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디모데서강해

(딤후2:10)영원한 영광에 이르는 교훈

이요나 2005. 6. 14. 13:57
(딤후2:10)영원한 영광에 이르는 교훈

(딤후2:10) 그러므로 내가 택하신 자를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저희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 함이로다

1장에서 바울은 자신이 옥에 갇혀 더이상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자 그로하여 발생될 복음사역자들의 위축과 비관을 우려하여  복음이 온세상에 이르기까지 청결한 양심과 거짓없는 믿음으로 직분을 지켜 온 사람들을 열거하며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 바울로부터 전수된 바른 말을 지키고 성령으로 위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바울은 그 믿음의 증인들로 구약에 기록된 믿음의 조상들과 또 우리의 삶 가운데 모델이 되어 온 믿음의 가족들 그리고 택하심과 부르심을 따라 역사한 성령의 은사가 있었음을 주지 시켰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복음의 활동에서 이탈한 사람들의 부끄러운 이름과 열정을 가지고 자기의 자리를 지킨 아름다운 이름 오네시보로를 믿음의 모델로 천거하였습니다.

   I. 강건한 믿음
이제 바울은 2장에서 온전한 사역자로서의 지켜야 할 믿음의 규범들과 경계할 것을 언급하였습니다. 먼저 바울은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 강하라' 하였습니다. 이 짧은 문장은 이 위에 더이상 그 무엇을 첨가할 필요가 없는 믿음의 촉진제입니다.

먼저 자신을 이끄는 멘토와 아들의 관계는 그 생명은 물론 이념과 철학과 언행이 같을 수 밖에 없습니다. 아들은 아비를 닮기 때문이며 또 아비가 갖고 있는 혈통적 좋은  DNA를 물려 받기 때문입니다. 아마 외국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가운데 이방에서 태어난 디모데로서는 외모를 중히 여기는 유대주의자들에게 그리 탐탁치 못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행전 16장에서 바울이 데모데를 복음의 제자로 영입함에 있어   그 지역의 유대인들의 눈을 의식하여 할례를 주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그는 체질적으로 약한 몸을 갖고 있어 바울의 선교활동이 멈추어진 상황에서 복음의 현장 일선에 나서기 용이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와중에 바울의 가르침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바울로부터 돌아서 각자의 로선을 찾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II. 제자를 삼으라
이러한 상황에 처한 디모데에게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 강하라' 하였습니다. 바울이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먼저 말한 것은 예수께소도 한 인간이셨으나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역사하셨음을 주지 시킨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복음 사역자는 기름부으심의 능력 가운데서만 강건할 수 있습니다.

  2절에서 바울은 " 또 네가 많은 증인들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하였습니다. 이것은 복음의 시작이 먼저 제자사역으로 시작되야 할 것을 언급한 것입니다. 올바른 제자를 세우는 것만이 복음을완성케 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도 성령의 충만하심과 시험을 받으신 후 복음 사역의 제일 선두에서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어떤 제자를 부르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미 바울은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렸다 하였습니다. 사실 바울을 따라 믿음을 끝까지 지킨 아름다운 이름이 10사람 미만인 것은 흥미롭습니다.

바울은 먼저 '많은 증인들 앞에서 내게 들은 것들을 충성된 사람들에게 맡기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충성된 사람이란 신실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그 중요성을 두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천국의 비밀을 말씀하시며 '너희가 무엇을 어떻게 들을 것인가 주의하라' 하셨습니다.

바울은 어느 때 어느 곳에서도 굴하지 않고 주께 받은 은혜의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그것은 골방에서 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증거된 것이며 인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함에도 많은 제자들이 바울을 떠난 것은 그들이 자신의 사욕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가르침을 말하여 나의 복음이라 하였습니다.

또한 바울은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복음의 연속성을 언급한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문제는 제자 구도가 바로 서지 않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신학을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소모적인 일입니다. 만약 교회가 그 가르침에 있어서 충실하다면 교회보다 더 좋은 복음의 훈련장은 없을 것입니다.
 
    1.군사
 이제 바울은 복음의 제자로 부름받은 자들의 자세에 대하여 언급하였습니다. 먼저 바울은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하였습니다.

 이것은 복음사역이 영적전쟁에 속한 것임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 사역자를 직업으로 택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직업은 자기가 선택하는 것으로 그 보수와 조건에 따라 스스로 바꿀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군사는 전쟁이라는 전제적인 조건에 모집하는 자의 기준에 도달하여야 하며 내 의지보다는 모집하는 자의 선택에 의존하게 됩니다. 주님은 부모형제와 처자 그리고 자기의 목숨을 미워하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 하셨습니다.

