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예언서 강해

(겔40:4) 보고 듣고 마음으로 생각하라

이요나 2003. 5. 15. 13:53
(겔40장) 보고 듣고 마음으로 생각하라


그 사람이 내게 이르되 인자야 내가 네게 보이는 그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네 마음으로 생각할지어다 내가 이것을 네게 보이려고 이리로 데리고 왔나니 너는 본 것을 다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할지어다 하더라(겔40:4)

우리는 앞에서 이스라엘의 회복 후 평안한 때에 또 다시 일어날 전쟁을 살펴 보았습니다. 우리를 흥미롭게 한 것은 그 전쟁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섭리의 시간, 즉 7년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과연 그때가 얼마가 남아있는 것인지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주께서 내가 올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신 말씀을 미루어 볼 때 두렵기 까지 합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사람들이 시집가고 장가가며 물건을 사고 팔고 하는 중에 홀연히 다가 올 주의 날... 과연 우리는 주께서 보내신 천사장의 나팔 소리를 듣고 하늘나라의 시간과 공간 속으로 들어 갈 수 있을 것인지 스스로 겸베하고 각성할 때라고 생각됩니다.



에스겔 40장은 또 다른 시간 속에서 펼처질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것입니다. 에스겔은 1장에서 그를 부르실 때와 같이 또 다른 하나님의 공간으로 이끌려 가게 됩니다. 이때는 예루살렘의 멸망의 소식을 들은 날이며, 또한 다물게 하신 입을 열게 하신 날로부터 12년되는 시점입니다. (겔33:21 참조) 하나님은 에스겔을 이상 중에 이스라엘 땅으로 데리고 가셔서 성읍 형상을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성읍은 파멸된지 12년이 경과한 때입니다.



에스겔 앞에 나타난 놋같은 사람이 손에 삼줄과 척량하는 장대를 가지고 성문 앞에 서서 "인자야 내가 네게 보이는 그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네 마음으로 생각할지어다 내가 이것을 네게 보이려고 이리로 데리고 왔나니 너는 본 것을 다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할지어다 하더라"(겔40:4)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으로 에스겔은 눈으로 실제로 보며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러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스스로 생각해야만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에스겔 40장부터는 정말 보는 사람의 머리를 아프게 합니다. 이것을 살펴보다보면 호동이 되어서 이것이 그것같고 그것이 이것 같아서 짜증이나고 이내 책을 접어 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주의 할 것은 이글을 읽는 우리는 에스겔의 심령으로 눈으로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나는 에스겔이 본 바를 그의 설명을 들으며 자세히 살펴 볼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는 나중에 생각해 볼 참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도 본문에서는 머리가 아프시더라도 나와 함께 살펴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다음 칼럼에서 에스겔이 말한 바 전체적인 그림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먼저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무리하게 억지로 풀려는 시도는 삼가하여야 할 일입니다. 이를 경게하여 베드로는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라"(벧전1:19) 말하였으며 다시 "또 그 모든 편지에도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령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벧전3:16) 경고하였습니다.



저의 경우는 성경의 어려운 부분을 해석 하려 하기보다 이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성령의 깨닫게 하심을 의지하여 기도하는 심령으로 깊이 생각에 몰두하다보면 다른 언어로 된 역사적 고어(古語)들이 적당한 우리말로 어렴푸시 떠오르듯이 머리속에 등불이 켜지게 됩니다.



삼줄이란 삼을 꼬아 만든 것으로 긴 것을 잴 때 사용하는 것이며 척량하는 장대는 갈대를 말하는 것으로 짧은 것을 잴때 쓰는 측량도구를 말합니다. 먼저 그 사람은 집 바깥 사면의 담을 측량하였습니다. 에스겔이 성전이란 표현을 쓰지 않고 집 바깥이라고 한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에스겔은 먼저 그 사람이 측량하는 것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 사람은 먼저 동향문으로 올라가면서 측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문으로 들어가 처음 잰 것은 현관과 그 안쪽으로 연결된 문지기 방이였습니다. 문지기 방은 성전을 관리하며 문을 지키던 레위인들의 방으로서 문안 좌우에 세개씩 있었습니다.



