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탈출

아무도 동성애를 정당화 할 수 없다

이요나 2002. 10. 28. 10:58
아무도 동성애를 정당화 할 수 없다!



이글은 어느 형제가 갓피플 상담실에 올린 내용에 대한 나의 성경적인 견해를 피력한 것입니다..따라서 저는 이러한 글에 대한 논평의 필요성을 더이상 느끼지 않습니다.




아래 내용중 답변이 불필요한 부분은 --중략---으로 처리하였고 본문에 대한 나의 성경적 견해는 ---나의 견해---라고 기술하였습니다. --중략--한것은 답변이 곤란한 것이 아니라 답변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1. 시작하면서 저자: 곽분이(한성신학대 기독교교육학과 교수)


*서구사회는 동성애(Homosexuality)라고 부르는 것을 용인하고 받아주는 사회로 우리는 이해하고 있다. 따라서 서구라파에서는 동성애운동이 적극적이고, 긍정적 측면으로 표면화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회는 동성애적인 사고의 대중적인 표현을 ‘나쁜’, ‘죄가 있는’ 혹은 ‘개인적인’것으로 통념화한다.




나의견해:서구 사회가 용납을 하고 않하고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국가와 민족과 문화를 초월하여 그리스도인이라는 천국시민권에 준하며 천국시민권자에게는 하나님의 경전인 성경이 주어졌다, 이것은 문화와 민족과 시대를 떠나서 변할 수도 바뀔 수도 변경할 수도 없는 창조자의 권위이다




*한국교회와 기독교 신학은 이제 동성애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새로운 해석이 요청된다고 필자는 느끼고 있다. 동성애는 단순히 심리적으로 무엇인가 잘못된 것으로 성서가 우리를 그렇게 가르쳐 왔다. 따라서 더 이상 동성애는 개인적인 도덕의 문제로 취급할 수 없다고 믿는다. 오히려 그것은 공공연한 공동의 대책정책으로 그들을 다시 고려해야 한다. 사회에서 교회에서 그들을 억압하거나 소외시킬 수 없다는 입장이다.




나의 견해: 동성애는 윤리적이나 도덕적인 문제로 다룰 수 없는 인간을 더럽혀 거룩함에 이르지 못하게 하려는 영적인 존재들의 역사로 보아야 한다




(4) 그러나 이제 우리는 동성애자들의 문제를 인권의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하고 그들의 주장을 바르게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구에서는 동성애자들의 운동이 70년대에 비해 상당히 진행되었고 성과를 거두었다고 본다. 동성애에 대한 법정 개정의 측면과 더불어 그만큼 동성애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나의 견해: 동성애자들의 인권이 무시되어서는 않된다,,그들은 우리와 같은 인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어쩔 수 없는 신분으로 변하여져 있음을 인정하여야 한다..그러나 이것은 그들의 행위를 정당화 하는 논리가 될 수 없다.




2. 성서와 동성애

*동성애를 언급한 성서를 골라 해석할 때 우리는 몇 가지 해석상의 원칙을 마음에 둘 필요가 있다 <<중략>>
*마지막으로 우리들의 성서해석은 인간의 문제점을 풀어가는 과정 속에서 보여지는 하나님의 진리를 향해 완전한 개방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나의 견해:전적으로 동의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권위이며 인간의 삶의 기준이다.,.이것은 변할 수 없는 원칙이며 이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은 인간을 향한 자신의 뜻을 성취해 나가신다.




