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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은사5) 믿음의 꽃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이요나 2000. 7. 21. 04:19
(믿음의 은사5) 믿음의 꽃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서론*

우리가 오늘 살펴 보고자하는 백부장은 가버나움에 와 있던 백부장입니다. 가버나움은 헤롯 대왕(눅1:5)의 아들 헤롯 안디바(눅3:1)가 분봉왕이 되어 다스리는 지역이었습니다. 이 때는 헤롯 안디바는 번왕(번방왕, 분봉왕)으로 갈릴리와 요단강 서쪽의 베레아 지방을 다스리고 있었고 예수께서도 안디바가 다스리던 가버나움을 제2고향(마4:12)으로 삼고 계셨던 시절입니다. 예수께서도 안디바를 가리켜 "저 여우"(눅13:2)라고 말하신 바 있었습니다. 누가의 기록에 의하면 백부장의 부탁으로 장로들이 예수께 나온 때는 산상수훈을 마치신 후였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로서 종교적 활동의 자유만이 보장된 채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로마의 정치는 황제의 주권적 통치권 속에 원로원이라는 심의 기관에 의하여 치리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원로원은 최고입법과 사법기관으로 로마를 명실공히 세계적인 법치국가로 만드는데 기여하였습니다. 따라서 로마의 권력구조는 황제를 통한 총독체제와 원로원을 통한 총독체제가 있었습니다. 방대한 이방체제를 다스리기 위하여는 원로원에서 임명한 총독들이 파견되었지만 늘 위험부담을 갖고 있는 팔레스틴과 같은 지역은 로마의 정통 통치 권력 구조인 가이사 황제가 파송한 총독에 의하여 다스려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헤롯 안디바나 아켈라오(마2:22)같은 분봉왕(번왕)들은 사실상 총독의 권력구조의 지지를 받아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총독이 병력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총독과 분봉왕 사이에는 자연히 서로 보이지 않는 정치적 알력다툼이 생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 로마의 통치제도 *
그 당시 로마는 두가지 국가통치 정책을 수립하였습니다. 문화가 발달한 지역에서는 원로원 통치를 통한 절차법을 확립하였고 식민지에는 총독을 두어 무력으로 통치하였습니다. 또한 로마의 총독체제는 둘로 구분되었는데 빌라도와 같은 사람은 황제가 임명한 총독으로 원로원의 통제를 받지 않고 황제의 지휘를 받아 군사를 지휘하여 식민지를 지배하였습니다. 그러나 구부로의 총독 서기오 바울(행13:7-12)과 같은 총독은 원로원에서 임명한 총독으로서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는 원로원의 법적 절차를 밟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므로 수리아 총독 구레뇨(눅2:2)는 로마 황제가 직접 임명하여 황제의 대사와 같은 성격을 갖고 군정을 실시하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황제가 임명한 총독은 어떠한 문제를 처리함에 있어서 원로원의 심의 절차를 밟지 않고 군대를 동원하고 발포명령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당시 이러한 권력구조 속에 로마의 꽃이라 불리던 백부장의 세력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짐짓 짐작할 수 있습니다. 로마와 같은 국가의 질서가 바로 잡힌 지역에서는 로마의 꽃으로 추앙받는 백부장들이었지만 팔레스틴에 주둔한 로마의 백부장은 식민지역에서 어떠한 소요사태가 일어나면 주동자를 잡아다 무조건 매질을 하는 무지막지한 군장이었습니다. 매에 장사 없다고 "먼저 매로치라"는 식이였지요. 그래서 바울이 잡혀서 매질을 당할 때 "너희가 로마 사람을 정식 재판도 없이 매로 치느냐?"고 이의를 제기한 것입니다.

이 당시 로마법은 로마시민의 자존심이었고 로마 시민이 당하는 굴욕은 로마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따라서 식민지 국가에서의 이들의 강포는 세례 요한의 가르침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기에게 나아와 자신의 갈 바를 묻는 로마군인들에게 "백성들에게 강포하지 말고 무고하지 말고 너희의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눅3:14)고 가르쳤습니다. 로마병정은 하루에 한 데나리온을 받았는데 그것은 당시 정정들이 받는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가치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백성들에게 횡포를 가하여 금품을 강탈하였습니다.

*유대인의 사랑의 댓가 *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가버나움의 백부장은 다행히 이러한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복음서에는 장로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 사람으로 말하면 저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음으로 그의 청을 들어주는 것이 합당합니다"(눅7:2-5)고 말하였습니다. 물론 장로들도 유대인의 종교적 지도자들이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는 세력들이었으나 그지역을 관장하는 백부장의 부탁이었음으로 어쩔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께 고한 그의 성품은 참으로 진실한 사람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그 백부장의 성품을 살펴보건데 그는 '히브리인'을 사랑하였다는 것입니다. 즉 유대인을 사랑하였다는 것인데 이것은 참으로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는 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이야기의 근원은 히브리인의 시조 아브라함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아브라함을 불러내시고 그에게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라"(창12:2,3)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로부터 이 땅의 민족들이 히브리인 즉 유대인을 환대한 민족들은 복을 받았고 그들을 학대하고 저주한 민족들에게 환난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미국이 축복을 받은 것도 이 언약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미국은 유대인의 삶의 터전이 되어 그들을 보호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들도 유대인을 만나면 무조건 그들을 축복하십시오.

