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요한복음강해

(요한9:41) 네가 눈뜬 장님이 아니냐?

이요나 2008. 6. 16. 19:34

(요한9:41) 네가 눈뜬 장님이 아니냐?

 

(9:4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세상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얻고자 한다. 그로하여 사람들은 서로 좋은 평판을 갖고자 혈맥과 출신을 통한 인맥을 구축하고 인격의 평가적 가치를 도모하기 위하여 학문을 익히고 이념과 사상을 조율해 나간다.  

 

사회가 발달되고 복잡해 지면서 사람들의 평판의 기준은 그 사람의 내면적 가치나 공공의 가치로 나타나기 보다는 개인이 갖고 있는 탁월한 수단과 능력을 통하여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평가는 타고날 때부터 외형적 기능을 갖춘 사람들에게 부여된다.  만약 누가 타고날 때부터 보편적 가치의 결함을 갖고 있다고 하면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은 공평성을 잃고 만다.

 

물론 오늘날이야 장애인의 인권을 보호하고 그 누구도 인격을 모욕할 수 없도록 제도화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는 인권을 중시하고자 하는 사회적 여론의 합의에서 돌출한 것이지, 아직도 장애인들을 바라 보는 개개인의 시선이 곱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세상이 이처럼 사람의 인격에 대한 이중잣대를 갖고 있는 것은 인간의 생명의 가치를 사람들의 기준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예수께서 너희가 소경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하신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고 있던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주께서 내가 심판하러 왔으니 보지 못한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이 되게 하려 함이라(39)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사실 주님은 자기를 믿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8:31,32) 하셨다. 그런데도 이들은 예수와 함께 하면서도, 예수의 가르침을 받으면서도 변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들이 스스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나와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이런 사람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세상은 그렇다치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하신 사람의 생명의 고귀함을 깨달아 그의 사랑의 실천을 최고의 선으로 아는 하나님의 교회는 과연 어떠한가? 물론 교회를 통하여 숭고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끊임없이 실천되어 왔지만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교회의 복음사역은 제도적 방편의 한 일환으로 치부되고 있는 실정이다. 다시 말하여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복음적 사랑의 실천보다는 명분과 제도적 장치를 갖고 있을 뿐이다. 교회의 이런 모습은 예수께서 몸소 실천하신 그리스도의 사랑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교회가 이러한 모순을 갖고 있는 것은 그 믿음이 자신이 다른 사람과 동일한 죄인이라는 관점에 서 있지 않고 자신의 믿음은 다른 사람과는 다른 특별한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는 위선적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위선적 바리새인들의 신앙관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그 생애를 세상에서 가장 소외받은 사람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의 질병과 약한 것을 고치시고 사람들 속에 역사하는 귀신들을 쫓으셨다. 마가는 광야에서 사십일을 계셔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1:13) 기록하였다.

 

I. 인격의 평가 기준(1)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입니까 자기입니까 그 보모입니까?(2)

 

A. 사람들의 견해

오늘 우리가 살펴 볼 요한복음 9장도 앞장과 같이 본문에서 다룰 주제를 먼저 삽화로 보여 주고 있다. 오늘 제자들에 의해서 제기된 질문은 소경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한 것인가? 이다. 조상으로부터 유일신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 속의 제자들이 예수께 이렇게 물어 본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 속에도 불구자로 태어난 것이 죄로 인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8절의 내용으로 보아 그 소경은 걸인이었다. 소경이 걸인이 된다는 것은 예나 오늘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오늘날도 지하철에서 우리는 소경들의 구걸울 심심치 않게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서도 타고난 소경들은 부모나 아니면 그의 죄로 치부되어 사람들 속에서 무시되고 소외당하고 있었다.

 

B. 소경에 대한 성경적 견해

복음서에는 소경을 눈 뜨게 하신 일들이 여러 번 소개되고 있다. 마태는 예수께서 집에 들어 가시매 소경들이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을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대 (9:28,29)라고 기록하였다. 이 말씀에 의하면 소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절대 소망의 믿음을 갖고 있다면 믿음을 성취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이 말씀이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지에 대해 우리의 견해는 불투명하지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장차 주의 나라가 올 때에는 그곳에는 소경이 없을 것만은 분명하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하여도 이 문제를 뒤받침하고 있다. 누가는 이사야 선지자의 기록을 인용하여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recovery of sight to the blind)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4:18)  기록하였다.