그러나 님의 글은 님이 여기서 주장한 것을 위배하고 있다. 성경해석은 주석이나 원어를 발췌한다고 해서 되는 일만은 아니다, 성경전체를 통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살펴야하며 문장의 문맥을 따라 그 단어의 사용 용도와 해석적 범위를 설정해야 한다. 또한 성경해섣은 문자를 중심으로 성경 기록상 최초 문헌에 해석적 기준을 두어야 하며 그 해석의 원칙은 성경전체 속에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 또한 의미적 해석에 있어 그 문단의 문맥에서 비유, 대유, 은유, 직설법 등에 의해 그 단어가 사용된 범위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의 택하심과 부르심속에서 성령으로 부어주신 은사로만 가능함을 알아야 한다




1) 구약의 입장

*소돔에 있는 마을에서 사람들이 몰려와서 롯(Lot)에게 소리치기를 “오늘밤 너희 집에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그들을 우리에게로 데리고 나오너라. 우리가 그 남자들과 상관 좀 해야겠다.”(창 19:5). 그러나 롯은 남자를 “알지 못하는” 딸을 주겠다는 대답을 한다. 여기서 우리나라 번역으로는 ‘상관 좀 해야겠다’ 또 ‘알아보겠다’라고 되어 있으나 ‘안다(Know)’라는 말은 이 히브리 성서(구약)에서는 수없이 썼다.




히브리어 ‘Yada’라는 말은 “to know” ‘안다’라는 의미다. 성의 관계를 직접 하는 것으로는 ‘Yada’라는 말을 7번을 썼다(에덴동산과 같은 곳에서). 7번을 썼을 때도 출산의 목적으로 했을 때였다.(5) 그 도시 사람들은 낯선 외지 사람으로부터 어떤 불미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그 사람들을 내놓으라고 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롯이 자기의 딸을 주겠다고 한 것으로 보면 그 사람들은 동성애자가 아닌 이성애(Hetero-sexuality) 혹은 양성애(Bisexuality)자들일 수도 있다.




여기서 우리는 틀림없이 남성 동성애(Gay)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 본문을 가지고 굳이 성적인 죄로 인정한다면 그것은 동성애 행위가 아닌 오히려 양성애/이성애 경험을 가진 것을 의미한다.




나의 견해: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여기서 "상관"이란 단어는 위 필자의 말대로 "야다"로서 남녀간의 관계속에서 서로 알고 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단어는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질서를 따라 부부가 한 몸을 되는 범주에만 국한하며 성경 어디에도 이 단어가 그 질서를 벗어나 사용된 경우가 없다,




또 여기서 그 당시 소돔성에 찾아 온 천사들은 남자들이다.소돔성사람들은 오늘 밤에 너희집에 온 "사람"(MAN) 을 끓어 내라고 하였다, 또한 천사(남성형)는 그 원어가 남성형이며, 성경에서 천사가 사람으로 나타났을 때에는 모두 남성이었고,,또 그리스도의 현신으로 보아야 한다..그러므로 문맥상 그들이 "상관"하겠다고 한 것은 그곳을 방문한 남자들과 성적 관계를 갖겠다고 한 것이 분명하다..




또 롯이 자신의 딸들을 내어 주겠다 한 것은 그들이 양성애를 한다는 의미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의인으로서 성경적 가르침을 중요시 하여 그들의 요구에 자신의 희생을 감수한 것이다..롯은 자기 딸들을 아직 남자를 가까히 하지 않은 딸들이라고 했다,, 그만큼 롯은 욕정의 도시 소돔에 살면서도 의로운 삶을 살아 왔던 것이다..베드로후서 2장7절에는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구하셨다 기록하였다.




*구약에서 뿐만 아니라 신약의 여러 곳에서 ‘죄’를 언급할 때 소돔/고모라를 들어 말한다. 그러나 이곳들의 멸망의 죄가 ‘동성애’라는 언급은 없다.


*다음과 같은 성서 본문 속에는 단순히 “소돔의 죄”라는 언급을 했을 뿐이다. 예를 들면 신명기 29:22∼29, 에스겔 16:44∼50, 마태복음 10:14∼15, 베드로전서 2:6∼8, 유다서 1:7 등등이다. 만일 동성애가 소돔의 죄였다면 그 본문에 언급을 했을텐데 전혀 동성애에 대한 언급은 없다.

