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디모데서강해

(딤전6:14)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요나 2005. 5. 25. 17:25
(딤전6:14)너 하나님의 사람아

(딤후6:14)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이제 디모데전서도 오늘로 마지막입니다. 그동안 여러가지 생각들과 번민으로 강해에 충실치 못한 것 같습니다. 충분한 관찰과 기도를 통하여 복음의 값이 나와야 하는데 너무 안일하고 쉽게 달려가는 습성이 있는 것 같아 두려워집니다.  바울은 6장에서 사회적으로 그리고 또 교회적으로 가장 커다란 문제가 발생할 것을 예상하고 그에 대해 대비할 일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노사간의 대립
바울의 첫번째 경계는 사회문제로서 노사간의 대립을 예고하였습니다. "무릇 멍에 아래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하였습니다. 바울은 지금 거대한 로마를 바라보며 장차 교회가 부흥되면서 일어날 문제점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시 벌써 그 사단의 역사가 시작되어 네로황제의 시대에 있었던 대화재와 그리스도인들의 핍박은 이미 역사에 의해서 증명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 바울이 우려하는 것은 노예들의 폭동입니다. 그당시 로마에는 약 6천만 명 정도의 노예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남한 인구보다도 더 많은 숫자입니다.

바울은 2절에서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경히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 이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니라 너는 이것들을 가르치고 권하라"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이미 교회 안에 많은 노예들이 들어 와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복음의 확장과 함께 수많은 노예들이 교회로 들어 왔고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와 평등이란 메시지는 자칫하면 노예들의 폭동으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13장에서 모든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옴을 상기 시키며 그들은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라 하였고 공세를 바칠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를 바칠 자에게 국세를 바치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현대교회는 오히려 이런 말씀들을 통하여 노사의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도록 권고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연대들과 합세하여 정책에 대항하고 있고 또 사회적 여론에 가세를 하고 있는 편입니다. 그러나 결국 경영자가 망하면 사회는 일자리를 잃고 국가는 어려움에 쳐지게 됩니다.

우리리나라에서도 벌써부터 미묘한 노사관계가 대립 구도를  이루고 있습니다. 물론 노동자들의 당연한 권익이 보호되어야 하고 또 경영자들의 효율적인 경영도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을 정책 같은 것으로 공평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믿음과 선한 양심을 요구한 것입니다.

 *바른교훈과 바른말
바울은 이제 교회 안에서 발생될 일들을 경계하기 시작합니다.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 저는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하였습니다.

여기서 다른 교훈이란 바울이 여러번 말한 것처럼 이단사설들을 포함하여 교회 안에 새롭게 나타날 이론들을 언급한 것입니다. 사실 주님의 시대에도 유대인들의 회당에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바른 교훈이 아닌 장로들의 유전을 가르쳐 왔습니다.

그런데 율법의 시대가 지나고 복음의 시대가 시작되어 사도들을 통하여 교회가 세워지고 복음이 물밀듯이 확장되자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뜻을 온전히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임으로 일어나 새로운 논쟁거리를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특성을 말하여 그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전재하며 번론과 언쟁을 좋아한다고 하였습니다. 최근 우리나라는 토론의 시대로 변천하고 있습니다. 전세계는 벌써 복합논리 속에서 새로운 도약을 향하여 달려 가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너도 나도  토론장을 열어 단순논리들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것이야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교회 안에서 성경의 말씀을 가지고 가당치도 않은 논쟁을 일삼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도 유식하다는 사람들이 전혀 아무짝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신학적 싸움을 벌리고 있습니다.

즉 동정녀 마리아가 예수를 날 수 있느냐, 크리스마스는 정말 예수님 생일이냐, 예수님은 동성애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 자위도 죄냐 참으로 별의 별 논쟁을 다 일삼고 있습니다. 또 최근에는 많은 학자들이 일어나 성경의 말씀을 한 구절씩 파해쳐가며 반대론적인 이론을 제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최근 미국의 어느 교사가 디빈치 코드라는 책을 써서 우리나라에서도 10만부가 팔렸습니다. 저도 미국에서 어느 교수가 갖고 있어서 읽었습니다만 참으로 읽기 조차 민망한 내용들이었습니다. 그는 황송하게도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의 관계를 설정하여 막달라 마리아가 낳은 아들이 파리에 도피하여 자라고 있고 레로날드 다빈치를 중심으로 하여 그들을 보호하는 조직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소설이라고 해도 이것은 정말 지나친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책들이 세상 사람들은 물론 믿는 자들 속에서도 히트를 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전 우리나라에서도 예수는 없다 라는 책과 또 집안의 내력 속에 흐르는 저주를 끊으라는 책들이 한 때 유행하였습니다. 또한 야베스의 기도도 다시한번 그 의미에 있어 논쟁을 일으킨 책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이들이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이라 하였습니다.

바울은 7절에서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는니라"하였습니다. 여기서 지족이란 처해진 현실에 만족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바울은 부한대도 처하고 천한데도 처했다 하였으며 다시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것이니라"하였습니다.

