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요한복음강해

(요한복음7장) 배에서 흘러나오는 생수

이요나 2008. 5. 5. 18:59

(요한복음7) 배에서 흘러나오는 생수

 

(7:37,38)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사람이 유대인의 지도자 예수를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성경에 기록된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고 믿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을 받고 또 계시의 말씀 곧 성경을 받은 유대인들도 쉽게 받아 드릴 수 없었던 것을 전혀 보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는 이방인들이 그를 믿어 주로 영접한다는 것은 그 믿음 자체가 기적이다.

 

오늘 우리가 살펴 볼 요한복음 7장은 사람이 하나님 곧 그의 보내신 자의 말을 믿지 못하는 원인과 또 그를 위하여 준비하신 하나님의 선물 곧 성령이 어떻게 사람들 속에서 역사하는 것인지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예수께서 나를 믿는 자는 성경의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하신 말씀은 깊은 뜻을 담고 있다. 여기서 주님은 왜 인체의 일 부분은 배를 인용하신 것일까? 배는 물과 음식물을 소화하여 온 몸에 그 양분을 보내어 육체의 힘을 공급하는 중앙 기관이다. 이와 같이 우리 몸은 또 혼의 기관이 있어 우리가 많은 지식들을 터득하여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게 된다. 이는 음식물과 같이 우리가 듣고 보고 탐구한 것을 깨달아야 한다. 또한 우리에게는 영적 요소가 있어 이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되고 신들의 역사를 알게 된다. 이것이 짐승과 다른 것으로 사람들은 신에 대한 영적 지식을 통하여 하나님을 감지하게 되는 데 이로서 모든 종교들은 그 경전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곧 선지자들을 통해서 전달된 메시지는 성경적 지식으로 보전되어 사람들에게 가르치게 된다. 이를 통하여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가득차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몸과 마음을 다해 예배를 드리게 된다. 그러나 사람이 신적 진리의 지식을 터득하지 못한다면 그는 자기가 섬기는 신에 대한 지혜를 얻지 못하여 영적 분변을 하지 못하고 소경처럼 우왕좌왕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소경이 소경을 이끄는 것과 같다 한 것이며 너희가 하나님의 지식의 열쇠를 가지고 있으면서 너희도 들어 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사람들을 막고 있다 하신 것이다.

 

I. 예수는 메시야인가? (1-31)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17)

A. 예루살렘의 배경(1-13)

1절에는 이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이 죽이려 함이러라 기록되었다. 이는 5장에서 언급된 사건 곧 안식일에 38년된 병자를 고치고 또 그에게 자리를 들고 일어나 나가라 하신 것으로 인하여 예수께서 예루살렘 경내에서 안식일을 범한 일이 공공연하게 들어 났기 때문이다. 그후 예수님은 때를 관망하며 움직임을 자제 하셨던 것 같다.

 

2절에는 유대인의 초막절이 가까운지라고 기록되었다. 초막절은 이스라엘의 삼대 명절 중 하나로 유월절과 오순절 다음에 오는 명절이다. 모세는 너희 중 모든 남자는 일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16:16,17) 기록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 중 예루살렘 32키로 반경 내에 있는 남자들은 모두 예루살렘에 올라가 축제에 참여하도록 율법으로 정했다.

 

유대인의 달력은 우리 4월에 해당하는 114일을 정월로 하여 칠월십오일인 초막절은 9월말이나 10월초에 해당된다. 유대인들은 초막절이 되면 조상들이 과거 애굽에서 흘린 눈물과 고통을 기억하기 위하여 염수(소금물)와 신포도 과자 등을 준비하여 애굽에서의 노예생활의 고통을 음미했던 유월절 것처럼, 8일 동안 집에서 나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종려나무 가지들로 얼기설기 지은 움막에 머물면서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자녀들에게 과거 40년 동안 자기 조상들이 광야를 통과할 때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기적을 통하여 마실 물과 먹을 것을 주시며 지켜주신 일들을 가르치며 하나님의 은혜를 기렸다.