나의 견해:성경은 이미 창세기 18장과 19장에서 소돔성의 죄악을 고발하였다,, 거기서 동성애를 했다는 말이 없다고 말하는 작가의 국어능력에 의심할수 밖에 없다. 이것은 중학생 정도면 그 문맥이 말하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여기서 성경은 소돔 사람들의 가장 대표적인 악한 생활의 상태 중 동성애를 고발하고 있다,,더이상 무엇이 필요한가? 성경은 비유법과 대유법을 사용하여 그 문맥의 전체를 이어간다,, 벽을 쳐서 대들보가 울리게 하는 식이다,,작가는 히브리 문학의 특성을 관찰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신명기 23:17∼18은 “이스라엘의 딸은 창녀가 될 수 없다. 또 이스라엘의 아들은 남창이 될 수 없다.”라고 하였다. 여기에서는 오히려 이성애의 성관계를 언급한 것이지 동성애의 행위가 합법적인지 아닌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구약성서에서 특히 동성애를 확실히 정죄한 본문이 레위기 18:22(원칙을 말함)에서 볼 수 있다. “너는(남자) 여자와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안된다. 그것은 망측한 짓이다.”




또 레위기 20:13에는 형벌에 대한 언급이다. 즉 “남자가 같은 남자와 동침하여 여자에게 하듯 그 남자에게 하면 그 두사람은 망측한 짓을 한 것으로 반듯이 사형에 처해야 한다. 그들은 자기 죄값으로 죽을 것이다.” 레위기에서 표현한 “망측한 짓”, “혐오스러운 짓”이라고 언급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히브리 민족의 문화적 배경에서 설명되어져야 한다.




나의 견해:여기서 작가는 성경의 "가증"이란 단어를 망측으로 바꾸었는데,,,망축과 가증은 같을 수 없다. 구태어 성경을 이렇게 바꾸어 해석하려는 의도가 이유가 무엇인가? 이것은 히브리어 "테벨"로서 혼잡하게하다, 더럽게하다에서 유래되었다, 이것은 신성모독에 대한 단죄의 의미를 포함한 단어이다




* 레위기에서 정죄한 이유를 뒷받침 해주는 성서본문은 창세기 38:1∼11을 보면 알 수 있다. 창세기 38:1∼11에 나타난 오난(Onan)의 이야기는 직접적으로 동성애에 대한 것은 아니지만 고대 이스라엘 문화권에서 정죄하는 이유의 몇 가지 중요한 단서를 주는데 뒷받침을 해주고 있다.(7)




이 본문에 나타난 중요한 사건은 “정액을 땅에 쏟아 버렸다”는 것이다. 형이 죽은 후에 오난이 형수를 아내로 맞이해서 동침할 때마다 임신하지 못하도록 정액을 땅에 쏟아 버렸다는 것을 창세기 저자는 대단히 심각하게 해석하고 기록하면서 악한 일로 여기고 주께서 노하셔서 오난을 죽게 했다는 것이다.(8)




나의 견해: 이것은 오난의 그 행위적 사실을 다룬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도 그 뜻을 거절한 오난의 악한 마음을 다룬 것이다, 하나님은 이미 유다지파의 장남을 통하여 그 가계를 이어가도록 예정하셨기 때문이다



*둘째, 성서 전체를 통해서 생물학적인 무식에서 오는 잘못된 해석이다. 남성의 정액은 생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생명을 낳게 하는 것으로만 믿고, 또 여성은 애를 갖는 공간으로만 즉, 씨받이로만 취급했다. 그러므로 비생산적인 정액의 흐름은 인간생명의 파괴나 살인과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남성수음(Masturbation)과 남성 동성애의 행위는 생명을 죽이는 낙태와 살인으로 인정했다.



나의 견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육체의 성을 주신 것은 성적인 쾌감을 위해 주신 것이 아니라,,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사람들의 번성을 위해 주신 은혜와 복으로서 그 사랑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의 비밀을 깨달아 가는 통로이다(엡5장 21절 이하 참조) 또한 성경은 인간의 성을 씨받이로 정한 기록은 어디에서도 기록되지 않았다..오해하지 말라




*셋째, “남성이 여자와 교합하듯 남성과 교합하면”(레위기 18:22) 그것은 특히 남성의 인격을 저하시키는 것으로 위태롭게 생각했다.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남성들까지 타락시키는 것으로 인정했다.(10) 그러므로 남성의 수음이나 남성의 동성애는 유대 기독교 전통에서 여성의 동성애보다 훨씬 비판적이었다.




