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상담

정신분열증에 대한 성경적 접근

이요나 2008. 7. 29. 10:56

정신분열증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접근(Ruth Kim 전도사 번역)  

이 글은 The Journal of Biblical Counseling Vol. 14, Number 1에 실린 Dr. J. Adams 목사님의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정신분열이라는 말은 피상담자가 하는 이상한 행동 때문에 사회에서 기능하기에는 무능하다는 단 한 가지 공통분모를 갖고 있으면서도 수많은 문제들을 말하는 비 특정의 쓰레기통 용어가 되어 버렸다. 이 말은 진단상 잘못을 범할 수 있기 때문에 오해하고 혼동될 소지가 많아서 이런 말은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그 이름 때문에 소망이 없게 되고, 그 이름 때문에 피상담자가 자기 자신이 그렇게 행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이상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부주의하고, 무책임하고, 과로 때문에 피곤한 사람들, 심지어는 악의가 있는 사람들이 이 말을 마구 사용하므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나, 그 외의 다른 모든 가능한 요소들을 이에 추가해서 생각하면, 이 용어는 절대로 사용할 수 없는 말이 된다. 그래서 나는 이 글에서 정신분열이라는 말을 할 때마다 특별한 질병이나 행동을 대표하는 어느 뚜렷한 진단상의 분류를 가리키지 않고, 오히려 어떤 인위적인 원인 혹은 이 사회에서 기능을 못하게 만든 여러 가지 원인으로 생긴, 이상한 행동을 가리키는 한 광범위한 뜻을 가지고 있는 말로서만 사용하려고 한다.

정신분열이란 기술적인 말이냐 설명하는 말이냐?

나는
빨간 코라고 하는 말은, 엄밀히 말해서 정신분열이라는 말과 똑 같은 취급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빨간 코를 가졌다는 것은, 그 이상 아무 것도 뜻하지 않는다. 그 말은 무슨 원인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그 말은 여러 가지 다르고 다양한 원인들을 가질 수 있는 결과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빨간 코를 가지고 있어라는 말은 그 사람이 술을 많이 마셔왔다는 것을 꼭 암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 원인은 그가 태양등 아래서 잠을 잤었을 수도 있고, 그의 아내가 그를 때렸을 수도 있고, 그것에 여드름이 났었는지도 모르는 등등의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정신분열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의 행동이 너무 이상하기 때문에 그가 사회에서 기능할 수 없다는 것을 단순히 말하는 것이다. 이런 복잡성에 추가해서 그것은 정상이 아닌 것과 정상인 것 사이의 경계가, 사회의 가치관이 변동하고 있는 사회 안에서는, 항상 명확히 정의 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한 사회나 문화에서는 묵인된 것이 다른 사회나 문화에서는 거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분열의 두 원인들

이것을 요약하면 일반적으로 정신분열이라고 말하는 문제의 행동들의 모든 것은 두 원인들로 나누어진다.

 

1) 현실대로 세상을 보거나 또는 평가하는 사람의 능력을 왜곡하게 하는 힘들 때문 일 수 있다.

2) 또는 사람이 자기 자신 또는 다른 사람들을 잘못 해석하거나, 그릇 인도 하도록 스스로를 만든 힘 때문 일 수도 있다.

 

바로 이러한 두 가지 광범위한 범주들 안에 여러 가지 상황과 형태가 많이 있다. 예를 들면 시각적()으로 잘못 보게 되면 잘못된 자료를 기초로 하게 되기 때문에 적절한 뇌의 기능도 결과가 잘못될 수 있다. 반면에 지각(깨닫는것)은 그대로 있는데 종양이 생겨 뇌가 잘못 기능을 해서 행동이 잘못될 수 있다. 따라서 정신분열이라는 말이 마치 어느 명확하게 정의된 상태나 다른 것들과 구분될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처럼 정신분열증에 대해 말하는 것은 이를 완전히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편의상 우리는 정신분열을 유기적 또는 비유기적 원인들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범주들 사이의 범위가 고정된 것이 아니고 또 서로 넘어갈 수 없는 경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항상 마음에 두고 있어야 한다. 주로 잘못 인도하는 활동(행동)으로 시작된 것도 결과적으로는 잘못 이해하는(자기기만) 활동(행동)이나, 둘을 조금씩 합친 것이 될 수 있다.