 

레위기 23장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념해야 할 초막절에 대해 자세히 기록되었다. 모세는 이 날에 행할 일들을 말하여 칠월십오일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칠 일 동안 지킬 것이라 첫날에는 성회가 있을지니 너희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며(23:34,35) 하였고 다시 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칠월 십오일부터 칠을 동안 여호와 절기를 지키되 첫날에도 안식하고 제팔일에도 안식할 것이요 첫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가지와 무성한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칭일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23:40) 기록하였다.

 

명절이 가까워오자 예수님의 형제들이 당신의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시죠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으니 이 일을 행하려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시지요(3,4) 하였다. 이것으로 보아 예수께서 갈릴리에 은둔했던 기간은 여러 달 되었던 것 같다. 5장에서 오순절 때에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38년 병자를 일으킨 사건 이후부터 계산하면 초막절은 4개월 남짓 하다. 

 

마가복음 3장에는 예수의 친속들이 듣고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3:21)는 흥미로운 내용이 기록되었다. 이는 예수께서 병자들을 고치고 귀신을 쫓는 일로 하여 바리새인들의 주목을 받게 되자 가족들이 나와 제지한 것이다. 이러한 내용으로 보아 그때까지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해 믿음의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한 것 같다. 그러나 후일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주의 형제 야고보와 유다는 그리스도의 교회의 지도자가 되어 믿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끄는 중심 축이 되었다. 이처럼 한 사람이 믿음을 발견하기까지는 믿음의 시련과 연단의 과정이 필요하다.

 

동생들의 비아냥거림에 예수님은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었느니라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못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 증거함이라(6,7) 말씀하셨다. 여기서 예수께서 사용하신 라는 말은 다른 곳에서 언급하신 그리스도의 때(hora)를 뜻한 것이 아니라 기회를 뜻하는 카이로스(kairos) 라는 단어를 사용하셨다. 이는 심리학적인 계기를 언급하신 것으로 예수님은 모든 일을 하심에 있어 세상 돌아 가는 것을 관망하시며 행하셨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오늘날 복음 사역자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시사하고 있다. 많은 목사들이 영적 충동감에 이끌려 앞뒤 분간하지 못하고 너무 일을 앞질러 행하여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다. 나 역시도 한국에 들어와 갈보리채플을 개척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따르지 않고 내 생각에 치우쳐 달려나가 낭패를 본 일이 너무 많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든 일을 하심에 있어 세상의 반응을 살피시며 합당한 때를 따라 하실 일들을 행하셨다.

 

나는 이 가르침을 얼마 전에서야 터득했다. 그러나 내가 이런 것을 터득했을 때는 이미 내가 할 수 있는 환경적 여건을 다 써버린 터라 이제 막상 무엇을 하자니 여건이 받혀 주질 않는다. 이제는 그야말로 하늘만 바라 보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내가 목사 안수를 받던 1995 6월에 미국 하와이 섬 마우이에서 개최된 마이크 멕킨토시 목사의 사랑의 축제에 참여한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멕킨토시 목사와 처음 상면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멕킨토시 목사는 초년병 목사인 나에게 주의 일을 할 때 성령보다 앞서서 나서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충고해 주었다. 나와 첫 대면에서 이런 말을 들은 나는 그저 평범하게 여겼으나 지나고 보니 그 말씀은 성령께서 내게 주신 메시지였다. 만약 내가 그 말씀을 받을 수 있었다면 오늘과 같이 가슴을 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 모 교회에서 아프가니스탄에 21명의 선교단원을 파송하였다. 그곳은 선교 금지 구역으로 정부에서도 자제해 오던 곳이다. 그런데 이들은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다는 명분과 열정에 사로잡혀 국내와 정황을 무시하고 막무가내식으로 들어가 결국은 탈레반의 포로로 잡혀 너무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다. 과연 그들의 희생이 주께서 원하신 복음적 순교인지 의문이 간다. 최근 나는 교회를 옮겨야 할지 아니면 리모델링을 하여야 할지 망설이고 있다. 예전 같으면 벌써 일을 저지르고 말았을 것인데 해를 넘기고 궁리만 하고 있다.

