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요한복음강해

(요한13:1) 유월절 세레나데

이요나 2008. 7. 16. 09:50

(요한13:1) 유월절 세레나데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실 때가 이룬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사람에게 가장 슬픈 일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이다. 더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죽어야 할 때 그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예수께서도 친구처럼 사랑하신 나사로의 죽음 앞에 눈물을 흘리셨다. 실상 그의 죽음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잠시 잠든 것이라고 해도 사람이 그 숨을 거두고 명을 달리한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슬픔이다.

 

만약 당신이 오늘 이 땅에서 하던 일을 끝내고 곧 세상을 떠나야 한다면 당신은 그 마지막 순간에 무엇을 할 것인가? 그것은 말할 것 없이 남은 사람들과 마지막 사랑을 나누는 것일 것이다. 만약 당신이 목숨을 받쳐 후손들을 위한 일생일대의 숙원을 이룩하고 이제 그 기업을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세상을 떠나야 한다면 그 마지막 순간에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당신이 이룩한 위대한 기업을 영원히 보전하는 일일 것이다. 그것이 당신의 사랑을 영원히 보전케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요한은 그러한 상황에 처하신 예수님의 심경을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실 때가 이룬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고 기록하였다. 여기서 끝까지라는 말은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최대한의 사랑 곧 완벽한 사랑의 완성을 뜻한다(참조; 살전2:16).

 

I. 세족식 (1-17) - 제자의 완성

내가 주와 또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14,15)

 

A. 세족식의 동기(1-5)

이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중 마지막 유월절 만찬장에서의 일이다. 이제 예수님은 이 유월절의 희생양이 되어 아버지의 계획을 마치시고 하늘의 아버지께 돌아가신다. 주님은 그것을 알고 계셨고 그를 위하여 일어날 배반의 일과 또 주께서 하셔야 할 일을 알고 계셨다.

 

유월절의 유래는 애굽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그 택하신 백성들을 애굽의 400년간의 종살이로부터 구원하실 때에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게 하시고 그들을 죽음에서 구원하여 하나님의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내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날 곧 니산월 15일부터 8일간 유월절 정월 곧 해의 시작으로 삼고 14일 저녁에 어린양을 잡아 가족과 함께 유월절을 먹는다. 이 저녁 예수님은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찬을 드신 후 일어나 겉 옷을 벗고 수건을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 시작하셨다.

 

요한은 2절에서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라고 기록하였다. 마귀는 이처럼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알고 있다. 마귀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사로잡아 그를 통하여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대적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마귀가 공중권세를 잡고 있다고 한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의 창조하신 영과 혼과 육의 혼에 속한 비물질 기관이다. 이 기관은 인간의 의지에 맡겨진 자율기관으로서 인간은 이를 통하여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한다. 따라서 이 기관은 그 사람의 모양 곧 한 사람의 인격을 형성한다. 그가 어떤 지식과 어떤 사고와 어떤 의지와 생각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인격이 결정된다. 마귀는 이것을 알고 있고 아담을 넘어뜨린 유혹으로 인간을 공략한다. 이 계략에 가룟 유다가 선택된 것이다.

 

B. 세족식을 하신 이유(6-11)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로 작정하신 것은 세상에 나타나신 자기의 사랑을 완성하기 위함이다. 주님은 마귀가 가룟 유다에게 역사한 것을 알고 이제 곧 아버지께 돌아가실 때가 온 것을 아시므로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맡기신 일을 행하셔야 했다. 주님은 그 일이 무엇인지 알고 계셨다. 그 일은 바로 십자가의 죽음이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 시작하여 베드로의 앞에 이르자 갑자기 베드로는 주여 주께서 나의 발을 씻기시나이까? 하고 만류하였다. 사실 발을 씻기는 일은 종이 그 상전에게 하는 일로서 우리는 창세기 18장에서 아브라함이 천사를 맞아 식탁을 베풀고 손수 발을 씻긴 일들을 알고 있다. 또한 율법에는 성전 앞에 물두멍을 두어 제사장의 손과 발을 씻어 성결케 하여 죽음을 면하게 하였다. 이처럼 발을 씻는 일은 유대인에게 있어 정결의식 중에 하나였다.

 

베드로의 말에 주님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7) 하셨다. 이는 제자들이 아직은 그리스도에 속한 비밀한 일들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나 후에는 알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아마 후일 베드로는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베드로서를 썼을 것이다. 이는 성령의 역사로 알게 될 일들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자 베드로가 극구 말려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십니다하니 예수께서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8) 말씀하셨다.

 

제자가 그 스승과 관계가 없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그러나 주께서 하신 말씀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당연히 제자가 스승의 발을 씻겨야 할 것인데 스승인 주께서 제자의 발을 씻기지 않는다면 너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제자의 영적 결함의 상태에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가룟 유다와 같이 미혹되지 않는 길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의 말씀은 주께서 섬기려 오셨음을 행동으로 친히 보이신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미 이방인의 임금들은 저희를 주관하여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22:25,26)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복음의 부름을 받아 헌신하고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주의 백성들을 섬기기 위해 부름을 받았다고 말하면서 막상 목사가 되면 높은 단상에 올라 섬김을 받고 있다. 그들은 나는 주의 택하신 거룩한 종이요 당신은 나를 통하여 복을 빎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아주 잘못된 일로서 사실 이런 사람은 주의 종이 아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으심이라 (2:5-8) 증거하였다.