  “마약 수사관들이 나를 �아 다닌다 John은 주장했다. 그의 불평은 그의 증거가 증명하듯이 바보스러웠다. 그러나 그가 자기의 주장이 정당하다고 주장한 그의 현실구성(현실이라고 믿는 그의 생각)은 그에게는 완전히 이치에 맞았다. 이것은 그가 자료를 만들어 넣은 현실구성은 그가 오랫동안 도피생활을 했던 결과로 생긴 것이었기 때문이다. John의 문제는 실지 그의 생활에서 사실이었던 현실구성 안에서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마약 밀매를 한 일이 있었다.

 

그 당시 그는 항상 의심하고 경계하며 살았든 것이다. 그러나 그 때 생긴 삶의 패턴은 그가 마약을 버린 훨씬 후에도 계속됐다. 그의 의심하고 경계하는 삶의 패턴은 계속됐다. 과거에 대한 죄책과 삶의 패턴 등은 그가 모든 것을 용서받고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현실구성을 입을 때까지도 계속됐다. 이는 잠언의 말씀과 같다: 악한자는 �는 사람이 없어도 도망한다( 28:1)는 말과 같다.

반대로 한때 잘못 해석(잘못된 지각)하는 활동으로 시작된 것이 그릇 인도(다른 사람이나 자신을)하는 삶으로 발전할 수 있다. 시각(보는것)이 잘못되면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실제와는 달리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얼굴을 자기에게 찌푸린다고 잘못 오해할 수 있다. 청각소통(듣고 이해하는것)에 맞지 않는 시각적 단서(눈으로 보는 것들)는 다른 사람들의 동기를 의심하게 만들고 현실상황에 맞지 않고, 잘못된 자료대로 경계심을 가지고 이에 반응하도록 만든다. 이런 행동을 하면 사람들은 이상한 행동이라고 이를 해석한다. 그는 결국 다른 사람에 대해서 의심하는 태도를 취하고, 삶의 모든 것을 잘못 해석하는 현실구성을 갖게 될 수 있다
.

기독교의 관점

전통적인 기독교에서 상담자는 정신분열증의 행동의 많은 문제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이런 문제가 있는 사람은 그가 자기의 기능할 능력을 저해하는 내적 및 외적 힘들에 부닥칠 수 있다는 것과, 잘못인도하기 위해 이런 저해를 고의적 혹은 비 고의적으로 자극하거나 가장할 수 있다는 것과, 시간이 지나면서(혹은 갑자기) 긴장상황에 잘못 반응할 수 있어, 그가 현실을 망각할 수 있다는 것은, 그는 약하고 교활하고 스스로 속이는 어리석은 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그는 그리스도인들의 시각으로 보는 대로 죄인이며 성경말씀대로 하나님께 대한 그의 반항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허망하게 내버려 둔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위반하는 것인 죄는 정신분열 환자의 이상한 행동의 모두를 설명하는 직접 및 간접적 결과를 갖는다. 그것이 왜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적 자료(말씀)를 무시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이러한 성경적 자료(말씀)의 관점에서 볼 때 모든 그릇된 행동은, 궁극적으로 타락에서 생기는 인간의 부패의 결과로서 각 인간이 나면서부터 갖는 인간의 근본적 손상()에서 나온 것이다.

 

완전한 인간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어느 정도까지는 정신분열증에서 보는 것과 같은 문제들을, 모든 사람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1) 어떤 육체적 기능이 손상됐느냐이고, (2) 그리고 그 손상이 얼마나 심각한지와, (3) 그리고 또 그것 때문에 피상담자가 어떤 죄성의 반응을 하게 되었는지에 있다. 그리고 그가 과연 하나님의 은혜로 구속 받았는지를 물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로 구속 받았으면 그의 인간의 성품도 서서히 새로워져야 한다 ( 4:22-24; 3:10와 비교).

어떤 완전한 인간도 죄를 왜곡(회피)하는 결과들을 피하지는 못한다. 그들 모두는 모든 불완전한 행동으로 인도하는 유기적(육체)이고 도덕적 결함()들과 함께 타락한 아담의 성격을 이어 받는다
.

인간의 어떤 양상과 기능도 죄의 왜곡된 결과들을 피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 까지는 정신분열환자 안에서 보여진, 같은 문제들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다. 그 차이들은 1)어떠한 몸의 기능이 손상됐는지와 2)얼마나 심하게 그리고 3)무슨 죄성의 삶의 반응들이 피상담자에 의해 발전 됐는지에 있다. 개개인은 하나님의 구속이, 인간성의 점차적인 갱신(성화)을 포함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구속 받았는지를 묻는 것도 중요하다
.