 

예수님은 동생들의 비아냥 거림에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나는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8)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올라가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명절에 올라갈 명분이 조성되면 올라가시겠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동생들이 올라 간 후에 자신을 들어내지 않으시고 비밀이 올라가셨다(9). 나는 이 말씀을 살피면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보내신 사람으로 그 어떤 일을 행하게 하실 때 주변의 상황과 여론을 통하여 이끌고 계심을 알 수 있다. 이는 세상 여론을 무시하고 막무가내식으로 일을 강행하려 하는 교회 지도자들이 깨달아야 할 일이다.

 

B. 종교적 충돌(14-24) 두려워함 13,  (9:22; 12:42; 19:38)

예수님은 축제에 참여하는 사람들과의 행로에서 군중들의 반응을 살펴 보셨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께서 명절에 올라 오실 것을 예견하고 여기저기 찾으며 그는 좋은 사람이라 말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무리를 미혹하는 자라 말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어느 시대이고 무리들의 여론은 찬반으로 나누어져 갑론을박하게 마련이다. 13절에는 그러나 유대인들은 두려워하므로 드러나게 그를 말하는 자가 없더라 기록되었다. 이는 정치적 배경이 지배하고 있는 상황을 언급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어떤 여론에 이끌려 충동을 받지 말고 그 배후에 역사하는 정치적 상황을 관망하고 자제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불과 두달 전에 이명박 대통령을 선출하였다. 그러나 최근 소고기 수입 문제로 1만명의 군중들이 데모에 나서 탄핵서명까지 나서고 있다. 정말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 조급하고 생각이 없는 사람들은 것 같다. 지난번 노무현 대통령 때에도 탄핵을 시도해 정권을 창출하더니 이제는 50%의 지지를 통해 선출한 대통령을 다시 탄핵하자고 한다. 이는 국민들의 마음만은 아니고 불순한 생각을 하는 자들의 선동이 틀림없다.

 

또 한편으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최하의 대통령으로 폄하하여 쓸쓸히 고향으로 내려간 대통령이 지금은 봉화마을에서 수만명의 환호를 받고 있다. 도대체 이 백성들은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처럼 백성들이 충동을 따라 움직이는 것은 정확한 이성적 사고를 하지 못하고 정치적 선동에 이끌리기 때문이다. 이것이 종교적 성향이 강한 민족들의 문제점이기도 하다.

 

초막절 축제 중간이 되어 예수님은 성전에 올라가 백성들을 가르치시기 시작하셨다. 이에 유대인들은 이 사람이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말하며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이들이 말하는 지식이란 종교적 지식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도를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처럼 랍비교육을 받지 않은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가끔 다른 교단 목사들에게 나의 신학적인 근거에 대하여 질문을 받는다. 그들은 미국 갈보리채플의 척 스미스 목사님의 명성을 말하며 나 또한 유명한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무슨 박사학위라도 있을까 생각한 모양이다. 그러나 인터넷을 통하여 나의 과거를 알게 된 후에는 경멸하는 눈초리를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죄송하지만 그들이 목사 됨이 사람의 선택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의한 것이라면 이러한 편견은 갖어서는 않될 것이다. 그들이 만약 오늘날 미국 교회를 이끌고 가는 척 스미스 목사의 제자 마이크 멕킨토시나 그랙 로리, 라울리스 목사들이 모두 한 시대를 풍미하던 히피 출신으로 신학대학을 졸업하지 않는 사람들이지만 이들의 설교를 듣고 있자면 도대체 이들에게 이러한 지식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정말 의심이 들 정도이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내 교훈은 내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16,17) 하셨다. 여기서 교훈은 성경적 바른 교리를 뜻한다. 오늘날 각 교단별로 자기들이 만든 교리를 중심으로 높은 담을 쌓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교리를 살펴 보면 허점 투성이다. 어떤 교리라 해도 온전한 성경적 조명을 받지 못하면 그것이 누가 만든 것이든지 간에 하나님의 것은 아니다.

