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08. 2009.07.30.목
집밖의 아들이나, 집 안의 아들이나..
(사 57:19) "입술의 열매를 짓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 하셨느니라" |
몇달전부터 수요일마다 성경공부를 하러 오시는 집사님이 계신다. 가히 지극한 나이는 아닌데도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여린 매무시 속에서 고달픈 인생이 드러나 보인다. 집사님을 볼 때마다 돌아가신 어미의 가날픔을 보는듯하여 가슴이 짠해진다.
이 세상에 고달품이 없는 인생이 있겠는가마는 한평생 남편과 자식들 틈바귀에서 가슴 조리며 업치락 뒤치락 새우잠을 자는 여인들의인생은 보상받을 시간조차 없어 보인다.
집사님은 딸만 넷을 낳았다. 아들타령을 하는 시부모와 그 핑게로 외도와 술타령을 일삼는 남편의 마음을 돌려잡기 위해서라도 아들은 필생의 무기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여인의 소망과는 관계없이 줄줄이 딸을 이었다.
몸이 망가지면서 낳은 막내딸, 아들이 아니라면 차라리 나오지 말하야 할 그 생명은 아무도 반기지 않는 세상에 자기 인생을 내여놓았다. 그래도 아이는 씩씩하게 자랐고 이제는 성인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 집사님은 다 큰 이 아이로 하여 가슴앓이를 한다. 남자로 태어날 아이가 여자로 태어나서 어나서인지 이 아이는 자라면서 남자로 살아가기로 작정한 것이다.
이 아이의 언행을 볼때마다 인생의 고달품을 한하며 아이의 탄생을 원망하던 날들이 저주로 달려 오는 것 같았다. 하늘이 여자의 생명을 준 것을 어째서 남자의 이름을 주며, 어째서 남자의 옷을 입혀 키웠을꼬! 그러하여 아비의 죄를 삼사대까지 묻겠다 하신 것일까?
부모는 할 수만 있다면 자식의 저주라도 대신하고 싶다. 그러나 성경은 아비의 죄도 아비에게 자식의 죄도 자식이 져야한다고 기록되었다. 그러니 돌이킬 수 없는 인생의 한을 가진 어미의 사모친 원한을 무엇으로 갚을 수 있을 것이며, 그 무엇으로 어미와 자식의 고통을 메우며, 무엇으로 어미와 자식의 영혼을 평안케 할 수 있으랴!
바울은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증거하였다. 과연 먼데 있는 자들은 누구며가까운데 있는 자들은 누구인가?
이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로 말한바 "입술의 열매를 짓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 하셨느니라"(사 57:19) 하신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내게도 집을 떠나 밖을 헤메이는 아들이 있다. 또한 나와 함께 그리스도의 집을 짓는 아들들이 있다. 내 사랑은 날마다 함께 한 아들과 나누고 있지만 내 마음은 밖을 헤매는 아들을 향해있다. 주께서도 탕자의 비유로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그러나 집안에 있는 자식이나 집밖에 있는 자식이나 모든 인생은 하나님의 평안이 필요하다. 그것만이 인생을 구원하는 길이다.
성경은 주를 가리켜 그 이름은 기묘자, 모사이며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요 평강의 왕이시라 기록하였다. 또한 그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복을 빈 의의 왕이요 살렘 왕 곧 평강의 왕이시다.
그러니 우리가 힘써 하나님의 평안 곧 그리스도의 평안에 거하자. 그가 가까운데 있는 자에게 평안을 주셨듯이 먼데 있는 자에게도 평안을 전할 것이다. 그의 우리 모두를 평강이 치료할 것이다!
이요나 목사
->매일아침 아티클을 받으시려면 지금 [회원가입]을 해 주세요! ->오늘의 말씀에 당신의 마음을 담으시려면.. Click here!
Copyright ©2009 by holylife Ministries. All Rights Reserved.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