정신분열 문제를 신학적인 어려움(문제)으로 본다면, 신학적으로 해결을 하게 된다. 같은 방법으로 비신학적으로 진단을 하면 비신학적인 해결을 찾게 된다. 문제의 진단과 이름을 잘못 붙이면 좌절이 심해질 뿐이다.
  잘못된 이름들은 결국 더 많은 좌절만으로 끝나게 만든다.

 

정신분열증이라는 말은 심리적이나 정신적인 해결을 찾게 하는 심리적 혹은 정신의학적 이름이다. 반면에, 검사해본 결과 이상한 행동이 화학적 기능불능이라고 진단을 하게 되면 이는 의학적 해결책을 취하게 하는 것이다. 만일 문제가 개인의 죄로 인한 것이라면 죄라는 말은 신학적 해결책을 구하라는 말이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에 생긴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다.

 

정신분열증은 심리학적 또는 정신병학의 해결 쪽으로 인도하는 심리학적 또는 정신병학적 이름이다. 만일 또 한편으로 이상한 행동이, 특별한 종류의 화학적 기능불능이라고 이름 붙여져야 한다고 하면, 그 결론은 의학적 해결 쪽으로 인도하다. 만일 그것이 문제가 죄성의 삶에서 왔다고 지적하면, 죄라는 말은 신학적 해결의 방향을 가르킨다. 하나님 보다 훨씬 작은 자가,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문제 때문에 생긴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심각한 잘못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상담자의 방법은 어떤 피상담자의 행동이 근본적으로 유기적 결함에서 나왔는지, 또는 그의 죄성의 행동에서 나왔는지를 발견하려고 하는 데서 시작돼야 할 것이다
.

이상한 행동의 경우에는,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그는 어떤 선() 또는 다른 화학적 기능불능과 뇌의 상처와 독성의 문제 등이 있는가를 발견하기 위해 철저한 의학적 검사를 하라고 주장해야 한다. 그러나 그의 문제가 유기적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히 확인되면, 그는 그런 행동이 죄성의 삶의 패턴들에서 나왔을 것이라는 가정아래 상담을 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는, 피상담자는 문제들이 항상 유기적 그리고 비유기적 종류로만 선명히 나눠질 수 없는, 전인간 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흔히 두 가지가 다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가장 확실한 것은 유기적인 것은 비유기적인 것에 영향을 주고 또 그와 반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Philip
이 바닥에 있는 의자를 부수고, 그의 상담자를 공격하고, 억제할 수 없이 울고, 자기연민으로 흐느껴 울고, 환청을 듣고, 비행접시가 날아다닌다고 말했을 때에는 한 가지 문제 이상이 이러한 어려움 뒤에 있는 것이다. 잠을 못 자고, 화학적 기능불능이 있을 수 있고, 설명할 수 없는 문제로 인한 좌절의 12년과, 의사들과 정신과의사들과 사역자들을 향한 반감과, 충격치료로 인해 오랜 세월에 걸쳐 생긴 쓴 마음과, 심하게 왜곡된 현실구성과, 정신병원에 입원한 것과 죄성의 삶의 패턴들과, 죄성에 의해 영향을 받고 만들어진 모든 것이 모두 합쳐서 이상한 행동을 만들게 되었다.

마음과 몸의 연관

그리스도인들은 성경 전체에서 가르치고 있는 심신상관(psychomatic)에 대해서 알고 있다. 생체자기제어(生體自己制御)들에 관한 연구는 사람이 자기의 신체적 상태를 조절할 수 있는 범위를 크게 확대시켜 주었다.

 

이러한 연구들은 1) 우리가 지금까지 알았던 것 보다 우리의 몸의 기능들에 대해 더 많이 조절할 수 있다는 것과, 2)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우리의 유기적 상태에 대해서 더 많은 책임이 있다는 것과, 3) 또 우리는 이상한 행동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선()과 신경적인 반응의 많은 것(전부는 아니라도)을 조절할 수 있고 또 이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하다.

