 무덤 안에서 주를 보지 못한 마리아가 슬퍼할 주께서 나타나신 장면을 소개하였다.

 

II. 메시야의 출현과 사람들의 반응(9-15)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말라 가서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10)

 

A. 기쁨과 감동의 재회(8)

주의 살아나심을 목격한 여인들은 두려운 가운데서도 기쁨을 억제하지 못하고 제자들을 향하여 달음질쳤다. 이때 주께서 저희를 만나 평안하냐 물으셨다. 이에 여인들이 발을 붙잡고 경배하였다(9). 여기서 경배란 땅에 엎드려 혼비백산한 상태를 말한다.

 

요한복음 20 17절에는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아버지 너희 아비지 하나님 너희 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기록되었다. 여기서 나를 만지지 말라 헬라어를 직역하면 나를 붙잡고 매달리지 말라 뜻이다. 모든 정황들을 살펴 현실 속에 나타난 신적상황들은 한계 속에 살고 있는 우리로는 충분히 이해할 없는 일이다. 이러한 놀라운 신적현상은 장차 우리 앞에 다시 펼쳐질 때에야 확실하게 있을 것이다.

 

천사들이 마리아에게 전한 메시지는 가지이다. 먼저는 예수께서 살아 나셨음과 미리 말씀하신대로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만날 것이라는 메시지이다. 일들은 주께서 생전에 그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주님은 예루살렘을 오르시며 십자가에 못박혀 죽임을 당하실 것과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 먼저 갈릴리에서 만날 것이라 말씀하셨다. 그러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어떤 황망한 현실을 당하면 앞뒤 전후 사정을 깨닫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러한 현상은 감당할 없는 두려움과 슬픔에 쌓일 나타난다. 때의 제자들의 심정상태는 무엇으로도 감당할 없고 위로받을 없는 상태였을 것이다. 이런 제자들의 상황을 익히 아시는 주께서 먼저 그를 따르는 여자들에게 먼저 보이시고 그의 살아나심을 전하게 하여 제자들의 상한 마음을 위로하고 부활의 소망과 믿음을 회복하게 하신 것이다.

 

B. 종교 지도자들의 대책(11-15)

이와 같은 일들은 비단 그리스도의 사람들 앞에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11절에는 여자들이 갈제 파수꾼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고하였다라고 기록되었다. 그러므로 여자들 앞에 일어 났던 신적체험은 이상 중에 일어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일어난 것임을 있다. 주와 함께 하던 믿음의 여인들도 심히 놀라고 두려워했는데 믿지 않는 사람들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결국 대제사장들은 일이 백성들과 총독에게 바로 전달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파수꾼들을 돈으로 매수하여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예수의 시체를 도적질해 갔다 하라 하고 유대인들에게 소문을 내게 하였다. 그로 하여 오늘날까지 이러한 소문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의 구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바티칸 도서관에서 발견된 로마황제 가이사에게 보낸 총독 빌라도의 보고서에서 모든 사실들이 그대로 기록되었음이 밝혀졌다. (여러분도 빌라도의 보고소를 참조해 보기 바란다)

 

C. 예수님의 출현 과정

성경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중에 대표적인 여인이 막달라 마리아’(16: 9)이며 그와 함께 무덤에 왔던 여인들이다(1, 8-9). 누가복음 24장에는 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으며’(24:12) 요한은 8일째 되던 날에 의심하던 제자 도마에세 나타나신 일과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신 일을 기록하였다(20:19-49).

 

또한 주님은 부활 ‘40 동안 제자들에게 보이셨으며’(1:3) 스데반의 순교 시에 보이셨고(7:56)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던 자신에게 나타나셨음(9:1-22) 후일 고린도전서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사도 그리고 오백여 갈릴리 사람들에게 나타나셨다’ (고전15:5-7) 증거하였다. 누가 모든 사실들을 뒤집어 엎을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유언비어는 유언비어일 뿐이다.

 

 

III. 메시야의 지상명령(16-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19,20)

 

A. 제자들과의 재회(16-17)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소집으로 그의 제자들은 모두 갈릴리 산으로 모였다. 이곳은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산상수훈을 말씀하셨던 곳일 것이다. 제자들은 그곳에서 주를 뵙고 놀라 경배를 드렸으나 중에는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었다고 기록하였다(17). 

 

우리는 요한복음 21장에서 특별한 방법으로 제자들과 재회하시는 주님을 보게 된다. 베드로를 위시한 제자들이 베드로와 함께 고기잡이를 하던 고기를 잡지 못하고 허탕치고 돌아 왔을 갈릴리 뭍에서 기다리시던 주께서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셨다. 이에 그들이 그물을 바다에 던지니 그물을 거둘 없을 정도로 고기가 잡혔다. 이때서야 요한이 그가 예수이신 것을 깨달아 베드로에게 말하니 베드로가 옷을 두르고 바다 위로 뛰어내렸다(21:1-7).

 

여기서도 우리는 제자들의 한심한 모습을 보게 된다. 사건은 제자들이 이미 주의 부활을 목격한 여자들이 전한 주의 메시지를 접한 후의 일이다. 때에도 열한 제자가 모인 것은 아니다. 베드로는 무료함을 견디지 못하고 동료들을 선동하여 고기를 잡으러 나갔다. 역시 자신의 몸에 배인 일은 습관처럼 따라 오게 된다. 성경적으로 말하자면 주의 메시지를 전달 받은 베드로와 제자들은 갈릴리에 모여 주의 오심을 고대하며 기도하고 있었어야 한다. 

