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한음성

KBS는 김용옥 교수의 시녀인가?

이요나 2002. 8. 13. 16:57

KBS는 김용옥 교수의 시녀인가?

   헤롯도 없다?!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헤롯은 성경상에 나타난 에서의 마지막 후손임을 알고 있습니다. 이로서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은 성취되었습니다. 헤롯에 대하여는 별도로 시간을 할애할 정도로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성경도 세례요한과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많은 사실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시간을 내어서 세례요한에 대한 강해를 통하여 서술하기로 하고 오늘은 그에 대한 역사적 제공 사실만을 간단히 서술하겠습니다. 헤롯은 편집광적인 성격소유자로서 150cm의 작은 키였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악마같은 성격소유자로서 자기의 정치적 도전자라고 느끼는 사람은 부인과 아들이라도 서슴치 않고 죽였습니다. 또한 헤롯은 건축에 특별한 재능을 소유한 자로서 예수님 당시의 헤롯성전을 60년에 걸쳐서 완성한 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 황제와 동시대 인물로서 아구스도 황제는 무자비하게 자기의 자식을 죽이는 잔인성을 가리켜 "헤롯의 아들(huion)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헤롯의 돼지(hum)가 되는 것이 낫겠다"고 하였습니다. 헤롯은 B.C. 74년에 출생하여 B.C. 37년에 즉위하였으며 B.C. 4년에 사망한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김용옥 교수의 거짓말!
오늘 우리가 살펴 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역사적 증명에 관한 성경 본문은 지난 10월26일 김용옥 교수가 KBS에서 읽은 누가복음 1장 첫 부분입니다. "이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에 첫번 한 것이라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인고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되었더라"(눅2:1-5). 누가복음 1장 서두에서 누가는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목격자되고 일군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그 모든 일의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다"라고 기록하였습니다.

   누가는 누구인가?

   이 내용으로 우리는 누가가 그 시대의 고위층의 저명한 주치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글은 데오빌라 각하의 명령에 의하여 의사의 눈으로 근원부터 자세히 관찰한 것으로서 지나간 일들을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배운 사실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확증을 얻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가는 자신의 생각을 따라 기록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저술하였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누가는 자신이 기록한 다른 성경, 사도행전을 통하여 복음활동 과정 속에 나타난 인명과 지명을 자세히 서술함으로서 후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사도행전을 통하여 사도들의 복음전도의 과정과 활동을 손바닥 보듯이 알게 하였습니다. 이 복음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태어나심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계 속에서 인류와 함께 살아 온 역사로서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의 강입니다. 그러함에도 김용옥 교수는 자신의 터득한 역사적 지식과 신학적 학문을 외면하고 자신의 명예와 영광을 위하여 이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대항하고 있습니다.

   김대통령의 노벨상을 안받을 것이라 우기면?

   이제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복음의 활동 속에 나타난 세상의 흐름을 한 가닥씩 살펴봄으로서. 이러한 미혹의 근거를 밝히고자 합니다. 먼저 우리는 그리스도 탄생에 관한 기록 속에서 나타난 역사적 인물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누가는 누가복음 2장 서두에서 그 시대의 최고의 통치자 가이사 아구스도의 이름을 기록하였습니다. 누가가 그에 대하여 더 이상의 자세한 기록을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은 그는 로마의 황제로서 그는 복음의 배경이지 복음활동의 주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얼마 전에 있었던 김 대중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과 관련하여 전기를 쓴다고 할 때 지금 이 시대의 정치적 구심점을 이루는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의 이름을 기록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만약 이 역사적 사실에 대하여 몇 세기 후 어느 학자가 이 사실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한다면 클린턴 대통령과 나를 포함한 이 시대의 50억 인구는 모두 어느 소설 속에 나오는 가상 인물이 되고 말 것이며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 사건은 사기가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역사는 아무도 변명할 수 없는 명백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발자취이며 숨소리인 것입니다. 이처럼 김용옥 교수가 부인하며 의문을 제기한 성경의 기록도 오늘 하늘에서 뚝 떨어진 소설책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피의 희생 속에 기록된 세상을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숨소리이며 명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한 살아있는 역사인 것입니다.

   성경의 미스테리는 없다!

    누가는 그 당시 이스라엘의 정치적 상황 속에 있었던 인구조사를 언급하였습니다. 이것은 마리아와 요셉이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에 올라간 직접적인 동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구속사적 섭리로 볼 때 이미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된 말씀으로서 역사 속에서 성취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이것으로 이 세상의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적 말씀 속에서 성취되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누가복음 2장 1절에서 유대에서 실시된 인구조사는 로마황제 가이사 아구스도에 영에 의한 것으로 "천하"라는 단어 속에서 이것은 로마의 지배 속에 있는 모든 나라에서 실시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적 보고서에 의하면 로마의 인구조사는 A.D. 20년, A.D. 48년으로부터 A.D.230년까지 14년마다 정기적으로 실시되었던 국가 정책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것을 근거로 하여 A.D.20년에서 14년을 빼면 A.D. 6년에 실시되었음을 알 수 있고 다시 여기서 14년을 빼면 B.C. 8년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대적 증명의 난제가 된 것은 2절의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으로 있을 때에 첫번 한 것이라"는 기록입니다. 이는 구레뇨 총독 재위 시절에 인구조사가 두 번 있었음처럼 느끼게 하지만 전체 문맥의 흐름으로 볼 때 "이 인구조사는 구레뇨 총독의 지휘아래 실시된 첫번째 조사였다"고 해석함이 옳습니다.

   역사는 현실이다!

   이러한 해석의 근거는 요세푸스(Josephus)의 고대사(Antiquities)에 의하면 구레뇨는 B.C. 8년이 아닌 6년에 수리아 총독이 되었으며 그는 사도행전 5장 37절의 기록된 유다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하여 출전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또 요세푸스는 "인구조사는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우스가 패한 해로부터 37년 되는 해에 실시되었다"고 부연하므로 A.D. 6년에 인구조사가 있었음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이 전쟁은 세기의 여인 클레오파트라의 정부였던 안토니우스의 악티움 해전으로 B.C.31년 8월2일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요셉푸스의 증언대로라면 인구조사는 B.C.8년이 아닌 B.C.6년에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하는데 그러면 로마의 역사적 사실과 또 위배됩니다. 그러면 2절에서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되었을 때에 첫 번이라"는 기록은 어느 성경학자들의 주장처럼 누가의 실수일까요? 아니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누가는 의사로서 주의 깊고 관찰력 있는 사람이었으며 그 시대의 석학입니다. 자신이 살고 있었던 시대의 사건을 조사하는 것은 그 사건에 대한 지식이나 자료에 있어서 지금 우리가 2000년전의 일을 미루어 살피고 연구해야 하는 역사와는 다릅니다. 그 당시는 역사가 아니고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누가는 성령의 도움이 없었다 하더라도 손바닥 보듯이 아는 일을 실수할 사람이 아닙니다. 더욱이 성경의 실제적 저자가 성령이심을 생각할 때 실수라고 생각을 하는 것조차 용납 될 수 없는 일이지요. (내일로 넘어 갑시다)

'세미한음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의 열병  (0) 2002.09.30
이 가을 장가 가고 싶다  (0) 2002.08.14
술은요? 마약은요? SEX는요?(1)  (0) 2002.08.04
다시 생각해 보자구요  (0) 2002.07.26
초점을 하나님께  (0) 2002.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