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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5:13)사랑과 믿음과 소망의 투쟁

이요나 2005. 9. 29. 11:12

(요일5:13)사랑과 믿음과 소망의 투쟁 [MP3]

 

(요일5:13)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이제 요한일서도 마지막 장에 이르렀습니다. 우리 앞에 펼쳐진 성경은 점점 얇아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내 마음은 설레는 기쁨보다 두려움과 중압감이 더해가는 것 같습니다. 봄이 되어서 그런지 금식 후 내 몸은 천근처럼 늘어저 자꾸 누우려 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 이럴 때 누군가가 함께 해 주었으면 하는 절실한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요한일서를 공부하면서 사도요한이 무엇을 염려하고 있고 또 무엇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더우기 이 말씀은 종말의 시대를  살고 있는 성도들을 향한 말씀이라 생각할 때 성경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하나님의 말씀이심을 다시한번 깨닫게 합니다.

 

요한은 4장 끝에서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으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하였습니다. 사도요한은 본 서신을 끝맺으면서 다시 서로 사랑하라는 주제로 돌아갑니다. 이것은 성경의 대주제이기도 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새 계명이기고도 합니다.

 

요한은 1절에서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기록하였습니다. 요한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증거 하였고 또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요17:6) 기록 하셨습니다.

 

이것은 사랑의 속성이 이론적인 것이 되어서는 않됨을 언급한 것입니다. 사랑의 지혜는 그 행함 속에서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계속하여 요한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거이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기록하였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사랑이심과 또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현하시기 위해 오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사랑의 대 주제를 가진 종교로서 이 땅에 굳게 섰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랑이신 것과 또 그 사랑의 실체가 그리스도로 나타나신 것과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많은 교회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신념과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막상 성경이 가르친 그 사랑의 대상에 대하여는 막연해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형제를 사랑하라 하였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였습니다.

 

만약 교회들이 진정으로 이 사랑의 계명을 지켰다면 오늘날처럼 교회가 이렇게 사사오열로 분열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랑을 한다면 결코 분열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사단의 속성을 말씀하시면서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수 없고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다 하셨습니다. 그러대도 오늘날 우리 교회들은 정말 서로가 남보다 못한 상태에서 서로를 겨냥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믿음

4절에서 요한은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물었습니다. 

 

요한이 지금까지 계명과 하나님의 사랑의 관계를 증거하다가 갑자기 믿음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은  우리에게  믿음의 실체가 무엇인가를 확인시키기 위함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이기는 믿음을 갖고 세상의 악에 물들지 않고 담대하게 살아가면서도 그 능력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하여는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실체를 증거하여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 하였습니다. 여기서 물과 피는 우리에게 각별한 의미를 시사하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시작 즉 물 세례를 받으실 때 증거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권능의 나타나심을 언급한 것이고 피는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신 구속사를 언급한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 성경의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이니라' 는 기록이 킹제임스에는 '하늘에 증거하시는 세분이 계시니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한 이 세분은 하나이시니라' 기록된 것입니다.

 

이미 요한은 요한복음에서 예수 그리스 도를 가리켜 세상을 비취는 생명의 빛으로 오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라 증거하였고 또한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소서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요17:17)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경이나 킹제임스는 동일한 내용을 각각 다른 표현으로 한 것입니다.

 

다만 킹제임스 성경은 7절에서 언급한 '하늘에서 증거하는 세 분'이 삼위일치하신 주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 이듯이  8절에서 언급된 '땅에 증거하는 세 분'은 '영과 물과 피'로 임하신 예수 그리스도로서 삼위일체하심을 증거한 것입니다.

 

*삼위일체 예수 그리스도

여기서 요한은 성령과 물과 피라 증거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사역적 의미를 우리에게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부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이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세상을 이기는 믿음을 언급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신성과 인성의 능력이 우리 가운데 나타난 것을 증거하기 위한 것입니다.

 

주님은 세상을 떠나시기전 제자들에게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요14:11) 하셨고 다시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요14:12)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임한  하늘의 능력이 그의 사랑의 계명 속에 거한 자들에게 나타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으로 주님은 제자들에게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14:20)하셨습니다. 이것이 실제로 우리에게 증거로 나타나는 세상을 이기는 믿음인 것입니다.  

 

계속하여 요한은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한 것이니라" 증언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예수께서 세례 받으실 때에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저를 기뻐 하노라" 말씀하셨고 다시 제자들과 변화산상 올라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실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희 말을 들으라' 하셨습니다.

 

*사랑과 믿음과 소망

오늘 우리가 다같이 이를 믿는 것은 그의보내신 성령이 우리 안에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보내신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어 우리를 가르치시고 또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기록하였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증거의 실체와 목표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믿어 세상을 이기는 능력으로 만족될 것인가요? 만약 우리의 믿음이 이것으로 끝이 난다면 세상이 말하는 믿음과 다를 것이 없다 할 것입니다. 이에 대해 사도 요한은 "또 증거는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라"기록 하였습니다. 영생 즉 영원한 생명에 대한 증거입니다.

