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한음성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라

이요나 2005. 9. 8. 11:35

    

살롬,,서울은 참으로 좋은 날씨입니다..어서 태풍이 지나가기를 기원합니다.  오늘은 김다비다 전도사님의 간증집회가 있습니다. 김다비다 전도사님은 순복음 영산신학원 1기 졸업생으로 전도폭발 훈련을 받아 전국에 순회전도집회를 하고 계십니다.

 

전도사님은 압구정동 팻션 거리에서 크게 활동하셨던 유명 한복 디자이너로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초청 을 받으시며 폭넓게 활동을 하셨던 유명인 중의 하나였습니다.그러나 어머니로부터 유전된 췌장염으로 심한 당뇨가 생겨 한쪽 다리를 절단하고 실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후 주께서 다비다 전도사님의 입을 통하여 무너져 가는 교회들을 세우게 하시고 쓸어져가는 가정들을 일으켜 세우시는 능력을 행하게 하시어 지금도 불편한 몸을 이끌고 복음의 일선에서 사역을 하게 하셨습니다., 이미 국민일보에 두번이나 간증 기사가 실렸으며 극동방송을 통해 여러번 하나님의 은혜의 메시지가 전달된바 있습니다.

 

내가 다비다 전도사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지난주 화요일로서 밝은교회 주명수 목사님을 만나던 전날이었습니다..전도사님께서 전화로 설교 테이프를 주문하셨고 나는 다비다 전도사님의 열정에 감동하여

설교 테이프를 사과박스로 하나 보내 드렸습니다.

 

전화로 다비다 전도사님은 태이프 값을 물어 왔고 나는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하셨다 답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갈보리채플에 있는 모든 짐들을 버려야 할 때라 다비다 전도사님께 태이프를 보내는 것은 짐을 더는 것이 말했습니다.

 

 수요일 점심 나는 밝은교회 부목이신 김용준 목사와 함께  주명수 목사님을 만나 식사를 하고 주목사님의 변호사 사무실로 갔습니다.  처음뵙는 주명수 목사님은  법조인답게 이성적이고 판단력이 빠르신 분이셨습니다.

 

나는 우선 나의 모든 살아 온 과정을 그에게 말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장시간에 걸처 입을 열었습니다.  목사가 다른 목사에게 자기의 부끄러운 모습을 모두 벗는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만,,나는 그동안 내가 부름받기까지의 헌신과정과 서울 갈보리채플의 개척 상황 그리고 지금 내 앞에 놓인 피할 수 없는 역경에 대하여 털어 놓았습니다.

 

사실은 7년전 이태원 교회를 문닫고 한남동 채플을 개설할 때 카페 수리비로 은행에서 동생의 보증을 얻어 2500만원을 대출받았습니다. ..그동안 매월 월세와 은행이자를 감당하기는 힘들었지만,,어려운 가운데 갈보리채플을 지켜 왔습니다.

 

어려울 때 고비고비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늘 해결해 주셨습니다. 나는 이것은 지금 하고 있는 갈채 사역을 계속하라는 뜻으로 알고 열심을 다했습니다..그러나 작년도에 동생 사업의 도산으로 더이상 연장을 할 수 없게 되어 내가 갈채를 떠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하고 천안의 임한옥 목사에게 위임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3개월 후 중국을 들어 갈 계획을 하고 미국에서 돌아 와 보니 임한옥 목사님께서 여러가지 이유로 하여 다시 물러 나셨고 나는 원위치로 돌아와 꼭 일년이 되었습니다. 나는 항상 어떤 일을 진행할 때 되어 가는 쪽이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은행의 대출은 동생의 보증능력 상실로 8월31일자로 상환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여러가지로 고민 하던 중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현재 한남동의 갈채의 문화시설을 양도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제자원 김병헌 목사님에게 문화사역자의 수배를 해왔었습니다.

