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아가서 강해

(아가5:8)사랑의 열병

이요나 2005. 8. 23. 17:16

(아가5:8)사랑의 열병

 

(아가5:8)예루살렘 여자들아 너희에게 부탁한다 너희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므나

 

자 이제 5장을 공부하십시다. 날씨가 무더워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주 예수께서 계시는 기쁜 마음을 주의 말씀을 살펴 보십시다. 아가서 5장의 타이틀은 사랑의 열병입니다. 남여간의 사랑은 문제가 발생하게 마련입니다. 두 사람이 한 몸이 이루어서 완전히 합일체가 되기까지는 아직도 자신의 고집과 생각이 있기 때문에 틈이 생길 수 있습니다. 오늘의 사랑의 열병이 발생되는 원인과 그 과정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남자의 마음

솔로몬은 1절에서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향 재료를 거두고 나의 꿀 송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내 젖을 마셨으니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마시고 많이 마시라" 노래하였습니다.

 

여거서 우리는 남자들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남자의 사랑은 한 여자를 취하면 그 여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종합선물 셋트입니다. 남자는 여자를 자기 가슴에 품고 넓은 세상을 향하여 나가려고 합니다.  여기서 솔로몬은 계속 자기의 신부를 가리켜 나의 누이 나의 신부라 부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내 신부가 나의 누이처럼 어떤 경우라도 나의 입장이 되어서 나와 같은 생각과 마음을 갖어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얻어 부족함이 없이 기쁨에 빠진 솔로몬은 그의 친구들을 청하여 함께 즐기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자기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자기 동산에 초청하여 함께 마시고 기쁨을 함께 나누려 합니다. 이것이 남자들의 외형적인 모습입니다만 여자의 경우는 전혀 다릅니다. 여자는 자기의 사랑을 자기 혼자만 갖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집사님은 얼마나 호탕하고 남자다운지 결혼을 한 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고 매일저녁 일이 끝나면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여 결국 부인과 별거를 하기에 이르었습니다. 남편의 외도와 객기를 참지 못한 부인은 그만 친정이 있는 미국으로 들어가 버린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그런 분이 없겠지만 남자들의 외형적 객기는 적당히 절제하지 않으면 결국 문제가 발생하고 맙니다.

 

*여자의 마음

2절에는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르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 열어다고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 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 구나"기록되었습니다.

 

솔로몬이 친구들과 어울려 연회에 빠져 있을 때 여인은 견디다 못해 지쳐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연일 계속되는 연회라면 여자로서는 참을 수 없는 것지이요. 그렇다고 여인의 사랑이 식은 것은 아닙니다. 그의 몸은 잘지라도 그 마음은 깨어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마음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처음 주를 발견하고 주의 은혜와 사랑을 받을 때는 그 사랑과 은혜가 개인적이 되어 그 사랑에 취하여 행복한 나날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나 이제 곧 교회 생활 속으로 들어가면 그리스도의 사랑은 공동체 속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나를 향한 주의 사랑은 객관적이 됩니다.

 

이럴 때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이해가 있어 내가 받은 주의 은혜와 사랑이 변치 않은 그 사실을 깨달았다면 우리는 더욱 감사하고 더 열심을 갖게 되는데 내 사랑이 직감적이어서 소외받은 마음과 같이 잠이 들어 버리면 결국 그가 나를 부를 때에 내 몸이 잠에 취해서 그 부르심의 타이밍을 상실하게 됩니다.

 

남자들은 잔치의 여흥과 그 볼 일이 끝나면 어째든 집으로 들어 오게 됩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자들은 자기 아내가 자기와 누이와 같이 자기를 충분히 이해하고 기다려 줄 것으로 알고 아내의 품을 찾아 집으로 들어 옵니다.

 

여기서 솔로몬은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라고 부르며 문을 열어 달라고 합니다. 그는 친구들과 주흥에 지쳐 버렸습니다. 이것은 남자들의 세계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아담에게 땀흘려 일하여야 식물을 얻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아내도 몸은 잠은 들었어도 그 마음은 그의 사랑이 자기를 찾고 있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몸과 마음이 신랑이 부르는 사랑의 타이밍을 마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인은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마는" 하였습니다.

