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탈출

동성애에 대한 교회의 책임

이요나 2011. 9. 28. 15:58

동성애에 대한 교회의 책임

 

이 요 나 목사 (성교육상담협회 홀리라이프 대표)

 

 

인간사회에서 동성애만을 놓고 논할 때 찬성론자이든 반대론자이든 동성결합에 대한 불유쾌감은 공통된 감정일 것이다. 이 행위는 최고의 합리적 이성적 질서를 추구하는 인간에게 있어 복종할 수 밖에 없는 굴욕적인 본능의 수치이기 때문이다.

 

본성적이든 의지적이든 질서의 궤도를 상실한 동성결합 행위는 창조적 순리의 역행이며 성결의 반역이며, 인격 모순의 수치이다. 이러한 이성적인 논리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설혹 크리스천들 중에서도 동성결합행위의 모순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손치더라도 원초적 순리의 질서는 부정될 수 없으며, 이 진리를 거부하는 자들은 그들이 누구이든지 간에 판결을 받기 위해 준비된 악령의 지체들일 것이다.

 

그러나 믿는 우리가 돌아 보아야 할 것은 성경은 동성애적 범죄를 정죄함에 있어 구원의 메시지를 준비해 놓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셨고, 부활의 영으로 보좌 우편에서 믿음의 승리를 보증하고 있다. 이 부활의 능력이 성결의 영과 함께 진리를 섬기는 사람들 속에서 역사하고 있다. 이는 하늘의 영이든 이 땅의 흑암의 세력이든 그 어떤 정사와 권세도 그를 대항 수 없음을 뜻한다. 이 위대한 권세를 그리스도의 지체된 우리 교회가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위대한 영적 지도자라 해도 동성애에 대하여는 정죄의 논리만을 내세우며 정작 동성애자들을 그 죄의 사슬에서 온전케 할 수 있느냐 하는 복음적 해답과 믿음생활의 체험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는 동성애자들이 말하는 호모포비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동성애를 논하기 이전에 먼저 구원의 능력에 대한 확고한 성경적 지식과 복음적 지혜와 갖추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이 종말의 시대에 동성애를 비롯한 흑암의 세력들이 이미 교회 안으로 들어 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 오지 못할 세력을 말하여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고전 6:9,10) 단호하게 증거하였고 그러한 문제 속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향하여는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고전 6:11) 하고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였다.

 

우리가 성경을 보건데 구약의 시대에는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 동성애를 비롯한 성적이탈 행위들은 여지없이 죽음으로 다스렸다. 이는 인간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음행과 간음, 그리고 동성애를 죽음의 다스리지 않으면 이 죄악들이 하나님의 백성들 속에 누룩처럼 퍼져나갈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으로 정죄하여 죽음으로 다스린 것이다. 그러나 복음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인간의 그 어떤 죄라도 능히 사하실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권능으로서, 죄의 사슬을 풀어 사망에서 영생에 이르는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졌다.

 

이 은혜로 말미암아 불의로 영원히 사망에 처할 우리를 의로운 자의 이름을 얻게 하셨고, 그 은혜를 더하여 불의에 속한 모든 죄의 습관들을 벗고 의로운 삶의 증인으로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도록 그리스도의 날을 정하셨으니 그날은 우리가 두려움과 떨림으로 소망하는 주의 날이다.

 

그러나 믿는 우리라도 하나님의 공의는 모든 죄인은 심판하시므로 죄의 속성에서 자유스럽지 못한 우리가 그 앞에 설 수 없으니, 주께서 은혜를 더하여 우리를 능히 새롭게 할 능력의 말씀과 성령을 주시어 미리 아신 자들을 택하여 교회에 세우시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쳐 지키게 할 직분을 주셨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인 교회인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에게 주신 성경에 대하여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딤후 3:16,17) 기록하였고, 다시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 4:11,12) 증거하였다.

 

그러므로 오늘 그리스도의 지체라 하는 자가 아직 불의한 생활을 떠나지 못하여 죄의 지배를 받고 있다면 그는 거룩한 성령으로 하나된 그리스도의 지체의 가시로서 우리 온 몸의 고통인 것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이 고통의 지체를 사랑할 책임을 우리에게 명하셨으니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하신 말씀이다. 이 사랑의 실천이 한 몸 된 지체의 고통을 해결할 의무와 책임으로 너희가 각각 서로의 짐을 지라 하신 말씀이다.

 

또한 성경은 교회를 향하여 엄히 이르시되 알 것은 이것이니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며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며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며 아비를 치는 자와 어미를 치는 자며 살인하는 자며 음행하는 자며 남색하는 자며 사람을 탈취하는 자며 거짓말 하는 자며 거짓 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자를 위함이니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음이니라 (딤전 1:9-11) 기록하였다.

