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2일 1부 (John 10-12 Review)
제목 “What to say and How to say?" (John12:49)
-> 모두 성경 요한복음 10장을 펴시기 바랍니다. – 오늘은 12장까지 가겠습니다
A. 지난 주 설교 리뷰
1. 우리는 지난 주에 요한복음 6장부터 9장까지 공부를 했다. 먼저 6장에서 우리는 예수께서 자신이 생명의 떡이라 하신 말씀을 이해하였다. 이는 한 마디로 떡을 맛있게 먹고 잘 소화해야만 살이 된다는 뜻이다. 빵을 소화하지 못하면 배탈이 나고 결국 소화불량이 되어 위장병 환자가 된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는 위장병 환자가 너무 많다.
2. 7장에서는 뱃속까지 시원한 생수에 대하여 살펴 보았다. 우리가 먹은 빵이 소화가 되어 그 영양분이 우리 각 기관에 들어가 파워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물이 절대 필요하다. 물은 우리 몸에 70%를 차지 하고 있다. 이는 곧 성령의 역사이다.
3. 8장에서는 간음한 여인에 대한 논쟁이다. 주님은 간음한 여인을 정죄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 세상에 죄를 짓지 않은 인간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은 그 여인에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셨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죄에서 자유케 되리라 하셨다.(요8:12, 32)
4. 9장은 자신을 가리켜 세상의 빛이라 하신 말씀에 대한 상세 설명이다. 이를 위해 주님은 자기를 믿는 유대인들에게 내 말에 거하면 참 내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셨다. (이는 인간이 죄를 짓지 않는 방법이기도 하다)
1). 주님은 9장에서 흙을 침으로 개어 소경된 자의 눈에 바르고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했다. 그 보냄을 받은 소경은 눈을 떴다. 만약 이 소경이 실로암으로 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2). 아직도 우리 가운데 눈뜬 소경들이 실로암이 아닌 다른 곳으로 달려 가고 있다. 안마를 배워서 돈을 벌고 싶은가 보다(조크ㅎㅎ) 그러나 주의 말씀에 순종한 소경은 실로암의 물로 눈을 씻고 보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시는 줄 안다’(요9:32)고 말하였다.
3) 그러므로 9장은 소경된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소경으로 살 수 밖에 없다. 당신이 비록 목사라도 말이다.
B. 자 이제 요한복음 10장으로 가십시다. 10장의 핵심 구절인 27절을 함께 익겠습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1. 주님은 10장에서 주의 성도들을 양이라 칭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시작과 함께 비유된 호칭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목자이고 그의 성도는 양입니다.
2. 10장에서 주님은 자신을 가리켜 양의 문이라 하셨고 또 선한 목자라 하셨습니다.
3. 이미 앞에서 자신을 가리켜 빵이라 하셨고 , 생수라 하셨고 또 빛이라 하셨는데 정말 골치 아프신 분이다.
4. 한가지로만 말씀해도 정신이 없는데 이거다 저거다 자꾸 바꾸시니 정신을 빼시기로 작정하신 모양이다. 어쩌면 이것은 공부하기 싫은 넘들은 따라 오지 못하게 하신 것 일지도 모른다
5. 예수님은 7절에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하셨다.
1) 먼저 양의 문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2) 양의 문은 양의 우리로 둘러져 있다. 문은 벽이나 담으로 경계를 한 출입구다
3) 따라서 문은 꼭 들어 올 사람만 들어 오도록 만든 것이며 그리로 들어 오지 않는 넘들은 도둑 아니면 강도다(요10:1)
4) 이 지구상 사람이 사는 곳은 문이 없는 곳이 없다. 지하철이든 버스든 항구든 어딘가 들어 가는 곳에는 문이 있고 문에는 문지기가 있다
5) 문지기는 자기가 아는 공인된 표식이 없으면 그 누구라도 출입을 허락치 않는다. 그러므로 남을 넘는 밀입국자가 있는 것이다.
6. 또한 예수님은 11절에서 나는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신다.
1) 그런데 선한 목자의 정의는 양들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버린다는 것이다.
2) 또 다른 목자도 있는데 이들은 삯군이다. 이들은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도망을 한다
3) 그러므로 삯군이 돌보던 양들은 이리에게 약탈 당하게 된다. 그때서야 양들은 자기를 돌보던 목자가 가짜였던 것을 안다.
4)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성도들의 십일조를 받아 먹고 힘빠지게 봉사를 시키면서 성도들이 삶 속에서 이리에게 쫓기면 병원이나 전문가에게 가라고 말한다.
5) 그런데 동성애자는 성중독자들이나 우울증에 시달린 사람들이 병원에 가면 도리어 평생 병자로 만들어 관리하고 약물 중독자가 되어 폐인이 되게 한다.
6) 교회서 목사들은 나는 축복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지 귀신이 들리면 무당에게 가고 우울증은 심리학자에게 가고 알코올, 마약 중독자 성중독자는 정신병원 시설로 보내라고 한다.