나의 견해: 이것은 남자의 인격을 저하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다,,하나님의 창조의 섭리를 벗어나 추악한 음란 행위이기 때문이다




2) 신약에서 바울의 태도

*신약성서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점은 예수 자신이 동성애에 대한 언급을 전혀 하지 않았다.(11)--중략--
나의 견해: 예수께서는 동성애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누가복음 17장 28절에서 마지막 때의 일에 대하여 롯의 때를 언급하셨다, 이것은 마지막 때에도 롯의 때와 같이 성적인 타락이 극에 달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고린도전서 6:9, 디모데전서 1:10에 나타난 동성애에 대한 언급은 희랍어로 ‘Malakos’라는 뜻으로 문자 그대로 ‘부드러운‘이라는 의미다. 동성애로 번역된 말은 바울 자신이 희랍어로 사용한 ‘arsenokoitai’이다. 희랍어 ‘malakos’는 신약성서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는 ‘연약한으로’ 번역하지 않고 가끔 방탕한 음란한 뜻으로 사용한다.




만약에 우리가 ‘연약한’ ‘부드러운’이라는 의미로 썼다 할지라도 그것이 동성애자들만의 행위라고 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 해당하는 우리 말 뜻으로는 동성애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연약한’, ‘부드러운’이라는 의미에는 이성애자들도 포함된다.(12)




(중략) 다시 말하면 고전 6:9, 딤전 1:10에 나타난 동성애라는 언급이 원전의 의미와 다른 뜻으로 해석하고 있으므로 동성애를 의미하는 것인지 매춘인지 확실하지 않다.




나의 견해: 이건 억지이다. 고린도전서6장 9절과 딤전1장10절의 "남색"은 "arsenokoitai’(아르세노코이테스)로서 이것은 "아르센"(남성)과 "코이테"(침대)의 합성어이다....한마디로 한 침대에서 잠을 자는 동성애자를 언급한다....또한 ‘Malakos’라는 헬라어는 음란으로서 잘못괸 성적인 행위를 포함한다 . 따라서 두 단어를 가지고 언급하는 것은 자신의 억지다...



*로마서 1:18∼32은 인간의 갖가지 죄를 언급하면서 우상숭배에 대한 죄를 강조하고 있다(22절). --중략--
* 그래서 남자나 여자가 서로 ‘바른 관계’를 버리고 바르지 못한 관계로 욕정에 불탔으며(26절)로 표현되어 있으며 결국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벌을 받은 것이다 --중략--




*셋째, 바울이 한 말은 단순하다. 그는 이성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욕에 빠지는 것처럼 동성애를 이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동성간의 이루어지는 사랑의 관계로 해석하기 어렵다. 바울이 언급한 중요한 단어는 ‘바른 관계’, ‘바르지 못한 관계’라는 개념상의 문제다.




*26절에 보면 “여자들은 남자와의 바른 관계를 버리고 바르지 못한 관계로 또 남자들도 이와 같이 했다는 것이다. 바울은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서 영어에 해당하는 ‘natural(바른 관계)’을 아주 융통성 있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바울은 동성애는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감정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15)




나의 견해:여기서 작가는 너무 성경을 자기 중심적으로 외곡 이해하고 있다. 성경은 동성연애자만을 극단적으로 단죄 하지는 않는다, 동성애 외에도 음란. 탐색, 후욕 살인 도적질을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고 정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동성애를 다른 범죄와 같이 하나님이 금하신 죄악으로 규정하였음에 주의 하여야 한다.



