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11:10) “메시야의 미스터리 퍼즐”
(사11:10)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 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과거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민족들은 어떻게 메시야를 만날 수 있었을까?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아벨로부터 아브라함, 이삭과 야곱과 요셉, 그리고 모세와 사무엘을 비롯한 많은 사사들과 다윗과 다니엘과 예레미야 에스겔를 비롯한 수많은 선지자들 하물며 이방여인 기생 라합에 이르기까지 모두 자신의 눈으로 보지 못한 믿음의 세계를 발견하고 나라들을 이기고 의를 행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고 불의 세력과 칼날을 멸하고 승리를 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입성하였다.
과연 그들은 무엇을 보았으며 또 무엇을 믿은 것일까?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이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다’(히1:1,2) 기록하였다. 우리가 어떤 일들 해나갈 때 일을 하다 보면 자신이 머리 속에 그리던 모습이 한꺼플씩 발견되어 한걸음씩 완성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그때의 기쁨은 그 일을 완성하기 위한 촉진제가 되어 궁리의 궁리를 하고 새로운 문물들을 발명해 내기도 하고 또 보안해 나간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아직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찾아 나서며 미지 속에 있는 문명을 창출해 나가므로 세상은 끊임없이 발전해 왔다.
오늘 우리가 이사야를 공부하다 보면 마치 메시야 곧 아직 그 시대에 이르지 않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퍼즐처럼 맞추어 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마치 범죄자를 찾을 때 증인들의 몽타주를 한 부분씩 수정해 가장 근사치의 얼굴을 만들어 내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 더욱 선명하게 완성을 해 가고 있다.
I. 메시야 서곡
(사7:14)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 선지자는 1장에서 백성들의 사사와 모사들이 하나님의 나라의 주권자 되신 메시야를 찾아 나서는 일들을 중단하고 종교활동에 빠져 있음을 책망하고 너희의 기뻐하던 상수리 나무로 인하여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요 너희의 택한 동산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할 것이라 증거하였다. 그는 계속하여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같을 지라도 눈같이 희여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 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사1:18) 하였다. 이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이사야의 첫발이기도 하다.
이사야는 2장에서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였으며 야곱의 하나님 전으로 나갈 것을 권고하며 그가 그의 도로 우리를 가르치실 것은 율법이 시온으로부터 나오며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올 것이라 증거하였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어떤 형상을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그 누군가와 우리와 변론을 하여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여호와의 말씀으로 우리로 의를 행하게 하실 것이라 증거하였다.
이사야는 4장에서 “너희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 그들은 그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임이요”(사4:10) 증거하며 타락한 시온의 딸들의 정수리에서 딱지가 생기며 그들의 하체가 들어 날 것이라 하였으며 일곱여자가 한 남자를 향하여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의 수치를 면하게 하여 달라고 간청할 것이라 증거하였다.
이사야는 여기서 비로서 여호와의 아름다운 싹 한 남자를 소개하여 시온과 예루살렘에 생존하여 그 이름이 명부에 기록된 자들은 거룩하게 될 것이라 예언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원자 곧 한 남자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은 깨닫지 못하게 될 것이며, 이는 그들의 마음이 둔하여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이라고 예고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사야의 두 아들 곧 장남의 이름 ‘스알야숩’ 곧 ‘남은자가 돌아 오리라’는 징조를 주어 그 백성 중에 여호와를 사모하는 자들에게 실 날같은 희망을 품게하였다. 그로하여 메시야의 나라가 오기까지 이 땅 모퉁이에 거하는 이스라엘 백성 중 이 소망을 버리지 않는 자들은 그 어느 때라도 그의 나라에 들어 갔으리라.