 

C. 세족식의 메시지(9-17)

베드로의 말에 주님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10) 하셨다. 이 말씀은 그 비유와 적용에 큰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 여기서 주님은 제자들의 영적상태를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행함 속에서 더러워질 수 있음을 시사하신 것이다.

 

더구나 주님은 이 말씀을 하실 때 온 몸의 깨끗함을 말씀하시면서 그 중에 깨끗하지 않은 자 곧 가룟 유다를 시사하셨다. 여기서 주님은 제자들을 한 몸으로 보신 것이다. 다시 말하여 그리스도의 지체 된 교회의 일치를 생각하고 계신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세족식을 끝내시고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12) 물으신 것이다.

 

계속하여 주님은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니라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13-15) 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주께서 선생, 또는 주라고 강조하신 부분을 주의해 볼 필요가 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 돌아 가시면 그의 제자들은 사람들로부터 , 또는 선생으로 불림을 받을 것이다. 이미 유월절에 올라온 헬라인들이 빌립과 안드레에게 와서 선생;이라 부른바 있다. 이미 그들은 선생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12:23) 하셨던 것이다.

 

계속하여 주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16,17) 하셨다. 앞에서 주님은 제자가 그 선생보다는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케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6:40) 말씀하신 바 있다. 여기서 온전이란 말은 모든 학습과 훈련을 마친 상태를 뜻한 것으로 이때 주님은 제자들의 열심과 분발을 독려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 주님은 스승이 제자의 발을 씻기는 것이 흉이 되지 않으며 그렇게 함으로 스승의 위치가 견고할 것을 언급하신 것이다.

 

이에 비하여 오늘날 교회의 상황은 어떠한가? 오늘날 교회 안에는 스승과 제자가 존재하고 있는가? 스승의 인격이 제자들에 의해 존경받고 있는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만약 그렇다면 오늘날과 같이 교단과 교파로 분열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교회의 분열은 스승과 제자의 지식적 반목에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께서 행하신 세족식은 그리스도의 지체된 제자 곧 교회의 일치를 말씀하신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 사람도 더러워지지 말아야 할 것은 언급한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17) 하신 것이다.

 

D. 성경과 권위의 일치(18-20)

주님의 의도는 다음 말씀에서도 확실해 진다. 주님은 내가 너희를 다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18) 하셨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가룟 유다가 예수를 배반할 것을 예증한 시편41 9절의 인용이다. 여기서 내 떡을 먹는 자란 한 식구를 의미한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께서 열두 제자의 택하심에는 결함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가룟 유다 스스로 한 몸 된 무리에서  떨어져 나간 것임을 알 수 있다. 주님은 이미 성경에 자기에게 이루어질 일들에 대하여 기록하신 것을 아신 고로 그가 행할 일을 허락하신 것이다. 이에 바울은 너희가 말씀 밖으로 넘지 말라 한 것이다.

 

이 말씀을 하신 후 주님은 지금부터 일이 이루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이름은 일이 이룰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로라19) 말씀하셨다. 이는 성경에 나에 대하여 기록한 것이 이루어 져야 하듯이 이제 주께서 하신 모든 말씀도 이루어 질 것임을 언급하신 것이다.

 

계속하여 주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의 보낸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20) 하셨다. 이는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과 그 제자들의 사역적 관계와 그 권위를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 제자들에게 행하신 세속식은 그의 지체된 교회가 온전히 보전되는 원리를  말씀하신 것이다.

 

II. 새 계명(21-38) - 오직 한 몸- 교회의 일치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34)

 

A. 사단의 역사와 민망한 현실(21-30)

21절에는 예수께서 심령에 민망하여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라고 기록되었다. 민망하다라는 뜻은 1133절과 12 7절에서도 언급되었다. 이는 근심스러움에 대한 난처한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예수께서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상황 속에서 제자 중 하나에게 팔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베드로는 예수님 바로 옆에 비스듬이 누워있는 요한에게 머릿짓으로 주께 물어 보게 하였다. 여기에 요한은 자신을 가리켜 그의 사랑하시는 자라고 기록하여 예수님과 자기의 관계가 다른 제자들 보다 남달랐음을 넌지시 피력하였다. 이에 요한이 주께 주여 누구입니까?하고 물었다. 주님은 그에게 내가 떡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하시고 한 조각을 찍으시어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주시니 조각을 받은 후 사단이 그 속으로 들어갔다.