요즘 많은 사역자들이 먹고 사는 일에 고심을 많이 합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과 복음전도에만 편중하여 앞뒤 않보고 일을 저질르는 바람에 세상 경제에 사로잡혀 수많은 목회자들이 카드빚에 내몰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실 처음부터 가정에서 자기 가족과 함께 예배를 시작하였다면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바울과 같이 자비량으로 출발을 하였다면 아무런 훼방을 받을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지도자의 재물관
이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의 재물관에 대하여 언급하기 시작합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과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문맥상 위에 말씀과 관련된 것이므로 교회의 지도자들과도 무관한 말씀은 아닙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물질에 탐하고 믿음으로 하면 된다는 무지몽매한 믿음을 내세워 사업에 손을 대어 손해는 보는 수가 있습니다. 일찍이 성공한 사람들의 예를 보면 모두 어려운 환경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과 흐름을 착안하여 한발한발 성공을 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부하려는 사람들과 정욕이 결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욕심은 결국 자신의 욕정을 채우기 위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계속하여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하였습니다. 바울은 일찌기 배물은 우상숭배라 하였습니다. 이처럼 재물에 관한 욕심은 사람의 마음을 악한 곳으로 이끌고 가는 영적인 힘이 있습니다.

 *사역자들의 본분
바울은 이제 사역자들의 덕목을 가르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하였습니다. 따라서 위에서 언급된 모든 내용은 사역자들이 잊지 말아야 할 사화관과 생활관이라 하겠습니다.

바울은 먼저 경건과 믿음과 사랑을 요구하였습니다. 경건이란 올바른 신앙의 자세라 하겠습니다. 이것은 그 믿음 생활을 지속하기 위한 근면과 성실을 포함한 것입니다. 또한 믿음이란 말씀과의 관계이며 사랑이란 그리스도인의 상징입니다. 따라서  경건과 믿음과 사랑은 모두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덕목입니다.

두번째로 바울은 '인내'를 요구하였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에는 이것을 '덕'으로 해석하였습니다만 이것은 적용적 해석이라 하겠습니다.여기서 말하는 인내 즉 '휘포모네'는 어떤 환경 속에서도 목적을 향한 끊임없는 투쟁을 말합니다. 

바울은 세번째로 '온유'를 언급하였습니다. 여기서 온유란 사람에 대한 덕목을 말합니다. 주님은 온유한 자가 기업을 얻는다 하였고 잠언서 기자는 온유한 자가 장수한다고 기록하였습니다. 따라서 온유란영혼 구원을 맡은 사역자들의 사회적 활동 속에 나타날 가장 큰 덕목이라 하겠습니다.

12절에서 바울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들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말하였습니다. 이것은 사역자의 삶이 영적전쟁속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영적전쟁은 곧 우리의 생각과 실제적 생활에까지 파급됩니다.

따라서 선한 싸움을 하라는 말씀은 그리 쉬운 것은 아니지만 영원한 생명과 관계 된 것이므로 우리가 그 전쟁에서 패하면 결국 영생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다는 말씀은 정말 큰 위로가 되며 또한 두려운 말씀입니다.

바울은 13절에서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로 증거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매우 오묘한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또한 예수께서는 십자가 처형을 앞두고도 빌라도 앞에 자신을 위한 증거를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의탁하였습니다. 오직 주님은 빌라도에게 진리를 증거하였을 뿐입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하였습니다. 여기서 사역자 된 우리는 실로 감당하기 힘든 명령을 받게 됩니다. 이것은 자신의 그 모든 것을 모두 버려야만 할 수 있는 사명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주의 나타나님이 없다면 우리의 이러한 투쟁도 모두 허사가 되고 말 것입니다. 이런 관계로 바울은 경주하는 자가 받을 면류관에 대하여 말한 것입니다.

바울은 계속하여 우리 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존귀와 영광과 능력에 대하여 언급하며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히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며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다 증거하였습니다. 지금 이 분께서 우리를 주관하시고 또 그날에 우리로 그의 영광 가운데 함께 임하시기를 권하고 계신 것입니다.

  *재물에 대한 경고
이제 바울은 마직막으로 다시 조심없이 꼭 지켜야할 일들을 다짐하듯이 말하고 있습니다. "네가 이 세대의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르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하였습니다. 과연 부한 자들이 우리의 이런 권면을 받을 것인지..또한 사역자들이 부한자들에게 이런 권면을 할 수 있는 담대한 믿음이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볼 때입니다.

바울은 18절에서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많은 재물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엄청난 재물을 갖고 있으면서도 늘 재물로 인하여 재앙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어차피 자신이 지키지 못할 재물인데 왜 그렇게 허망한 일에 소비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바울은 부한 자들을 향하여 데모데에게 이 메시지를 전하게 한 것입니다.

끝으로 바울은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데모데야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고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탄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하였습니다. 여기서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이란 말을 킹제임스 성경에는 거짓되이 과학이라 불리는 것'이라 번역되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지금 앞으로 사람들이 성경적인 내용을 어떤 과학적인 근거와 물리학적인 방법을 통하여 분석하려는 태도가 일어날 것을 경계한 것입니다. 요즘 유명하다는 분들의 설교를 보면 너무 지식적인 논법을 사용하고 그것을 대비하여 자신의 유명함을 알리려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과 지식으로 오직 그 말씀을 분변하고 깨닫게 하시는 성령의 알게 하심으로만 그 해석과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인 것입니다. 바울은 끝으로 "이것을 좇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좀더 자신의 게으름을 깨우치고 오직 우리를 부르신 존귀한 하나님의 호흡과 그의 사랑과 은혜를 덧입어 그리스도의 복음에 충실하고 그의 오심을 예비하는 선한 사역자들이 되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요, 이제 데모데 후서는 신년부터 이어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