7장에서 이사야는 고통의 세월을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 증거하였다. 이는 그들을 구원할 메시야가 어떻게 나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앞에서 여호와의 싹 한 남자라고 예고하였고 그 징조로 처녀가 잉태할 것이라 예고 한 것은 이는 그 어떤 과학과 학문으로도 증명해 내기 못할 전대미문의 사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계속하여 이사야 선지자는 다시 “한 아기가 우리에게서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9:6) 소개하였다. 이는 메시야가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한 아들로 오실 것이며 그는 세상을 걸머질 통치자로서 위대한 카운슬러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영존하신 아버지시며 우리에게 영생을 베푸실 평강의 왕이라 소개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에게 흥미로운 말씀은 그는 더없이 훌륭한 가장 완변한 카운슬러라는 것이다. 이는 그의 말씀으로 모든 것을 고치시는 진리의 왕되심을 소개한 것이다.
II. 메시야 퍼즐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사11:1)
A. 메시야 언약
이제 오늘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에게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사11:1)고 그가 탄생할 출처를 소개하였다. 이새의 줄기란 바로 다윗의 아버지를 뜻하며 그 아들 중 하나가 여호와의 아름다운 싹이 될 것이라 한 것이다. 또한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란 무엇인가? 이는 매우 흥미로운 이중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새의 아들 중 한 싹 곧 다윗이 날 것이지만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날 것이란 다윗의 뿌리를 말한 것으로 곧 다윗의 후손 중에서 메시야가 오실 것을 예고한 것이다.
이미 이 일은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에게 “네 수한이 차서 네가 열조에게로 돌아가면 내가 네 뒤에 네 씨 곧 네 아들 중 하나를 세우고 그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니 저는 나를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대상17:11,12) 고 전하였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야가 이새의 씨로 오실 것이며 다윗의 뿌리에서 날 것이 믿고 있다.
사실 이와 같은 예언은 이미 창세기에서 주어졌다. 야곱은 임종을 앞두고 그의 열두 아들에게 유언하는 중 유다에 대하여는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움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라”(창49:9,10) 예언하였다.
여기서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한 말은 무엇을 뜻한 것인가? 이는 곧 다윗의 지파의 조상 유다는 사자의 새끼란 말이 아닌가? 여기서 사자는 다윗을 지칭하며 또 장차 이 땅을 치리하실 메시야를 칭한다. 그렇다고 다윗의 조상인 유다가 다윗의 새끼는 될 수 없다. 이는 다윗의 씨로 오실 메시야를 뜻한다. 그러므로 이새와 다윗은 물론 그들의 조상인 유다 조차도 메시야의 새끼인 것이다. 그를 말하여 예수께서도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마22:44,45) 하셨다.
이와 관련하여 계시록에는 아주 흥미로운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계22:16)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계시록 기자는 우리에게 이 땅에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여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라’고 증거하였다. 이는 장차 우리가 이 땅에서 마지할 만군의 통치자 예수 그리스도의 확실한 증거를 위한 메시지이다.
그러므로 누가 자신이 재림 주 곧 예수 그리스도임을 증거하려면 자신이 다윗의 혈통적 후손임과 또 다윗의 뿌리 곧 우주 만물과 이 땅의 모든 생물과 인간을 창조하신 스스로 계신 분임을 입증해야 할 것이다. 이는 곧 주와 함께 이 땅에 올 구름과 같은 증인들 곧 아브라함과 모세와 엘리야와 다윗과 사무엘과 세례요한과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예수님의 형제들과 열두사도들의 증거를 통하여 그가 다윗의 자손이며 또 다윗의 뿌리임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자신을 가리켜 재림주 운운하는 것은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들은 그 무엇으로도 자신이 다윗의 족보에 든 것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B. 다윗의 자손 요셉의 미스터리
