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한음성

그리스도인의 거룩함을 상실한다는 의미

이요나 2005. 8. 18. 12:31

살롬,,나야 별 일한 것도 없는데 나이가 나이인지라 캠프 후 몸이 무겁습니다. 아침이면 일어 났다가 다시 누어버려,,오늘은 10시가 넘어서야 나왔습니다..모두들 피곤하리라 생각합니다.

 

이번 캠프를 다녀오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우리나라의 크리스챤 문화에 대한 현실이 너무 열악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미국에 가면 크리스챤 문화와  성경적 생활이 생활 저변에 녹아 있어 그들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감하게 됩니다.

 

서로 만날때마다 꺼리낌없이 축복의 입맞춤을 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하는 모습이야 말로 정말 아름답습니다. 그들의 크리스챤 문화는 교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그대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문론 미국인 모든 사람들이 크리스챤인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비 크리스챤들도 모두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표현 양식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고 또 귀중한 삶의 근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상대를 축복하고 사랑의 표현은 일상 속에서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귀중한 문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에 비하여 우리나라의 실정은 교회 안에만 교회 문화가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세상 문화와 세상의 삶의 틀 속에 살다가 교회만 오면 형제님 자매님 하는 표현이 나타나고 그때서야 하나님의 이름을 기억하게 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라고 해서 자연스런 축복의 스킨쉽이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가 서로 껴안고 사랑합니다 라고 축복해 주세요 라고 말해야 마지 못해 형제님 사랑해요 자매님 사랑해요 하게 됩니다. 그러나 과연 그 인사 속에 진정한 사랑이 있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동서양의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가 미국에서 처음 발생한 것은 아닙니다. 미국인은 여러 나라의 문화와 언어와 풍습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이룬 합중국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각 민족의 풍습과 고유의 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국가의 시동은 크리스챤들로 출발하였습니다. 그들은 유럽의 비 그리스도적인 종교적 행위에서 탈피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찾아 탈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진리의 말씀 속에서 삶의 기준을 터득하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구축하였습니다. 문론 이것은 유럽에서 비롯된 문화이지만 이 문화도 역시 하나님을 사랑하는 유대인들 속에서 출발한 문화의 발전입니다.

 

그동안 우리 모임은 진리 안에서의 온전한 교제와 자유를 주창하여 왔습니다. 나름대로 갈보리채플에 참가하는 분들은 다른 교회의 모임에서 느낄 수 없는 자유함과 신선함을 맛보았을 것입니다. 우선 나는 우리 모임의 형제 자매들이 친구가 되기를 기원했습니다.

 

그 결과 많은 형제 자매들이 친구가 되어 결혼 후에도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들을 보면 이미 자신들의 주체가 우리 모임 가운데서 형성 된 것 같은 신선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아직 많은 형제 자매들이 그리스도인의 만남과 교제 속에서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더우기 우리 모임이 아름다운 만남을 위한 모티브를 갖고 있기 때문에 잘못하면 목적만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의 통로로 변질 될 수 있습니다. 내가 목요모임을 통하여 예배로의 만남과 식탁으로의 초대는 그리스도인의 신선함과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함입니다.

 

어떤 형제가 말하기를 모두 각자가 자기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으니 목요 만남은 매칭을 위한 프로그램만을 하는 것이 어떠냐고 건의를 해왔습니다,. 나는 그 형제에게 나는 중매장이가 아니라고 답해 주었습니다.

 

최근 나는 이상한 기류를 감지하고 있습니다. 문론 날씨 탓도 있고 또 어디에 열정을 풀어 버릴 수 없는 한국의 실정도 있습니다만,,날이 갈수록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의 영과 혼과 육의 균형적 생활을 이루지 못하고 육체적 탈출구를 향하여 달려 가고 있습니다.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 중 출발선이 절제이고 최고의 성취목표가 사랑입니다. 이것은 사랑의 완성이 절제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실패는 모두 절제를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랜 세월 나는 절제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 왔습니다.

 

그로하여 가족과 친구와 올바른 삶을 상실하고 고통의 인생을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나를 가장 아프게 하는 것은 예수를 믿지 않았던 시절보다 예수를 믿은 세월 속에서 저지른 나의 잘못된 행각입니다.

 

분명히 내가 예수를 믿었고 주를 사랑하였으며 교회를 섬기고 있었는데 나는 세상 사람들이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육체적 행동들을 꺼리킴 없이 행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직도 내 가슴을 미어지게 합니다.

 

성경은 너희의 몸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라 기록하였으며 하나님의 뜻은 너희의 거룩함이라 하였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성전과 거룩함의 의미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의미합니다.

 

신약성경의 주제는 한마디로 말하여 그리스도인의 의로운 삶과 거룩한 삶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복이며 아름다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 우리 안에 있는 육체적 속성입니다. 마귀는 계속 우리로 하여 육체적 행위 속에서 쾌감을 갖도록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음행에 빠짐으로 그리스도의 거룩함과 의로움을 상실하기 때문입니다.

 

유독 바울사도는 음행에 대하여 강조하였습니다. 음행의 연고로 모든 육체는 결혼을 하여야 한다고 하였고 음행은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또 빛과  어둠이 함께 할 수 없으며 베리알과 그리스도가 함께 하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거룩함을 상실하지 마십시요, 그리스도인의 거룩함을 상실한다는 의미는 그리스도의 축복에서 떨어져 나간다는 의미입니다. 그에게는 심판과 판단이 있을 뿐입니다.  성경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반듯이 너희를 멸하실 것이라 하셨습니다. 아름다운 교제를 하십시요.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름다움이란  거룩한 그리스도의 품성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