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요한복음강해

(요한복음8장-1)당신은 진짜루 자유하신가요?

이요나 2000. 10. 11. 10:02
 

(요한복음8장-1)당신은 정말 자유하십니까?

 

 


요한복음7:31,32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당신은 어떠한가?

    이것은 그들만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제가 강해설교 학교에서 사역자 성경공부를 진행하면서 늘 느끼는 것은 성경의 말씀에 대한 오해는 성경말씀의 어려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마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순수하게 받아들이려는 성도들은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닫고 은혜를 체험하는데 꼭 신학적인 방법으로만 해석하려고 하는 사역자들은 전달된 말씀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향하여 예수께서는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는 대전제를 선포합니다.

 

 이것은 이 땅의 모든 인간을 향한 선포이기도 합니다. 아담 이후 모든 인간은 자신도 모르는 죄 속에 빠져서 죄의 노예로 살아 왔습니다. 예수님은 계속하여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 하리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사실 예수께서 오신 때는 세상을 장악하던 철학이 끝났을 때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선진들이라 칭하는 석학들이 진리를 탐구하고 진리를 알고자 열망하였지만 결국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당시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소크라테스, 디오게네스 등의 철인(哲人)들이 등장하여 진리를 탐구하고 많은 제안을 내놓았지만 그들은 결국 벽에 부딪혀 버리고 절망에 빠졌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 것임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고 스스로 포기를 하고 말았습니다.

   진리는 없다?!

    그들은 또 모든 것이 주관적이고 동시에 상대적이므로 진리란 당신에게 진리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진리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결론을 내놓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이 그들은 진리에 대한 올바른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포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을 때에 이 진리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빌라도는 예수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고 반문하였습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노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요18:37) 고 답하였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진리가 도대체 뭐야!"라고 비아냥거렸습니다. 빌라도의 말의 의미는 이미 진리에 대한 철학의 정의가 실패했는데 새삼스레 무슨 진리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냐는 뜻입니다.

   점점 이해할 수 없는 예술?

    오늘날을 주관하고 있는 현대예술은 현대철학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예술은 그 창작에 대한 해석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대학교 안에 설명조차 할 수 없는 기묘한 것들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것은 공룡과 같다, 아니다 이것은 마치 우주를 상징하는 것이다. 또 다른 사람은 아니다 이것은 천사의 하나를 표현한 것이다라고 제각각 자기의 느낌을 나타내지만 통일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창작해낸 사람은 교묘한 웃음을 지어내며 스스로 교만한 만족에 빠집니다.

 

사실 그것을 만든 자신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전위예술이라고 하지요.. 따라서 현대는 무지로 달려가는 지식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제 심야프로에서 재미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세상사람들이 B급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B급이란 소위 뽕짝문화를 말합니다. 유치한 발상에 유치한 색상 그리고 더러움과 유치의 극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B급에서 더 내려가면 지옥문화가 될 것입니다. 과거 우리는 A급문화를 선호하였습니다. 그래서 학문을 연구하고 인테리가 되기 위하여 많은 책을 보며 좋은 인맥을 따라 교제를 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아직도 그러한 상류사회의 풍조는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영국 황실의 불륜에 빠진 며느리의 극적인 죽음은 세상사람들의 시선을 집중하였습니다. 텔레비젼을 휩쓰는 광고도 정말로 볼 수 없을 정도의 유치의 극도를 달리고 있습니다.

   판치는 B급 문화

    제가 15년전 일본에 건너갔을 때였습니다. 텔레비젼의 심야프로는 온통 Coming Out한 여장남자들과 유치한 복장과 행동을 하는 코메디언들이 판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일들이 똑 같이 우리나라의 안방을 휘어잡고 있습니다. 이제 이러한 문화는 또 미개발국가 속으로 흘러 내려가 온 세상은 결국 B급 문화로 전락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사람들은 지옥으로 내려가고자 몸부림들을 칠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1960년대에 히피문화를 창출한 것입니다. 이제 곧 B급 문화는 우리나라의 젊은이를 히피문화로 이끌고 갈 것이고 이 나라는 혼란과 비생산적인 사상으로 미끌어져 내려 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챤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우리는 자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주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등불이요 소금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간 이 세상 사람들은 진리를 알 수도 찾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아무도 진리를 만날 수도 얻을 수도 없는 것은 진리입니다. 왜냐하면 진리 그 자체가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진리를 발견하고자한다면 또 진리를 터득하고 얻고자 한다면 예수께로 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의 영이신 성령이 그의 안에 들어가 우리는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진리의 영이기 때문입니다(요14:16-17)

   진리가 도대체 모야?!

    예수께서는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하신 이 말씀은 실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선포된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온통 진리를 깨닫지 못한 채 혼동과 혼란의 세계로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은 진리를 모른 채 거짓에 의하여 노예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사단의 거짓에 속임을 당하고 사단이 이끄는 대로 세상문화에 이끌려 죽음의 길로 내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음 장에서 사단은 처음부터 거짓말하는 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거짓말로 인간을 유혹하여 자유를 주겠다고 속였습니다. 사단은 인간의 마음을 유혹하여 신령함 속에 자유를 누리고 있는 인간의 육체에 죄를 심어 놓고 죄의 자유를 풀어놓았던 것입니다. 결국 그것은 자유가 되지 못하고 인간을 구속하여 죄의 삯 사망의 길로 이끌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만약 이것을 경험하고자 한다면 육체의 소욕을 따라 내려가 보십시오. 육체는 마치 열린 무덤으로 달려가는 고속철도보다도 더 빠를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로부터의 해방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죄로부터의 해방은 그 죄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이 죄의 사슬을 풀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이고 예수께 나아가므로 하여 누구든지 이 죄의 사슬을 벗어나 진리의 품으로 들아 가게 됨으로 자유자가 되는 것입니다. 아직도 이 자유를 맛보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정의!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믿기로 한 유대인들도 자신들은 이미 자유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들은 죄의 자녀였습니다, 죄의 노예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글을 읽으시는 당신은 어떠하십니까? 하나님을 믿는 당신은 정녕 자유하십니까? 유대인들도 하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오늘 이 진리에 대한 정의를 성경에서 찾아 보도록 하지요. 요한복음 17장을 보면 주께서 제자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중보하기를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니이다"(요17:17)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주의 오심을 기다리는 당신은 과연 진리로 거룩한 자의 반열에 올라 있습니다. 바리새인보다도 더 의로운 자가 되어 예수님과 같이 하늘을 오를 수 있는 준비가 완료되었습니까? 아직 세상에 빠져서 입으로는 하나님을 외우면서 죄의 종이 되어 있지는 않은지 저는 그것을 묻고 싶습니다.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