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디모데서강해

(딤전4:1)귀신들의 시대를 대비하라

이요나 2005. 5. 4. 15:36
(딤전4:1)귀신들의 시대를 대비하라

(딤전4:1)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오늘은 아주 특별한 부분을 공부하겠습니다. 바울사도는 3장에서 교회 조직에 관한 특별한 경계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경건의 비밀에 대하여 언급하였습니다. 경건의 비밀이란 온전한 헌신을 통해서 믿음을 지키는 성도의 신심을 말합니다.

최근 교회에서 많은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의 집을 위해 봉사하는 사역자들의 잘못된 헌신으로 빚어집니다. 시기와 질투와 무절제 속에서 교만한 마음이 싹터 교회를 헤치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A. 사단의 역사
오늘 바울은 4장에서 교회속에 역사하는 사단의 영 즉 귀신들의 역사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언제고 성령의 역사가 있은 후에는 사단의 역사가 뒤 따른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신 후에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사도행전을 보아도 이러한 사실은 알 수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에게 성령의 강림으로 탄생하였는데 초대교회의 성령의 역사 속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은 사도들의 가르침 속에 확장되는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로하여 교회는 날로 부흥되었지만 곧 바로 사단의 훼방이 일어나 교회는 환난을 받았습니다.

*믿음에서 떠난 자들
오늘 1절의 말씀에는 아주 놀라운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들의 가르침을 좇으리니"라고 기록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라는 접속사는 위의 내용에 대한 상반된 일을 언급한 것입니다. 경건한 교회 속에서 나타나는 사단의 역사를 예고한 것입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는 사람들이 믿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아는바와 같이 기독교의 이단들은 모두 믿는 사람들 속에서 나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가롯 유다가 예수께서 부르신 제자 중에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유다는 타락한 천사들을 가리켜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처소를 떠난 자'라고 하였으며 또 사도요한은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우리에게 속하였더면 우리와 함게 거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히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요일2:19) 하였습니다.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통일교와 같은 모든 이단종교는 믿는 자들 특별히 커다란 은사를 받은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이만희 라는 목사가 무료 신학교 또는 시온교회 하나님의 교회라는 교세를 펼치며 그속에서 자신이 그리스도의 위치에 군림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가르침
여기서 우리가 주의할 것은 '가르침'이라는 말입니다. 이단들의 경우 확실히 일반 다른교회들과 또 다른 가르침이 있습니다. 가르침이란 지식적인 부분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사단이 하와를 유혹할 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시험할 때에도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였습니다. 사단의 특징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갖고 무지한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대게 이단자들은 종말론에 관한 계시록을 들고 나오기 일 수 입니다. 다른 교회에서 다루지 않기 때문입니다. 회개에 대하여 전도에 대하여 예언과 방언에 대하여 귀신 쫓음에 대하여 이런 부분적인 것을 들고 사람들을 미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가르침을 보면 거짓말입니다. 성경을 바로 알지 못하면 결국 거짓이 되고 맙니다. 성경은 거짓 선지자와 거짓교사가 있을 것을 미리 말하였습니다.

*양심이 화인 맞은자
바울사도는 그들을 가리켜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하였습니다. 화인이라 노예들을 표시하는 불도장입니다. 그들은 자기 성령을 부인하고 자기 소욕을 성취하려 하였기 때문에 결국은 양심이 없어지고 만 것입니다.

그들의 특징은 하나님을 아는 선한 양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잘못을 하게 되면 양심의 가책을 받아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야 하는데 양심에 낙인이 찍혀 회개의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히6:5,6) 하였습니다.

*종교적 의식
그들의 두번째 특징은 외식함입니다. 대게 이단자들을 보면 종교적 의식에 그 촛점을 두고 있습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것 보다는 다른 사항에 치중을 하게 됩니다. 겉으로 위장하는 것이지요. 세번째 특징은 거짓말입니다. 성경은 사단은 처음부터 거짓말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혼인을 금함
바울은 3절에서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할 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기록하였습니다. 어떤 교회들은 곧 임할 재림을 빙자하여 결혼을 훼방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시는 날 즉 휴거 당일이라도 성도의 결혼은 축복받을 일입니다.

성경은 창조로부터 하나님의 사람들의 결혼을 제도화 하였습니다. 처음부터 남자와 여자를 지으시고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셨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서에서 하나님의 뜻은 너희의 거룩함이라 말하며 아름다운 부부생활을 할 것을 독려하였습니다.

*식물에 관한 규례
최근 날이 갈수록 식물에 관한 관심들이 커지고 있습니다. 종말이 가까울 수록 질병이 많아 지기 때문이지요,  최근 우리나라에도 웰빙바람이 불어서 이러한 조짐은 더욱 강조될 조짐입니다만 이것은 어떤 면으로  유대교의 율법적 성향이 강화될 것을 의미합니다.

이들의 논리는 주의 오심과 관련하여 거룩한 성도는 구약에 금한 식물을 먹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위생적인 부분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 하나님으로부터 온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범하는 것 자체가 거룩함에서 떨어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하였습니다.

얼마전 미국에 가보니 안식일 교회가 엄청난 세력을 갖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특별히 그들은 병원 사역을 사역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그들은 식물에 대한 특별한 규정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고린도교회에게 "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성함이 없으니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전8:8).

B.옳바른 교훈(6-15)
바울은 이제 제자 디모데에게 옳바른 교훈에 관하여 언급하였습니다.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일군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좇은 선한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우리는 위에서도 사단의 영들이 잘못된 지식을 갖고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음을 살펴 보았습니다.

