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요한복음강해

(요한복음 14장-4)성령의reality!

이요나 2000. 12. 31. 23:35
(요한복음 14장-4)성령의reality!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저를 능히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니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한 14:17)」

 

오늘은 주께서 말씀하신 "또 다른 보혜사"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그동안 제자들은 유대교의 공동체 속에서 격리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국가와 사회로부터 격리된다는 것은 공산주의 속에서 살아가는 민주운동투사와도 같은 것입니다. 후일 유대인들은 독일 나치 속에서 이러한 처절한 고통을 겪게 됩니다만 12제자들은 유대인들 속에서 살아가는 또 다른 종교 공동체 즉 예수교라는 이름 속에 살아야만했습니다. 그들은 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감시를 받으며 살아야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무리들 속에 스며들어 일거일동을 살피며 그들의 약점을 잡기에 혈안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마가복음 9장을 보면 예수님과 베드로 요한 야고보가 함께 변화산에 올랐을 당시 다른 제자들은 서기관들에게 둘러싸여 공박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귀신을 쫓아내는 문제였습니다. 이 때 주께서 그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또 세금문제로 공박을 당할 때에도 예수께서는 물고기 입에서 동전을 꺼내어 해결하셨습니다. 따라서 제자들은 예수님만 옆에 계시면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바다의 풍랑에서도 구원하셨으며, 가족이 병 들었을 때에도 치료하셨습니다. 또 먹을 것이 없는 군중들에게 둘러싸였을 때에도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마치 요술방망이와 같았습니다. 예수께서는 항상 제자들의 옆에서 도와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떠나신다고 하니 정말로 기가 막힐 일입니다. 근심에 싸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다른 보혜사?
    주께서는 근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근심의 원인은 장래에 일에 대한 불안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근심하지 말라고 하셨을 때에는 그들이 걱정하는 일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그 대책으로 "또 다른 보혜사"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다른"이란 헬라어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헤테로스"와 "아모스"입니다. 헤테로스는 지위 능력에서 동일한 품격을 말합니다. 즉 이름은 다르다 하더라도 그 능력에서 다름이 없을 때 사용됩니다. 그러나 아모스는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주께서는 "헤테로스"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보혜사"라는 단어입니다, 보혜사는 헬라어 "파라"(옆에)와 "클레토스"(돕다)의 복합명사입니다. 따라서 보혜사는 옆에서 돕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또 다른 보혜사"라는 말씀은 나와 이름은 다른 분이시지만 능력에 있어서는 동일하신, 옆에서 도와주시는 분을 보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제자들은 이 말씀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진리의 영"이라 하셨으니까 말입니다. 영이 사람을 돕는다는 감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쉽게 납득이 되는 말은 아닙니다. 우선 영이라는 존재는 우리의 육감으로 감지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true" & "reality"
    여기서 우리는 "진리의 영"이라는 말씀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자신을 심문하던 빌라도에게 "무릇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노라" 하였을 때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반문하였습니다(요18:37,38 참조). 진리(알레테리아)는 예수께서 가르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는 것으로(요17:17) 지상에 오신 하나님의 실재(reality)를 의미합니다. 실재를 가리키는 헬라어는 알레티노스(alethinos)로서 "참된"(true)을 의미하는 알레테스와 "진리"(real)를 의미하는 알레테이아란 말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에서는 "알레티노스"라는 단어가 나오면 "참된"(true)로 번역하고 있습니다만 사실 "실재적"(real)이란 의미가 더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요한복음의 전체적 주제를 이루고 있는 "참 빛"(real light), "참 떡"(real bread), "참 포도나무"(real vine) 등은 예수 그리스도의 실재적(reality) 존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리의 영"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실재와 같은 의미를 같은 영적인 존재를 의미하는 것으로 우리가 아는 바 하나님의 "성령"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고아의 의미
    예수로부터 진리의 영에 대하여 설명을 듣는 제자들의 입장을 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예수께서는 "진리의 영"에 대하여 설명하심에 있어 "또 다른 보혜사"라는 설명을 하셨습니다. 즉 자기와 동일한 능력의 소유자이신 하나님의 영으로서 그는 진리, 즉 실재적 존재로 옆에서 도와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만으로는 충분한 납득을 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내어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오리라"라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보충하셨습니다. 여기서 "보혜사"(parakletos)의 영어 번역 "comforter"는 "고아"라는 영어 "comfortless"와 연관하여 불쌍한 상태로는 두지 않겠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 아닙니다. 주께서 사용하신 "고아"라는 단어는 "오펀스"(orphanos)로서 나는 너희들을 세상 쓰레기 속에 버리고 가는 것이 아니라 틀림없이 다시 온다는 의미입니다.


    아버지의 실재
    예수께서는 "보혜사"를 설명하시기 전에 자신을 증명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빌립이 "하나님을 보여 주시면 만족하겠다"고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보지 않고 믿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우리는 빌립은 믿음이 적은 사람이라고 말할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여러분의 입장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살면서 그의 역사를 통하여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만나보지 못한 하나님 아버지에 대하여 설명을 하니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어떻게 자기와 함께 하시는가를 알리실 필요가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내가 어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시다" 하셨습니다. 이것에 대한 설명은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하셨습니다. 이 말씀으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거하고 계심을 알 수가 있습니다.


    능력의 실재
    요한복음 15장7절을 보면 주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하셨습니다. 또 요한복음 8장에서 자기를 믿는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하셨고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 말씀을 듣는다"하셨습니다. 또한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의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실때 "저희로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하셨고 다시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소서"하셨습니다. 이 말씀들은 모두 우리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가 우리 안에 계신 실재적 존재가 무엇인가를 가르치신 말씀입니다. 주께서는 이것을 가르치신 후 그들에게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라" 하시며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하셨습니다.


   우리가 준비할 일
    그러나 이 능력의 말씀이 실재로 나타나기 위하여는 몇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에수께서는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라 하셨습니다. 이것은 먼저 그분과의 관계성을 가져야함을 의미합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이 세상에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았다고 기록하였습니다. 또 주께서는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라"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다심으로 자기의 사랑을 우리에게 타나내셨기 때문입니다. 자, 그러면 이것으로 다 된 것일까요? 아닙니다. 말씀안에 거하는 것, 기도하는 것, 또 그의 사랑을 지키는 것은 모두 우리가 준비할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가르침을따라 준비가 끝나면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가 부르신 모든 사람에게 성령의 선물을 주신다고 증거하였습니다(행2:38). 그것은 그의 사랑의 능력을 표출할 하나님의 능력 "또 다른 보혜사"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주께서는 12절에서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라"하셨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능력의 실재가 "보혜사 성령"으로 제자들을 통하여 나타나실 것을 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과 같이 이론은 실제적 체험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이론일 수 밖에 없습니다. 최근 많은 신학교에서 성령에 관한 이론적인 교육을 가르치고 있습니다만 이론은 실제적 체험 속에서 능력으로 나타날 때 증명되는 것입니다. 사실 그때까지 제자들은 성령에 대한 이론적 지식도 체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알 수 없었던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7장에서 장차 갈급한 심령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이제 그 날을 앞두고 주께서는 제자들이 실재적으로 체험할 성령 즉 보혜사에 대하여 설명해 주고 계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