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강좌/성령은사

(지혜의은사1) 지혜를 얻지 못하면 박사도 똥을 먹는다?!

이요나 2000. 8. 7. 11:31

(지혜의은사1) 지혜를 얻지 못하면 박사도 똥을 먹는다?!

*서론*
주께서 우리에게 요한복음 16장에서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으로 예수를 믿어도 세상에서 환난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복음서에서 주와 함께 타고 가던 배에서 풍랑을 만난 제자들을 보았습니다. 또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어나던 날 저녁 주께서는 제자들을 배를 태워서 강건너로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또 풍랑을 만났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이 세상을 사는 동안 많은 환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의 신이 대적하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 공격은 말할 수 없이 크다고 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단은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가 실족하도록 많은 시험과 유혹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우리는 해답을 갖고 문제를 푸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교회와 성도들을 유익하게 하는 여러 가지 은사를 열거하면서 지혜의 말씀의 은사를 맨 위에 올려놓은 것 같습니다. 앞에서 우리는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부르신 사람들에게 성령세례를 주셨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도들의 삶 가운데서 흘러 나와서 교회와 성도들에게 유익을 주고 있는 여러 가지 성령의 은사에 대하여 한가지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성령의 은사 서두에서 바울은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고전12:8)고 서술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은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이 분명하게 나누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이와 같이 지식과 지혜는 분명히 다른 개념인 것입니다. 지식은 어떠한 사실들을 축적해 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는 그 사실들을 적용시키는 부분입니다. 혹시 당신이 어떠한 뱀을 보는 순간 "앗! 이것은 살모사다" 라고 알았다면 당신은 살모사에 대한 지식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살모사를 보고 "이것은 독사로서 물리면 죽는다"라고 경계하였다면 이것은 지혜입니다. 이처럼 지혜는 어떤 사실에 대한 지식을 삶에 적용시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들 중에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혜 없는 지식인들 *
지금부터 오 육 년 전 된 사건입니다만 일본을 불안의 도가니로 이끌고 간 옴 진리교 독가스 사건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옴 진리교 교주는 시력을 거의 잃은 정신분열증 환자였습니다. 그는 자기가 신(神)을 자처하고 자기로 말미암아 새로운 세계를 만들 것이라고 신도들을 미혹하고 독가스를 일본 곳곳에 유포하며 사람들을 공포 속에 몰아 넣었습니다. 그런데 세인(世人)들을 놀라게 한 것은 그 교주 밑에서 그 조직을 이끌고 가는 사람들이 일본굴지의 명문대학을 졸업한 석박사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갈 엄청난 화학무기나 미생물 화기들을 만드는 과학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지혜 없는 지식인들입니다. 또 인도에 가면 사이바바를 따르는 수많은 지식인들을 볼 수 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석학들이 오직 사이바바의 설교를 듣기 위하여 몰려들어 불결하고 불건전한 상태로 짐승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아바바의 배설물을 먹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알고 그것을 얻기 위하여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는 일들이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가끔 텔레비전에서 광신도들의 어처구니없는 사건들을 목격할 때가 있지요? 저는 얼마 전에 정 명석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사나이에 대한 사기행각을 텔레비전으로 보았습니다. 그가 얼마나 나쁜 일을 일삼는가는 유치원생들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최고의 학부에 다닌다는 여자 대학생들이 줄을 지어서 그를 찬양하고 그와 함께 행음에 빠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악마가 그 사람들을 인간 이하의 사람들로 전락시켜 자기들의 몸을 스스로 더럽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롬1:28)고 증거하였으며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여 하심이라"(살후2:9-12)고 증거 하였습니다.

*지혜의 시작 *
이들이 이처럼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혜를 얻지 못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잠9:10)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것으로 사람들은 지혜를 얻지 못하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으로 세상을 멸망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거부함으로서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상태로 전락되고 마는 것입니다.

