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디모데서강해

(딤전3:9)경건의 비밀

이요나 2005. 4. 25. 10:46
(딤전3:9)경건의 비밀

(딤전3:16)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

우리는 앞에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온전한 믿음생활을 위한 바울사도의 권면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혼탁한 정치풍토를 만난 우리에게  평안하고 고요한 삶을 위하여 임금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말씀은 새롭게 다가오는 말씀이었습니다. 

오늘은 데모데전서 3장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교회 직분자들의 자질에 관하여 언급하였습니다. 그당시 초대교회는 사도의 시대에서 차세대 목회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었습니다. 가정교회에서 성경공부를 중심으로 모이던 교회가 점점 확장하면서 조직을 갖추어야 할 필요성이 생긴 것입니다,

교회가 성장하면서 바울사도가 가장 염려한 것은 계급주의적 사고였습니다.  사도서신을 살펴보면 사도시대에 이미 장로를 비롯한 직책들이 세워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9장에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장차 교회에 다가 올 시련에 대비할 것을 부탁하였고 오늘 우리가 살펴볼 3장에는 감독과 집사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었습니다.

바울사도는 디모데전서 5장17절-18절에서 '잘 다스리는 장로는 배나 되는 급료를 받음이 합당하다'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이미 그 당시 이방교회에 유급 직분자들이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교회가 확장되면서 차세대 목회의 중요 문제는 교회 안의 이단 즉 그노시스 사상과 유대주의 사상의 확산과 함께 내부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직분자 선임과 관련된 부정부패였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매우 민감한 사항이 되고 있습니다만 직분과 급료는 전문 인격과 사역자의 생활에 관계된 것으로 한마디로 명예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높은 직위는 그에 합당한 생활이 요구되었고 그것은 곧 그 사람과 또 그가 관련한 공동체의 명예와 관련되어 자칫 잘못하면 하나님의 뜻을 떠나 인간의 방법으로 운영될 소지가 많았습니다.

 A. 감독의 자격
바울은 1절에서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하였습니다. 여기서 '감독'(episkopoi)이란  사도들에 의해 언급된 '장로'(presbuteros)와 동일한  직분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을 가리켜 장로라 하였고 또 장로들에게 편지하여 우리의 기능한 양무리를 '감시'하는 일이라 하였습니다(벧전5:1).

여기서 감독과 장로가 같다고 할 때 그럼 구태여 장로와 감독으로 구분하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장로는 한 교회의 책임자를 부르는 호칭이고 감독은 교회에서의 그의 직무를 말할 때 말한 것입니다.

또 세부적으로 말할 때 교회가 좀더 조직적으로 확대 될 경우 담임과 부사역자를 여러명 두게 됩니다. 그때 담임된 장로를 감독이라 칭하게 되고 부사역자 또한 장로입니다. 따라서 감독과 장로는 같은 직위로서 상황에 따라서 감독이 되기도 하고 장로도 되기도 할 것입니다.

  1. 잘 다스리는 자
바울은 5장에서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하였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직제 속에 이미 각 부서별로 장로의 직분자가 필요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말하여 담임과 교육목사, 찬양목사, 행정목사들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바울사도는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라'하였습니다. 이것은 먼저 그 직무가 세상의 직분과 달라 선하신 하나님의 사역을 사모한 자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개인의 욕망을 따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사모함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2. 책망할 것이 없는자
바울은 2절에서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여 가르치기를 잘하며"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사역자들에게 참으로 부담되는 말입니다. 더우기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한다는 말씀에는 자신있는 목사들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또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야 한다는 기준을 통해 우리는 교회의 공동체가 가정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창조로부터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원리이기도 합니다. 나는 10년 동안 독신으로 갈보리채플 사역을 하면서 이 말씀에 대하여 생각해 왔습니다.  이제 오십이 넘어서야 이 말씀의 뜻을 이해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장가를 않들면 아직 애들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사역자의 절제와 근신과 아담과 손님접대를 요구했습니다. 사실 말이지 사역자들의 성품은 전쟁터를 달리는 말과 같습니다. 그래서 성격이 급하고 감정을 콘트럴 하지 못하기 일 수입니다. 성령의 아옵가지 열매도 그 시작이 절제로부터 되고 있습니다. 근신이란 온전한 믿음 활동하는 믿음을 말합니다.