마가복음 1장에서 주님의 사역은 제일먼저 복음의 선포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복음을 맡을 제자들을 부르신 후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습니다. 이때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라며 서기관과 달리 권세자의 교훈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선한 양심과 말씀의 양육
오늘 바울은 본문에서 먼저 선한 그리스도의 일군이 되기를 권하였습니다. 선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품성을 의미한 것입니다. 두번째로 믿음의 말씀을 강조하였습니다. 믿음이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세번째로 바울은 선한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라 하였습니다.

선한 교훈이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입니다. 마가복음1장 마지막 단락에는 주께 정결함을 받은 문둥병자에 관한 내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엄히 말하여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증거하라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리를 돌아 다니며 자기를 나타내었습니다. 어떤 면으로 그는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한 사람이 되었을런지 모르지만 주님의 뜻은 교회로 돌아가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의 선하신 말씀으로 양육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경건에 이르는 연습
바울은 7절에서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하였습니다. 여기서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란 지어낸 이야기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날이 갈수록 사람들은 사변적 변론을 좋아하여 말들을 지어내기를 즐겨합니다.

사도행전에는 아덴 사람들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새로운 것을 듣는 일 외에 다른데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아덴 사람들이 이런 현상에 빠진 이유는 그 지역에 에피쿠르스와 스토이 철학자들이 있어 잘못된 신화들을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행전17장 참조).

오늘날 김용옥 교수라는 이상한 철학자가 스스로 신학자요 철학자임을 자처하며 정치에서 경제 문화 예술에까지 새로운 도약의 기세를 몰아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믿음의 훈련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새벽기도나 금식과 같은 종교행위와는 다른 말입니다. 여기서 경건에 이르는 훈련은 거룩한 성도가 되기 위한 말씀과 기도를 언급한 것입니다.

최근 많은 성도들의 문제는 거룩한 성도의 경건한 믿음으로 위하여 말씀과 기도를 외면하고 육체적 속성에 대한 훈련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바울은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세에 약속이 있느니라"하였습니다.

사람들이란 묘한 습성이 있어서 스스로 지신의 육체를 극복해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육체의 속성은 아무도 제어할 수 없습니다. 배고품과 성적 욕구와 세상을 향한 육체의 욕구를 제어할 그 아무 무기도 없습니다. 오직 제어할 수 있는 것은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 속에 역사하는 성령의 능력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기적인 금식기도에 자신의 믿음을 확정지으려 하고 새벽예배를 위해 어떤 사람은 한시간을 달려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새벽예배에 가면 10분 설교가 기다라고 있는데 나는 그 사람들의 그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습니다.

바울은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말하며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이 받을만하도다"하였습니다, 이것은 3장에서 언급한 경건의 비밀과 관련하여 경건의 비밀을 성취하기 위한 그 방법에 대한 방법을 말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바울은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을 다하였다고 합니다.

*
윤리와 도덕
바울은 11절에서 "네기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하였습니다. 먼저 사역자의 연소함을 비방하지 못하게 하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사역이 나이와 세상적인 경륜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안수하심으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두번째로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되라'하였습니다. 이것은 윤리적인 부분과 도덕성을 언급한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 사도는 말과 행실을 사랑과 믿음 보다 앞세웠습니다. 사역자의 말과 행실이 온전치 못하고서야 사랑도 믿음도 헛일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정절은 그리스도를 향한 절개와 열정을 말한 것입니다.

*성경과의 관계
세번째로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하였습니다. 여기서 내가 이를 때까지라는 말은 디모데 자신도 계속적인 양육이 필요함을 언급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면 자기 위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성경은 제자가 스승보다 클 수 없다 하였습니다. 지속적인 가르침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읽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정말 요즘 성도들 너무 성경을 읽지 않습니다. 겨우 주일이나 되야 설교시 성경을 펼치고 있습니다. 여기서 권하는 것이란 믿음생활에 관한 권면을 말합니다. 성도와의 믿음의 교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끝으로 바울은 가르침에 착념하라 하였습니다. 성경은 끊임 없이 살펴보고 터득되어야 할 하나님의 지식과 지혜입니다. 이것은 학술과 달라서 끊임없이 배우고 살펴서 그리스도안에 펼쳐진 삶의 지혜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사명과 사역
14절에는 은사로 받은 예언에 관한 말씀이 기록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때때로 자신의 생활에 안주하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예정하신 뜻이 있습니다. 또한 그 예정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미리 계시되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설혹 그 가야할 길이 험하고 고난의 길이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인 것입니다.

바울은 15절에서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모든 사역자들이 가슴에 담아야할 말씀입니다. 자신의 진보란 계속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주님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요 또 더받으리니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 까지 빼앗기리라"(막4:24) 하셨습니다.

*진보된 믿음
끝으로 사도는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하였습니다. 나는 이 말씀을 읽으며 무한한 위로를 받았습니다. 최근들어 나이가 들고 보니 지난 10년의 세월동안 나는 무엇을 하였는가 하는 회한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근 데살로니가와 데모데서를 강해하면서 무한한 은혜를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교만함을 깨우치며 아직 내게 소망이 있음을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날이 이르기까지 그의 말씀안에서 경건에 이르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나 자신은 물론 나를 통하여 구원받을 귀한 하나님의 성도들을 위해 예비된 하나님의 경륜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디모데후서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