악마는 그러한 사람들을 지옥에까지 이끌고 내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다면 결국 당신은 어떠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악마의 사슬에 빠져들어 육체의 소욕에 휘말리어 인간으로서 하지 못할 일들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잠언서는 우리에게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잠4:7)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지식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녀들을 공부시키는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지혜 없는 지식은 엄청난 문제를 일으키는 지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성경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한다"(잠1:7, 시111:10)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나 지혜의 은사는 그러한 은사를 받은 사람 안에 지혜의 저장소를 설치한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떠한 은사를 받으면 그 은사가 마치 자기 예금통장 안에 저축해둔 돈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을 잘못된 생각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주신 지혜 은사도 우리 안에 지혜의 창고가 설치된 것이 아니고 우리가 믿음 생활 가운데서 어떠한 문제를 만날 때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서 성령의 기름부음을 통하여 우리의 삶 속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모든 은사는 교회와 성도의 유익을 위하여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사단의 제1공략 *
사실 지혜라는 것은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입니다. 그러면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요? 초대 교회이래 지금까지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교회의 분열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서로 반목하고 서로 분열하기를 획책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나타난 뱀은 아담과 하나님 사이를 분열시키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께서도 내가 너희에게 모범을 보인 것처럼 너희도 서로 섬기라 하셨고 서로 사랑하라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기독교가 일개 개인으로 출발하지 않고 공동체로 출발한 것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따라서 공동체의 가장 큰 문제는 분열입니다. 주께서도 이 분열에 대하여서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다"(막3:24)고 경계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각 교회들은 아직까지 여러 가지 이유로 분열하고 있습니다. 교리의 반목으로 교회가 서로 분열되고 목사와 목사가 개인적인 의견으로 반목하고 성도들이 서로 물고 다투어 결국 교회가 나누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지혜의 말씀의 은사가 우리 교회사에서 언제 나타났는가를 성경에서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러한 사건은 초대 예루살렘교회에서도 또 이방교회의 전초지 안디옥 교회에서도 나타났습니다. 먼저 사도행전 6장을 펴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탄생된 이래 제일먼저 생긴 문제가 무엇인가를 살펴보십시다. 이것은 사단이 우리 교회 가운데서 어떻게 역사하고 있는 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초대교회의 문제 *
사도행전 6장 1절을 보면 헬라파 유대인들과 히브리파 사람들 사이에 나타난 봉사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즉 헬라파 유대인들 즉 중동 근지에 흩어져 살던 헬라어를 사용하던 유대인들의 부인들이 오순절 이후 초대 교회 속으로 밀려드는 수많은 성도들의 식탁이라든가 잠자리를 보살피는 복지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사도들도 자연 그 일을 보살피기에 정신이 없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하여야 할 것은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가입니다. 지금도 이러한 교회의 본질을 잃어버린 교회들이 많습니다.

나는 지난 IMF 때 서울역에 있는 나사로라고 하는 실직자를 돕는 선교단체에서 운영하는 곳에서 얼마동안 봉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곳을 운영하는 목사님은 그 당시 거리를 배회하는 홈리스들에게 이발을 해주고 옷가지를 나누어주며 또 일자리들을 알선하는 등 일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그곳에 가서 발견한 것은 그들에게 이러한 봉사보다 더 중요한 봉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해 주는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 오는 사람들은 그곳에서 주님을 만나러 오는 것이 아니라 옷가지를 얻으러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직도 많은 곳에서 목사들이 이러한 문제에 매달려 사방곳곳을 다니며 헌금으로 모으기에 여념이 없음을 봅니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하여는 반대하는 편입니다. 요즘도 하루에도 몇 통화씩 불우이웃 돕기 선교회라는 명목으로 헌금을 요청하는 전화가 오고 있습니다만 나는 오늘 거론되는 문제 속에서 교회의 본질에 대하여 말하고 싶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비유이다! *
아직도 수많은 교회들이 이처럼 복지프로그램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일보다 이러한 일들을 즐겨하고 있습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복음 10장을 보면 마르다와 마리아 두 자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것은 이 땅에 있는 두 종류의 교회들의 비유입니다. 마르다는 늘 섬기는 일로 바빴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성경공부만 하는 마리아를 비방하였습니다. 그런데 주께서는 마르다에게 마리아는 좋은 것을 선택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교회들의 선택이요 또 성도들의 선택에 해당됩니다. 이러한 문제가 초대교회에서 발생 된 것입니다. 즉 봉사하는 사람들 간에 각기 자기들간에 마찰이 생긴 것입니다.

공동체 속에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는 마찰이 있게 마련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일을 속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기적입니다. 이때 열두사도가 모든 제자들을 모아 놓고 회의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때 어느 사도가 말하였는지 그 이름이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행6:1-6 참조)고 말하였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지혜와 성령에 충만한 일곱명의 집사들을 선임하였습니다. 그 일곱집사들은 우리가 성경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성령에 충만하여 목숨을 하나님께 드리며 복음을 전한 일군들입니다. 요즘의 교회집사들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러면 지금의 집사들과 그 당시의 집사들과 다른 것은 무엇일까요? 그들은 그리스도로부터 성령세례를 받아서 지혜와 성령에 충만된 복음의 증인들이고 요즘 교회의 집사들은 교회에 출석 잘하고 십일조 잘내고 순종 잘하면 누구나 주는 것이지요.

7절을 보십시요. 우리는 놀라운 말씀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의 말씀은사는 교회의 발생된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을 훼방하는 사단의 책략을 차단하고 교회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왕성케 하여 수 많은 제자를 양성하게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방교회의 전초지 안디옥 교회에서 일어난 문제를 통하여 나타난 지혜의 말씀의 은사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인터넷 상이라 계속 연결하여 실리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내일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