아담이란 말은 분수를 지키는 마음을 말합니다. 즉 품위와도 관계되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일부러 품위를 꾸미라는 말은 아닙니다. 격에 마추어 행동하라는 말이지요, 또 나그네의 대접하라는 말씀은 귀담아 들어야 할 것입니다. 주께서도 당부하신 말씀입니다.

이것은 복음생활 속에 어쩔 수 없이 나그네 생활을 하는 고난받는 그리스도인을 위한 말씀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말씀입니다만 저는 지는 3개월간 미국을 다녀 오면서 이 말씀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3. 세속에 물들지 않는자
바울사도 3절에서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여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모두 세상 사람들이 행하는 생활풍습입니다.  최근 교계 풍문에는 목회자들이 술집에서 회의를 갖고 아내나 자식을 구타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고 합니다.

실제로 제 주변에 있는 목사도 담배는 물론 저녁이면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못이룬다고 합니다. 바울이 차세대를 이끌어 갈 경건한 제자 디모데에게 이글을 쓴 것은 후일 종말의 때에 일어날 일들을 미리 예언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또 목회자는 돈을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이것은 목회자는 돈이 없어도 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은 일하는 소에게 멍에를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습니다. 따라서 사역자는 주의 일을 맡은 것이기 때문에 먹고 사는 모든 문제에서 주님이 주심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사도라도 자기 생활을 위해서 일을 하였음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4.가정을 잘 다스리는 자
바울사도는 4절에서 "자기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니" 맣하며, 특히 5절에서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 라고 주석을 단 것은 사역자가 자기 잡안의 자녀를 잘 다스리는 것은 사역자의 필수인 것을 언급한 것입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많은 목사님들이  자녀문제에 많은 근심을 하고 있습니다. 모두 자식만큼은 내 맘대로 않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불가능한 것을 말하지도 않고 또 무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면 이렇게 당부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5. 믿음의 경륜을 가춘자
바울 사도는 6절에서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또 외인에게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하였습니다.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위에서 거론된 문제는 목회자의 인격과 생활방법에 관한 규례이지만 이것은 성도의 영적 문제에 미치는 부분입니다. 바울은 '새로 입교한 자'는 감독이 될 수 없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나이나 사회적 지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믿음생활의 경륜을 말한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문제는 바로 이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충동을 받아 사역자가 되려고 할때 신학교만 들어 가면 무조건 그 사람을 전도사로 임명합니다. 문론 큰 교회야 전도사 되기가 하늘에서 별따기 이지만 개척교회는 일군이 없어서 신학생 하나만 오면 쌍수로 환영하게 됩니다.

그들의 문제는 바로 '마귀를 정죄하는 정죄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매우 어려운 말씀입니다만 대게 믿음의 경륜이 없는 사람들이 사역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여 이분법적인 논리에 빠져 들게 됩니다.

나도 신학을 할 때에 성경의 지식를 체험하지 못하고 단면적으로 터득한 지식들을 가지고 이것은 마귀의 일이다 저것은 옳지 않다 하는 식으로 판단을 하곤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지식에 이르지 못한 것이지요, 이것은 나이와 관련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역자의 길에 들어와 겪는 일들이 조급함과 자기 감정에 빠져 쉽게 판단하고 쉽게 처리한다는 것이지요.

 B. 집사의 자격
6절에는 "이와 같이 집사들도 단정하고 일구 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 더러운 일을 탐하지 아니하고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여기서 집사란 목회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기구입니다. 오늘날 각 교회에서 세우는 장로, 권사 등이 모두 여기에 포함됩니다.

집사(디아코노스)라는 헬라어 어원은 식사를 시중드는 종에 해당합니다. 초대교회의 일곱집사의 경우도 초대교회에 밀려든 헬라 나그네들과 과부와 고아들의 식탁을 준비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신약에서 일꾼(행6:2, 롬16:1), 섬기는자(고후6:4), 하인(요2:5) 등은 집사에 해당하는 직분입니다

 
1. 단정한 생활
먼저 단정함을 요구하였습니다. 단정이란 그리스도인의 품성을 말한 것입니다. 외형적인 것보다는 내면적인 질서와 규모 있는 생활을 말한 것이지요.  최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말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직분에 맞는 체면 치레를 하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장로는 이정도는 되어여지,  집사가 되었으니 이래야지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한 단정함이란 규모있는 생활질서를 의미합니다.