로마서 1장 26절부터의 언급은 꼭 동성애자를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뜻을 저바린 자들 즉 하나님께서 그들의 욕정대로 내어버린자들은 동성애자들처럼 극단적인 자들이 될 수 밖에 없음을 피력한 것으로 동성애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악한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따라서 논리법상 동성애는 최악의 상태이다 라는 결론이 된다.





3. 성서의 성에 대한 태도

--중략--
* 3) 성서는 서로 동의한 미혼 성인들 사이에 성관계를 금지한 곳은 없다. 결혼하지 않은 두 남녀의 관계를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아가서 1∼8). 그런데 어떤 학자들은 비유적으로 해석을 해서 사랑의 장면을 은폐하려고 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교회는 혼전/혼외 성관계를 금해왔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청소년들, 독신자들, 과부나 이혼한 사람들이 옛법을 지키지 않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보면서 성관계는 결혼한 사람들에게만 속한 것으로 믿고 있다면 도대체 누가 옳은 태도인가?




나의 견해:성경은 서로 둥의한 미혼 성인들의 성관계를 금지한 일이 없다고 한 말은 상식을 벗어난 무책임한 말이다..




이글을 쓴 분의 신학적인 사상을 떠나 그리스도인인가를 먼저 묻고 싶다..성경에서의 성적인 관계는 오직 부부에게 국한 한 것이다.. 너희가 부모를 떠나 한몸을 이룰지라는 말씀과 함께 하나님은 부부를 하나로 놓으셨다...




또 성경에는 육체적인 에로스를 지향하는 어느 구절도 없다,,아가서는 남여의 본능적인 애정과 그리스도와 성도간의 사랑을 비유한 것이다. 만약 이러한 내용은 성경을 떠나서 믿지 않는 가정에서도 금하는 관계이다,,, 이글을 쓴 필자는 자신의 자녀가 동성애와 또 무질서한 혼전관계를 갖는다고 할 때 또 과부 어머니가 성적 자유를 선언한다면 그대로 받아 둘 용의가 있는가?



*7) 구약시대는 일부다처제가 허용되었다. 신약시대에 바울은 감독 집사의 자격을 한 아내의 남편으로 일부일처제를 주장한다. 또한 이혼과 재혼을 금지했다(딤전 3:2, 12; 딛 1:6). 그러나 여전히 일부일처제를 주장하는 사회도 있지만 현대에 와서까지도 아프리카에서는 일부다처제를 허용하고 있다. 또 우리는 다시 한번 율법의 모순성을 발견한다.




나의 견해:율법은 택한 성민 유대인에게 주신 규범이다,,.또한 올바른 삶을 위한 하나님의 신령한 법률이다.. 따라서 율법의 모순이라는 것은 먼저 성경의 권위를 도전하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도전하려면 먼저 자신이 하나님보다 더 위대함을 증명하여야 한다..




성경은 역사적, 시대적인 배경속에서 그 시대를 이끌어가시는 주관적인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서 그 시대를 살아가던 택한 자를 통하여 성령으로 쓰신 말씀이다. 따라서 일점 일획도 거짓과 모순이 있을 수 없다., 다만 시대의 흐름 속에서 하나님의 지식과 지혜가 나타나서 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8) 고대 이스라엘 유대교에서는 죽은 형제에 대한 의무와 책임이 있다. 그것은 결혼한 남자 형제 중에서 자식이 없이 죽으면 과부된 여인은 남은 다른 형제와 결혼해서 죽은 형제를 위한 씨받이가 되었다(신 25:5∼10). 예수께서도 죽은 형제에 대한 의무에 대해서 비판하지 않고 있다(마 22:23∼33). 오늘날 이 해괴망측한 법규는 가정파괴 또는 부도덕한 것으로 간주된다.