 

이 내용을 보면 예수께서는 성령의 능력으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기름부으심을 통하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를 자유케 하기 위해 오셨다. 이들은 모두 갈급한 인생을 타고난 사람들이다. 모두가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인 것이다. 사실 지금도 이 역사는 전 세계 가운데서 계속 성취되고 있다. 복음이 들어 가는 곳마다 자유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고 어두운 세력에 사로잡혀 빛을 보지 못하던 사람들이 깨달음의 세계로 나오기 때문이다.

 

세례 요한이 구�되자 그는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 오실자가 당신입니까? 우리다 누구를 다시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묻자 주님은 그들에게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7:22) 말씀하셨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소경이나 앉은뱅이처럼 처음부터 불구로 태어난 사람이나 또한 문둥병과 같이 자신도 알 수 없는 저주에 사로잡힌 자들을 고치시고 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들을 수 있게 하시고 또 죽은 자를 살리시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 전파하여 풍족함을 얻게 하셨다.

 

셩경에서 복음은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들에게 비유로 적용되고 있다. 이에 바울은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4:18) 책망하였으며, 다시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고후4:3) 하셨다. 또한 사도 요한도 이를 말하여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것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요일2:11) 기록하여 진리의 길을 떠난 사람들을 경계하였다.

 

C. 소경의 미스터리(2-3)

오늘 제자들의 물음에 예수님은 단호하게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3) 하셨다. 이 말씀으로 우리는 결국 모든 인생의 비밀은 하늘에 속한 비밀인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나는 TVN이라는 케이블 티비로부터 커밍아웃이라는 프로에 출연 요청을 받았다. 이 프로그램은 커밍아웃한 동성애자 홍석천씨가 진행하는 프로로서 동성애들의 애환을 취재하며 그들로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사실 최근 이 방송이 난 이후 많은 동성애자나 그의 가족들로부터 과연 동성애자는 어쩔 수 없는 타고난 성지향 장애인가? 하는 상담전화를 많이 받았다. 동성애자들의 부모들의 애끓는 전화를 받을 때마다 정말 내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들이 이처럼 내게 질문하는 것은 동성애의 성향이 다른 죄의 목록들과는 달리 아주 어려서부터 그 성향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들이 성적인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없었던 초등학교 무렵부터 그들 마음 속에 나타났고 사춘기에 이미 동성애를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동성애는 타고난 것이 아니며 그 부모들의 잘못된 양육으로부터 발생한 후천적 요인도 아니며 또한 질병도 아니다. 성경은 단지 고대로부터 범죄한 인갼들 속에 나타난 죄의 모습으로 다루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를 극복하려 하다가 쉽지 않기 때문에 결국 동성애 습관에 빠져 동성애자로 살아가게 되는데 나는 이 문제를 성경의 말씀처럼 죄의 문제라 생각하며 사람이 구원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성령의 능력으로 그 사슬에서 풀려 나올 수 있다는 것이 나의 견해이며 또 왜 내가 동성애자가 되었느냐 묻는다면 그것은 하나님 속에 있는 믿음의 경륜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들이 알 수 없는 비밀한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세상에 그의 영광을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II.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4-12)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5)

 

A. 예정된 하나님의 하루

흥미롭게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니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4) 말씀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께서 하신 일들은 그의 제자들 곧 교회가 해야할 일들임을 은연 중에 말씀하셨음을 알 수 있다.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니하셨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이 일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속한 일로서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될 그 예정된 시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직 낮이매라 하셨고 밤이 오리니 하셨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보내심을 받은 자들에게 큰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는 말씀이다. 제자들이 이 일을 소홀히 여기고 게을리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5절에서 주님은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다하셨다. 어쩌면 이 말씀은 예수님 생전에만 국한 된 말씀 같기도 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이지 지금도 주님은 그를 믿는 자들 속에서 함께 살아계신다. 그러므로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하신 것이다. 따라서 이 땅에 그리스도의 빛이 있는 동안 어둠에 있어 빛을 보지 못하는 자들은 속히 그리스도의 앞으로 나와야 할 것이다.