 

지각을 가능케 하는 화학적 및 전기적 과정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해왔든 것 보다 이러한 기능들에 대해 사람들이 더 책임이 있게 만드는 방법으로, 태도 등에 의해서 조절될 수 있다는 것은 대체적으로 가능한 일이다. 다시 말하면 신념과 태도들도 지각불능(현실을 오해하는 것)의 원인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의 약속들과의 조화(32:1,2; 3:1, 2, 8, 16; 4:10, 20-22; 32:1-2)에 따라, 문제를 위해 필요했던 근본적인 생체자기제어는, 곧 성경적 표준 그 자체들이라고 하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삶의 성경적 패턴들을 따르는 것은 이것에서 나오는 정서의 상태와 태도 때문에, 사람들로 건강을 좋게 해주는 방법으로 신체적 기능을 조절할 수 있도록(무의식적이지만) 해준다. 반대로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에는 기능 불량이 생긴다.
 

 

 몸을 성령님의 전으로서 돌보는 것은, 지각을 왜곡하고 환각을 유발하는 약을 먹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같은 지각 불능을 만드는 심한 수면부족을 통해 몸을 한계 이상으로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 4:26)는 말씀은 선()의 과정들의 건전한 기능과 그의 결과들에 관한 함축된 의미를 많이 보여준다. 더구나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28:13)는 말씀은 깨끗한 양심의 기본적 유익을 명확히 보여주기 때문에 그것을 더 상세히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말씀들과 비슷한 권고나 약속의 말씀들은, 이를 잘 따르면 자기행위의 자기점검에서 나오는 태도들에 의해서 적당히 조절되기 때문에 건강한 삶을 증진시킨다.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의 몸의 기능에 대해서 잘 모르거나 전혀 무지할 수 있다. 그러나 기능을 잘 하도록 만드는 방법으로 살면 유익을 얻어왔다.

 

그리스도인의 삶 자체가 자율적으로 조정되고 이상한 행동을 만드는 신체기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 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물론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이상한 행동이 신체의 결함의 결과나 순수한 심신상관의 요인에 의해서 간접적으로 만들어질 때에는 이러한 행동을 예방하거나 피할 수가 없다.    

그러면 우리는 그림 1에서 보듯이 정신분열을 대충 몇 개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어느 종류가 됐든 이상한 행동을 할 때에도 그의 행동의 책임은 주로 사람에게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해준다. 벧전 3:14(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 말며 소동치 말라)와 같은 말씀들이 이런 것임을 생각할 때 더욱 생생해진다. 삶에서 자기의 정서를 지배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 하지는 않다.

 

태도와 행동을 적당히 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생체자기제어가 없이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자기의 육체적 기능과 상태를 통제할 수 있다. 비교적 드문 경우의 원인이 되는 확실한 유기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기독교 상담자가 정신분열증을 다룰 때에는, 죄성의 삶의 패턴에 의해서 만들어진 다른 문제들을 가진 사람들을 대면하듯 똑 같이 하면 된다. 이렇게 삶을 크게 보는 데에 소망이 있다. 죄 때문에 생긴 것이라면 변화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정신분열이 다른 요인 때문에 생긴다고 하는 것은, 확실한 근거가 없다.

                                                                        

정신분열의 원인과 치료


상담사례
바바라는 그의 아들 George가 그의 여자친구를 임신 시켰다는 불유쾌한 뉴스를 알았을 때, 그는 그것을 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었다. 이 뉴스는 자기의 문제를 포함해서 다른 해결되지 않은 가족들의 문제들이 쌓인 가운데서 들어온 소식이었다.

 

바바라의 남편인 John은 권면적(성경으로만 하는) 상담자에게 전화를 해서 이 상황을 설명했다. 바바라는 이 나쁜 소식을 듣고는 벌써 침실로 가서 침대 위에 앉아 돌과 같이 몸이 얼고 굳어졌다. 이것은 전통적으로 긴장으로 인한 마비상태라고 한다. 그는 이런 자세로 7시간을 앉아서 마치 현실을 떠난 사람 같이 말없이 앞의 벽만 쳐다보고 있었다. 상담자는 그 집에 도착해서 세가지 일을 했다:  

