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일3:10)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MP3]
(요일3:10)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의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오늘은 요한일서 3장입니다. 오늘 우리가 공부하는 요한일서 3장은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커다란 충격적인 메시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나는 이번에 요한일서를 살펴 보면서 커다란 돌로 머리를 맞는 것과 같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요한일서를 살펴 볼 때에는 신학적인 구조와 종말의 세대를 향한 사도요한의 권면으로만 생각해왔습니다만 이 서신은 오늘을 분열과 분쟁 속에서 오직 교회성장을 향하여 다름질 치는 우리 교회를 향하여 회개와 각성을 요구하는 사도요한의 유언인 것입니다.
우리는 요한일서 2장에서 오늘날 우리가 주께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 보았습니다. 우리는 죄하면 일반적인 세상의 죄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도요한은 주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 복음을 맡은 자들에게 유언으로 명하신 새 계명을 잊고 있었던 우리에게 다시 새 계명을 쓰면서 주의 날 앞에 선 우리의 죄가 무엇인가를 기억하게 하였습니다.
사도요한은 2장에서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녀들을 지칭하여 아비들이라 하였고 또 청년듣이라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미 모두가 지도자가 되고 세상과 능히 싸워서 이길만한 위대한 믿음을 물련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사도는 우리에게 다시 아이들이라 칭하며 적그리스도의 때를 상기 시키고 있습니다.
2장에서 우리를 두렵게 한 말씀은 사단에게 이끌려나간 적그리스도들이 우리에게서 나간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한 때 하나님의 자녀로서 교회의 아비들이였으며, 청년들이였으나 지금은 우리에게서 나가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소 도둑이 바늘 도둑이 된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
사도요한은 3장 1절에서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하였습니다. 요한은 이미 증거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 기록하였습니다. 그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여기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한다는 말씀은 참으로 경이로운 말씀입니다. 사실 유대인들은 귀신들로 알아 보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여 십자가에 못박고 말았습니다. 주님은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늘나라를 볼 수 없다 하셨습니다.
또한 주님은 보혜사 성령을 주실 것을 약속하시며 "세상은 능이 저를 받지도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하셨습니다.
흥미롭게도 사도요한은 2절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지금은'이란 말씀은 우리에게 두가지 의미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 날에는 우리가 자녀가 아니였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또 앞으로 아닐 수도 있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과 불법
요한은 4절에서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 바 된 것을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하였습니다. 여기서 불법이란 하나님의 뜻을 따난 것을 의미합니다. 죄라는 것 그 자체가 과녁을 떠난 화살을 의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 갈 것을 말씀하시며 양의 옷을 입고 노략하는 거짓 선지자들을 경계하여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하시며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 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 가리라' 하셨습니다.
계속하여 주님은 "그날에 많은 사람들이 나더라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좇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리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라 하리라' (마7:22-23)하셨습니다.
또 바울은 증거하여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패하시리라'(살후2:7,8)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불법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바와 같인 일반적인 세상의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하나님의 계획을 훼방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5절에서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 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순수한 원리입니까? 우리의 죄를 없애기 위해 나타나셨고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속에는 범죄하는 자들이 있음을 역설적으로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뭐라고 말을 하던 주를 보지도 못하였고 알지도 못한 것입니다.
* 마귀에 속한 자들이란?
7절에는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기록되었습니다.
어떤 잡지가 여기자님이 제게 인터뷰를 왔습니다. 여러가지 이야기 도중 불법을 행한 대형교회의 목사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설교에 은혜를 받고 있는 것은 어떻게 말해야 하느냐 물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은혜라는 말에 대한 올바른 분변이 필요합니다. 은혜란 이 땅의 용어가 아닌 하나님의 신성에 속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죄의 구속과 관련된 말씀인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메시지를 들을 때 아멘 아멘 하며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데 우리가 이단으로 알고 있는 문선명 교주의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나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와 같은 곳에서 설교를 듣는 모든 사람들도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진리에 깨어 있다면 두번 다시는 그 설교를 듣지 못할 것이고 그곳에 하나님의 진노가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말하는 미혹이라는 의미에 대한 새로운 각성이 필요한 것입니다. 범죄한 불법한 자가 하나님 안에 속하지 않고 마귀에 속한 것인데 그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그가 아무리 능력있는 설교를 했다고 하여도 그는 마귀의 설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패하시리라'(살후2:7,8) 증거한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하심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씨'라는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씨'란 원초적으로 그리스도를 칭하는 것입니다만 마가는 천국의 비밀을 언급하면서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막4:14) 하였고 다시 마태는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마13:37-39) 증거하였습니다.