나의 견해: 이것은 메시야 구도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기도 하며 이것은 유대인의 12종족을 끊이지 않고 번성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다. 따라서 이방인으로 주를 믿어 하나님의 백성이 된 우리에게 속한 말씀은 아니다




*9) 신약성서에서 바울은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바울 자신의 충고이지 주의 계명은 아니라고 했다(고전 7). 바울은 혼인에 관한 문제들을 여러가지 면에서 가르치고 있다. 전반적으로 성서는 남성 지배 문화의 가부장제를 규범으로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남성 우월주의의 가부장제는 우리를 영속시킬 수는 없다. --중략---




*11) 구약에서는 독신을 비정상적으로 여겼다. 예레미야에 대한 주님의 뜻으로 독신을 예고한 것은 이스라엘의 가족들을 위해서 불길한 징조 때문이었다(렘 16:1∼4) 바울은 결혼하지 않고 독신을 선호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교들과의 관계를 두려워해서 한 경고로 이해한다(딤전4:1∼3). 아직도 카톨릭 교회에서는 신부와 수녀는 독신을 정상으로 지키고 있다.




나의 견해: 바울은 절대로 독신을 선호하지 않았다. 그 내용은 독신이 좋다고 한것이 아니라 그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사회적으로 성적인 문제가 크게 대두 되었었고 그리스도의 가정에서 부모들은 이러한 성적인 타락상 속에서 차라리 주를 위해 혼자 살기를 원했었다, 따라서 이 내용은 그러한 질문에 대한 바울의 답변으로서 고린도 교회의 형평성에 대한 보편적인 바울의 답변으로서 모든 성도에게 적용할 수 없다, 바울도 이것은 주의 명령이 아니라 자기의 견해라고 주석을 달았다..




바울이 독신를 권면한 것은 주께로부터 복음을 위하여 독신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그의 부르심대로 정진하라 하였으면 만약 자신의 욕정을 참지 못한다면 결혼을 하라는 것이 주제였다. 이것은 결코 남성우월 주위를 논리화 한 것이 아니다..




또한 카톨릭의 신부와 수녀의 독신은 그들 교회가 하나님께 서원한 믿음의 증표로서 이것은 그들의 종교적 문제이지 이것을 동성애를 합법화하려는 용어에 결부하는 것은 작가의 상식과 학문에 문제가 있다



4. 성서 권위의 문제

*바울이 말하는 새로운 법의 의미를 우리는 택할 수 없을 경우도 있다. 바울은 여성들에게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했고 기도할 때 머리에 수건을 벗지 말라는 말을 함으로서 여성을 억압하는 남성들의 기를 살려 놓았기 때문이다.




나의 견해: 이것은 남성의 기를 살려 놓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당시 고린도시의 풍습과 관련된 것이다,,그당시 여자들은 수건을 써야 했었고 수건을 쓰지 않은 것은 이교도적 여사제들로 밤거리에서 창녀생활을 했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자유함이란 구실로 잘못된 질서가 교회에 들어 오지 않게 하기 위한 제도적인 것으로고린도 교회에 한정된 교회법인 것이다




*필자는 성서야말로 성윤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윤리만을 말하고 있다고 이해하고 싶다. 그 사랑의 윤리는 어느 나라, 어느 문화, 어느 시대에도 변함없이 지배해오는 진실한 사랑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 사랑이란 약속, 믿음, 존경, 신뢰를 서로 할 수 있는 근원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성(性)을 단순한 동물적 본능의 발산의 수단으로 보지 않고 두 사람의 인간 관계의 표현으로 보는 것이다. 성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깊이 있는 사랑의 표현이다.




나의 견해: 작가는 오해를 하고 있다 성경은 성적인 행위를 하나님의 사랑의 범주에 넣지 않는다. 하나님의 세계에는 육체적인 사랑이 없다, 또한 성을 윤리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언급하지 않는다,., 성은 인간을 창조할 때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신 위대한 창조사역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요 그리스도의 사랑의 비밀이다(엡5:21이하 참조)

그러나 인간에게 죄가 들어 오면서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욱신의 소욕을 따라 성은 쾌감의 도구가 되었다,,




성경은 너희가 육으로 살면 반듯이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 살면 살지니라고 기록 하였다.,, 성은 오직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룬 부부들에게 주신 축복의 근원으로 이것은 성적인것만을 포함하지 않는다,,




우리는 부부간의 관계를 우리 말의 범위와 같이 SEX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부부생활이라고 한다,,이것은 그리스도의 날까지 온전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지키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다..