1.
집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자료를 얻은 결과, 그는 이 행동에 대한 유기적인 원인은 없다고 생각했다.
2.
바바라는 현실을 떠나지 않았고, 그래서 자기가 이야기 하려는 말을 듣고, 이해하고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
3.
그래서 그는 바바라에게 엄하게, 그러나 사랑스럽게, 소망을 주면서도 경고를 해주었다. 그의 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바바라, 당신은 내가 말하려는 것을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잘 들으세요. 첫째로, 당신은 이렇게 해서 현실에서 도망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삶의 좌절과 딜레마를 다루는 방법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것을 계속하면 당신과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더 큰 어려움을 만들뿐입니다.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나도 당신의 문제가 심각하고, 이 문제에 대해서 당신이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잘 모르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도 이 문제를 조금도 가볍게 보고 있지 않습니다. 아마도 이 문제는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더 크신 분입니다. 그리고 만일 당신이 원하면, 예수님의 말씀으로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도록 당신을 도와 드리겠습니다. 당신이 말을 속히 시작하면 할수록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성경적 계획을 더 빨리 만들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이 문제를 하나님의 방법으로 직면하지 않는다면, 소망은 없습니다. 바바라는 몸을 조금 움직였으나 반응하지 않았다. 그래서 상담자는 대안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만일 당신이 이 문제를 직면하지 않으면 당신의 남편은 그가 할 수 있는 다른 방법, 즉 훨씬 더 불쾌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먼저 그는 당신을 이대로 앉아 있게 할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음식을 먹지 못하고, 용변도 보지 못해, 형편이 매우 어려워질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도 당신이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그는 할 수 없이, 당신을 정신병원에 입원시켜야 합니다. 당신은 정신병원에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이렇게 설명을 하자, 바바라는 곧 깨졌다. 그는 소리를 내어 울고, 그의 좌절과 분노와 두려움에 대해서 속을 털어놓았다. 그래서 상담자는 그가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도록 도울 수 있었다.

이 간단한 이야기에서 보듯, 겉으로 보기에 이상한 행동이, 대부분 자신에게는 이상한 행동이 아니다. 그의 관점에서 보면, 그의 행동은 정상적인 행동이다. 거짓된 꾸밈과 행동의 분열이라는 원래의 정신분열 개념도 이런 기초 위에서 설명이 될 수 있다. 피상담자에게는 행동의 분열은 없다. 상담자에게만 꾸밈과 행동이 조화 하지 않게 보일 뿐이다. 따라서 정신분열환자가 회피하고, 의심하고, 웃고, 킥킥 웃는다고 말하는 것은, 때때로 전혀 다른 관점에서 다른 사람의 행동을 평가하는 사람같이 말하는 것이 된다. 바바라는 어떻게 해야할 지를 전혀 몰라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

바바라는 자기가 어떤 행동을 취하든, 그것이 사태를 돕기 보다는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고 염려했다. 그래서 그는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은 것이다. 그는 분이 났고, 마음이 상했다. 그래서 분을 내고, 마음의 상처를 받고, 이러한 정서 때문에 생길 수 있다고 염려했던 폭발로 표현하는 것보다는, 고정된 자세를 취하기까지 그의 느낌을 억눌렀다. 행동은 잘못됐지만, 불합리한 행동은 아니었다. 이와같이 그 배후의 이유는 분명했다.
  

피상담자의 관점
화학적 불기능으로 인해 지각의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는 세상은 비뚤어지게 보일 수 있다. 의자가 머리 위로 날아다니고, 등불이 이상하게 진동하고, 얼굴이 괴상하게 비틀어지게 보일 수 있다. 이러한 역지각(반대로 되는 지각) 상태에서는 사람의 행동이,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상하고 기괴하지만 피상담자 자신에게는 이상하지 않고 설명할 수 있는 이유를 갖는 행동이다. 날아오는 의자를 피하기 위해 뛰면서 자신을 보호하는 것은 합리적인 행동이다. 그러나 의자가 전혀 움직인다고 보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것은 이상스럽고 비합리적인 행동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피상담자 자신도 자기의 합리성을 의심하게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의자가 결국 날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피상담자는 정신이 나간 사람같이 보이려고 이러한 모든 이상한 행동을 가짜로 만들어낼 수도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이상한 행동을,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으로부터의 주의를 돌릴 목적으로 위장하는 것으로라고 해석해야 된다는 확증이 많아지고 있다. 많은 행동을 은폐나 위장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대개 이렇게 해서 생긴다: 과거(오래 전에)에 한번 해본 이상한 행동이 그 이상한 행동으로부터의 주의를 돌리는데 성공하고 긍정적으로 보상을 받은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상한 행동은 (다른 모든 죄성의 행동과 같이) 악한 마음의 산물로 보아야 한다 ( 17:9). 따라서 그 후에 그가 계속 이상한 행동 뒤에 숨어 봤는데, 종종 그것이 효과가 있었다고 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면 이런 행동의 패턴이 생기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이상한 행동이 그가 죄를 지을 때마다 의지할 수 있는(습관적) 방법이 되고 만다.

