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강좌/성령은사

(지혜의은사3) 지혜가 필요하면 비둘기처럼 울어 보거래이!

이요나 2000. 8. 4. 11:27
(지혜의은사3) 지혜가 필요하면 비둘기처럼 울어 보거래이!


*서론*
주께서는 내가 예수를 믿기 시작한 이래 오랜 나의 믿음의 행로를 통하여 성경 강해자 즉 성경교사의 길을 가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제가 교수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유교가문의 학자의 딸로 태어나셨고 몰락한 만석군의 아들에게 시집와서 자식에게 재물을 물려주는 것보다는 지식을 갖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나에게 '너는 장차 훌륭한 선생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이야기가 엄청 싫었습니다. 따분하게 선생질을 한다니 그것은 정말 맛없는 짜장면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화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변성기가 오기까지는 가수의 꿈을 가지고도 있었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시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어쨌든 훈장노릇은 하고 싶지 않았던 것 만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고 또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생전에는 청개구리 아들이 되었지만 돌아가신지 25년이 지난 후에야 나를 향한 어머니의 소원 단 한가지만은 지켜드리려는가 봅니다. 평생동안 나는 선택에서 실패해 왔습니다. 그러나 나의 마지막 선택은 잘 한 것 같습니다.

주께서도 마리아는 좋은 것을 선택하였다고 하셨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한 저의 생각은 불변할 것입니다. 설혹 내 일생이 평생 성경연구만 하다가 끝이 난다고 해도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성경의 말씀 속에서 주를 만나는 기쁨은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제가 결혼을 하지 못한 데는 이러한 이유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만약 내가 결혼 생활로 하여 주님과의 독대(獨對)의 시간이 빼앗긴다면 저는 결혼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사실 나 같은 빈 껍데기만 데리고 살 여자가 이 세상에 있을는지 어디 있겠습니까? 아무리 온유한 여자(?)라도 아무리 믿음이 강한 여자(?)라도 싫어할 것입니다. 어쨌든 나에게 있어서 말씀과의 관계는 그 아무도 떼어놓을 수 없는 불변의 법칙이 되었습니다.

* 아주 자연스럽게.. *
이제 오늘은 지혜의 말씀이 어떻게 우리의 생활 속에서 나타나는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사는 초자연적으로만 나타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나의 경험으로는 지혜의 은사는 말씀을 연구하고 그를 가르치는 동안 아주 자연스럽게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지혜의 은사뿐이 아니라 지식의 은사, 믿음의 은사, 신유의 은사들이 모두 말씀을 증거할 때 아주 평범한 중에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초자연적 현상이기도 했습니다.

지혜의 말씀의 은사가 자기에게 나타날 때 대부분은 자기 자신도 그것을 모르게 됩니다. 너무 자연스럽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놀라운 지식과 정보가 어디에서 합당하게 나타났는가 하고 생각할 때 주께서 내 안에서 빙그레 웃고 계신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의 성령이 알게 하신 것입니다. 그 때의 기쁨은 지구를 몽땅 준다해도 바꾸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성령의 은사는 마치 어떠한 초자연적 현상으로만 나타나는 것으로 기대하던지 아니면 그 반대로 결코 초자연적 현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의지를 존중하시기 때문에 당신이 어떠한 고정관념에 매여 있다면 그 생각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랄 때까지 절대로 역사 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당신의 고정관념으로 당신의 생각이 닫혀버려서 하나님의 역사를 느끼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주께서도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오르실 때 비둘기가 형체로 임하심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너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직 주께서만 보신 것이고 주께서만 들으신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사는 당신이 물세례를 받을 때 물로 체험을 한 것처럼 성령 세례도 자기 체험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은사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역을 할 때 성령세례로 충만되어 있는 성령의 은사가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
성령은사는 저장 탱크에서 아무 때고 꺼내어 사용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의 은사는 자연적 현상을 파괴하고 나타나는 일이라고 생각하여서도 안됩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120 문도가 체험한 성령세례의 체험은 초자연적 현상이였고 아주 자연적인 현상이었습니다. 성령의 불의 혀 같은 성령이 임하심은 그 곳에 있던 사람들만이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이지만 세상의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도록 공중에 불이 돌아다닌 것은 아닙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하여는 먼저 믿는 자에게 있어서는 물질세계와 하나님의 영적 세계가 다른 분자 구조로 역사하고 있음부터 인식하여야 합니다. 이처럼 믿는 자에게는 물질세계와 영적 세계를 공존하고 있는 것인데 성령의 세례는 물질세상 속에 나타날 때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만 감지되는 것입니다. 물론 귀신이 내어 쫒길 때 사람이 넘어지고 하는 것을 말하실 분이 계실지는 모르지만 성령의 은사가 어떻게 그 사람 속에서 역사하는 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사는 초자연적 현상이 자연스럽게 나타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믿음 생활을 통하여도 증명이 되는 일입니다. 나의 인생살이가 물 흘러가듯이 지나 온 것 같은데도 지나간 날들을 생각하면 하나님께서는 나를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섭리하신 일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일들은 다른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할 어떠한 초자연적 현상으로 나타나지 않고 내 인생의 삶 속에서 자연스러운 가운데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나를 인도하신 것입니다.