성경은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너희의 거룩함이니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 아내 취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말고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거한 것 과 같이 이 모든 일에서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라(살전4:3-3) 기록하였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변하지 않는 진리라고 믿는다.. 이 말씀에는 우리의 지식과 지혜와 견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직 진리의 말씀이 있을 뿐이다.,.




5. 인간의 편견

*우리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성애를 하는 사람들에 대한 강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그냥 편견을 가지고 있다. 동성애는 자연스럽지 않고 옳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다. 이성애만 옳다고 길들여진 사회 풍조에서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단순히 나와 생활양식이 다르다 해서 윤리적으로 잘못된 것으로 정죄할 수는 없다. 이성간의 성애가 옳다는 사고로 길들여진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성애를 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정죄하는 것은 성서적 윤리의 정당성을 찾을 수 없다.




동성애가 잘못이라는 사고는 인종차별주의나 성차별주의에서 오는 근본적인 태도와 같은 것으로 인간의 억압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필자는 동성애와 이성애를 이렇게 비교하고 싶다. 이 세상에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오른손을 사용하는데 더 익숙하지만 왼손잡이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또 양손 모두 잘 쓰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나의 견해: 이것은 인간의 편견을 오해하는 말이다.. 하나님은 동성애를 범죄로 규정하는 것이지 동성애자를 차별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어떤 죄악이라도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용서의 문을 열어 놓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의 신성한 법인 성경을 주셨고 주님의 오시는 날까지 그 말씀을 따라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거룩함을 지키도록 하셨다.,., 따라서 동성애자들을 죄인이나 짐승과 같이 대하는 태도는 옳지 못하다.. 우리는 모두 용서받은 죄인 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동성애를 양손을 사용하는 것과 같은 습관적으로 보려는 작가의 무책임한 태도는 매우 슬픈일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의 자녀들에게 당신이 옳다고 보는 양성적 행위를 가르칠 것인가? 만약 당신의 아들이 하리수와 결혼을 하기를 원한다면 받아드릴 것인가?




이것은 동성애를 인정하고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 하기 위하여 성경을 이리저리 떼어 잣대질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 하려는 악한 행위이다..




창세기 3장에서 사단은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동산 모든 과일을 먹지 말라고 하시더냐 하고 의문을 제기 하였다,, 지금도 사단은 늘 하나님의 말씀을 들추어서 믿는 자들에게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에게도 써 먹던 수법이다




나의 견해는 이 책을 반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 책을 인용하여 이곳에 상담을 요청하였기에 답변할 따름이다.,.

작가가 어떤 견해와 지식과 상식을 가지드라도 그것은 그의 주장이며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적용될 것이다.,누가 이것을 쓴 필자의 견해를 옳다고 할 것인가 ? 그것은 자신들의 음란하 행위를 합리화 하려는 사람들일 것이다.. 나는 이 필자가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난 사람인가 묻고 싶다,, 세상에는 신학박사라고 하여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성경의 기록을 가지고 신학적 도전을 하는 사람들이나 성경의 오류, 시대적인 모순들을 주장하는 사람이라면 그들은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로서 성경의 권위보다 자신들의 주장을 앞세우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 시키려면 하나님부도 더 높은 권위를 갖어야 할 것이다.,




이들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않된다고 말하는데,,오히려 성경은 상징적으로 해석하면 않된다. 만약 그렇다면 읽는 사람들에 따라 그 해석이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오직 문제대로 해석하여야하며 적용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할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택하신 그의 종들을 통하여 기록하신 것으로 일점 일획의 오류도 없으며 더하거나 빼면 그는 성경에 기록된대로 하나님의 판단을 받아야 할 것이다. (이요나 씀)




발췌: 갓피플 이요나 성 상담실 게시판 445번 글

http://cnts.godpeople.com/?GO=counseling|cs_sex_associ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