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강좌/성령은사

(지식의은사1)가방끈이 짧아도 지식은 있다?!

이요나 2000. 8. 1. 09:57
(지식의은사1)가방끈이 짧아도 지식은 있다?!

*서론*
하루는 주께서 제자들에 "사람들이 나를 무어라고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 때 제자들은 "세례요한이라고도 하고 어떤 이들은 엘리야 혹은 예레미야라고도 합니다"(마16:13,14)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으신 주께서는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16:16-17)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알게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알게 하신 것이 지식의 말씀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게 하신 것은 바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것을 지식적으로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늘 의심과 회의가 쌓이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영이 사람 마음 가운데 오셔서 우리가 예수를 자신의 주로 영접하는 순간 하나님의 성령이 그에게 지식을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창조주이시며 말씀이신 것을 그리고 장차 오실 것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께서 "하나님께서 너희를 부르지 아니하면 한 사람도 내게 올 자가 없다" 고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가 누구이심을 알게하는 지식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지식의 말씀을 받았다해도 항시 써먹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사의 주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그의 때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엘리사를 통하여 어떻게 지식의 은사가 나타났는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가방끈이 짧은데.. *
우리들은 지금 성령의 은사에 관하여 살펴보고 있습니다만 성령의 은사는 고린도전서 12장 그리고 로마서 8장, 에베소 4장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고린도전서 12장에 소개된 성령은사 중 두 번째 부분에 해당하는 지식의 말씀의 은사에 대하여 함께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배울 고린도전서 12장 8절에는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우리는 지혜와 지식이 다른 점에 대하여 앞 부분에서 살펴보았듯이 지혜는 지식을 상황에 따라 아주 적절하게 적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혜는 지식보다 사모할만한 은사입니다.

우리는 가끔 "나는 가방 끈이 짧아서 머리에 똥밖에 들은 것이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는데 이것은 삶의 지혜가 지식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식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도 장차 아이들이 세상을 살아 갈 때에 삶의 지혜를 갖게 하기 위하여 입니다. 이처럼 지혜는 지식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앞에서 배운 것처럼 지혜 없는 지식은 사람을 해치는 핵무기들을 생산하는 것 등과 같은 어리석은 짓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의 말씀이 있고 그것을 위하여 또 지식의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지식에는 우리가 학문을 통하여 얻어지는 지식과 또 경험을 통하여 얻어지는 지식이 있듯이 인간으로서는 알지 못하는 지식 즉 오직 하나님만이 알 수 있는 지식이 있습니다. 나는 성령에 의하여 우리에게 주어지는 지식의 말씀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학문과 경험을 통하여 얻어지는 것이 아닌 초자연적으로 얻어지는 지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것은 하나님이 알려주지 아니하면 알 수 없는 그런 지식에 해당되는 것이지요.

*지식이 사람을 부른다 *
구약 성경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지식의 말씀을 받은 사람 엘리야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물론 모세나 요셉이나 다니엘과 같은 선지자들에게도 나타났습니다만 성경에는 엘리사를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5장을 보면 아람(시리아)이 득세하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람에는 나아만 장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람 왕이 의지하는 국가의 힘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문둥병자였습니다. 그의 집에는 이스라엘에서 잡혀 온 계집종이 있었는데 그 여종이 나아만 장군의 부인에게 이스라엘의 예언자를 소개하였습니다.

이 사실이 아람왕에게 보고되자 아람왕은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만을 보내어 "나의 장군을 고치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이 때 이스라엘 왕은 옷을 찢으며 내가 신이 아닌데 문둥병을 고치냐고 통탄하였습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그 사람을 내게 보내라고 왕에게 전달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여러분도 모두 아시는 이야기입니다만 결국 나아만은 엘리사의 집으로 나아가자 엘리사는 나와 보지도 않고 사환을 통하여 "요단강에 일곱 번 씻으라 그러면 살이 여전하여지리라"고 하였습니다. 나아만 장군으로는 기가 막힌 일이지요. 사실 아람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광야를 지나 배를 타고 요단 강을 건너야 하는 먼길이었습니다. 그가 생각하기는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나와서 손을 얹어서 하나님께 기도하여 줄 것을 기대하였는데 얼굴은커녕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요단강 물에 들어가 일곱 번 씻으라 하니 아람국 대장군의 체면에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화가 난 나아만 장군은 "다메섹강 아마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고 돌아가려 했습니다. 그 때 한 종이 말려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명하여 큰일을 행하라 했으면 행하지 아니하였겠습니까? 그런데 하물며 요단강물에 씻어 깨끗하게 하라는 것이야 쉽지 않습니까?"라고 설득하였습니다.

*큰일을 시키면 좋아한다? *
사람들은 참으로 어리석을 때가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할 때 큰일을 시키면 당연한 것으로 알고 아주 쉽고 간단한 것을 시키면 업신여기게 됩니다.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넌 후 첫 번째 성 여리고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백성으로는 그곳을 통과하기란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아무소리도 말고 7번 돌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여호수아의 지휘를 따라 언약궤를 걸머진 제사장들을 뒤따라 하루에 한번씩 7번 돌았습니다. 일곱째 날이 되던 날 여호수아의 명령을 따라 백성들이 일제히 외치자 그 엄청난 성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런데 그다음에 문제가 발생되었습니다. 여리고를 통과한 그들을 막고 있는 아이성이 있었습니다.