 

계속하여 주님은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을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18)하셨다. 스스로 말하는 자란 보내심을 받지 못한 자들을 말한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신학을 공부하고 무슨 회사를 창업하듯이 교회를 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의 설교를 들어 보면 결국 자신들의 영광을 구하며 불의로 가득하다. 불의란 진리를 벗어나 육체의 일을 도모하는 일들을 말한다.

 

예수님은 그들이 가장 중히 여기는 모세를 거명하여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않았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19) 하셨다. 이에 그들은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느냐답하였다. 이 말은 당신의 교훈이 배운 것도 아니라면 귀신이 들린 것이다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느냐 묻는 것은 백성들은 정치적 배후에 역사하는 영들의 역사를 알지 못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하매 너희가 다 이를 인하여 괴이히 여기는도다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주었으니 (그러나 할례는 모세에게 난 것이 아니요 조상들에게 난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주느니라 모세의 율법을 폐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케 한 것으로 너희가 나를 노여워하느냐(21-23) 하셨다.

 

예수님은 여기서 5장에서 행하신 38년된 병자를 고치신 일을 말씀하신 것이다. 안식일에 사람을 고치고 또 그로하여 자리를 들고 가라 하셨으므로 그들의 율법에 의하며 예수님은 율법을 스스로 어긴 자요 또 다른 사람에게 율법을 어기도록 교사한 자가 된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예수를 귀신들린 자라 하며 또 율법을 어기는 저주받은 자라 정하고 죽이려고 한 것이다.

 

여기서 주님은 유대인들이 변명을 하지 못하도록 안식일의 할례를 언급하셨다. 율법대로라면 절대로 안식일에 사람을 치료하지도 못하고 할례와 같은 일도 행하지 못한다. 그러나 율법에 제 팔일에는 그 아이의 양피를 벨 것이요(12:3) 기록되었으므로 팔일째가 안식일이라도 할례를 행하지 않으면 율법을 거스리게 된다.

 

주님은 이들에게 유대인들이 만들어 낸 종교적 실정법 미쉬나의 모순을 언급하시며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24) 하셨다. 여기서 외모란 눈에 보이는 외형적 상태를 말한다. 다시 말하여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커다란 뜻을 생각하지 않고 율법을 빙자로 하여 종교적인 판단의 기준을 만들어 낸 것이다.

 

C. 예루살렘 사람들의 사고(25-31)

예수님의 담대한 증거를 들은 예루살렘 사람들은 이는 저희가 죽이려고자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 보라 드러나게 말하되 저희가 아무 말도 아니하는도다 당국자들은 이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인줄 알았는가?(25,26)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예루살렘 사람들이라는 것은 종교적 중심에 선 군중들을 말한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살아 가고 있어서 자기들이 유대인 중에 가장 종교성이 강하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들으면서도 오히려 산헤드린 본부의 느슨한 태도에 대하여 의문을 갖고 있었다.

 

계속하여 그들은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27) 수군거렸다. 이는 그들의 사고가 사실적 근거를 바탕으로 하지 않고 유대인 70인 공동체인 산헤드린의 종교적 신념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곧 오늘날 신앙이 좋다고 스스로 말하는 크리스챤 상류층의 믿음이 성경적 지식을 갖지 못하고 신학적 근거에 있음과 같다. 만약 그들이 성경적 지식을 근거로한 믿음생활을 하였다면 예수께서 어디서 태어날 것이라는 성경적 근거를 알고 있었을 것이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많은 표적들로 인해 그에 대한 성경적 출생의 비밀을 살펴 보았을 것이다.

 

이들의 의도를 눈치 챈 예수님은 성전에서 그들을 가르쳐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이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나 나를 보내셨음이니라(28,29).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믿음이 성경적 근거를 갖지 못하고 종교적 의식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면 율법적 근거가 확대되어 사람들의 생각이 비성경적 상황으로 완고해 지는 것을 알 수 있다.