 

이 메시지는 복음의 일군들에게 주신 것으로, 거룩함에 들지 않은 죄인들을 거론하며 특별히 음행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를 지목한 것은 더러운 영들의 역사인 성적인 문제를 교회가 교리적 차원에서 다스려야 함을 명시한 것이다. 이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 된 교회들은 이 사명에 대하여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교회는 어떠한가? 모든 교회들이 전도라는 대명제 아래 교회성장과 부흥에만 전전긍긍하고 있지 않는가? 주님은 한 마리 길 잃은 자의 비유를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뜻은 한 사람도 잃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셨거늘 예수를 믿어 구원받은 자들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성적인 타락과 죄들을 끊어내지 못하고 죄의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가? 과연 교회들은 이 죄의 형상들이 그대로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그러나 성경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기록하였고,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같이 온전하지 못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하셨다.

 

그러므로 더 이상 우리가 동성애자들을 정죄하는 것으로 묵과하지 말자. 그들도 하나님이 창조한 사람이요 믿음 안에서 우리의 형제요,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 그들 속에 역사하는 죄악들에 대하여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은 우리가 함께 혈연의 인연을 갖고 태어났고 이제는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의 한 지체로서의 의로운 삶의 책임과 성결의 의무를 가진 자로서 함께 기업을 받을 자들이다.

 

그러므로 강한 믿음을 가진 우리가 알 것은 자기 자신도 육체 됨을 돌아보며 아직 믿음이 연약한 자를 받되 비판을 하는 자가 되지 말고 그들을 도와 함께 인생의 문제를 극복할 믿음의 지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 7:1) 하셨고 다시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 7:5) 하셨기 때문이다.

 

이 사명을 위하여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 6:1) 하였으니 여기서 바로잡는다(restore)의 의미는 범죄로 구멍난 인생을 기워주라는 뜻이 아닌가? 이를 위하여 성경이 말씀하시기를 성령으로 교회 안에 사도와 예언자와 전도자와 목사와 교사를 두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여, 그들로 봉사의 일을 하게 하려 함이라 증거하였다(4:11).

 

그러면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름을 받은 우리가 무엇으로 그들을 온전케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가지 커다란 자원을 주셨는데, 첫째는 성경말씀이요, 또한 성령이며, 거룩함에 이르는 기도생활이다.

 

먼저 성경의 권위와 가치에 대하여 바울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딤후 3:16,17) 기록하였다.

 

4가지 순서는 바뀔 수 없는 계획으로서 교훈은 올바른 성경적 교리를 뜻한다. 성경의 교리가 뒤틀리면 믿음의 토대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또한 책망이란 성경이 금한 인간의 모든 죄를 죄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실천 속에서 회개와 죄의 고백이 이루어 지기 때문이다. 세번째로 바르게 함이란 똑 바로 세운다, 교정한다라는 뜻이다. 태어남으로부터 자기 중심적이고 인본주의로 고질화된 체질을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최종적인 것은 지속적인 제자훈련을 통해서 완전한 의의 사람으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곧 적합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선한 일을 실천하기에 적합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모든 성경말씀은 죄인된 인간을 변화 시키는 원동력이며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어디 그뿐인가? 하나님은 그 말씀이 우리 안에 역사할 수 있도록 실제적인 권능을 설치하셨는데 비로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보혜사 성령이다. 그가 우리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가르치신 모든 말씀이 생각나게 하시며,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증거하시며,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하신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삶을 소망하는 모든 사람들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권능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말씀과 성령의 능력 안에서 우리의 온전한 믿음을 주관하실 하나님께 기도로서 소통하는 것이다.

 

이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셨고, 손수 기도의 모범이 되셨다. 바울 또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진다고 권면하였다. 이 충만한 하나님의 자원이 능히 우리 안에 역사하여 죄된 모든 속성을 끊어내고 우리로 거룩하고 의로운 그리스도의 백성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서로를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기를 주께서 나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고 좀더 신령한 자가 되어 온유한 심령으로 죄의 고통을 벗지 못한 자들을 바로잡아 나 또한 의로움의 증인이 되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성경은 형제 사랑의 책임을 가진 우리에게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니라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만 있고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임이니라 ( 6:3-5) 하였고 또 의로운 길로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하였다.

 

동성애 이는 하나님을 거역하며, 대적하는 영들의 역사이다. 그러나 인간은 본래부터 이 악한 영들의 굴레에서 사망에 이르도록 살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이 악한 사슬에서 우리를 풀어내심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의 은혜이다. 이 은혜에 먼저 부르심을 받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온전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마땅하다. 우리 안에 형제 사랑의 중보가 넘쳐날 때에 그리스도의 나라가 더욱 더 굳건해 질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은 한 사람도 잃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멘! (JONAH)

 

이요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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