 

이미 요한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증거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현세에 속한 것뿐이 아니라 오는 세상 즉 영원하신 하나님의 나라 속에 있는 영원한 생명인 것입니다.

 

오늘 요한일서 5장의 전체적인 문맥을 살펴보면 사랑과 믿음과 그리고 장차 우리 모두에게 임할 소망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믿음으로 이 세상을 극복하고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은 것이고 또 그 사랑의 완성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미 그리스도에 의하여 완성된 것이지만 주님은 주께서 다시 오시기까지 하나님의 사랑 곧 그리스도의 사랑을 교회에 맡기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3) 말씀하신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

13절에서 사도요한은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은 사도요한이 요한일서를 쓰는 3번째 목적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은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최고의 욕망이라 하겠습니다. 중국의 진시왕도 영생을 하기 위해 불노초를 구하기 애를 썼고 내세의 부활을 얻기 위해 미이라와 같은 무덤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믿는 자들에게 나타난 또 다른 현상은 영생에 대한 불감증이라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이니 부활이니 천년왕국이니 하는 것은 이단종파들의 주제로만 생각하고 오직 믿음이 있는 세상 가운데서 풍요롭게 살 사는 것만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영생에 대한 소망이 없다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라 하였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도 우리의 소망도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족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그를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주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의 실체는 이 세상뿐이 아니라 오는 세상  속에 영원한 생명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은 모든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경에 기록된 바와 같이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오직 주 예수를 주로 영접한 자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의 결국은 영원한 생명을 향한 투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14절에서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 들으시는 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것은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하였습니다. 이것은 이 땅에 살아 있는 동안에 믿는 자들의 온전한 삶을 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구하면 주신다는 맹목적인 믿음에 휘말려 기도하며 매달리곤 합니다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주님은 너희의 머리털까지 세신바 되신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이미 주께서 새 계명을 주시며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너희가 내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면 내가 이루리라 하셨고 다시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으면 무엇이든즈 구하라 그라하면 이루리라 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 땅에 실현하기 위해 믿는 자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

사도요한은 16절에서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를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느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형제는 믿는 자들을 말합니다.  따라서 믿는 자들도 범죄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진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에서 사함을 얻고 구원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이 땅에 살고 있고 우리의 영혼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기까지는 세상의 죄가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요한은 여기서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누구든지 내 이름을 훼방하면 사함을 받아도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오는 세상에서도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성령을 훼방한다는 것은 주의 성령이 우리를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는데 거부하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성령의 인도함을 거부하면 그는 영원히 멸망히 처하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요한이 말한 사망에 이르는 죄란 이것과는 다른 말씀입니다. 이것은 이미 믿는 자들을 향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앞에서 적그리스도에 대한 언급을 말하였습니다. 적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그들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을 부인하는 것은 자신들이 그 자리에 서기 위한 것입니다.  이들을 위해서 게헨나가 준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요한은 17절에서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세상을 사는 동안 온전한 믿음과 깨닫지 못한 심령으로 어쩔 수 없이 지은 죄들을 말합니다. 다시말하여 자범죄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은 자범죄가 아니라 고범죄에 속한 것입니다. 다윗은 내가 고범죄를 밤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이것은 죄인줄 알면서도 성령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교만하여저서 하나님을 참담케 하는 죄를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아비의 처를 범한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어 그로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얻게하려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그래도 주의 날에 있을 영혼의 구원을 소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배반한 자의 영혼은 오는 세상에서도 구원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형벌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18절에서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원한 주인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께 저희를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여 달라고 기도하시며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니이다 하셨습니다. 지금도 주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계시어 악이 우리에게 범하지 못하게 하시고 우리를 지키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입니다.

 

요한은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과 우상

주님은 새 계명을 주시며 보혜사 성령이 우리에게 보내실 것을 약속하시며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14:20)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를 아는 것은 그의 영이 우리 안에 역사하기 때문이며 또 우리도 우리가 그 안에 있는 것을 스스로 아는 것입니다.

 

끝으로 요한은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우상은 본질적으로 사람이 숭배하기 위해 만든 형상이지만 실제로는 사람이 하나님 이외에 다른 것을 쫓는 마음이라 보아야 겠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살이에 미혹되어 물질과 명예에 매달리고 있음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물질에 매달려도 그것을 허락하시는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면 들으심이라 기록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언급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향한 우리의 소망을 훼방하는 우상의 실체가 무엇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돌부처나 통일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를 믿음의 실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격리시키는 재물에 있습니다. 바울은 재물은 우상숭배라 하였고 주께서도 부자가 천국에 들어 갈 수 없다 하셨습니다.

 

날이 갈수록 진리의 말씀으로부터 멀어져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승의 자랑에 사로잡혀 가고 있습니다.  만약 진리에서 벗어나 거짓된 지식에 미혹되면 세상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사망으로 이끌고 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자신을 지켜 우상을 멀리하라 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미혹한 잠에서 깨어나 예비하신 영생을 준비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