그러나 이런 행동은 처음에는 성공하지만 후에는 전과 같이 항상 계속 성공하지는 못한다. 예를 들면 그가 유년시절을 지나 청년이 되어서는 숨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이제는 그의 행동에 대해서 합리적인 설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변화되기 보다는 습관에게 지배를 받고 있는 사람은, 해결책으로서 이상한 행동에 계속 의지하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하려는 것이 계속 실패하게 되면, 결국 변화하도록 그를 강요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그는 반응의 내용을, 변화시키지는 않고 반응의 빈도만을 바꾼다. 그래서 계속 그의 행동을 은폐하기 위해 그의 행동은 더욱더 이상하게 된다. 만일 습관이 깨지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그의 행위는 너무 이상한 나머지 결국 사회가 그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고 만다. 이렇게 되면 그의 행위는 잠깐 사이에 완전히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을 하게 된다.

마침내 피상담자는 이러한 행위가 발각되지는 않아도, 성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의 행동이 더욱 더 계속 이상하게 될 때에 그는 그의 행위가, 그를 고립시키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의 사회접촉은 끊어지고, 그가 사회를 필요로 하지만 사회는 그를 떠난다. 그는 자기가 거짓말을 하고 살고 있으며, 그의 양심은 심신상관의 반응을 유발하게 된다. 그래서 마침내 그는 외부로 부터 소외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도 따돌림을 받고, 내적으로는 분해(망가진)된 매우 비극적인 사람이 된다
.

피상담자의 선택

스티브는 저자가 Illinois에 있는 정신병원에서 만났던 대학 연령의 젊은 남자였다. 정신과 의사는 스티브를 긴장병적 정신분열환자로 진단했다. 그는 꼭 필요한 것을 제외하고는 말을 하지 않고, 마치 그가 무감각하게 된 것처럼 발을 질질 끌며 주변을 다녔다. 일단 앉으면 한 두 자세로 얼어붙어 버렸다. 처음에는 스티브와의 대화가 불가능 한 것 같이 보였다.

 

그는 질문이나 또는 말로 제안하는 어떤 종류에 대해서도 반응하는 것을 간단히 거절했다. 그러나 상담자들은 그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고 있다는 것과 비록 그가 다른 사람들, 즉 정신과 의사와 그의 부모들과, 학교당국자들을 속일 수 있었지만, 그는 상담자들은 속일수 없을 것이라고 말을 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가 빨리 말을 시작하면 할수록 그는 정신병원에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을 했다.

 

스티브는 계속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담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받는 상담을 보면서, 그 그룹의 일부로 계속 참석하도록 허가는 했다. 다음주 상담자들은 한시간 이상 그를 상담해주었다. 스티브는 깨어지기 시작했다. 그가 주저하면서 답변을 했지만, 이것은 그가 모든 것을 확실히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제는 그가 현실에서 떠나있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게 됐다.

스티브가 반응을 하기 시작하자, 그의 문제의 윤곽이 나타났다. 그리고 3주째에 그는 완전히 깨어졌다. 스티브는 정신장애나 정서적 문제가 없었다. 스티브의 문제는 어려웠지만 단순했다. 그는 대학 공부는 하지 않고, 연극의 소품담당자로서, 그의 모든 시간을 허비했다. 그래서 학기 중간의 성적이 나올 때에 낙제통제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는 스티브가 낙제를 하게 되었다는 것을 뜻했다. 그래서 낙제자로서 그의 부모와 친구를 대하느니 보다, 그는 참 문제를 위장했다. 그는 이상하게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모든 사람에게 이 사실을 알지 못하게 했다. 사람들은 그가 정신적으로 마비가 되어, 현실에서 떠난 정신병자라고 생각했다
.

스티브는 전에도 이런 일을 몇 번 한 일이 있었지만, 이렇게 지나치게 이상하게 행동 하지는 않았었다. 몇 년이 지나면서, 그는 불쾌하고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 일어나면 피했던 회피패턴으로 이것을 점차 발전시켰다. 그래서 대학에서 위기가 생길 때마다 그는 자연적(습관적으로)으로 그의 패턴에 의지했다. 스티브의 문제는 정신병이 아니라, 죄책과 수치와 두려움이었다
.

