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한음성

가인의 표

이요나 2010. 3. 20. 09:34

강호순, 조두순 사건이 우리 기억에서 씻기기도 전에 또다시 등장한 김길태의 성범죄는 참으로 견딜 수 없는 사회적 고통이다.

인간으로서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끔찍한 일들이 우리 삶의 현장에서 조금도 꺼리김없이 자행되고 있다. 

이제 여성 혼자서는 한적한 길을 산책할 수도 없고, 으슥한 골목길은 왕래할 수조차 없는 시대가 된 것 같아 서글퍼 진다. 

그러나 이런 성범죄는 어제 오늘 일만이 아니다. 인간이 이 땅에 존재하던 날부터 끊임없이 타고 내려 오던 악마의 발자국이다.

 

이 사건으로 이귀남 법무부장관은 청송교도소 안에 사형장을 신설할 것을 밝히며, 보호감호, 보호관찰 치료감호제도를 포괄하는

 보안처분제도를 부활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는 지금의 현행법의 형벌을 보충하고 범죄자의 재범 가능성을 예방하여

사회적 보위를 한다는 목적으로 국가가 시행하는 강제처분이지만

과연 이러한 제도가 범죄한 인간의 성적 본능을  얼마나 제어 할 수 있을른지 의문이다.

 

이미 외양간을 뛰쳐나간 망아지 울음소리가 지옥을 채우고도 남겠거늘...

뒷북을 치며 온 세상을 감옥으로 만든다 한들, 과연 성난 육체들의 질주를 잠재울 수 있을지 또한 의문이다.

 

 정부의 이러한 강경한 제도적 장치가 범죄를 근절시킬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다.

정부가 이처럼 강경한 칼날을 드는 것은  불안에 떠는 민초들의 마음을 달래고자 하는 일시적 방편에 불과하다.

 

이럴 때마다 내가 가슴 아파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성경적 논리가 세상에서 외면되고 있는데 있다.

날이 갈수록 성범죄가 팽대하고 악랄해지는 것은 국가적 제도장치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 그리스도의

의와 거룩함과 사랑을  실천해야 할 교회가 영적 교만에 빠져 심히 부족하고 나약한 존재로 전락해버린 결과라고 하는 것이 옳다..

 

   - 과연 인간은 정녕 이런 성적 고통으로부터 자유스러워질 수는 없는 것일까?

  - 과연  성적 기능이 인간의 본능일진데,  인간의 생육과 번성을  계획하신 창조주의 뜻은 무엇인가?

  - 조두순이나 김길태를  생각하기에 앞서, 성적 유혹 앞에 무력한 인간의 존재에 대해 자괴감마저 서린다. 

 

   -  광할한 우주정복을 향해 도약하는  문명의 시대를 창출한 지혜자 인간!

   -  과연 인간은  자기 안에 있는 극히 작은 성기(性器) 하나  다스릴 수 없는 미약한 존재였던가?

 

인종과 시대를 막론하고 성폭행은 남성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 일에는 인격도 지위의 우선순위도없다.

동서고금의 옛 왕조로부터 위대한 통치자, 예술가, 작가 그리고 고고한 인격을 자랑하는 많은 선생들과 

신의 사제라 칭하는 성직자에 이르기까지 육체의 작은 열쇠하나를 간수하지 못한다..

 

만약 누가 자기 의를 자랑하며, 나는 벌거벗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그에게는 가인의 표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는 아직도 용서받지 못한 육체가 살아 숨쉬는 저주의 아들이다.  

 

김길태의 성적만행이 불거질 때마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성범죄자에 대한 형집행 강화를 외친다.. 

이럴 때 범죄자의 편에서 동정의 말을 거든 자가 있다면 민중의 돌팔매질은 용서치 않을 것이다.

 

최근 현장 검증을 받는 김길태의 얼굴과 과거 사생활의 인적사항이 공개되면서

일부 시민단체들은 차재에 불궈진 범죄자들의 인권문제에 대하여 우려를 하고 있다.

그들이 비록 죄인일지라도 최소한의 인권은 보장되어야 한다는게 그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들은 찬반을 가르는 양날의 칼일 뿐이다.

그 어느 편의 논리도 사람의 마음을 시원케 하지 못한다.

 

보혈의 공로가 있어 죄의 흔적들을  덮어, 남은 인생을 그의 이름으로 살게 하신 은혜를 입은 자들은 정말 행복하다.

다윗은 이를 노래하여 "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시32:1-2) 고백하였다.

이처럼 죄의 고통을 쏟아낸 사람들은 정말 행복한 사람들이다.

나 또한 어쩔 수 없는 죄중에 태어난 사람이요, 죄인의 괴수 중에 한 사람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오늘날 내가 상담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넉넉한 소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내려놓은 죄의 행위들은 내가 쏟아 놓은 피고름의 고통들에 비하면  작은 먼지와 같기 때문이다.

 

만약 주께서  나의 무수한 죄들을  은혜의 주머니에 싸두지 않으셨다면  

내 이름은 죄인의 장부책에서 심판의 날을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내가  소망을 찾는 고통들에게 주의 은혜를 전하는 것은,  

"너희가 서로 짐을 지라"하신 주의 권고가 계시기 때문이다..

 

아직 우리 앞에 다윗의 고통이 통곡하며, 애통하는 바울의 권고가 남아 있으니,

나는 늦었다고 말하지 말 것이며,  내게는 돌아갈 처소가 없다고 말하지 말라

아직 우리 앞에 빛이 남아 있으니 영혼을 귀히기시는 그의 은혜를 전심으로 찾을 것이니라

 인간의 생명은 영의 구원에 있느니라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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