 

이미 예수님은 우리에게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8:12) 하셨고 다시  아직 잠시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 (12:35) 하셨다. 나는 이 빛이 있는 동안 어두움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모두 그리스도의 진리의 복음을 듣게 되기를 기원한다.

 

B. 구원의 환경(6-7)

이 말씀을 하신 예수님은 침을 뱉아 진흙을 개어 소경의 눈에 바르고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명하셨다.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다른 복음서에서 이처럼 하지 않고 말씀으로만 하여 눈을 뜨게 하신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수님의 사역은 그 대상과 때를 따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주님은 왜 소경의 눈에 침으로 갠 진흙을 바른 후 실로암으로 가서 씻으라 하셨을까? 그냥 실로암으로 가서 씻으라 해도 될 터인데 말이다. 이것으로 보아 이 소경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갖고 있었던 것이 아닐 수 있다. 그 소경은 볼 수는 없었지만 예수께서 침을 뱉어 진흙을 개어 자기 눈에 바른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짜피 씻지 않으면 갑갑하여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주께서 실로암으로 가서 씻으라 하시니 그에게는 실로암 연못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이 갖고 있던 믿음을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오늘날 혹시 동성애 성향이 있는 사람에게 한남동 서울갈보리채플로 가보라 하면 동성애를 벗고자 했던 사람은 서울 갈보리채플의 이요나 목사의 일들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로암은 보냄을 받다라는 뜻으로 유다왕 히스기야가 앗수르의 공격을 대비해 기혼에서  흐르는 샘물을 예루살렘 성안으로 수로를 내어 끌어 드린 연못이다. 그러므로 실로암 연못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구원의 샘물인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를 노래하여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12:3) 기록하였다.

 

C. 혼동하는 사람들(8-12)

소경된 자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실로암 연못으로 가 눈을 씻었더니 보게 되었다. 예수께서 어찌하셨던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소경이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였다는 것이다. 물론 그는 마음의 의심이 있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예수께서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시지 않았다면 가까운 우물에서 씻을 수도 있다. 그러나 소경은 어찌 되었던 자기의 생각을 따르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실행하였다.

 

그러나 눈을 뜬 소경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여러 가지로 나타났다.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며 그에게 네가 어떻게 눈을 떳느냐고 물었다. 그는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다 증언하였다.

 

이처럼 하나님의 능력은 바로 주의 말씀을 듣는 자가 그 마음의 의심을 버리고 그 말씀을 실천할 때 나타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믿음을 자랑한다. 그러나 실제로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따라 행하는 자는 많지 않다.

 

성경은 이에 대하여 너희는 도를 듣고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잊어 버리거니와 자유케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 다 보고 있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1:22-25) 기록하였다.


III.
형식주의자들의 논쟁(13-34)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입니다(25)

 

  A. 그는 죄인이다

눈뜬 소경의 증언을 들은 사람들은 그를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데리고 갔다. 사람들은 참으로 히안하다. 태어날 때 소경된 자가 눈을 떴으면 마땅히 축하하고 잔치를 벌여야 할 터인데 그의 말이 사실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에게 데리고 간 것이다. 그들이 이처럼 한 것은 예수께서 그 사람의 눈을 뜨게하신 일은 안식일에 행하셨기 때문이다.