문을 통과하여 들어간 바깥 뜰은 문간 좌우편으로 깨끗한 박석(포장도로)이 깔려 있었고 좌우에 30개의 방이 있었으며 그 모든 형태는 동향한 문과 같았고, 그 문간으로 올라가는 일곱 층계와 현관들이 있었으며 문 위에는 모두 종려나무가 새겨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문들을 통하는 사람들은 모두 일곱 층계를 올라가야 하며 또 종려나무를 통과하게 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문지기 방에는 상당히 많은 창들이 벌여 있음에도 각각 닫힌 창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문지가 방의 각 문 벽 위에 종려나무가 새겨있는 것으로보아 그 문지기들의 위세가 어떠한지 짐작하게 합니다. 종려나무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백성들이 호산나를 외칠 때 들고 사용하던 것으로 이스라엘 가운데 영광과 승리의 상징입니다.



성전의 외곽의 형태의 측량이 끝나자 그 사람은 에스겔을 이끌고 남향한 문을 통하여 안뜰로 들어 갔습니다(28절)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전으로 들어 가려면 남쪽으로 들러가서 북으로 나오든가 북으로 들어가서 남으로 나와야 합니다(45:4)



에스겔이 들어선 성전 안뜰로 들어간 남문간의 구조와 모양은 앞에서 본 다른 문간들과 같았습니다(29절) 그러나 앞에서는 일곱계단이 있었던 반면 이곳에는 여덟계단이 있었습니다. 동편과 북편의 문도 모두 같은 형태였습니다. 바깥 문들을 올라가려면 일곱게단을 올라가면 됩니다. 그런데 안뜰에 있는 계단은 8계단을 올라가야 하는군요, 이것은 계단의 숫자를 말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말하는 일곱의 수자에 대하여는 이미 다 아는 바입니다. 주기와 음계가 7 단위로 변하는 것과 빛의 색이 입곱인것도 흥미롭습니다. 하나님께서 육일동안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에 들어 가셨습니다. 그리고 안식에 들어간 날 그 다음날은 팔일입니다. 성경에서 8이란 숫자는 안식의 세계를 의미합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계단을 칭할 때 '올라가는 여덟 층계'라는 기록입니다. 계단은 올라갈 때뿐 아니라 내려 갈때도 씁니다.



우리가 보통 예루살렘에 올라간다고 말합니다. 지방에 사는 분들은 그곳이 강원도 높은 산간이라도 서울에 올라간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올라가는 입곱계단'이나 '올라가는 여덟계단'은 모두 의미있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여러분들도 아시겠지요? 성경에는 올라가는 것만 기록되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벧엘로 올라가야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북문 여덟째 계단을 통하여 올라가니 문 벽 곁에 번제물을 씻는 방이 나옵니다. 그곳에는 현관 양편에 두개씩의 상들이 이편과 저편에 있어 모두 8개의 상이 놓여있었습니다. 좀 무시무시한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만 이것은 정말 에스겔이 본 이상의 성전의 의미를 깨닫는데 매우 중요한 내용 중의 하나입니다.



에스겔은 제사장이였으므로 이 상들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번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희생을 잡았습니다. 그러므로 제물은 모두 이 방에 들어와 씻어야 하며 좌우 양측에 벌려진 8개의 상에서 잡게 됩니다. "현관 안에는 길이가 손바닥 넓이만한 갈고리가 사면 박혔으며 상들에는 희생의 고기가 있더라"고 기록되었습니다(43절)



번제란 향기를 올린다는 뜻으로 헌신의 제물로서 모든 예물의 기초가 됩니다. 또한 속죄제 하나님과의 관계된 죄악을 사하기 위한 제사이며 속건제는 사람과의 관계된 범죄를 사하기 위하여 드리는 제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속죄제와 속건제는 출생, 헌신은 물론 부정으로부터 정결시에 드려지는 의무와 같은 의식이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 앞에 올려지는 제물이 과연 짐승을 말하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째서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 자신을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렸을까요? 과연 하나님 앞에 드려진 우리는 앞에서 말한 모든 과정을 거친 것인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에스겔이 들어간 안 문안 안뜰에는 방 둘이 있었는데, 북문 곁에 있는 방은 남을 향하였고 남문 곁에 있는 방은 북을 향하여 있었습니다. 이것을 그림으로 그려 놓고 보면 흥미롭습니다만 남향한 방은 성전을 수직하는 제사장들이 쓰는 곳이라고 기록하였습니다. 내 생각에는 이들은 하나님께 찬양하는 사람들과 봉사자들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북향한 방은 제단을 수직하는 제사장들의 쓸 것으로 그들은 레위 후손 중 사독의 자손으로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가 수종을 드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음장에서 에스겔을 따라 함께 지성소에 들아가게 될 것입니다.



--->*갈보리채플* <이요나 목사 주일설교 청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