 

30절에는 저희가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아직 그의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기록되었다. 여기서 사용된 때는 메시야적 근거를 말한 것으로 이는 다니엘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다니엘9:25) 하신 말씀의 때를 말한다. 이는 아직 483년의 정하신 날이 차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II. 믿는 자의 받을 성령(32-53)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너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39)

A. 바리새인들의 무지와 반응(32-36)

그러나 무리들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오실 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의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하는 여론이 확산되기 시작하자 이를 들은 바리새인들에게 비상이 걸려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러 성전 수비대를 보냈다. 이처럼 여론에 밀려 예수님의 정치적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있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계속하여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 돌아 가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는 오지도 못하리라(33,34) 말씀하셨다. 이는 이제 곧 아버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일을 마치고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것을 미리 언급하신 것이다. 이처럼 성경은 그 어느 시대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 사역에 관한 예언의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만약 사람이 그리스도에 대한 지혜를 얻고자 한다면 그 모든 행적과 또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충분히 추정할 수 있다.

 

성경은 이미 그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라 (1:28) 증거하였다. 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에 대하여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저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것인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35,36) 서로 분분하기 시작했다.

 

후일 주님은 마지막 유월절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보혜사 성령에 대하여 가르치실 때 내가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준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가는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14:2-4) 말씀하셨다. 사실 이 때에도 제자 중에는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여 주여 어디로 가시는 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습니까 하였다. 이처럼 이러한 말씀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가 부족한 것은 그들의 지혜가 한계 속에 있기 때문이다.  

 

B. 배와 생수의 강(37-39)

이에 예수님은 명절 끝날 곧 큰 날이 이르자 누구든지 목마른 자들은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37,38) 외치셨다. 여기서 명절 끝날이란 8일째 되는 날로서 초막절에는 7일간 정오의 시간 때에 제사장 행렬이 실로암으로 내려가 금주전자에 물을 가득담아 성전으로 올라오며 시편118편 할렐루야 송을 찬양하는 행사가 진행된다.

 

성경은 이 일을 기록하여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물에서 물을 길으리로다(12:3) 하신 말씀을 따라 우리가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 (118:26) 노래하며 초막절 축제를 기념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정작 이 말씀이 무엇을 의도하는 것인지 알지 못하한 채, 제사장들이 주전자의 물을 바닥에 쏟아 절정을 이룰 때 기뻐하며 할렐루야로 하나님께 찬송을 돌렸다. 그러나 마지막 날이 되면 이 행사는 더 이상 없다. 백성들은 마지막 날에 성전에 모여 명절을 축복하는 메시지를 듣게 되는데 이 때 예수께서 일어서 생수에 강에 대한 메시지를 선포하신 것이다.

 

성경은 이미 이일에 대하여 성경은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55:1)하였고 또 대저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44:3) 기록하였으며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58:11) 약속되었다. 그러나 정작 이 말씀은 이들에게 실제적인 샘이 되지 못하고 갈급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

 

예수께서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하신 말씀은 깊은 뜻을 담고 있다. 여기서 주님은 왜 인체의 일 부분은 배를 인용하신 것일까? 배는 물과 음식물을 소화하여 온 몸에 그 양분을 보내어 육체의 힘을 공급하는 중앙 기관이다. 이와 같이 우리 몸은 또 혼의 기관이 있어 우리가 많은 지식들을 터득하여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게 된다. 이는 음식물과 같이 우리가 듣고 보고 탐구한 것을 깨달아야 한다. 또한 우리에게는 영적 요소가 있어 이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되고 신들의 역사를 알게 된다. 이것이 짐승과 다른 것으로 사람들은 신에 대한 영적 지식을 통하여 하나님을 감지하게 되는 데 이로서 모든 종교들은 그 경전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곧 선지자들을 통해서 전달된 메시지는 성경적 지식으로 보전되어 사람들에게 가르치게 된다. 이를 통하여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가득차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몸과 마음을 다해 예배를 드리게 된다. 그러나 사람이 신적 진리의 지식을 터득하지 못한다면 그는 자기가 섬기는 신에 대한 지혜를 얻지 못하여 영적 분변을 하지 못하고 소경처럼 우왕좌왕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소경이 소경을 이끄는 것과 같다 한 것이며 너희가 하나님의 지식의 열쇠를 가지고 있으면서 너희도 들어 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사람들을 막고 있다 하신 것이다.

