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상담

자살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1)

이요나 2009. 4. 20. 10:11

 

-깊은 우울증은 자살을 유발한다.

 

최근 강원도에서 집단자살이 꼬리를 물고 있어 세상을 뒤 숭숭하게 하고 있다..가뜩이나  요즘같이 세상사는 재미가 없어진 때에 연쇄 자살 소동은 우리의 마음을 우울하게 한다. 흥미롭게도 우리 말에 핑게없는 무덤이 없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죽은 사람들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죽으면 그 인생은 유구무언이다. 그가 아무리 잘났어도 그에게는 더이상 입이 없다. 그에게는 죽임에 대한 영혼의 책임이 있을 것이고 그 책임이 그에게 생명을 주신 창조자 앞에 가서 판단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죽은 사람은 그렇다치고 사실  아는 사람이 자살을 하게 되면 그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 외에 달리 가족들을 위로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할 수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머리에 남는 것은 역설과 모순뿐이다. ""라고 하는 생각의 실들이 꼬여질 뿐이다.

 

만약 한 어린아이가 수영장에 빠져 죽는다든지, 교통사고 등으로 뜻밖에 사람이 죽을 경우 무슨 말을 그 가족들에게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만을 말해 주어야 하나? 고난 중에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말해주는 것으로 족한가? 가족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는 것과 가족들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이 다를 수밖에 없다.

  상담을 해본 사람들은 누구나 느끼는 것이지만  자살은 그의 선택이라는 것이며 그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한 세상 살면서 심한 우울증에 빠지게 되는데 이 과정을 지혜롭게 넘기지 못하면 순식간의 잘못된 결정으로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 

 

물론 피상담자의 우울증이 가인의 경우와 같이( 4:6) 그의 결심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경우든 자살에 대한 우리의 해석은 사람의 마음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즉 자살은 그 사람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또 충족되지 않은 느낌의 욕구나 그들의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할 때 순간적으로 자살의 충동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결국 자살의 문제는 자기 중심적 욕구의 불만에서 비롯된다고 보아야 한다.  


   자살은 심리학적 경험이 아니라 자살은 사람의 죄성의 마음에 역사하는 죄의 행동이다 사람이 자살을 하면 사람들은 ""라는 자살에 대한 실마리와 환경을 찾아보려고 한다. 이와 같이 자살은 하나의 수수께끼이다. 그래서 아무리 설명을 잘해도 시원치 않다

 

"그 사람은 소망을 잃고 끝내 자살을 했어요,"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더니 끝내 죽었어요." 그러나 사람들은 소망을 잃은 베일을 뚫고 그 속에 있는 마음, 즉 진리와 평강에 직결되어 있는 마음을 보지 못할 때가 많다. 그래서 자살을 하는 마음의 상태를 알려면 그 사람의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깊이 조사해 보아야 한다.

  자살의 생각을 가진 우울한 사람은 자신을 무력한 회생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담자는 그의 생각에 변화를 가져오도록 장시간 사랑의 수고를 해야한다. 상담자의 목표는 특별한 불법적인 행위를 회개하게 하는 것보다 그의 죄성의 자기 중심적 합리화의 잘못된 생활패턴을 없애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살성향이 발견된 사람에게는 상담자 자신의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에서 역설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피상담자의 역설에게 초점을 맞추어주어서 조심스럽게 상담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살성향을 다루는 상담은 위기를 다루는 상담이라는 것이 다르다. 그래서 성경적상담자는 자살의 여러 가지 징후나 예표들을 알고 있어야 한다. 상담자들은 또 피상담자가 자살성향을 보이거나 자살하겠다는 말을 할 경우를 위해 위기개입절차를 알고 있어야 한다.

 

물론 자살은 신자 불신자를 불문하고 비극적이다. 그러나 신자의 경우에는 그가 그리스도를 모시고 소망을 가지고 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신자의 자살은 더욱 이해하기가 힘들어진다. 이것은 교회가 신자들의 삶과 직접적인 관계를 갖지 못하고 외형적 관계에 몰입되어 있음을 증거한다.

 

만약 교회가 그 성도와 깊은 사랑의 관계를 갖고 있고 그에게 복음의 소망을 성경을 통해서 바르게 가르쳤다면 그 어떤 환경과 심적 고통으로 심한 우울증에 시달린다고 해도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믿음의 방법을 찾으려 하지 스스로 자살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최근 사회적 사건이 된 자살의 주인공들을 살펴 보면 부끄럽게도 교회라는 이력서가 따라 붙어 있다. 아마 이들을 자살의 선택을 영결식으로 보내야 하는 목사의 마음은 어떨까 싶다. 과연 그는 주 앞에서 그의 영혼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의 죽음의 선택에 대하여 교회는 일말의 책임이 없는 것일까? 나는 그들에게 생명을 중시하는 교회의 역활이 무엇인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