 

남자의 경우는 자신의 사랑이 자기 안에서 하나가 되어 있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빠저 자신이 할 일을 하드라도 그 마음은 온통 아내에게 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자의 마음은 남자의 사랑을 자신이 독단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일에 빠져 다른 사람들과 희희낙낙하는 것을 못마땅히 여기고 있습니다.

 

여인은 혼자 집에 들어와 완전히 옷을 벗고 발을 씻고 혼자 누워 버렸습니다. 그 마음에서는 사랑하는 남련을 생각하고 있어도 그녀는 그 모든 것을 남편과 함께 하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이처럼 여자는 개인적이고 감성적입니다. 사실 이 때 남자가 좀 깊은 배려를 갖고 전화라도 자주하고 문자라도 보내었다면 여자는 덜 삐졌을 지도 모릅니다.

 

여자는 남자가 돌아와 이름을 부르며 문을 두르리리매 상당히 기분 얹짢은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밤새도록 다른 사람들하고 술퍼먹고 만신창이가 되서 내게 돌아 왔군하고 귀찮아 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남편의 몰약과 같은 사랑의 열정이 문틈으로 들어 오는 순간 여인은 자신이 받았던 사랑의 열기가 다시 솟아나 옷을 입고 문을 열고자 밖으로 뛰어 나갑니다.

 

*사랑의 타이밍

여인은 "나의 사랑하는 자가 문틈으로 손을 내밀매 내 마음이 동하여 내 마음이 동하여 일어나서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매 몰약이 내 손에서 몰약의 즙이 내 손가락에서 문빗장을 듣는구나" 노래하였습니다. 역시 여자는 정적입니다. 남자의 세계가 이상적이라면 여자는 오직 남자의 품에 있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만나 그의 사랑을 받을 때는 개인적인 사랑이지만 주님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사랑을 나누어 주시기 때문에 주의 사랑은 전체적이고 객관적인 사랑인 것입니다.

 

따라서 남자의 사랑은 타이밍이 있습니다. 이것은 여인을 싫어한다든가 바람기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때를 구별한다는 의미입니다. 남자는 태어남으로부터 땀을 흘리며 일하는 속성을 갖고 있어서 외향적이고 활동적입니다. 다만 그 마음에 아내를 향한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여자의 사랑은 남자의 품을 독점하려는 데 있습니다.

 

남자가 주흥에 빠져 있는 동안 여인은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밤새도록 주흥에서 지쳐 돌아 온 남편의 음성을 듣자 성적인 충동에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남자의 마음은  육체적인 사랑을 나누고자 돌아 온 것이 아니라 고향과 같고 누나와 같고 어머니와 같은 아내의 품으로 돌아 온 것입니다. 이 여인은 사랑의 타이밍을 상실하고 만 것입니다.

 

여인은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그가 벌써 물러갔네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 내가 그를 찾았어도 못만났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구나"하였습니다. 나는 이 글을 보면서 주께서 나를 찾을 때에 나의 생각과 고집에 빠져 그를 속히 불러 들이지 못하고 커다란 낭패를 보았던 날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사실 우리 마음은 주를 사랑하고 주 안에 있다 하드라도 주께서 오실 때를 기다려 늘 깨어 있지 못하고 잠에 빠져 주께서 우리를 찾을 때에 그 타이밍을 상실하고 맙니다. 누가복음에는 주를 기다리는 열처녀의 비유가 나옵니다. 다섯처녀는 기름을 준비하였고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지 못하여 졸다가 그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사랑을 어떻게 나누고 있는냐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변함없는 순결하고 거룩한 사랑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쳐 사랑을 지킵니다. 그의 사랑은 헌신적이고 무조건적 사랑입니다. 그에 비해 주를 향한 우리의 사랑은 이기적이고 육신적인 면이 강하여 개인적이고 달콤한 사랑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열병

이제 여인은 혼비백산하여 사랑하는 그를 찾아 거리로 나섭니다. "성중에 행순하는 자들이 나를 만나매 나를 처서 상하게 하였고 성벽에 파수하는 자들이 나의 웃옷을 벗겨 취하였구나" 여인의 인격과 품위는 남편에게 있습니다. 이것은 성도의 인격이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는 것과 같습니다.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지 않으면 우리는 버림받아 홀로된 여인처럼 우리의 모습은 초라하고 또 사방으로부터 공격을 받게 됩니다. 시편 기자는 우리의 도움이 어디로부터 올꼬 만군의 여호와께로다 노래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버린 여인은 이제부터 방황과 혼돈의 세월을 살아야 합니다.