 

단편적으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이 오리라 한 메시야를 고대하며 수천년동안 성전을 중심으로 예배를 드리면서도 정작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만나 기적을 체험하고 가르침을 받고도 그가 하나님의 보내신 아들이심을 알지 못하고 마귀들렸다고 말하는 것은 그들에게 성경적 지혜를 얻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4:2) 기록한 것이다.

 

요한은 39절에서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주석을 달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날 이방인 된 우리도 쉽게 이해하고 있는 일들을 택하신 백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이스라엘 백성이 깨닫지 못한 것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는 오늘날 믿는 자들 속에서 그리스도의 날에 속한 교회와 성도의 비밀에 대하여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다. 주를 믿어 성령을 받은 주의 성도들이 이러한 자혜를 깨닫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충만한 지식을 터득하지 못한 것이며 이 책임은 그 말씀을 맡은 목사들에게 있다.

 

C. 분열되는 사람들(40-44)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 속에서 쟁론이 일어나가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가 참으로 그 선지자라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라하여 또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의 살던 촌 베들레헴에서 나오이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고 의견이 분분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은 메시야가 다윗의 씨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사실에 대한 성경적 지식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태어나심의 행적을 살피지도 않고 그가 갈릴리 사람인 것만을 내세우고 있었다. 이는 52절에서 언급한 것처럼 종교지도자들의 잘못된 가르침의 배경이 여론화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이 말하는 그 선지자란 모세가 말한 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너희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으라 (18:15)는 근거를 바탕으로 나온 것이다.

 

아직도 이슬람들은 이는 바로 마호멧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여기서 쟁론이란 서로 의견이 분분하여 갈기갈기 찍어진 상태를 뜻한다. 이와 같이 온전한 지식을 갖지 못하면 종교는 하나로 통일 되지 못하고 자기들이 생각을 따라 분열되고 만다. 의견이 이처럼 분분하자 예수를 잡으려는 사람들도 혼란이 생겨 손을 대지 못하였다. 만약 그가 선지자라면 자신들이 행하는 일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D. 종교적 체제(45-53) 산해드린

이에 성전 수비대원들이 예수를 잡지 못하고 돌아 오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들을 추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이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다고 보고하였다. 다시 말하여 예수를 잡을 만한 신학적 근거를 발견하지 못하였다는 말이다. 이에 그들은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자가 있느냐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를 저주를 받은 자로다(47-49) 책망하였다.

 

우리는 여기서 종교적 여론이 얼마나 두려운 상황을 만드는지 알 수 있다. 지금도 그리스도를 표방하는 많은 이단들이 있지만 사람들이 그들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그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없고 또 성경의 말씀을 들을 수도 없어서 갑론을박하는 것이며 또 그들의 지도자들의 불의를 보고도 떠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조직이 종교적 저주를 말하며 감시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러한 판단에 그들 중 한 사람인 니고데모가 나서 우리의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고 이의를 제기하였다. 니고데모는 이미 예수를 만나 그의 가르침을 받았던 고로 그들에게 담대히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에게 관심을 갖고 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 사람들은 나타난 것을 통하여 분변할 수 있는 지혜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상고하여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하였다. 이것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행적을 조사해 보지도 않고 또 자기들의 종교적 교권을 지키기 위해 그럴 생각도 가지지 못하여 그들은 예수가 갈릴리 사람이라는 것을 내세워 사회적 여론을 조성하며 이를 어기는 자들은 저주받은 무리라 하여 출교를 하므로 사람들이 두려워 했던 것이다.

 

이런 일들은 오늘날 잘못된 교리를 유포하는 종교집단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 나고 있다. 이처럼 악한 사람들의 배후 속에는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영들이 무리 속에 역사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 놓고 그리스도의 바른 지식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 속에 그 영이 그 안에 역사하여 친히 사람들을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며 또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고 또 장래의 일을 말하여 성령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은 후일 너희가 주께 받은 바 기름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심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2:27) 증거하였다. 그러므로 주를 믿는 우리 성도들은 오직 성경에 기록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려 모든 진리를 깨달아 미혹하는 영으로부터 우리의 영혼을 지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