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이 사라지고 있다
우리는 자기를 높이고 자랑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문화 속에 살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어디를 가나 자존심이나, 긍정적 느낌이나, 자신의 존엄을 찾도록 권장한다. 도덕적 책임 대신에 나는 희생자라는 사상이 팽창하고 있다. 그래서 자기의 잘못은 인정치 않고 자기의 잘못이나 실패의 원인이 다른 사람에게 있다고 가르친다. 이것은 성경에서 가르치는 인간의 타락이나, 죄나, 회개나, 겸손이나, 양심이나, 정직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성경에서는 옳고 경건한 것을 강조하고 있다: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하나님은 또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추와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힌을 사용하라 나는 너희를 인도하여 애굽 땅에서 나오게 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라고 엄히 말씀 하셨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의 도덕적 기준이다.
“요셉이 형제들에게 팔려 애굽에 갔으나 하나님의 섭리로 총리대신이 되어 국정을 전부 책임지고 있을 때 그의 형제들이 기근으로 인해 애굽으로 양식을 구하러 왔다.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 양식을 담은 자루 속에 자기들이 지불한 돈이 그대로 들어 있는 것을 알고는 몹시 두려워하고 근심했다. 그의 부친 야곱도 이것을 알고는 “너희 손에 돈을 배나 가지고 너희 자루 아구에 도로 넣여 온 그 돈을 다시 가지고 가라 혹 차착이 있었을까 두렵도다”하고 정직하지 않다는 비난을 받을까 고심한 흔적을 본다. 또 초대 교회 때에 아나니아와 삽비라라는 부부가 있었는데 바나바가 재산을 팔아 교회에 바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 받는 것을 보고 자기들도 재산을 팔아 그 일부를 교회에 바치면서 그것이 판 돈의 전부라고 속인 것이 하나님과 성령님을 속인 것이 되어 즉석에서 쓸어져 죽어 사람들이 이를 보고 두려워했다는 이야기가 사도행전에 기록돼 있다. 양심의 기준이나 도덕의 기준이나 정직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만이 기준이 된다.
그러나 교회가 심리학과 자존심등의 침투를 받으면서 이제 오랫동안 세상의 생각이나 의견들과 입을 맞추며 살어 왔다. 특히 심리학과 자존심의 분야서 이런 것이 더욱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 결과 우리 사회의 양심은 마비되고 죄는 다른 색종이로 포장되어지고 있다. 심리학의 이와 같은 비참한 유산 때문에 마약과, 음란과, 윤락행위와, 범죄가 만연해 있어도 정부에서나 정치계에서나 교육계에서나 교회에서도 이에 대해 정직하게 도전하는 사람을 보기 드물다. 갱들의 폭행 때문에 거리가 일선의 전투장을 방불케 하게 된 곳이 미국에서 매일 한 두 곳이 아니다. 형무소는 죄수들로 비좁아지고 그 운영의 빈약함이 말이 아니다. 이런 것이 어제 오늘만의 일이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러나 지난 세대와는 달리 거룩하신 하나님의 변개될 수 없는 도덕법이 지금과 같이 악독하게 침해되기는 전례가 없었던 것 같다.
Los Angeles시 경찰국의 부 국장을 지냈던 Bob Vernon은 날로 증가하고 있는 도덕적 파렴치범들을 경고했다. 이들은 범죄를 직업으로 삼고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나 후회감 없이 극악한 행동을 하는 자들이다. Bob의 말에 의하면 “Cool Aid"라는 별명을 가졌던 한 갱단 원은 고등학교 동창회 퍼레이드(homecoming parade)에서 여왕의 신하들을 태우고 가는 이동식 무대 차에 총탄을 난사했다. 그러자 여학생 몇이 부상을 당하고 한 사람은 중상을 입었다. 이 범죄는 백주에 만인 앞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범인은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다. 그런데 범인은 아무런 가책이나 후회함이 없이 이렇게 그의 범행 동기를 설명했다: “나는 성병이 있어 치료를 받아야 하고 또 이가 아파 치료를 받아야 하며 형무소에서 운동을 함으로 체중을 줄여야 하기 때문에 형무소에 가려고 일부러 범죄를 했다. 그리고 형무소에 가려면 먼저 나의 힘을 과시하고 내 이름을 낸 다음에 형무소에 가는 것이 좋기 때문에 만인 앞에서 이런 멋진 일을 했다”고 태연하게 말을 했다.