 

그 당시 율법에 의하면 안식일은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뿐더러 병을 치료할 일이라고 행해서는 않된다. 따라서 예수께서 안식일에 침으로 진흙을 개어 눈에 바른 것은 분명히 안식일을 범한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람의 더러운 침으로 흙을 개어 눈에 발랐더니 보게 되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유대인들은 저주받은 사람들에 침을 뱉으며 또 흙을 더럽게 여겨 집안에 들어 오면 발의 흙을 떨기 위해 깨끗한 물로 정결의 예를 행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침으로 진흙을 개어 소경의 눈을 뜨게 하였다니 정말 기가막힐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이 말을 들은 바리새인들 사이에 그가 죄인이니 죄인이 어찌 이런 표적을 행할 수 있느냐 하며, 또 어떤 사람들은 그러면 우리가 보는 이 사람은 무엇이냐 하며 피차 쟁론이 일어 났다. 이에 그들은 그 사람에게 다시 물어 그 사람이 너의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떤 사람이라 하느냐?고 물으니 그는 선지자입니다 답하였다.

 

오늘날 이요나가 동성애자들을 치유하였다면 사람들은 무어라고 말할까? 어떤 목사들은 미국 갈보리채플의 척 스미스 목사 같으면 몰라도 이요나와 같은 본디없는 목사에게 무슨 그런 능력이 나타나겠느냐? 말할 것이다. 이와 같이 그들의 관심은 율법을 어기는 죄인된 사람에게 어찌 그런 능력이 나타날 수 있느냐 하는 데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B. 부모의 대질(18-23)

이에 그들은 그 소경되었던 자의 부모를 불러 다시 물었다. 이에 그의 보모들은 그가 우리의 아들인 것과 소경으로 난 것은 알지만 그가 지금 어떻게 되어 보는지 또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저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할 것이다(20,21) 답하였다. 그 부모라도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이미 예수와 그를 따르는 자들을 죄인으로 정죄하여 출교하기로 결의되었기 때문에 그들을 무서워 한 것이다.

 

유대인은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유대교 공동체 속에 있다. 따라서 그들은 유대교가 정한 율법과 장로들의 유전을 따라서 생활 할 수 밖에 없다. 누구라도 율법과 유전을 어기면 죄인으로 정죄되어 유대교 공동체에서 출교를 당하고 출교 당한 사람은 유대인들과 모든 종교적 조직 속에서 함께 생활할 수 없고 이방인처럼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종교세력들을 두려워할 수 밖에 없다.

 

C. 진리와 종교의 대결(24-34)

결국 유대인들은 다시 소경되었던 자를 불러 너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 우리는 저 사람이 죄인인 줄을 안다(24)고 회유하기 시작했다. 이는 그에게 거짓 증언을 하게 하여 예수께서 행하신 표적을 거짓으로 돌리고 실로암 물에 씻었다던가 아니면 율법대로 열심히 살며 하나님을 공경하였더니 하나님이 나의 눈을 고치셨다고 거짓증언 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는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다답하였다. 이에 그들은 다시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눈을 뜨게 하였느냐? 물었다. 그들이 이같이 다시 묻는 것은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였음을 증거하기 위함이였다.

 

그러나 그는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 다시 들으려 하느냐 당신들도 그 제자가 되려 하느냐?(26,27) 말하였다. 참으로 얼마나 용기 있는 답변인가? 그러자 그의 말을 들은 바리새인들은 너는 그의 제자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다말하며 그를 출교하기로 결의하였다.

 

사실 타고날 때부터 소경된 자가 눈을 뜨게 되었다면 무엇이 두려워 거짓증언을 할 것인가? 나는 가끔 나를 따르는 사람들로부터 목사님 이제는 제발 과거 동성애로서 회복된 것에 대하여 더 이상 말하지 마세요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고 우리 교회에 오지 않고 또 사람들이 떠나는 이유도 그런 것 같아요 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다. 내가 과거에 동성애자였던 것은 하늘도 알고 부모도 형제도 알고 나를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것이며 그런 나를 예수께서 고치신 것 또한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다 안다. 그런데 내가 무엇이 무서워 이러한 사실을 숨기려 하겠는가?

 

최근 동성애자들 중에 나를 따르며 그 문제에서 해결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들도 사실 그 문제가 해결되면 모두 슬그머니 갈보리채플을 나갈 것이다. 그들은 나와 함께 있는 동안에도 사실 자신들은 동성애자가 아닌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동성애자가 아닌 것과 아닌 것처럼 말하는 것은 다르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들의 그러한 모습을 누가 알까봐 부모형제에게도 속이고 의로운 성도인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죄의 속성을 벗고 담대히 그리스도의  은혜를 증거하는 일이다.