 

그때서야 여인은 교회를 향하여 달여 나옵니다. "예루살렘 여자들아 너희에게 부탁한다 너희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므나"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주의 사랑을 상실하고 새벽마다 울부짖으며 또 금식으로 매달리고 있습니까? 그러나 한번 상실한 기회를 다시 회복하기까지는 많은 고통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랑의 중보자

"여자 중 극히 어여쁜 자야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기에 우리에게 부탁하는가" 이것은 성령의 중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평안과 기쁨을 주시며 가르치시고 인도하십니다. 성령은 주의 영광을 위해 그리스도의 신부를 지키기 위해 보내심을 받은 보혜사입니다. 자신의 부주의로 사랑의 타이밍을 상실한 여인은 이제 교회에 나아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회복하기를 힘쓰게 됩니다.

 

여인은 자기의 사랑하는 자의 아름다움과 뛰어남을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먼저 "나의 사랑하는 자는 희고도 붉어 만 사람에 뛰어난다" 하였습니다. 희고도 붉다는 것은 순결과 고결한 사랑을 말한 것입니다. 계속하여 여인은 "머리는 정금같고 머리털은 고불고불하고 까마귀같이 검구나"하였습니다.

 

*완전한 사랑

이것은 그의 지위와 지혜를 노래한 것입니다. 정금은 부족함이 없는 최상의 값을 말합니다. 또 까마귀 같이 검다는 것은 예지와 통찰력을 의미합니다. 까마귀는 예언적 의미를 갖고 있는 새로 불리고 있습니다.  여인은 계속하여 "눈은 시냇가의 비둘기 같은데 젖으로 씻은 듯하고 아름답게 박혔구나"노래하였습니다.

 

눈이 시냇가의 비둘기 같다는 것은 맑고 투명하며 순결함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너희의 눈은 마음의 등불이라 하였습니다. 순수함을 상실하지 않은 선한 눈은 그리스도인의 상징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인은 "뺨은 향기로운 꽃밭같고 향기로운 풀언덕과도 같고 입술은 백합화 같고 몰약의 즙이 뚝뚝 떨어진다"하였습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얼굴을 갖었다면 더이상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그는 매력덩어리입니다.

 

"손은 황옥을 물린 황금 노리개 같고 몸은 아로새긴 상아에 청옥을 입힌 듯 하구나" 이것은 부족함이 없는 능력을 의미한 것입니다. 그의 손으로 하는 일마다 고귀하고 의롭고 반듯함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다리는 정금 받침에 세운 화반석 기둥같고 형상은 레바논 같고 백향목처럼 보기 좋고"라 하였습니다.

 

정금 받침대에 세운 화반석 기둥을 생각해 보십시요, 얼마나 든든하고 우아합니까?  그 형상이 레바논 같고 백향목 처럼 보기 좋다는 칭송 속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을 지키는 힘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제 여인은 끝으로 "입은 심히 다니 그 전체가 사랑스럽구나 예루살렘 여자들아 이는 나의 사랑하는 자요 나의 친구일다"노래 하였습니다.

 

아무리 그 외모가 출중하고 형상이 고귀하여도 그 모든 아름다움을 표출하는 것은  입입니다. 입이 달다는 것은 그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의미한 것입니다. 아무리 인물이 출중해도 그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의롭지 못하면 그는 더욱 상스러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친구의 사랑

술람미는 자기의 사랑하는 자를 가리켜 나의 사랑 나의 친구라 하였습니다. 주님도 제자들에게 이제 너희를 종이라 부르지 않겠노라 이제 너희를 친구하 부르겠다 하시며 친구에게는 비밀이 없다 하셨습니다. 따라서 부부는 그 모든 지혜와 아름다움에서 비밀이 없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함께 공유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의 지혜와 지식을 공유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일깨우는 것이 성경이요 또 가르치시는 성령입니다. 성경은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으면 아무도 그를 가르칠 자가 없다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와 우리의 사랑은 곧 비밀없는 친구의 사랑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