이 범죄는 미국 사회와 가정에서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범죄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명확히 보여준다: 그것은 곧 양심이 상실돼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양심의 상실을 이제는 그렇게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 이 사회의 흐름이 된 것 같다. 이런 흐름이 미국 사회를 황폐하게 만들고 있지 않는가. 이뿐 아니다. 오히려 사회의 법을 어기고 또 그것을 자랑하며 과시하는 것이 명예의 배지(badge)가 되어가고 있다. 중요한 변화는 이러한 범죄 행동에 대해서 사회가 보이는 반응도 변화된 것이다.
과거에는 죄라고 여기든 것을 이제는 사람들이 이를 찬양하는 모습들이 여기 저기에서 보인다. TV에 나오는 쇼들을 보면 하나 같이 전부 하나님의 도덕법을 어긴 죄들을 자랑한다: 가정이 파괴되고 이혼한 것을 자랑한다. 미성년 여자들이 성행위를 하고 임신하고 아무런 대책 없이 어린이를 출산하는 일들을 태연하게 자랑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남을 속이고 정부를 속여 거짓으로 치부한 것을 자랑한다. 그러면 관중들은 박수를 치며 이를 성원해 준다.
이 사회가 이제는 선과 악을 가리지 못하는 것 같다. 인본주의 문화의 상대성이 이 사회를 완전히 도덕에 대해서 전혀 무관심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성경학자 Clarence Lavender는 현재 학교에서 학생들이 학문을 배우는데 7가지 단계 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했으며 이것을 “가치 해명법”(values clarification)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모든 것에는 절대적 표준이 없다는 것을 가르치는 인본주의 사상이다. 이들은 진리란 언제나 개인적이며 상황적이라고 가르친다. Sidney Simon도 그의 저서 Helping Your Child Learn Right from Wrong: A Guide of Values Clarification에서 모든 것에는 잘못된 해답이나, 잘못된 태도나, 잘못된 반응 같은 것은 없다고 말했다.
“가치해명”의 두드러진 특징은 진리는 절대적이 아니며 개인적이고 상황적이라는 것이다. Values in Sexuality: A New Approach to Sex Education 에서도 공저 저자인 Morrison과 Price는 모든 것에는 옳고 그른 것이 없으니 언제나 처음에 떠오르는 생각대로 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치해명”이 처음에는 가정과 정치와 사회관계에서만 논의 됐던 것이 이제는 낙태와 안락사 등에 까지 적용되게 되었다. 가치에는 옳고 그른 것이 없다는 인본주의 사상이 결국 우리의 가정과 학교와 나라를 망쳐왔고 또 계속 망치게 될 것이다.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는 말씀은 이미 옛말이 되고 만 것 같다.
만일 인본주의가 가르치는 데로 옳고 그른 것이 없다면 Charles Manson이나 John Hinkley나 Adolph Hitler등이 범한 일들을 어떻게 보겠는가? 그들이 행한 것이 옳았단 말인가? 그럴 수 없다. 배중률(排中律-Law of Excluded middle)에 의하면 정확히 진술된 명제는 옳거나 틀린것중 하나라는 것이다. 육백만의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의 행동은 객관적 도덕 기준을 범한 것이다. 이러한 도덕기준은 무엇이나 옳지 않으면 틀린 것이라고 말한다.
“가치해명”의 근본 뿌리는 무신론이다. 잡지에서나, 신문에서나, 텔레비전에서나, 영화에서나, 학교에서나 이것을 은연중 가르치고 있다. 온 나라가 직접 간접으로 무신론에 근거한 교육을 받아 왔으면서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러한 악 때문에 성경적 가치관이 침해를 받아왔다. 아희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가치관에 혼돈된 것을 보이면 부모는 즉각 이를 시정해 주고 이 문제를 선생들과 의논하며 그들의 가치관에 대해 알아보아야 한다.
성경은 절대적 진리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성경을 주셨기 때문이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너는 두루마리 책을 취하여 내가 네게 말하던 날 곧 요시야의 날부터 오늘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와 열방에 대하여 나의 네게 이른 모든 말을 그것에 기록하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이제 우리에게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밖에는 소망이 없다. 우리가 사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뿐이다. 이 길만이 개인이 거룩해지고 가정이 거룩해지고 사회가 거룩해지고 나라가 거룩해지는 길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애타게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신다: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를 받으라).” 아멘 주여! 우리를 도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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