 

여러분들이 방문을 하였지만 한국의 개척교회 목사님들의 실정이 이 정도의 금액도 만들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웠습니다. 가장 유력한 후보로는 결혼 선교회를 이끄는 제 위드였습니다. 그곳 지도 목사인 주요셉 목사님과 여러차례 만나 우리의 문제를 의논하였지만 제 위드도 어려운 형편이라 재정을 만들 수 없었습니다..

 

그후 제위드 주요셉 목사의 소개로 밝은교회 부목이신 김용준 목사님이 방문하셨고 밝은교회는 청년들을 중심으로 문화센타를 준비 중에 있었습니다. 우리의 시설과 상황을 살핀 김용준 목사님은 일본 코스타 집회를 방문 중인 밝은교회 담임이신 주명수 목사님이 귀국하는 대로 의논하기로 하였습니다.

 

그후 김용준 목사님과 여러번 회동이 있었고 김용준 목사님은 조심스럽게 밝은교회의 진로를 갈보리채플로 전향하는 선까지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김용준 목사님의 주선으로 수요일 점심시간에 나는 주명수 목사님을 뵙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나의 부끄러운 상황을 모두 말하였습니다.

 

나의 솔직한 고백을 들은 주명수 목사와 김용준 목사는 우선 교회 차원의 다른 문제는 나중에 기도하며 결정하기로 하고  은행문제가 급하게 되었으니 우리가 해결 하겠다 하시며 김용준 목사님께 돈을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주명수 목사의 뜻밖의 답변에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이런 일이 하나님의 인도하심 아니면 어떻게 있을 수 있겠습니까?

 

주명수 목사님이나 김용준 목사나 나 역시 불혹의 나이를 넘었고 또 수많은 사람들의 문제를 다루던 검사 출신의 변호사로서  내 말을 듣는 즉시  답변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이  이성적인 판단으로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주명수 목사님의 거침없는 확답에 친구인 김용준 목사도 놀랐습니다, 나와  김용준 목사님은 떨리는 마음으로 변호사 사무실에서 나와 찻집에서 4시간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날은 마침 밝은교회에서 새로 개설한 교대센터 입실 수요예배가 있었고 주명수 목사님은 수요예배에서 나와 약속한 일들을 성도들에게 고하고 이를 위해  5명의 운영위원을 선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김용준 목사님으로부터 주일에 다른 팀장들과의 회동도 있어야 하니까 은행 상환일을 일주일 연장해 놓으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명수 목사님을 지난 목요일에 갈채로 초청하였습니다.

 

나는 기쁨으로 돌아와 주일예배에서 이 모든 일을 성도들에게 전하고 또 목요 모임 운영자 몇 사람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했습니다. 그후에도 김용준 목사님이 여러번 갈채를 방문하여 우리 운영자와 식사를 하면서 장차 있을 들에 대하여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목요일 점심 시간에 갑자기 김용준 목사님이 오셔서 밝은교회 7인팀장들이 거부의사를 하고 있어 협의 중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날 저녁 주명수 목사님은 김용준 목사님과 운영위원들과 함께 참석을 하시고 자신의 삶 속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을 해 주셨고  금요일 아침 나는 주명수 목사님께 감사의 이멜을 드렸습니다.(아무런 답장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주일이 지나고  연기된 날 월요일이 되었으나 아무런 전갈이 없었고 화요일 오전  제이 위드 주요셉 목사님으로부터 김용준 목사를 통해서 밝은교회의 팀장들의 반대로 처리가 불가하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는 내 귀를 의심하며  김용준 목사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을 하였습니다.

 

참으로 황당하고 뒤통수를 맞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더 서글펐던 것은 사회 저명인사이자 한 교회 담임 목사의 말이 이처럼 권위를 상실하고 있는가에 있었습니다. 사람과 사랑의 약속도 중요한 것인데 목사와 목사가 만나 하나님의 교회와 교회의 약속을 이렇게  말한마디 없이  무산시킬 수 있는것인가 하는 당혹감이 앞섰습니다. 차라리 연기를 하지 않았다면 이처럼 낭패가 되지 않았을 터인데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사실 밝은교회 주명수 목사를 만나기 전에 양도할 위임자와 협의가 다 끝난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수요일 오는  밝은교회  부목사이신 김용준 목사님이 사과 차 방문을 하셨고 나는 할말을 잃고 서로 얼굴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주께서 저의 입을 열어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에스더서의 말씀과 사사기 4장의 말씀이었습니다.