먼저 바울은 군사는 생활에 얽매이지 말아야 할 것을 주지 시켰습니다. 많은 사역자들이 자기 생활에 매달려 온전한 제자의 직분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모집한 분을 기쁘게 하기 위해 그의 부르심에 자원한 것입니다.

  2. 경기자
 두번째로 바울은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라'하였습니다. 이것은 복음사역에 원칙이 있음을 언급한 것입니다. 어떤 경기던지 그 최고의 목적은 우승이라는 영예가 주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최고의 우승컵을 받기까지에는 정해진 규칙에 의거해야 합니다.

 많은 교회들이 교회성장을 목적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려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만명을 이루고도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기준에 의거하지 않았다면 그가 쌓은 것은 결국 모래성이 되고 말 것입니다. 주님은 늘 그 정도를 벗어나지 않으셨습니다. 

 마가복음 1장에는 정결함을 받은 문둥병자가 나옵니다. 그는 주의 긍휼함을 입어 문둥병에서 놓임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제사장에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증거하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말씀을 따르지 않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일을 증거하였습니다. 그 일로 주님은 더이상 사람들 가운데 나가지 못하고 집에 계셔야 했습니다.

 또 마가복음 5장에는 군대귀신 들린 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께서 그 속에 있는 귀신을 쫓아내자 그는 온전한 정신이 되어 주를 따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네 친속에게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하셨는가를 증거하라 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데카볼리 지역의 전도자가 되어 후일 4천명의 칠병이어를 일이킨 위대한 복음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3, 농부
세번째로 바울은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농부의 부지런함과 그에게 먼저 돌아 오는 보수를 언급한 것입니다.  곡식을 얻을 때까지 쉬지 않고 일하는 농부의 열정과 부지럼으로 그 댓가가 먼저 자신에게 돌아 오는 원리를 설명한 것입니다. 야고보서 기자는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린다"(약5:7) 하였습니다.

 III. 말씀의 음미
 바울은 7절에서 "내 말하는 것을 (깊이) 생각하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깨달음)을 주시리라(원하노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들은 말씀에 대한 깊은 상고와 고찰을 언급한 것입니다. 만약 그 들은 말이 그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온전히 깨닫지 못하면 그 말씀하신 뜻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경은 수쳔년동안 성령의 감동을 입은 사역자들을 통해서 때로는 비유로 어떤 것은 은유와 대유법으로 어떤 일은 봉인된 말씀으로 주어졌습니다. 따라서 그 말씀을 온전히 알 기 위해서는 주께서 그에게 요구하는 기준에 이르도록 성경적 관찰과 고찰을 통해 그 말씀하신바를 이해하여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의 문제점 중에 하나는 어느 부분적인 말씀을 떼어내여 목사가 말하고자 값을 얻어내려는 설교를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가 떠낸 성구는 그러한 의미가 아닌 것인데도 자신의 목적에 귀결시킨다는 것입니다. 

갈보리채플이 성경전체를 그 순서에 의하여 강해 또는 주해로 설교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각 부분에서 성경을 기록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 위해서 입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13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에는 사단이 와서 그 마음에 뿌린 것을 빼앗는다 하였습니다.  

 IV.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네번째로 바울은  "나의 복음과 같이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8절) 하였습니다. 지금 바울은 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던 다윗을 이끌어 내어  다윗과 같이 우리의 마음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떠나지 않기를 기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여기서 위에서와 달리 주의 이름 '예수'를 그리스도 앞에 먼저 기록한 것은 예수께서 육체로 오셨음을 주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께서 승천하실 때에 천사들이 사람들에게 말하되 오늘날 구름을 타고 하늘에 오르신 예수 그리스도는 너희가 본 그대로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하였습니다. 지금 바울은 디모데에게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고대하며 기억하라 한 것입니다.

바울은 9절에서 "복음을 인하여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삶 속에서 영원히 기억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을 언급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조상 다윗이 죽어 우리 중에 무덤에 있지만 그가 성령으로 주를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담대히 말하였다 하였습니다(행2:29-31). 다윗이 이처럼  주를 미리 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가득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가 육신에 처하여 고난과 죽음을 당할지라도 생명이신 주의 말씀은 영원히 살아서 역사하고 계신 것입니다.

바울은 '참으면 또한 함께 왕노릇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하였습니다. 주와 함께 왕노릇한다는 것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성취되지 않은 일로서 우리는 그의 날에 그와 함께 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입니다.

