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12:1)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우리는 성경에서 모태로부터 택함을 받은 야곱을 본다. 그는 믿음의 모델로 제시된 사람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에 삶에서 무엇을 취하야 할 것인지 또 무엇을 본받아야 할 것인지 혼란스럽다. 그의 한평생이 젊어서나 늙어서나 고통과 괴로움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야곱은 모태로부터 받은 하나님의 기업에 대하여 소망과 열정을 가졌으나 오랜 세월 처절한 인생의 값을 치루면서 그는 한 촌부의 삶을 살고자 스스로 방향을 바꾼다. 이것이 야곱이 세일도 아니고 벧엘도 아닌 세겜을 택했던 이유다. 이처럼 장래에 대한 열정보다 현실의 안위가 더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이 인생이며, 그러함에도 자기의 인생을 스스로 만들어 가지도 못하는 것이 사람이다.
오늘날 우리가 한 세상 살아가면서 세상살이가 힘들 때마다 어떻게 한 세상을 잘 살아 갈 수 있을까? 과연 내가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이러한 의문과 질문은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렇다고 할 때 과연 우리 믿는 자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나은 것이 무엇일까?
성경은 우리에게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 같이 보내는 일평생에 사람에게 무엇이 낙인지 누가 알며 그 신후(종국)에 해 아래서 무슨 일이 있을 것을 누가 능히 그에게 고하리요”(전 6:12)라고 증거한다.
그럼에도 코에 호흡이 있는 한 자기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 사람이다. 이 땅의 사람들이 인생 중에서 이러한 의문과 염려들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은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것이 인생살이이기 때문이다.
누가 자기 인생의 모든 날을 알 수만 있다면 그는 스스로 자기 인생을 개혁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그는 인생의 최고의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고대로부터 수많은 선지식들이 인생의 지혜를 얻고자 영혼의 문을 세우고 진리를 찾아 헤매었다.
그러나 이 땅의 그 누구도 스스로 자기 인생의 지혜를 얻지 못하였고 이 땅의 모든 사람이 자기 앞에 놓은 자기 인생과 씨름을 하다가 호흡이 그치면 인생의 값은 한 줌의 흙이 되어 돌아간다.
지혜자 솔로몬은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 것을 네가 알지 못함 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전11:5) 하였고 다시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전11:2) 기록하였다. 이는 인생이 자기 것도 아니며 무엇을 하였다 하여 재앙을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증거한다
그러나 솔로몬은 다시 “구름에 비가 가득하면 땅에 쏟아지며 나무가 남으로나 북으로나 쓰러지면 그 쓰러진 곳에 그냥 있으리라”(전11:3) 하였다. 이는 인생이 자기 것이 아니로되 자기가 행한 일에 대한 책임이 자기에게 있음을 뜻한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인생 중에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 4:17,18) 하였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 곧, 그 비밀한 것을 찾아 나서야 할 것이다. (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