  2. 책임성과 일관성
집사의 두번째 조건은 일구이언하지 않는 것입니다. 한 입으로 두 말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교회의 어떤 일에 대한 변경을 해서는 않된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에 대한 확신있고 책임성있는 태도를 말한 것입니다. 믿음에 대한 일관성을 상실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3. 술에 인박이지 않아야
바울은 세번째로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때때로 남자들은 사회 활동 속에서 술을 마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술을 마시는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부부가 식사전에 한잔의 포도주를 곁드렸다면 사랑의 술잔이 됩니다. 그러나 술을 마시지 않으면 살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면 이것은 문제입니다.

얼마전 우리 교회에서 믿음생활을 하던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오랜세월 술과 담배로 중독되었던 형제입니다. 그 형제가 처음 나를 찾아 올 때에도 술독에 빠졌었고 그를 집에 들여 1년을 함께 하는 동안 몇번을 울었는지 모릅니다. 할수 없어서 책망과 경계를 하게 되었는데 결국 그 책망을 이기지 못하고 다른 교회에 갔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신학교에 들어 갔다고 하면서 현제 개척교회에서 전도사 사역을 한다고 찾아 왔습니다. 그 형제라고 사역자가 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 형제의 모습에서  믿음의 비밀을 발견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4. 재물관
네번째로 집사는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는 자'라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사회적 활동을 언급한 것입니다. 세상이 더러워진다고 같이 휘말려 이익에만 몰두하여서는 않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자녀의 학비를 벌기 위해 어머니 된 자가 노래방 도우미를 하였다면 그것은 말도 않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 알고 계시고 또 기도를 통해서 때를 마추어 필요를 체우십니다.

  5. 깨끗한 양심
 9절에서 바울은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하였습니다. 혼탁한 세상에서 깨끗한 양심을 지니고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믿음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조금도 불의한 것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이로서 바울사도는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하게 할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나라 교회는 너무 집사를 쉽게 세우는 경향이 있습니다. 교회가면 모두가 집사이고 권사이고 장로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일을 위해 사람을 부르실 때 오랜 시험의 기간을 두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생애든지 모세와 다윗의 생애를 보아도 그들이 온전한 사역자가 되기까지는 엄청난 투쟁의 기간이 있었습니다.

 
6. 여자의 몸가짐
바울은 11절에서 여자들의 몸가짐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단정하고 참소하지 말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여자 집사에 대하여 특별한 언급을 한 것은 여자들의 특성 때문일 것입니다. 여자들은 쉽게 허영에 빠지고 남들의 말을 옮기고 또 자기 감정에 치우치기 쉬운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묵묵히 교회를 섬기는 여자들의 충성된 모습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7, 아름다운 집사의 직분
12절에서 바울은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하였습니다. 감독이나 집사나 모두 그 생활 근본이 가정으로 중심된 것은 교회가 한 가정으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일을 하면서 집안의 문제에 소홀히 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계속하여 바울은 집사의 직분에 대하여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하였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초대교회 집사들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봅니다. 빌립과 스테반의 역활은 주께서 천사들과 함께 박수를 치셨습니다.

C. 이 글을 쓰는 이유
끝으로 바울은 자신이 이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하여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하였습니다. 이 말은 우리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우리의 직분의 위대함과 존귀함을 언급한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자기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아 진리의 교회를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외쳤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비천한 가운데 구원하심과 택하심을 입어 거룩한 하나님의 집의 사역자들로 부름을 받은 직분자들의 영광스럼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늘로 올리 우신 우리 주의 영광이 우리 가운데 세세토록 함께 하실 것이며 그의 날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정말 오랜 세월 속에서 믿음의  투쟁하여 왔습니다. 아직도 감독으로서 온전한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 정말 하나님의 인내하심이란 인간으로서는 감당치 못할 일입니다. 한 사람이 온전한 사역자가 되기까지 넘어야할 강과 산이 얼마나 많은지....

나는 오늘 이 말씀을 들으며 열흘길의가나안 길을 사십년 헤메이고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얼마나 오랜 세월을 주를 믿었으며 얼마나 오랜 세월 주를 사모해 왔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는 온전한 사역자의 아름다운 지위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을 생각할 때 정말로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이제 자신의 모든 악한 행실과 구습을 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경건의 비밀에 참여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