그곳은 아주 작은 성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묻지 않고 자기들 장정 중 3천명을 선발하여 올려 보냈습니다. 결국 꼴좋게 패배하여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작은 일을 업신 여기다가 낭패를 보게 됩니다. 강둑이 무너지는 것은 작은 구멍하나입니다. 결국 나아만 장군은 요단강 물에 들어가 일곱 번 씻었고 그의 문둥병은 치료 받았습니다. 이제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엘리사에게 나아와 자기가 가지고 온 금은보화로 사례를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그의 진상을 거절하였습니다.

그때 나아만 장군은 노새 두 마리에 실은 흙을 달라고 하면서 이제로부터는 다른 신에게 제사를 드리지 않겠노라 하면서 "오직 한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합니다. 곧 내 주인 아람왕이 림몬의 당에 들어가서 숭배할 때 내 손에 의지하기 때문에 내가 림몬의 당 앞에서 몸을 굽히게 되니 그 일을 사유하여 주십시요"라고 말하였습니다. 엘리사는 그에게 "너는 평안히 가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평안히 가라는 말은 주께서 네게 평안을 주실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 *
이러한 사실을 지켜보던 엘리사의 제자가 게하시가 있었습니다. 게하시는 자기의 스승 엘리사가 나아만 장군이 진상하는 금은보화를 거절하는 것을 보고 다음과 같이 작정하고 있었습니다. "내 주인이 나아만에게 면하여 주고 그가 바치는 물건을 바치지 아니하였도다 여호와의 사심을 가르켜 맹세하노니 내가 저를 쫓아가서 무엇이든지 받아오리라" 여기서 여호와의 사심을 가르켜 맹세하였다는 의미는 내가 앞으로 여호와의 일을 위하여 일을 하기 위하여 그에게서 물건을 받아 오겠다는 말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주신 은사를 통하여 사람들의 질병을 고친 후 하나님의 사역에 필요하다는 의미로 물품을 요구하고 있습니다만 예나 지금이나 십시일반입니다. 결국 게하시는 나아만을 뒤쫓아가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우리 주인께서 나를 보내시며 말씀하시기를 지금 선지자 생도 중에 두 소년이 에브라임 산지에서부터 내게 왔으니 청컨데 당신은 저희에게 은 한달란트와 옷 두벌을 주라 하시더이다" 나아만은 그의 말을 듣고 은 두 달란트와 옷 두벌을 전대에 담아 주었습니다. 게하시는 그것을 옷장에다 감추고 천연덕스럽게 엘리사의 시중을 들었습니다. 엘리사는 그에게 네가 어디에 갔다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미 그는 다 알고 묻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게하시는 "내가 아무데도 가지 않았다"고 말하였습니다. 이처럼 사단의 영은 거짓말하고 도둑질하는 영입니다. 그 때 엘리사가 "그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을 때에 내 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고 책망하였습니다. 여기에 영적인 말이 있습니다. 즉 게하시는 나아만에게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달라"하였습니다.

* 아무도 모를꺼야! *
사실 게하시가 나아만에게 말한 내용은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말한 것과 다릅니다. 지금 이것은 게하시의 마음 속에 품고 나아만에게 달려간 말들이었습니다. 즉 마음으로 꿈꾸던 그의 비전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는 배울만큼 배웠으니 아니 내가 엘리사의 수제자가 되었으니 이제 돈만 있으면 감람원과 포도원을 차려 놓고 종들을 부리며 호의호식하며 한판 살아 볼 터인 데하며 꿈꾸어왔던 그의 마음이었습니다. 이것을 엘리사는 알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알게 하신 지식의 말씀인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실 수 있는 것을 알게 하신 것이 지식의 말씀인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열왕기하 6장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때는 아람 왕이 득세하여 늘 이스라엘을 위협하던 때입니다. 그러나 아람왕이 자기 신복과 은밀히 의논한 군사기밀이 늘 폭로되어 기습을 할 때마다 이스라엘 군대가 자기들이 계획한 곳에 진을 치고 방비하고 있었습니다. 번번이 이렇게 되자 아람왕은 대노하여 우리 중에 반역자가 누구냐고 분노하였습니다. 그때 그들 중 신하 하나가 이스라엘에는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있어서 왕의 침실에서라도 한 말들을 모두 알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식입니다. 적군이 한 말을 어떻게 수천 리 밖의 사람이 알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는 일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십니다. 그리고 마음의 속에 있는 말들까지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도 예금통장처럼 내 마음대로 찾아 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하나님의 사람에게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엘리사에게 임한 지식의 말씀은 현실 속에 나타난 초자연적 현상이었습니다. 엘리사가 어떻게 말할까 생각하고 궁리하기도 전에 자연적으로 그 현실 속에서 그의 입을 통하여 나온 말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엘리사가 그것을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말이 나온 것은 아닙니다. 그 순간 초자연적으로 깨닫게 된 것이 자연스럽게 그의 입을 통하여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초자연적 지식의 은사는 예금통장이 아닌 것입니다. 아무 때고 꺼내 쓸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알게 하신 그 때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은사인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지식의 말씀이 언제 나타났고 언제 거절되었는지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