 

마가복음 5장에는 군대귀신들린 자의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그는 쇠고랑에 묶여 무덤 가운데 생활하고 있었다. 예수께서 그에게 가서 귀신을 쫓아내자 그는 정신이 온전하여 옷을 바로 입고 예수를 따르고자 하였다. 그러나 주님은 그에게 주께서 너를 얼마나 긍휼이 여기셨는가를 네 친속에게 전하라 하였다. 그는 주의 말씀을 따라 데카볼리로 돌아가 주의 은혜를 전하였다. 당신은 그가 데카볼리 일대에 사는 친척들에게 자신이 과거에 군대귀신에게 들렸던 것을 숨기고 예수를 증거하였겠는가 생각해 보라. 이처럼 사람들은 그 영혼과 몸을 살리신 이를 두려워 하지 않고 사람들의 이목을 두려워 하고 있다.

 

오늘 이 소경된 자의 증언을 들어 보라. 바리새인들이 말하여 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지만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29) 말할 때 그는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이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안다.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로다(30-33) 답하였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죄인을 들어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런 것으로 보아 만약 목사나 신부나 신학교수나 박사나 교회 중직을 맡은 사람들이 어떤 죄를 범하였던가 또한 그가 아직 동성애를 벗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는 하나님께서 세운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그 자리에 오른 사람이다. 오늘 눈 뜬 사람의 증언처럼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를 들으시는 줄 우리가 안다 할 것이다.

 

결국 그는 유대인 공동체에서 출교를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의 하시고자 하는 일을 위해 태어난 자는 모두 그리스도께 가면 된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지 아니하리라 (6:37) 하셨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영광의 주를 만나게 된다

 

III. 믿음의 발견과 눈뜬 장님들(35-41)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39)

 

A.     믿음의 발견 네가 인자를 믿느냐(35)

예수께서도 그가 유대교로부터 출교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그들의 억지 율법에 의거 유대인 공동체에서 출교를 당한다는 것 그 자체가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가 하나님의 자녀됨의 자격을 부여한단 말인가? 이처럼 교회가 종교가 될 때 믿음은 제도화 되어 버린다.

 

예수께서 그를 만나 그에게 네가 인자를 믿느냐? 물었다. 인자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를 뜻한다. 그도 아브라함의 후손이므로 이 믿음을 갖고 있었고 또한 태어날 때부터 소경이었으므로 저주와 질병과 재난과 고통이 없는 시대 곧 메시아 왕국을 고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예수께 주여 그나 누구입니까? 내가 믿고자 합니다(36) 하였다.

 

이것으로 그는 처음부터 예수께서 메시야 인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예수께서 구원자 되신 그리스도이심을 알지 못하여도 주께서 하신 말씀대로 행하면 그 말씀이 곧 생명인고로 그 말씀대로 성취되는 것이다. 이에 그는 주여 내가 믿나이다하고 업드려 경배를 드렸다. 이와 같이 믿음은 그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들 가운데 역사한다.

 

C. 예수를 따르는 바리새인들의 맹목적인 신앙(39-41)

주님은 자기와 함께 하고 있던 사람들을 향하여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보게 하고 보지 못하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39) 말씀하셨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우리도 소경인가?하고 수군거렸다. 이에 주님은 너희가 소경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하셨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믿음을 자랑하고 있다. 특별히 대형교회 사람들은 자기들을 특별한 성도로 생각하기 까지 하여 천당아래 분당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나는 십여년간 성경을 안다고 하며 자신은 다른 사람들보다 다 큰 믿음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 후  여러 가지 이유들을 들어 되돌아 가 버렸다. 성경은 이들을 향해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고 돼지가 씻은 후 다시 더러운 곳에 눕는다 기록하였다. 그러므리의 믿음은 자신의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으며 믿는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 순수한 믿음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