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4:1-4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우리는 앞에서 제자들이 왜 근심스러워 했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름에 응하여 예수를 주인과 선생으로 섬기며 유대인의 공동체 속에서 또 다른 공동체 속에서 살아 왔습니다. 유대인들의 질시와 핍박 속에서도 그들은 예수님의 각별한 보호를 받으며 아무런 근심 없이 살아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보호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께서 장로들과 제사장과 서기관에게 팔리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리라는 말씀과 이제 그 때가 되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그들은 불안과 근심에 쌓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근심의 원인 중 가장 큰 이유는 앞날에 대한 불투명 때문입니다,
13장 뒷절에서 베드로는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하고 묻고 있습니다. 주께서는 "나의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 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 오리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더욱 조바심이 생긴 베드로는 "주여 내가 어찌하여 지금은 따를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겠나이다"라고 다그칩니다. 베드로 생각에는 자신의 헌신을 예수께서 이해하지 못하시는 듯 느껴왔던 것입니다, 자신은 목숨이라도 버릴 준비가 되었는데 주께서는 지금은 따라 올 수 없다니 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인간으로 알 수 없는 것 또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자신이 하셔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주여 내가 이 때를 위하여 왔나이다"라고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그것은 비록 영광을 향한 길이지만 죽음을 통하여 가야 하는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일을 베드로는 알 수 없었던 것이고 또 할 수도 없는 입장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후에는 따라 오리라"하심으로 제자들도 그 영광의 길에 참여할 수 있음을 시사하셨습니다.
우리가 거할 곳?
오늘은 왜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가지 않고 먼저 가시는 이유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절을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라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이 말씀은 지금 우리가 살펴보아도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 말씀을 하실 때 듣고 있던 제자들은 아직 주께서 자신이 가실 곳으로 가시지 않은 때임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하지만 지금 우리의 경우는 예수께서 이미 하늘로 올라가신 후인데도 우리는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께서는 아직 우리를 데리러 오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곧 오실 것이라는 성경말씀은 수천 년 동안 그것을 읽는 모든 사람들을 기만하는 거짓말 같기만 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곧 오신다는 이 말씀을 믿고 이천년동안 기다리다 모두 죽었습니다. 그런데 주께서는 아직까지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동일한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은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하신 말씀으로 꼭 실현될 것을 믿을 뿐입니다.
천국의 집의 개념?
지금 우리가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은 주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먼저 가셔서 우리가 거할 곳을 준비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곳은 천국이라는 막연한 생각은 할 수 있어도 어떠한 곳인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하는 곳인지 도저히 알 수도 짐작할 수도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그곳의 모습이 어렴풋이 소개되고는 있지만 우리의 온전한 이해를 돕지 못하고 있습니다. 추측 아니면 공상이 되어 버리기 쉬운 일들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하늘나라의 모습을 보면 영화 속에 나오는 장면 같아서 천국이라는 곳은 그리 재미있는 곳은 아닐 듯 싶기도 합니다. 아무리 금으로 깔린 길이 있고 온통 수정과 열 두 가지 보석으로 지어진 궁전이 우리의 집이라 해도 그곳은 사람이 사는 곳은 아닌 것처럼 생각됩니다. 먹고 마시는 것도 없을 것 같고 또 부부생활도 없다고 합니다,
부부생활도 없으면 이성교제도 없을 것 같고 우리가 저녁마다 즐겨보는 텔레비전 연속극도 없을 것 같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매일저녁 모세나 예수님에 관한 비디오나 텔레비전 테이프를 들어야 한다면 아마 미쳐버리고 말 것입니다. 맛있는 것을 먹을 일도 또 자녀들의 재롱을 보는 일도 회사에 나가서 머리를 썩히는 일도, 그리고 이요나의 세미한 음성을 보는 일도 없이 매일 찬송이나 부르고 천사처럼 하늘을 나르며 나팔을 불고 다닌다면 정말로 재미없는 나라일 것입니다, 아마 하늘나라가 우리의 추측과 같다고 하면 그냥 이대로 세상에서 사는 재미가 더 재미있을 것입니다.
영혼의 안식처인가?
그러나 지금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 세상 살아가는 일은 우리가 알고 있는 반면 하늘나라의 일은 알지도 알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천국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이 세상에서 살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예수께서는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 집이란 하나님의 집을 말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먼저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집이라는 개념입니다, 집이라는 것은 살아있는 생물들에게만 해당되는 안식처입니다, 또 집이라는 것은 어떠한 형태와 목적을 갖추고 있는 곳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아름다운 집이라 해도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집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무엇인가 어떠한 형체를 가지고 있는 생물체가 거하는 곳을 집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우리의 지식과 생각은 또 균형을 잃고 맙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천국을 갈 때는 이 육체를 가지고 가지 못하고 육신의 장막을 벗어버린 영이 가는 곳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형체가 없는 영이라면 거할 집이 필요할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분명히 아버지의 집이라 하셨고 그곳에는 우리가 거할 곳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 가서 살 때에도 어떠한 형체를 가지고 있을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구조는 지금 우리의 육체가 사는 집의 개념과는 다를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악의 개념도, 또 부패되고 썩는 개념도 없음으로 우리의 하수도도 화장실도 없을 것입니다, 또한 어둠이 없음으로 전기 불도 필요 없을 것이며 낮과 밤의 개념도 없어질 것이며 환풍기나 에어콘 같은 난방도 없을 것입니다,
오직 갈 곳이 두 곳이라면?
우리의 생각이 이쯤 이르면 하나님의 집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불가사의에 빠져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집이라고 하셨고 우리의 거할 처소가 많다고 하셨으며 그것을 예비하러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거할 곳이라는 헬라어의 어원은 여행자들을 위하여 준비된 휴식처입니다, 따라서 이곳은 세상 가운데서 인생살이에 지치고 고통에 눌렸다가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 온 자녀들의 안식처임이 틀림없습니다, 예수께서는 이곳을 예비하러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지금도 주께서는 우리의 처소를 준비하고 계실 것입니다. 베드로를 포함한 12제자들의 집은 물론 예수를 믿다가 먼저 가신 믿음의 조상들의 집 그리고 이제 나의 할 일을 마치고 육체의 장막을 벗고 주님의 품으로 돌아 갈 때 거할 나의 안식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곳에 가서 지금의 우리의 지식과 생각으로는 도저히 할 수도 알 수도 없는 영원한 생명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주께서는 또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우리를 인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후 주님은 아직 우리에게 오지 않으셨습니다, 하늘나라에 갈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처소를 준비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가 봅니다. 어쨌든 나는 그곳을 갈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죽은 후 갈 곳은 딱 두군데 밖에 없으니까요, 천국과 지옥의 선택 밖에 없다면 나는 지옥은 싫습니다. 이것은 변할 수 없는 창조자께서 정하신 원칙이라고 할 때 천국에 들어가는 길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 밖에 없다는데도 굳이 믿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이해가 안됩니다. 모두 죽어서 천국 가기를 소망하면서 왜 그 선택에 망설이는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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