*기만하는 자들 *
최근 일부 교회들이 물리적으로 초자연적 현상을 조작해서 성도들을 기만시키고 있습니다. 지난 번 메스콤을 통하여 이미 공개된 사실이지만 카메라 조작하여 빛의 반사 상태를 비디오에 담아서 영적 눈이 뜬 사람만이 볼 수 있는 것이라는 등의 조작극을 벌여서 세인들을 황당하게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비디오를 테이프를 가지고 있는데요 저는 제가 가지고 있는 비디오 카메라로도 간단하게 그 정도는 조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사기극인 것입니다.

나는 이러한 일들을 하나님께서 결코 묵과하지는 않으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기만한 것뿐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 것이기 때문입니다. 꽤 오래된 사건입니다만 미국의 어느 기독교 종파 목사회의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주님의 지상명령 즉 "너희가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으리라"는 말씀을 시험하여 독을 담은 포도주를 목사들에게 나누어주고 믿음을 강요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결국 그 독을 마신 사람은 죽거나 중태에 빠지고 그것을 시행한 사람은 살인교사 혐의로 구속되었습니다.

또 성지순례 도중 갈릴리 바다에서 베드로처럼 바다를 걷겠다고 호언장담하다가 물에 빠져서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모두 무지에서 나온 행동들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생각만으로 초자연적인 기적을 요구한 나머지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말씀을 범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성령충만하지 않았음을 스스로 증명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세우신 질서를 모순에 빠뜨리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의 삶에서는 하나님의 능력이 초자연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무지몽매한 행동들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지혜의 말씀을 얻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증거할 때에 *
또한 지혜의 말씀은 어느 특정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의 지식과 믿음의 분량에 맞추어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현상은 모든 믿는 자 속에서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잠깐 말씀드렸습니다만 특정인에게 주어진 지혜의 저장소 같은 것은 절대로 없습니다. 설혹 지혜의 은사를 받았었더라도 그가 하나님 앞에 성실하지 못할 때 그 기름부음은 중단되며 주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에게는 그 믿음의 분량대로 성령의 기름부음은 계속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혜의 말씀의 은사는 언제 나타나는 것일까요? 저의 경험으로는 말씀을 가르칠 때 나타났습니다. 마가복음 16장 20절에는 "제자들이 나가 두루 복음을 전파할 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셨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저는 과거 오순절교단에서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대개의 모든 교회들이 다 그렇듯이 제가 다니던 교회는 목사들이 성경말씀의 일부를 발췌하여 자기의 목적에 맞추어서 설교를 하였습니다. 따라서 목사의 능력에 따라서 얼마든지 듣기 좋고 지혜로운 설교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무엇을 듣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사고가 결정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수십 년 동안 믿음 생활 속에서는 내 삶에서 초능력적인 성령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매일 갈급하였고 내 믿음의 상태는 항상 제자리 상태였습니다. 믿음의 소망도 발전도 비젼도 없었고 초자연적인 인생의 경험도 일어나지 않았고 오직 믿음만 강요당해왔습니다. 은혜를 받은 것 같은데 은혜의 결과가 내 삶 속에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었습니다. 그렇게 십 여 년 동안 광야를 헤메였던 것입니다.