그가 상담자들과 말을 하면서, 그는 전에 그가 피하려고 했던 근본적인 결정을 지금 하라고, 상담자가 그에게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스티브는 그의 부모와 친구들에게 사실을 말하고 정신병원을 떠나던지, 또는 그가 거짓을 꾸미는 것을 계속하던지, 이제 지금 결정해야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다섯 번째 주에 우리 상담자들이 상담을 다 끝내고 그를 떠날 때, 스티브는 아직도 그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이런 방법으로 나의 여생을 계속할까, 아니면 집으로 가서 자진해서 어려움을 겪는 것이 더 날까"하는 말로 그 자신에게 실제 질문을 하고 있었다.

  스티브와 상담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스티브를 병자처럼 더 취급하면 할수록, 그는 더 죄책을 느꼈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이것은 스티브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그 자신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환자들이 탄로 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숨을 때마다, 그들이 아프지 않을 때 아프다고 주장할 때마다, 병을 치료한다고 하는 것은, 환자들을 더 악화시킬 뿐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들이 그들의 병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그를 너그러이 봐주도록 행동 하는 것은, 주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가장 불친절한 일이 된다. 그런 방법은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뿐이다.

스티브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했던 사람들이, 그에게 접근했을 때 그는 반응을 했다. 그가 반응을 한 후 처음으로 그는 약간의 자기 자존감을 가졌다. 그는 그의 상태에 대해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경우를 봐서도 현대의 사상과는 달리, 비판을 하지 않는 것은, 자비를 베푸는 것이 아니다. 이런 피상담자들을 위반자 보다는 오히려 희생자로, 또는 그들의 행동을 중립적으로, 또는 비난 받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런 사람들의 거짓말을 확대시켜줄 뿐이고 죄책의 짐을 증가시킬 뿐이다.

 

스티브의 설명에 의하면, 이러한 치료는 그 치료가 갖다 주는 정신적 고통과 스트레스 때문에, 스티브에게는 단순한 학대가 되어 왔다. 그는 그의 부모가 그를 찾아 와서, 삶의 환경에 죄 없는 희생자처럼 그를 친절하게 대해 주었을 때, 그때처럼 마음이 아픈 일이 없었다고 말을 했다.  

절망중의 소망
정신분열이라고 부를 만큼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절망적이고, 또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격한 조치를 취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다(만일 그들의 행위가 자율적이라면). 그들의 행동 그 자체가 이 사실을 증명한다. 이 사실이 상담자에게는 소망이 있다. 절망가운데 있는 사람은, 극적인 변화를 하기에 더 할 나위 없이 적합하다.

 

겉으로 보기에 가장 어려운 사례들이, 종종 가장 특별한 기회들이 된다. 결정적인 삶의 변화가 생긴 것을 가끔 글로 쓴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을 이상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상처가 있는 사람이 밴디지 하나로 되는 수도 있다. 암에 걸린 사람이 과격하게 외과의사의 수술에 자신을 맡길 수 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흔히 그들의 밧줄 끝에 다다른 사람들은, 결국 하나님의 밧줄에 매달릴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행동의 합리성을 인정하기 위해서, 크리스찬들은 개인적으로 택했던 각 사례와 관련되었던 요인들을 파고들려고 한다. 이런 것에 대해, 크리스찬들은 성경적으로 해답을 하려고 한다. 그들은 이렇게 성경적으로 해답을 하려고 할 때마다, 구원의 복음으로 시작하고, 그 후에 매번 상담환경에 알맞는 기본적인 해답의 함축된 뜻과 적용을 하는 일로 옮긴다. 구원은 인간문제들을 위한 기본적 해답에 꼭 필요하다는 전제는, 그가 필요할 때마다 전도와 상담을 같이 하게하고, 그 다음의 해결책은 성경적 원리에서 나오고, 이는 성경적 원리와 부합돼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할 것이다.

정신분열은
올바른 기독교 상담자를 위해서는, 원죄와 개인의 죄 또는 이 둘의 결과를 포함한 다른 문제들과는, 다른 도전을 더 주지도 않고 덜 주지도 않는다. 그는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능력과 함께 성경에서 제공하고 있는 자원이면 충분하다고 믿는다. 이는 . . .  죄가 더 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고( 5:20) 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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