 

사단이 그에게 들어가자 주님은 그에게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셨다. 이에 가룟 유다는 조각을 받고 밖으로 나갔으나 다른 제자들은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고 유다가 경리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쓸 물건을 사라고 한 것인지 아니면 가난한 자들에게 쓸 물건을 나누어 주라고 하신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처럼 사람은 동일한 장소, 동일한 시간 속에 있더라도 사람들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지 못한다.

 

흥미롭게도 예수님은 사단을 보고 계셨고 사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시를 받고 있었다. 이는 사단도 그리스도에 속한 것은 임으로 할 수 없음을 뜻한다. 특별히 주께서 떡 한조각을 입에 넣으니 사단이 그에게 들어갔다는 말씀은 우리에게 또 다른 의미를 시사한다.

 

나는 이 말씀을 읽으며 과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 속에서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일어날까 생각해 보았다. 사도행전을 보면 사단의 역사는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곳마다 유대인들 속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나는 가끔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했다는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받을 때가 있다. 그들은 작은 한 조각을 들고 와서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고 갈보리채플의 가르침이 어떻고 하며 자신들도 알지 못하는 것을 갖고 요동치고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씨 뿌리는 비유로 천국의 비밀을 말씀하시며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에는 악한 자(사단)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13:19) 하셨고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험을 받을 때에 배반을 하는 자요(8:13) 라고 하셨다. 결국 우리 안에 온전한 지식이 없다면 그 생각이 허망하여져서 그 마음이 사단에게 미혹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주님 제자들에서 서로 발을 씻기우라 하신 것이다.

 

B. 확정된 목적(31-33) ? 그리스도의 영광

가룟 유다가 밖으로 나가자 예수님은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영광을 얻으셨도다. 만일 하나님이 저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인하여 저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리라(31,32) 하셨다.

 

이 말씀은 어떻게 보면 사단의 역사로 주께서 영광을 얻으셨다고 하신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되었고 그로 하여 영광을 얻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곧 자기를 따르는 자들도 성경의 말씀대로 행하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얻으실 것이고 하나님께서 예수님게 영광을 주셨듯이 자기도 그 제자들에게 영광을 주실 것이라는 말씀이다. 

 

계속하여 주님은 소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터이나 그러나 일찍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나의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33) 하셨다. 이는 주께서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이르신 것으로 육체의 이별을 말씀하신 것이다.

 

C. 절대절명(34-38) ? 교회의 일치

이제 주님은 기업을 함께 받을 그의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34) 하셨다. 여기서 주께서 말씀하신 새 계명이란 사실 새 계명은 아니다. 이미 율법에 원수를 갚지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19:18)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 곧 니산월 14일을 그 해의 시작 정월로 정한 것처럼 주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새 계명이라 말씀하신 것은 이 유월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어린양의 구속사를 온전히 성취하기 위한 절대절명의 계명을 주신 것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완성하기 위한 최선책이며 이는 곧 예수께서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다라는 말을 완성하는 사랑의 세레나데이기도 하다.

 

주님은 이 말씀을 하시며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내 제자인 줄 알리라(35) 하셨다. 이 얼마나 위대한 명령이며 제자들에게 절실한 사명이냐? 그러함에도 사람들은 서로 머리채를 뜯으며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지상명령에만 힘을 쓰고 있다. 만약 가서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일이 예수님의 지상명령이라면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하신 명령은 그 지상명령을 이루는 초석이 될 것이다. 이는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통하여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고 서로의 영적 결함을 일깨워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베드로는 나의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 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 오리라(36)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들 듣고 어찌 내가 지금은 주를 따를 수 없습니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호언장담하였다. 이처럼 사람은 앞뒤 생각없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을 한다. 그 생각하는 바가 모든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로서 그 마음 속에 사단이 역사할 틈을 주는 것이다.

 

나는 나의 조급함에 후회를 하곤한다. 좀더 깊이 생각하고 말해야 할 것인데도 보고 느낀대로 말하여 실수가 많다. 이 모든 것은 내가 모든 것을 볼 수 없고 알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 때문에 오는 실수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부름을 받은 사역자들은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부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맡은 자들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우리의 생각을 따라 말하고 행동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들은 한조각의 말씀을 따라 행할 때 사단이 역사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깊은 강으로 들어가 충만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았다면 우리는 결코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그 깊은 물 속에서 성령이 역사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명하셨다.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을 가르쳤듯이 성도들을 섬겨야 할 것이다. 바울은 성도를 온전케 할  봉사의 일을 위하여 사도와 전도자와 예언자와 목사로 부르셨다고 증거하였다(4:11,12). 그렇다 이것이 주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본을 보이신 것이다.

 

두번째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일이다. 더 이상 짧은 지식을 가지고 서로 머리가 되려 하지 말고 오직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서로 사랑하는 일이 남았을 뿐이다. 더 이상 우리 안에는 가룟 유다가 있을 수 없다. 가룟 유다는 이미 성경의 말씀대로 멸망의 길로 들어 갔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명하신 사랑을 지키는 일이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자기 사람을 끝까지 사랑한 완벽한 사랑이다. 아멘아멘!(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