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디모데서강해

(딤전5:21)아름다운 목양을 위하여

이요나 2005. 5. 7. 11:58
(딤전5:21)아름다운 목양을 위하여

(딤전5:21)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 너는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편벽되이 하지 말며


오늘은 5장입니다. 이제 디모데전서도 한장 남았습니다. 내년도부터는 디모데후서를 공부하겠습니다. 4장에서 바울은 경륜의 비밀을 이루기 위한 길에 대한 교훈을 디모데에게 하였습니다. 5장과 6장도 모두 그에 속한 내용으로 도덕적인 규범입니다.

바울은 서두에서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비에게 하듯하며 젊은이를 형제에게 하듯하고 늙은 여자를 어미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를 일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하라"하였습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의 도덕적 윤리입니다.

이런 사항은 상식적인 것인데 구태어 이런 문제까지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되는 말씀입니다만, 교회는 성도들과 관계성 속에서 영적교제를 이루는 고도의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사소한 문제 속에서 서로 상처를 입게 되고 서로간의 관계 속에서 영적인 문제에 까지 파급될 수 있습니다.

저는 지난 여름 미국의 한 성도님 가정에 묶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 권사님은 참으로 신심이 신실하고 특별히 주의 종들을 깍듯이 섬기시는 분이셨습니다. 젊어서부터 고난을 많이 받으신 분이라서 늘 남을 도와주기를 힘쓰는 권사님이셨습니다,

주일날 오후였습니다. 얼굴이 상기된채로 일찍 돌아 오셨습니다. 다른 날 같으면 저녁무렵에도 오실 분인데 말입니다. 심기가 언짢아 보여 그 이유를 물었더니 장가도 들지 않은 30대 젊은 목사가 교회 장로 집사들에게 말을 함부로 한다는 것입니다.  내용이야 보지 않아서 자세히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이처럼 목사의 언행은 성도들과 커다란 문제를 일으키기 쉽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가르침은 모두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부모형제에게 대하는 예의 범절에 속한 것입니다. 사역자라해도 이 규범에서 벗어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들은 자신은 주의 거룩한 종이라는 생각에서 성도들을 하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의 신비성을 강조하는 목사일 수록 이런 일은 심각해 집니다. 이런일에 사모가 한몫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2절에서 바울은 자매에 관해서는 '일절 깨끗함으로"라는 말을 추가하였습니다. 이것은 성도인 자매간에 성적인 문제가 대두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우리가 유의할 것은 사단은 사역자들에게 성적인 유혹을 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일본에서 사역하면서 이러한 일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특별히 동경에는 유흥업에 종사하는 자매들이 많아서 젊은 사역자들과 좋지 않은 루머가 심심치 않게 나돌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영적인 피로는 항상 육체적인 돌출구를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자신의 거룩함을 지키지 않으면 여러가지 발생되는 스트레스 속에서 육체는 또 다른 출구를 찾게 됩니다.

바울은 3절에서 과부에 대한 문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당시는 전쟁과 사고가 많은 시대여서 과부가 많았을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먼저 바울은 "참 과부인 과부를 경대하라"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꼭 참과부만을 그 가치를 인정하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4절에서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하나님 앞에서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하였습니다. 요즘에는 나이든 부모를 내어다 버리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보모를 양노원으로 모시기 일수인데 이것도 말이 좋아서 양노원이지 합법적으로 내다 버리는 것입니다.손자들에게 할머니는 정말 인자하신 분입니다. 모든 것을 관용하고 또 때로는 책망하여 부모에게 효도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이것은 먼저 그의 아들 된 자가 먼저 효심을 갖어야만 되는 일입니다. 

*존경받을 참과부
바울은 참과부를 그 자녀나 손자들이 섬기게 한 이유에 대하여 "참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하였습니다. 이것은 실로 의미 있는 말씀입니다. 참과부와 잘못된 여자를 구분하는 말씀입니다.

저는 샌디에고 호라이즌 채플을 방문하였을 때 마이크 멕킨토시 목사님의 어머니를 보았습니다. 그녀는 80의 고령인데도 늘 교회와 아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루디아라는 선교회를 이끌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이와같은 여인들의 기도로 교회는 평안해 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 나이든 여인들이 남편과 이혼을 주장한다고 합니다. 평생을 함께 살다가 늦게라도 혼자서 자유스럽게 살겠다는 생각이지요. 이처럼  나이든 여인들까지도 세상을 즐기려는 때가 되고 말았습니다. 바울은 일락을 일삼는 과부들을 책망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사실 교회에서 많은 여인들이 말썽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권사 집사 하는 분들이 떼를 지어 다니며 말들을 옮기며 사람들 사이를 이간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은 심방을 한다는 빌미를 갖고 있습니다만 사실 그것보다는 자기 집에서 자녀나 손주들을 보살피며 기도하는 일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바울은 과부들에 대한 보살핌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이 그 자녀들에게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하였습니다. 바울이 이처럼 강경하게 말하는 것은 교회생활 속에서 이와 같은 문제가 대두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바울은 참과부로 교회에 명부에 올려 경대와 보살핌을 받는 그 규례를 정하여 "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는 나이 육십이 덜되지 아니하고 한 남편의 아내였던 자로서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의 발을 씻기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좇은 자라야 할 것이요"하였습니다.

이것으로 그당시 과부의 문제가 한 사회문제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전세계 가운데서 존경받은 테레사 수녀를 보고 있습니다. 세상은 이러한 여인들의 기도와 봉사로 아름답게 꾸며가고 있는 것입니다.