문제는 마리아의 남편 목수 요셉은 이새의 후손이며 다윗의 계보가 틀림없는가? 그렇다 이 사실을 우리는 마태복음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신약성경에는 메시야의 계보가 2가지 기록되었는데 하나는 마태복음이고 다른 하나는 누가 복음이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유다왕국의 멸망 이후 이스라엘 민족은 바벨론 포로가 되었고 그후 그들은 왕을 세우지 못하였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것처럼 큰 나무의 그루터기가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메시야 언약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꼭 성취되어야 하며 그는 꼭 이새의 줄기에서 난 다윗의 후손이라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예레미야의 예언이다. 하나님은 유다왕국의 멸망을 바라보는 예레미야에게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이 사람이 무자하겠고 그 평생에 형통치 못할 자라 기록하라 이는 그 자손 중 형통하여 다윗의 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임이니라”(렘22:30)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이는 큰 문제이다. 이 당시의 왕은 여고니아(Jechonias; 또는 여고냐)로서 틀림없는 다윗의 후손이다. 그 자손 중 형통하여 다윗의 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태복음에 기록된 다윗의 족보에는 분명히 여고냐의 이름이 나와 있고 그 이후로부터 변변한 사람이 나타나지 못하였고 마리아의 남편 요셉에 이르렀다. 그러나 요셉은 분명히 다윗의 후손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내용을 보고 성경은 역시 잘못된 부분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누가복음은 또 다른 메시야의 족보를 제시하고 있다.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누가의 족보는 다윗에 이르러 다윗의 왕통을 이은 솔로몬이 아닌 또 다른 아들 나단으로 이어져 내려갔다. 그러므로 마리아도 다윗의 후손이며 이 계보가 메시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마리아의 부친 헬리를 통해 요셉에게로 이어졌다. 어쩌면 마리아에게는 남자 형제가 없어 그 남편이 데릴사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혹시 누가 마리아의 족보를 정통인 왕위 계승자로 볼 수 없다고 말할는지 모르겠지만 이미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야의 출생의 비밀을 말하여 처녀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 예언을 하였고 복음서에서도 천사가 현몽하여 마리아의 잉태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라 증거하였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형통으로 하며 다윗의 후손이기도 하며 생리적 질서와 관계 없이 처녀가 낳은 아들이 분명하다. 이처럼 성경은 일점일획도 틀림없음을 스스로 증명한다.
III. 여호와의 신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2)
이사야는 메시야에게 임할 여호와의 신 곧 성령을 말하여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2) 라고 증거하였다. 여호와의 신은 크게 셋으로 구분되는 데 먼저 지혜와 총명의 신이시다. 지혜는 문제를 해결하는 영이며 총명은 깨달음이다. 이는 곧 완벽한 지각을 뜻한다. 두번째는 모략과 재능의 신이라 기록되었다. 이는 전술적 가치로서 어떤 것에 대응한 지략과 그를 펼쳐 낼 능력을 뜻한다. 또한 그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라 했다. 지식은 모든 자료와 모든 정보에 해당하며 그것이 완전할 때 우리는 누구를 존경할 수 있고 두려워할 수 있다.
사실 우리의 믿음은 아주 초보적인 지식으로부터 출발한다. 내 안에 있는 영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므로서 아주 간단하고 초보적인 수준에서 우리는 아무런 공로없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광을 얻게 된다. 바로 이것이 은혜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일반 우상숭배자들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 다만 우리가 얻은 구원의 은혜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또 왕이심을 믿고 우리는 그의 나라 백성인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순간적인 깨달음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한다고는 볼 수 없다. 만약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였다면 그의 말씀을 순종하였을 것이며 다시는 범죄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마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 하신 것이다.
IV. 메시야의 통치 본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삶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3-5)
이사야는 메시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의 본질을 말하여 먼저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라 증거하였다. 그 자신이 하나님이시며 통치자이심에도 그는 그 아버지 하나님을 경외함을 가장 큰 기쁨으로 삼으셨다. 아버지께서도 ‘이는 내 아들이니 내가 그를 기뻐하노라’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로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멧시지이다. 사실 우리는 아무 공로 없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으로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을 입었으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 보다 사람을 사랑하고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기뻐한다. 이는 우리가 우리 주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였기 때문이다.
