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흔적들

'벽창호가 되지 말자‘

이요나 2008. 10. 12. 19:11

'벽창호가 되지 말자


내담자들과 상담을 할 때마다 그들이 겪는 인생의 고통을 듣노라면 갈기갈기 찢어진 아린 가슴을 어떻게 만져 주어야 할지 위로의 말을 찾지 못하여 할말을 상실 하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문제의 당사자들은 오히려 덤덤한데 비해 아들들의 고통을 지켜보는 부모들은 생살을 찢어내는 통곡을 쏟아낸다. 이럴 때마다 자기 명줄로 새생명을 얻고자한 어미의 한이 억장을 무너뜨린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이거늘 어이해 아들은 세월을 탕진하였는가?


생면부지의 목사에게 썩은 피고름을 쏟아내는 이들의 고통을 들을 때마다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견딜 수 없는 분노가 솟아오른다. 나의 이 분노는 인생을 송두리채 갉아먹는 하늘의 악한 영들을 향한 것이지만 어쩌면 생명을 맡은 교회들을 향한 것일지도 모른다.


얼마전 나는 Alison 자매와 함께 28살의 호주 청년 Haydn을 만났다. 그녀는 성중독자 회복을 위한 ‘웰스프링‘ 운영하는 영국인 자매로서 2년 전 척추질병으로 고통받던 김유복 형제의 수술비를 선뜻 내어준 천사이기도 하다. 잠시동안의 대화였지만 나는 이들과의 증언 속에서 고귀한 예수의 보혈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거짓없는 솔직한 증언은 오히려 청결했다


주님은 요한복음 12장에서 심판과 영생을 말씀하시면 나는 심판을 하러 온 것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러 오셨다 하시며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12:48)하셨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 그를 심판한다 하셨기 때문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주님은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주셨으니”(49)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영어성경은 이를 ‘what to say and how to say it'라고 기록하였다. 이미 주님은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요8:43) 하신바 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우리가 성경에서 무엇을 들으며 또 어떻게 듣는가에 대한 주의를 요구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심판의 책임은 누누에게 있는가? 예수님인가? 성도인가? 아니면 목사들인가? 이에 바울은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 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않을 것‘이라 경계하였고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행20:32) 하였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더 이상 벽창호가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