 

또한 마가복음 16장에서 우리는 흥미로운 것을 발견한다. 12절에는 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들이 돌아와 주의 부활하심을 전하였는데도 다른 제자들이 믿지 아니했다고 하였으며 후에 열한 제자들이 식탁에 모여 식사를 하고 있을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 자기의 살아나심을 보고 전한 자들의 말을 듣고도 믿지 않은 제자들의 믿음 없는 마음과 완악함을 책망하였다. 여기서 사용된 완악이란 단어는 지나치도록 완고한 것을 뜻한다.

 

이처럼 인간의 고정관렴은 변하기 어렵다. 그들은 모두 예수께서 십자가에 박히신 것과  죽어 세마포로 시체를 두르고 향료를 넣어 장사지낸 일들 모두 목격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그들이 알고 있는 생과 죽음의 질서와 그들이 목격한 모든 사실들을 부정하여야만 가능하다. 이것은 당신의 손으로 장사를 지낸 부모가 사흘만에 살아났다는 것을 믿는 것과 같다. 그러나 주님은 주의 하신 말씀처럼 다시 살아 나셨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 조반을 준비하셨다(요한21:12).

 

B.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18)

주님은 이제 제자들에게 그들이 행하여야 중대한 지상명령을 하셨다. 이것은 아마 주께서 부활하신 40 동안 사시며 여러 가지를 가르치신 승천하신 마지막 날에 하신 말씀일 것이다. 주님은 먼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다”(18) 하셨다.

 

바울은 이를 증거하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세상 뿐만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만물을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1:21,22) 하였다. 이와 같이 땅의 모든 권세가 앞에 있으며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고 주의 즐거움을 위해 지음을 받은 것이다(4:11)

 

C. 지상 명령의 핵심(19-20)

주님은 먼저 그들에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19) 하셨다. 그들이 일은 사람들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고 모든 족속에게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제는 유대인의 종교적 벽을 넘어 인류의 구원을 향한 복음의 토대가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서 행할 일은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일이다. 주님은 병을 고치고 능력을 행하라 하시지 않고 제자를 삼으로 하셨다. 제자를 삼는다는 것은 어떤 지식에 대한 이성적인 가르침과 관계된 사역이다. 주님은 생전에 제자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셨다. 그러나 주님은 종교적 규범이나 철학적 지식을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켜져야할 사랑의 원리와 인간과 인간들 사이에서 실행되어야 사랑의 질서에 대하여 가르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나타나는 거룩한 하나님의 성품이며 천국의 질서인 것이다.

 

D. 침례의 필요성

일을 위해 주님은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하셨다. 말씀은 의식적인 침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나는 믿음의 고백이며 모든 사람들 앞에 그리스도인임을 고백하는 믿음의 증거인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와 몸이 되고 그의 안에서 성도의 지체를 이루어 그리스도의 몸으로 친히 세우신 하나님의 성전 예수 그리스도 교회를 지어 가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침례를 의식적인 것이라 말하며 믿음생활과는 관계가 없다 말하고 한두번씩 행하는 교회 행사로 치부한다. 그러나 우리는 침례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행하셨던 것으로 이를 통하여 성령의 세례가 사람에게 임한 성경적 사실을 알고 있다. 성경은 사도 바울의 성령 체험이나, 빌립집사의 사마리아 전도나 고넬료의 사람들에게 나타난 성령의 능력, 에베소 제자들에게 임한 성령의 은사들은 모두 침례와 관계 있음을 증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부 성자 성령으로부터의 침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온전한 회개의 열매를 맺고 그들에게 나타날 성령의 체험을 갖게 하는 선물의 통로인 것이다.

 

베드로는 후일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2:38,39) 증거하였다. 그러므로 침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거룩한 영적 지체가 되기 위한 믿음의 증거이며 성도된 성령의 거룩한 능력이 나타나기 위한 통로인 것이다. 그를 통하여 그리스도인의 인격이 완성되는 것이다.

 

E. 제자사역의 중심(20)

그러나 침례의 가장 중요한 목적인 제자 사역 온전한 가르침을 위한 과정이다. 이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증거가 나타나고 그의 지체가 되어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진리의 말씀을 가르쳐 제자를 삼고 거룩한 성도들을 온전케 하는 것이다. 주님은 그의 제자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여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입니다’(17:17) 하셨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말씀들을 지키게 하는 것이다.

 

바울은 제자 디모데에게 네가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희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라 네가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자신과 네게 듣는 자들을 구원하리라”(딤전4:1115,16) 하였으며 다시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있으리라” (딤후2 : 2) 하였다.

.우리가 성경을 가리켜 제자를 삼아야 하는 것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라”(딤후3:16,17)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이로서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교회의 모순점이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가르치지 않는 것도 있지만 지키지 못하는 있다. 아무리 태산을 들어 바다에 던지울 믿음이 있다 하드라도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의 믿음은 온전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제자의 사역의 중심은 가르침이며 말씀을 지키게 하는데 있다.

 

끝으로 주님은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하셨다. 말씀은 이해가 필요하다. 세상 날이란 아직 이루지 않은 미래에 속한 날이지만 말씀은 계시에 속한 약속이다. 우리가 말씀을 알기 위해서는 세상 끝날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충분히 이해하여야만 한다. 따라서 말씀은 제자된 우리의 믿음의 결산은 세상 끝날에야 있을 것이며 우리가 약속을 믿고 힘입어 제자들을 삼는다면 우리의 믿음은 세상 끝날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주님은 이미 제자들에게 나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라 들어가리라”(7:21) 하셨다. 이제 제자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 어떤 일인가 깊이 생각하고 돌이켜 주의 뜻을 이루어야 것이다. 주의 권세와 영광이 세세토록 우리와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 아멘!

 

*지금까지 마태복음 공부에 함께 동참하신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많게 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