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예언서 강해

(단4:2)이제 왕노릇 그만 하십시요(1)

이요나 2003. 7. 7. 16:30
(단4:2) 이제 왕노릇 그만하십시요(1)



(단4:2)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이적과 기사를 내가 알게 하기를 즐겨하느니라



우리의 성경공부는 다니엘 4장입니다. 4장은 크게 둘로 나누어서 공부하게 될 것입니다만 오늘은 먼저 느부갓네살 왕이 하나님을 찬양하기까지의 그 배경과 과정을 살펴 보고 다음 시간에 느부갓네살이 꿈으로 본 큰 나무에 대한 신학적 의미를 살펴 볼 것입니다. 다니엘을 공부하시는 분들께서는 척스미스 목사님의 싸이트나 또 다른 갈보리채플의 목사님들의 설교를 살펴 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 다른 은사를 갖고 있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부분만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느부갓네살 왕의 이야기를 4장이나 할해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고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이방인의 왕으로 정말 대단한 영광이 아닐 수 없스니다. 그는 신바벨론국을 일으킨 세기적인 통치자로서 부귀와 영화를 한손에 쥐고 있던 우상 숭배자로서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였습니다. 우리는 느부갓네살왕의 체험적 신앙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은혜가 이방에 미치는 하나님의 섭리와 믿음의 과정들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서 4장은 다니엘의 생각과 본 것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따르지 않다가 예고된 말씀처럼 7년동안 짐승의 마음을 받은 느부갓네살 왕이 회복된 이후 그의 체험적 신앙고백을 다니엘이 대서한 것으로 왕의 조서로 백성들에게 내려진 것입니다. 그러니 왕권의 위엄이 하늘과 같은 이 시절에 백성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었을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느부갓네살 왕은 1절에서 '천하에 거하는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에게 조서하노니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이글은 마치 전도자의 말과도 같습니다. 베드로는 아시아 일대에 흩어진 유대인들에게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더욱 많을지어다"(벧전1:2) 기록하였고. 또 예수님의 동생 유다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기를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유1:2)고 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평강과 은혜를 받아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권면으로 자기 인생의 결말을 추상하며 사용하는 인사말입니다.



먼저 느부갓네살 왕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이적과 기사를 내가 알게 하기를 즐겨하노라"하였습니다. 이 선언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은혜를 스스로 체험한 자"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이것으로 인간은 그 어떤 지식을 온전히 알기 위해서는 터득한 지식이 자신의 삶에 체험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식은 어떤 사실들을 축척해 놓은 것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총명의 토대가 됩니다. 그러므로 느부갓네살 왕의 신앙고백은 세계를 제패한 황제로서 자신의 인생 전체를 통하여 도달한 진리의 고백인 것입니다.



왕은 하나님을 찬양하여 "크도다 그 이적이여 능하도다 그 기사여, 그 나라는 영원한 나라요 그 권병은 대대에 이르리로다"(3절) 선언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위대한 포고문이며 거룩한 신앙고백입니까? 이 고백이야말로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을 체험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와 권병'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속성과 통치 권세와 위세를 말한 것입니다. 그는 이 세상의 군주가 인간이 아닌 하나님과 그의 권속들의 것임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오늘의 위대한 신앙고백을 선포한 뒤 2년 후 하나님께 돌아 갔습니다.




우리는 왜 느부갓네살 왕이 입은 하나님의 은혜를 좀더 리얼하게 음미하기 위하여 느브갓네살 왕에 대하여 좀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신바벨론 제국의 역사 70년 중 45년 동안 통치한 왕이였습니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신바벨론의 역사는 유감스럽게도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 멸망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또한 아이러니 하게도 신바벨론 왕국의 멸망은 곧 예루살렘의 회복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과 이방의 관계를 생각하게 됩니다. 사실 복음이란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였습니다. 그 언약의 은혜가 예루살렘의 멸망과 함께 이방 가운데 역사하여 이방의 통치 세력인 신상(神像)이 무너질 때까지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비밀을 로마서 11장에 기록하였습니다.



단적으로 말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곧 느부갓네살 왕이 본 神像입니다. 우리를 통치하는 세상의 신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 곧 다니엘이 본 바 금신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신상의 통치 속에 살고 있으며 지금은 열발가락 사이에 와 있는 것입니다. 이제 머지 않아 우리는 다니엘의 말한바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않은 뜨인 돌이 이 신상을 무너뜨리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보십시요 이미 뜨인 돌은 믿는자 가운데서 역사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통치 섭리를 70년이라고 선언하였고 다니엘은 9장에서 그 비밀을 설명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세대는 지금 69와 70의 수치 사이에 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께서 말씀하신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설 그 시점에 매우 가까이 살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한 교만한 이 세상의 신이며 그의 은혜에 설복당한 당신과 나의 모습인지도 모릅니다.(다음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