7) 그러면 정신병 학회에서 동성애는 정신병이 아니라고 했는데 동성애자는 어디로 가야 하나? 교회에서는 동성애는 타고난 팔자니까 팔자대로 살라고 한다. 참 그렇게 말하는 넘들은 누가 목사로 세웠는지 알지 못하겠다. 나는 그런 목사들과 함께 절대로 천당에 들어가지 않을 것을 확신한다.
8)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성도들의 생명을 노리는 이리는 누구인가? 그는 동성애 성중독 알코올 마약 도박과 같은 죄를 주관하고 있는 사단이다. 성도들이 이러한 죄를 짓고 있는 이상 마귀들은 성도들과 함께 살며 그들의 인생을 망친다
9)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죄를 짓지 말아야 하며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는 진리의 말씀의 제자가 되어 그 말씀 안에 거하여야 한다. 그러면 진리가 그를 자유케 할 것이다.
C. 이제 11장으로 가보자. 11장 핵심 구절인 9절과 10절을 함께 읽도록 하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고로 실족하느니라”
1. 11장에서는 우리가 다 아는 바와 같이 나사로의 죽음과 부활이 나온다. 이는 실제의 사건이다. 그러나 나사로는 지금 또 죽어 하늘에 있다.
2. 성경에는 두번 죽고 두번 살아날 사람이 몇사람 소개되었다. 나사로와 야이로의 딸과 나인성 과부의 아들과 베드로가 살린 도르가와 또 바울의 설교를 듣다 창에서 떨어져 죽었던 유듀고이다. 그들은 다시 살았지만 또 잠들었고 우리는 주의 날에 그를 보게 될 것이다.
3. 이와 같이 성도의 죽음은 육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영혼에 있다. 이 부활을 축복은 오직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로 등록된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축복이다. 그러니 우리가 속히 많은 사람들에게 전도를 해야만 한다.
4.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25-26) 하셨다
5. 그러나 예수님을 열심히 섬기던 마르다나 또 열심히 주의 발 앞에서 말씀을 듣던 마리아도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 슬퍼 하고 있다.
6. 이처럼 우리는 죽음 앞에 나약해진다. 죽음 앞에서는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무색하게 되고만다.
7. 그러나 주님은 슬퍼하는 나사로 누이들에게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40)하셨다. 이는 너희의 믿음이 나의 말 가운데 있지 못하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여 너희가 아직 나의 말 곧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이다.
8. 당신은 어떠한가? 아직도 죽음이 두려운가? 성도의 죽음은 단지 긴 잠에 들어간 것뿐이다. 이로서 성도는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
D. 이제 오늘의 말씀의 핵심은 12장으로 가자. 12장 49과 50절을 함께 읽자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
1. 요한복음 12장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루살렘의 승리의 입성이 소개되고 있다.
2. 이 날은 수천년동안 성경의 예언이 성취되는 날이기도 하다.
3. 온 무리가 나아와 올리브 나뭇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12:13) 외쳤다.
4. 호산나란 “지금 제발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이다
5. 어쩌면 지금 수많은 성도들이 이와 같이 호산나를 외치고 있지 않을까 싶다
6. 만약 당신은 그렇지 않다면 지금 마라나타! 주여 어서 오소서 하고 외쳐야 할 것이다. 어느 쪽인가? 호산나인가 마라나타인가?
7. 흥미롭게도 주님은 35절에서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 하셨다.
8. 계속하여 주님은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36) 하셨다.
9. 여기서 말씀하신 빛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전기불인가? 태양인가? 아니면 지식인가? 능력인가?
10. 그러나 이미 주님은 이 빛은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 증거하셨다(요17:17)
11. 예수를 믿으면서도 말씀의 진리를 깨우치지 못하면 당신은 어두움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다.
12. 당신은 아직도 호산나를 외칠 것인가? 그러나 나는 마라나타를 외칠 것이다. 호산나는 이미 2000년의 외침이기 때문이다. 구원자는 이미 오셨고 우리는 구원자 안에 거하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당신이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이고 보지 못하는 소경이기 때문이다.
13. 우리 성도의 목적인 영생이다. 영생은 몸은 죽어도 영원히 죽지 않고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사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죄의 사슬에서 벗어나 진리 안에 거할 때 보장 된다.
14. 그런데도 많은 성도들이 왜 아직도 죄의 사슬에서 이리의 밥이 되고 있는가? 이들은 과연 영생의 문으로 넉넉히 들어 갈 수 있는 것일까?
15. 47절에서 예수님은 마지막 날의 심판을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뜻하신 영생을 말씀하셨다.
16. 그리고 다시 48절에서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하는 이가 있으니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하셨다.
17. 계속하여 주님은 49절에서 마지막 날에 사람을 심판할 그 말에 대하여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이라 하셨다. 이 부분은 영역을 보는 것이 이해가 빠르다.
18. NIV 성경은 ‘What to say and How to say’라 기록되었다. 이는 말하는 목적과 말하는 방법을 말씀하신 것이다.
19. 예수님은 씨 뿌리는 비유에서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주의하라’하셨고 또 ‘너희가 어떻게 듣는가 주의하라’ 하셨다.
20. 또 주님은 요한복음 8장에서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요8:43) 하셨다.
21.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지금이라도 우리는 호산나를 외쳐야 한다. 주여 지금 제발 우리를 구원하소서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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