*말씀을 들음에서 시작 *
그러던 어느 날 내 인생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방법에 의하여 일본으로 옮겨져(그러나 이것은 아주 자연적인 현실 속에서 진행되었었던 것이다) 아주 자연스럽게 갈보리채플로 인도되면서 나는 성경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창세기부터 시작한 성경공부는 점점 깊은 강으로 내려가는 듯 하였습니다. 사실 저는 신학을 하면서 그 누구처럼 유능한 설교자가 되기를 꿈꾸어 왔습니다. 그래서 그의 설교집 사서 외우고 그의 설교테이프를 통하여 목소리의 강약까지 흉내를 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갈보리채플에서 성경공부를 하는 동안 그러한 나의 생각은 바뀌어서 성경교사가 되고자 마음이 굳혀졌습니다.

내 설교가 비록 매끄럽지 못하여도 성경을 바로 가르치는 교사가 되어야겠다는 열망이 솟아올랐습니다. 내 안에서 일어난 말씀에 대한 강렬한 소망은 1993년 동경 호라이즌 채플의 히라노 목사의 성경을 가르침을 받으면서부터입니다. 말씀에 사로잡히기 시작한 나는 그 후 척 스미스 목사의 강해 설교집을 모두 탐독하였고 그의 10년 간의 주일 설교 교안을 모두 번역하여 연구하였습니다. 그리고 잘 알아듣지 못하였지만 척 스미스 목사의 영어 테이프를 몇 번씩 듣기도 하였고 척 목사의 강의 테이프를 일어로 번역한 자료를 받아서 공부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메튜 핸리 주석과 버클레이 신약 주석, 핸리 모리스의 창세기 주석 핸드릭슨 신약 주석 등을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이러한 성경공부는 내 일생이 끝나기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말씀을 위한 연단 *
그러나 이러한 말씀 연구의 생활 속에서도 성경의 지식을 어느 목사의 가르침이나 주석집을 통하여 완전히 충족 받기란 불가능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비록 사람이 쓴 글이라 해도 하나님의 성령이 쓰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경의 완전한 이해하기 위하여는 지식의 말씀의 은사가 절대 필요한 것을 때 깨달았습니다. 또한 이러한 지식은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을 토대로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믿음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을 만나야겠다는 신념으로 가득찼습니다. 저는 히스기야 왕의 슬픈 비둘기의 울움을 이해할 것 같습니다. 또 욥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울부짖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욥은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토로하였습니다.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가 없구나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23:8-10) 성경을 읽다가 막히면 그 말씀의 이해하고 깨닫기 위하여 밤을 새며 갈망하며 울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내 스스로 한 것이 아니라 내가 아닌 또 다른 영이 내 안에서 갈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나를 섭리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동안 나는 창세기와 마가복음 강의를 일곱 여덟 번했습니다. 사실 지금도 진행 중에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매번 할 때마다 새로운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발견하게 되고 또 매번 할 때마다 나의 지식의 한계를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의 성경연구는 멈출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강은 이처럼 깊은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라"(잠8:17) 하였습니다.

주의 말씀에 갈급한 자들의 마음은 정말 슬픈 비둘기의 눈망울처럼 하나님을 바라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혜들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의 토대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전혀 성경적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99% 속에서 1%가 필요할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처럼 주께서는 주를 사랑하는 자에게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이제 내일은 성경전체 속에 나타나는 지혜의 은사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내일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