 

에스더가 왕후에 오른지 하만의 모함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되륙직전에 있을 때 에스더의 삼촌 모르드개는 에스더를 불러 왕에게 가서 구원을 청하라 하셨습니다. 이 때 에스더는 왕의 부름이 없이 왕에게 나가는 자는 죽임을 면치 못한다고 답하자 모르드게는 네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이지만 너 혼자 이스라엘 사람으로 살아 남을 것이라 생각지 말라 하였습니다. 이에 에스더는 금식을 하고 죽으면 죽으라 하고 왕에게 나갔던 것입니다.

 

나는 밝은교회 김용준 목사님께 하나님께서 이번의 일을 다른 사람을 통하여 성취하실 것이라 전하고 다시 사사기 4장의 바락과 드보라 선지자의 말을 전하였습니다. 바락은 그당시 이스라엘 사사였고 드보라는 예언자였습니다

 

하나님은 드보라 입을 열어 바락에게 야빈의 병거 칠백승을 네 손에 붙이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락은 당신이 나와 함께 나가지 않으면 나는 가지 못하겠노라 하였고 이에 드보라는 내가 너와 함께 나갈 것이나 이 일로 하나님 앞에서의 영광은 여인의 손에 붙이실 것이라 하였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의 대적 야빈왕 시스라는 전쟁이 패하여 도망하다가 헤벨의 장막에 숨게 되었는데 헤벨의 처 야엘리 그에게 더운 젖을 먹이고 잠이 들 때에 장막 말둑으로 가슴을 찌러 죽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하나님의 교회  갈보리 채플을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한 오늘의  영광은 어느 이름없는 여인이 취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입에서 떨어지기도 전에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김다비다 전도사님이였습니다. 그분은 어제 나를 만난 후 집에 돌아가 근심하며 기도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어느 여집사님을 통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어제 저를 만났을 때 김다비다 전도사님은 자기 주변 분에게 우선 차용을 부탁하려 하였는데 그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느냐 물었습니다. 나는 한남동 갈채 임대 계약서와 시설 일체를 담보할 것 밖에 없다 하였고 그분은 은행이자 정도를 지불할 수 있느냐 물었습니다. 나는 어떻게라도 해야 되지 않겠는냐 답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 사역을 인수할 문화사역자를 찾는 것이 좋겠다고 답하였습니다. 다시 돈을 차용을 하고 이자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 제게는 커다란 부담이고 또 더이상 갈채를 운영해 나갈 흥미조차 잃었기 때문입니다.

 

김다비다 전도사님이 전화를 하셔서 우리의 사정을 들으신 분께서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말라는 조건으로 전액 헌금을 해 주시겠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는 것인지.. 내 옆에서 이 말을 듣던  밝은교회 김용준 목사님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영광은 이름 없는 여인이 취할 것이라 말이 끝나자 마자 전화가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도 내 입으로 한 말이지만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금부터 20년전 일본에서 구역예배 중 조용기 목사님의 이름이 다윗으로 개명 될 것을 미리 말씀하신 이후 처음으로 나타난 주의 말씀이었습니다.

 

나는 아직 내 작은 입술 속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였으며 하나님은 아직도 우리 가운데 말씀으로 함께 하심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내 앞에 펼치실 일들을 바라보며 나아갈 것입니다. 이것이 어떤 일인지 알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 이제 입을 여셨으니 나와 함께 하실 것을 믿습니다.

 

오늘 김 다비다 전도사님을 목요예배에 모시고자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함께 기도하며 만남을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두 걸음을 재촉하여 주십시요..

 

이요나 목사

 

*  이 내용은 밝은교회 주명수 목사님과의 협의가 확정된 것으로 이미 보고되었기 때문에 그 상황을  해명할 필요가 있어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