주께서도 주의 영광의 날 이 땅에 오실 때 각 민족을 불러모으고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리듯이 이 문제를 논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내가 주릴 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하셨고 그들이 우리가 언제 주께 그렇게 하였나이까? 하고 반문하자 예수께서는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라"(마25:32-46)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만일 이스라엘에 어떤 재난이 임하던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도울 일이 생기면 우리는 이 말씀을 꼭 기억해 두고 그들을 섬겨 주어야 할 것입니다. 또 국가적인 정책으로도 이스라엘에 해가 되는 어떠한 외교 및 경제 정책을 가져 안 될 것입니다. 즉 우리에게 유리한 일이 있다고 하여 이스라엘과 대적관계를 가진 국가들을 돕는 일과 같은 국가정책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민족의 지혜로운 태도라고 하겠습니다.

*로마정부의 골치덩이들 *
이 당시 유대인들은 종교적 자유가 보장된 채 로마로부터 식민지 통치를 받고 있었습니다. 로마가 이들에게 골치 아픈 종교의 자유를 허락해 준 것은 유대민족에게 하나님을 믿는 종교활동은 그들의 생명과도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전 세계 가운데 수천 년 역사 속에서 변하지 않는 민족이 있다면 오직 유대인들 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그 엄청난 민족적 수난을 당하면서도 소위 유대주의(Judaism)이라는 민족정신은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멸망은 주전 73년 경 로마의 폼페이우스(Pompeius) 장군이 팔레스틴 일대를 정복함으로서 헬라의 마지막 세력인 수리아를 꺾어 버림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때는 주께서 태어나신 지 30년이 지난 때임으로 로마의 통치가 시작된지 이미 100년의 세월이 지난 때입니다.

그러면 그 당시 로마정부를 골치아프게 한 사람들은 누구였을까요? 대제사장 아니면 장로집단이었을까요? 아니면 바리새인들 또는 사두개인 그리고 서기관들과 같은 종교 골수분자들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각자 자기의 세력들과 분당을 만들어 로마정부와 원내 교섭 단체까지 둔 아부세력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 민족자치 회의인 70인 산헤드린 공회를 구성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분포는 바리새인, 사두개인, 교법사, 그리고 서기관들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들은 감시 대상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반 로마정책을 갖가진 자들을 색출해 내는 협조세력이었던 것입니다. 사실 로마정부에 대항하는 세력은 메시야를 기다리는 유대주의자(Judaism)들이었습니다. 바로 이 세력들이 주 후 135년 즉 2세기에 시몬 바르 코크바라는 사람이 주동이 되어서 로마에 대항한 커다란 전쟁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유대민족을 사랑한 이 백부장은 그 당시 로마군부 세력으로서는 있을 수 없은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 사람을 사랑하는 자 *
그가 유대민족을 사랑하였다는 것은 이들의 종교적 이념과 사상을 사랑하였다는 것이며 이들이 갖고 있는 메시야 사상에도 지대한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사람은 종교성이 강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 이 사람은 자기의 사랑하는 종의 병을 위하여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였다는 것입니다. 즉 자기의 가족이 아니라 자기가 사랑하는 하인을 위하여 이스라엘의 신종교주 예수를 청한다는 것은 위세 당당한 로마군대의 백부장으로서는 굴욕적인 처사이였던 것입니다.

이미 그는 그 종을 위하여 자기가 취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은 다 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의학으로는 도저히 그를 살릴 수 없다는 판단아래 그 당시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었던 예수에게 의뢰한다는 것은 참으로 용기 있는 결단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는 그 일을 위하여 자기의 권력구조를 동원하지 않고 유대인의 민족 조직은 장로들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청하였다는 것은 그의 온유한 성품을 나타내는 것임을 물론 그는 예수를 유대인의 역사 속에 열망하던 메시야라는 확신을 갖고 있는 사려 깊은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장로들의 청탁을 받은 예수께서는 쾌히 그들과 함께 백부장의 집으로 향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집이 가까워지자 그는 자기의 벗들을 보내어 "주여 수고하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치 못할 줄을 알았습니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저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제 아래에도 군병이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제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라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함께 따라 온 무리에게 이르시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 보지 못하였다" 하셨습니다.

*두 믿음의 대조 *
백부장의 전언을 살펴보면 백부장은 예수님에 대하여 너무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장로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소개하던 대목을 통하여 예수께서는 그에 대한 지식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백부장은 진실로 서로에 대하여 잘 아는 사이였음은 분명합니다. 유대인의 장로들은 예수를 랍비로 인정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께서 자기 집에 가까이 다가오자 감당 할 수 없는 권세의 위력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미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이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복음서를 통하여 예수께 나아와 질병의 치료를 청탁한 로마관료 둘 사이에 대조적인 차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요한 복음에 나오는 왕의 신하였고 다른 한 사람은 오늘 우리가 만나는 백부장입니다. 왕의 신하에게는 그의 청탁에 함께 가지 않고 그의 아들을 고쳐 주었고 백부장의 청탁은 받아들여 그에게 찾아갔었다는 점입니다.

이 두 경우 왕의 신하에게도 예수께서는 그가 알고 있는 메시야 사상에 대하여 바로잡아 주기 위한 것이었고 백부장의 청을 받아 주께서 그를 향해 나아가신 것도 그가 알고 있는 메시야 사상의 부족한 지식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왕의 신하에게는 메시야(하나님)는 무소부재하심을 깨닫게 하신 것이고 백부장에게는 하나님(메시야)은 아무도 가까이 하지 못하는 영광의 위엄이신 것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향한 믿음은 우리가 그를 알고자 나아갈 때 주께서 친히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일깨워 주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