두번째로 이사야는 ‘그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라고 증거하였다. 이는 우리 사람들처럼 사람을 외모로 보거나 소문에 의해서 감정적인 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오늘날 국가 지도자들을 보면 외적인 판단에 의한 치리 구조를 구성하여 큰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 말에도 인사만사(人事萬事)라는 말이 있다. 또한 사람들은 소문에 너무 귀를 기울인다. 그로인하여 잘못된 판단을 하여 큰 낭패를 보기도 하고 위험에 빠지기도 한다.
또한 그는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라 하였다. 여기서 심판과 판단은 빈핍한 자와 겸손한 자들을 심판한다는 말씀이 아니라 그들의 기준을 정하신 다는 말씀이다. 다시 말하여 누가 빈핍한 사람이 있다 할 때 그가 방탕이나 게으름에 빠진 결과라면 마땅히 심판을 받을 것이며 또 누가 겸손하다 하지만 그 겸손이 자신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도 문제를 삼겠다는 말씀이다.
흥미롭게도 이사야는 그가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라고 기록하였다. 입의 막대기란 하나님 입술에서 나온 하나님의 말씀을 뜻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참찰하나니”(히4:12) 증거하였다.
또한 계시록 기자는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계19:15)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성경의 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이 인생의 모든 것을 해결하는 카운슬러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인다는 말씀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우리에게 보혜사 곧 진리의 영이 오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라 하셨다. 또한 바울은 “그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살후2:8) 하셨다. 이는 성령이 친히 역사하여 악을 다스릴 것을 뜻한다.
끝으로 그는 ‘공의로 그 허리 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 증거하였다. 이는 모든 판단이 자신의 생각과 임으로 하지 않고 공평과 의와 성실하심을 근거로 행하실 것을 뜻한다. 많은 위정자들이 출마하여 항상 자신은 국민의 온전한 마음으로 성실히 섬기겠다고 공약한다. 그러나 그들이 당선되고 나면 그날로부터 온갖 부정에 휩싸여 버린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나라에서는 이러한 불공평한 일은 없을 것이므로 불안하지 않을 것이다.
주께서 이렇게 다스릴 수 있는 것은 그가 모든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사람의 마음을 모두 아시므로 그 누구에게 증거를 받을 필요가 없다 하셨다. 이것은 그가 갖고 계신 직관적인 지혜와 총명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것이 지식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V. 본성과 통치 질서의 변화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며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9)
여기서 이사야는 매우 흥미로운 내용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는 이 세상에서 볼 수도 없고 또 생각할 수도 없는 만화 같은 세상을 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6) 하고 하였다. 이는 이 세상의 지배구조와 통치 질서가 바뀌고 있음을 뜻한다.
원래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1:28) 하셨다. 그러나 일개 뱀의 유혹에 무너진 인간의 이성은 그 가치를 상실하고 이 세상으로 쫓겨나 짐승들과 대결구도를 갖게 된 것이다. 그는 계속하여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7) 라고 기록하였다. 이는 본성적 성품과 생체와 생리의 구조가 변화될 것을 뜻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을 하며 젖 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8) 는 말씀이다. 원래 아담의 범죄 이후 사람의 후손과 뱀의 후손은 영적 대결 구도를 갖게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이러한 영적 대결 구도가 필요 없게 된 것이다. 그 이유는 악이 소멸되고 오직 만군의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의 나라를 통치하시기 때문이다.
그는 끝으로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며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9) 기록하였다. 이 얼마나 오랜 세월 갈망해 온 여호와의 열심인가? 이 나라를 성취하기 위해 주께서 친히 십자가에 못박혀 피흘려 죽으시고 그 피의 공로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귀한 종들의 피를 더하였는가? 누가 이 날들의 역사를 서술할 수 있으며 누가 이 지혜를 측량할 수 있겠는가? 이는 오직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우리 안에 충만할 때 깨달아지는 진리일 것이다. 주여 우리의 부족함을 채우소서 내게 믿음을 더하소서 아멘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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