 *독신 여자들의 문제
계속하여 바울은 젊은 과부들의 잘못된 행실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요즘 이혼율의 증가로 교회는 온통 과부들로 넘치고 있습니다, 그들 속에는 과부 아닌 처녀과부도 많이 있습니다. 바울은 "젊은 과부를 거절하라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가고자 함이니 처음 믿음을 버렸음으로 심판을 받느니라"하였습니다.

바울은 그녀들의 행위를 밝히 말하여 "또 저희가 게으름을 익혀 집집에 돌아 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망령된 편롬을 하며 일을 만들어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편론이란 사람들을 격분시키는 논쟁을 말합니다.

교회에서 여인들의 힘이란 대단합니다. 그들의 봉사하는 열성만 보면 정말 존경스러워집니다. 그러나  바울은 여인들의 실체를 보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제가 동경에 있을 때입니다. 그당시에는 교회안에 많은 과부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술집에서 일하던가 술집을 경영하면서 교회에서 한자리를 맡아서 봉사하였습니다.

교회의 무슨 행사때가 되면 온통 그녀들이 손을 걷어 부치고 나섭니다. 헌금에서 행사에 이르기까지 일사불란하게 처리합니다.저는 그 당시 그들이 참으로 믿음 좋은 권사님들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녀들은 정작 하나님의 말씀도 모르면서 교만한 마음으로 이집저집 다니며 말을 옮기고 하지 않을 일들을 만들고 다녔습니다.

바울은 젊은 과부들에게 말하여 "그로므로 젊은이는 시집가서 아이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회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기 말기를 원하노라" 오늘날 각 교회마다 수많은 젊은 과부들이 줄을 짓고 있습니다. 그들은 기도원이고 어디고 안가는 곳이 없으며 어떤 면만을 보면 그들이 교회의 주인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미 사단에게 돌아간 자들도 있도다"하고 경계하였습니다.

 *교회 지도자에 대한 배려
17절부터는 교회지도자들에 관한 규례입니다. 바울은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을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하였습니다.  여기서 잘 다스리는 장로란 담임직 목사를 말한 것입니다.

바울이 이처럼  말씀을 가르침에 수고하는 목사들을 존경하라 고 한 것은 교회 속에서 그들의 존재가 잊혀지고 그 생활에 곤핍함을 겪게 되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요즘은 말씀을 잘 가르치는 목사보다는 오히려 성도들의 비위를 잘 마추고 교회를 부흥시키는 목사라야 존경을 받습니다.

바울은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하였습니다. 이것으로 그당시 교회가 벌써 유급제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며 의지할 곳 없는 나의 말년이 참으로 걱정스러워집니다. 말년이 되면 내 몸 하나 의지할 곳이 생길지 모르겠습니다.

19절에서 바울은 "장로에 대한 송사는 두 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 꾸짖어 나머지 사람으로 두려워하게 하라"하였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원로 목사들을 이런저런 이유를 내?셀? 내어 쫓는 사례가 있습니다.

어느 대향교회는 교회 창설 목사가 은퇴하면서 자기가 아끼던 목사를 미국에서 데려다가 후임으로 세웠는데 그 목사가 담임이 되더니 전임 목사의 재정적인 비행 사실을 성도들에게 고발하였다고 합니다.
참으로 비참한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바울이 이처럼 강한 어조로 경계한 것은 후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던 목사들 사이에 사단이 역사하여 그로 하여금 말씀을 전하지 못하도록 성도들 간에 발생될 일들을 미리 예언한 것입니다. 설혹 잘못한 일이 있더라도 그것은 주님께 맡기고 우리는 존경하는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 너는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편벽되이 하지 말며"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은 교회안에서의 일에 균형을 갖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날이 갈수록 세상은 이분법적인 논란에 휩싸혀 국론이 분열되고 서로 고발하고 물고 하는 가운데 사단이 춤을 추고 있습니다,

 *목회자 안수
끝으로 바울은 어린 제자 디모데에게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죄에간섭하지 말고 네 자신을 지켜 정결케 하라"하였습니다. 여기서 안수라를 것은 목회자를 세우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이제서야 이 말씀의 중요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앞으로 나는 성경이 가르치심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기 전에는 절대로 누구를 안수하지 않을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디모데의 건강에 관한 바울의 권면입니다.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비위와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하였습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술을 금하였습니다. 그러나 디모데의 건강을 위해 포두주를 쓰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디모데는 이방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속에서 태어나 바울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유대인의 오해를 갖지 않기 위해 바울은 그에게 할례를 행하였고, 늘 그와 선교여행을 같이 하였습니다. 아마 디모데는 늘 금식과 기도 그리고 쉬지 않는 선교여행의 과로 등으로 몸에 많은 무리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사역자로서 또  물질적으로 넉닉지 못한 디모데에게 바울은 사역자에게 금기시 되었던 포두주를 허락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제자를 생각하는 스승의 아름다운 사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끝으로 바울은 죄에 대하여 말하여 "어떤 사람들의 죄는 밝히 드러나 먼저 심판에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의 죄는 그 뒤를 쫓나니 이와 같이 선행도 밝히 드러나고 그렇지 아니한 것도 숨길 수 없느니라"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 말로 사필귀정을 말한 것입니다. 모든 일이 주앞에 밝히 드러날 것에 대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죄를 밝히고자 할 것이 아니라 오직 판단자이신 주께 맡겨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