이에 사도요한은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증거하였습니다. 아미 주님은 천국의 비밀을 선포하시며 '너희가 무엇을 들을 것인가 삼가하라' 하셨고 다시 '너희가 어떻게 듣는가 주의하라'하셨습니다. 우리말로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나는 말과 같다 하겠습니다.
*사랑해야 하는 이유
흥미롭게도 사도요한은 11절에서 갑자기 말의 방향을 바꾸어 "우리가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위에서 언급된 마귀를 사랑하라는 말씀과도 같습니다만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2장에서부터 언급된 새 계명과 관련된 말씀과 연계를 갖어야 할 것입니다.
계속하여 요한은 "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하였습니다. 이 말씀도 11절 말씀과 함께 각별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서로 사랑하라' , '가인같이 하지 말라'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 형제들을 적대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단교파를 초월하여 생각해야 할 말씀입니다. 우리가 주의 뜻을 온전히 깨닫지 못함으로 그리스도안에 자녀된 형제들을 정죄하는 범죄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먼저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사랑의 본체이신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며 또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우리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유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여 형제를 섬시므로 마귀들이 우리 안에 들어 올 수 없는 것입니다.
최근 참 하나님, 참 빛, 참 가정이라는 말을 하면서 그리스도인에게 접근하는 이단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 접근하기 보다는 오히려 성도들을 향하여 말을 걸어 옵니다. 우리가 진리의 깨달음으로 그들을 능히 대적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만 그들은 조직적으로 성경의 말씀을 인용하여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족식을 하시면서 내가 너희의 스승과 주인으로 너희에 발을 씻어 본을 보였다 하셨습니다. 비록 우리 주변에 아직 믿음에 이르지 못한 형제가 있더라도 우리는 서로 섬겨서 그들의 발을 씻겨 그리스도의 온전한 사랑으로 돌아 오도록 권고하야 할 것입니다.
*미워해서는 않되는 이유
요한은 13절에서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므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하였습니다, 주님은 형제를 향하여 바보라고 하는 자는 살인자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형제의 의미를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기서 형제란 부모의 혈육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함께 하나님의 자녀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예수께서 그를 위해 피흘리신 주의 성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과연 오늘날 모든 교회가 서로 사랑을 하고 있는가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니다. 문론 서로 바라보면 주의 이름으로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웃교회와의 관계는 정말 치열한 전쟁터이기만 합니다.
*사랑의 실제적 표현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사랑을 하여야 할까요? 먼저 요한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 도 도와줄 마음을 먹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하였습니다. 세상의 재물은 정함이 없는데 그 재물로 인하여 형제의 어려움을 보고 돕지 않는다면 그는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이에 요한은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는 많은 돕는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해외에 있는 선교사들에게 물질을 보내기도 하고 많은 재난의 구호에 동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일들이 바로 주님의 뜻에 합당한 것인지도 살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에게도 매달 해외에서 편지가 날라 오곤합니다. 그들은 해외 선교에 사명을 갖었다고 떠난 자비량 선교사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곳에 가서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지만 계속 선교비 지원을 요청하는 인쇄물을 보내 오곤합니다. 나는 그들을 도와 줄 수 있는 형편도 없지만 그들의 사역에 많은 의혹을 갖게 됩니다.
주께서 그들을 보내신 것이라면 매달 수백통씩의 인쇄물을 사람들에게 보내게 하시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21절에서 마음에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양심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양심에 꺼리낌이 없을 때 자기가 빛 가운데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계명 속에서의 성취
사도요한은 22절에서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하였습니다. 이것은 이미 주께서 새계명을 주시며 하신 말씀입니다. 주님은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라'(요14:14)하셨으며 다시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들은 모두 새 계명 안에서 주신 약속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열매를 맺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며 마귀의 역사가 교회에 미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새 계명을 잊어버린채 양심에 가책을 받아야 하는 입장에 서 있습니다.
끝으로 요한은 다시 말하여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하였습니다. 사랑을 실천하되 그의 계명대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이미 주님은 새 계명 속에 실천해야할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증거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모두 요한복음 14장과 15장에서 주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지금 사도요한은 우리에게 그 부분을 다시 강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계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유언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다는 말씀에 대하여 다시한번 생각해 보시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4장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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