그가 이 땅의 군주로서 상속을 받았은즉 그와 함께 고난에 동참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에 이른자들에게 약속된 영광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라"(롬8:17)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하신 말씀은 매우 두렵습니다. 주님은 어떤 자들이 나아와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귀신을 쫓으며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였습니까 하였을 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라' 하셨습니다.

물론 그들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고 예언과 능력을 행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님은 그들에게 그러한 능력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묻고 있는 것입니다. 주를 부인한다는 말은 예수를 떠났다는 말과도 같아서 그의 가르침에서 떨어져 나간 것을 말한 것입니다. 

바울은 14절에서 "너는 저희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를 망하게 함이라"하였습니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일들 즉 교회들의 잘못된 인식과 가르침, 그리고 주의 강림하심과 성령의 능력에 관한 교훈들에 대한 교리적 타툼을 언급한 것입니다. 이미 교회에서 다툼이 되고 있음은 사실입니다.

 V. 하나님께 드리기를 힘쓰라
15절에는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기를 힘쓰라"기록되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말씀을 가르치고 그의 말씀을 음미하고 또 예수를 기억하며 살고 있다 하드라도 만약 내가 주 앞에 부끄러운 일군이라면 내가 행한 것들은 모두 허사가 되고 말 것입니다.

 주님은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비가 오고 창수가 나면 무너질 것이라 하셨으며 또 그 열매를 보고 나무가 좋고 나쁜 것을 말하라 하셨습니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제자된 자들이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계속하여 바울은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저희는 경건치 아니함으로 점점 나아가니 저희 말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네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하였습니다. 여기서 창질이란 암과 같이 전체로 전위되어 가는 속성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후메네오나 빌레도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진리에 관하여는 저희가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하므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말하여 그들이 무엇을 하였는지는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이들은 오늘날도 우리 교회 속에 있습니다. 아직도 많은 교회들이 부활에 대한 잘못된 지식을 갖고 후천년설이나 무천년설 같은 괴변을 토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할 것은 이러한 가르침들이 사람을 믿음에서 무너뜨린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자기 백성을 아신다' 기록하였으며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기록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하나님의 기초가 확고하게 섰기 때문이며 변하지 않는 각인된 말씀으로  우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 말씀을 맡은 자들에게 있습니다.

바울은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다"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획과 관련된 부르심입니다. 모세나 다니엘이나 아모스나 요엘이나 베드로나 실라나 모두 그 그릇의 역활과 쓰임이 다른 것입니다.

바울은 계속하여 "그러므로 구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을 되리라"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위대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 달려가려 합니다. 그러나 간장종지가 국그릇을 될 수 없는 것은 그릇의 용도가 그 주인에 의해 이미 정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금이나 은이라 해도 그 그릇이 더러우면 그것들은 더이상 그릇으로 쓰임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VI. 청년의 정욕을 피하라
22절에서 바울은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하였습니다. 여기서 청년의 정욕이란 육체적인 욕정를 비롯한 헛된 욕망을 말합니다. 

여기서 '피하라'는 말은 요셉이 보디발의 처에게 유혹 받을 때 옷을 벗어버리고 '도망하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이것은 그 유혹에서 자신을 지키는 것은 도망하는 길밖에 없음을 의미합니다. 요즘 나는 젊은이들의 결혼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정욕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VII.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계속하여 바울은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하였습니다. 요즘 각 교회들이 교파에 의한 교리적 문제를 놓고 시시비비를 가리며 서로 이단성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소모적이고 무익한 일은 없습니다. 결국 주께서 모든 것을 밝히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마땅이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혹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하였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주의 종들의 온유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온유함이란 최고 양질의 포도주와 기름으로 금방 사용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하며 잘 박힌 못과 같은 상태를 말합니다. 주님은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잘못된 자들을 향한 가르침과 징계를 더하였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말씀에 휘말리지도 동조하지도 말고 그들의 잘못된 지식을 옳게 분변하여 온유함으로 가르치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끝으로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일삼는 자들이 이미 마귀의 올무에 사로잡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번 예수를 믿었으면 그는 영원한 구원에 들어 간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진리와 말씀의 인도를 받는 거룩한 품성에 이르는 중보의 과정을 오해하여 자신들이미처 알지 못하는 것을 고집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더럽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자(마귀, 사단) 그로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한다 기록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오묘한 가르침에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우리가 날로 거룩해질 것을 믿습니다. 주여 당신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