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요한복음강해

고난의 때, 너는 누구를 부르는가?

이요나 2001. 1. 30. 16:05
(요한복음17장-2)너는 누구를 부르는가?


요17: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소서

 

예수께서는 요한복음17장 20절에서 "나는 이 사람들을 위해서만 비는 것이 아니고, 이 사람들의 말을 듣고 나를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빕니다"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일찍이 이들에 대하여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 나는 그 사람들을 마지막 날에 살릴 것이다."(6:44)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리심을 받은 분이라면 기뻐하십시오, 주께서 하신 말씀은 그가 친히 부르신 제자들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부르시는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모든 사람들에게도 하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선택에 관한 논쟁은 교회사 속에서 풀리지 않는 숙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들의 주장이 어떠하던지 간에 구원은 하나님의 선택적 주권과 인간의 책임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발생되는 문제는 서로의 엇갈린 주장으로 인하여 교회가 분열하고 반목하는 것은 잘못된 처사가 분명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사단의 훼방입니다. 이러한 논쟁은 오직 말씀 안에서 그의 지혜와 지식의 깨달음으로 곧 모든 사람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우리를 이끌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을 위하여 기도하신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하나가 되기를 기원하신 것입니다.

   진리로 거룩하게
    예수님은 "진리로 그들을 거룩하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입니다."(17:1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는 이유에 대하여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과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으로 보냈습니다."(17:18) 하시며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는 것은, 그들도 진리로 거룩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17:19) 말씀하심으로 진리와 거룩하심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밝히셨습니다. 이제 모든 교회의 성도들은 자신들이 맹종하던 교회의 목사들의 무지를 발견하게 될 것이고, 그들을 잘못 가르친 목사들은 자신들의 한 일에 대하여 스스로 책임을 져야할 때가 올 것입니다. 아직 확실치 못한 부분에 대한 것은 우리는 양쪽의 모든 논리를 가르쳐야 합니다. 한쪽의 주장만을 옳다하고 판단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오직 판단은 주께서 하실 것이고 우리에게는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있음을 믿습니다.


   잘못된 교리들
    어떤 사람들은 마태복음 22장 14절의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는 말씀을 들어오직 자신의 택함을 강조하기도 합니다만, 나는 하나님이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을 회개를 통하여 모두 초청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오직 너희에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벧후3:9)고 진술하였습니다. 따라서 나는 구원의 문은 모든 인류를 향하여 열린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인간의 선택적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인격적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의 사랑이며 하나님은 우리를 콘트롤하지 않으시는 공의로우신 분임을 증명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치 않는다"(요한 3:16) 말씀하셨고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또 내게로 오는 사람은, 내가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요6:37)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3장 48절에는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라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관한 인간의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적 믿음을 가지고 주께 나아가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의 부르심에도 그가 나아가기를 원치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살기를 선택하였다면 그는 자신의 선택적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내게 주신 자들
    예수께서는 "나는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내가 기도하는 것은 세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사람들을 위해서입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기 때문입니다"(17:9) 하셨습니다. 주님은 그 이유에 대하여 "나는 이제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않으나, 그들은 세상에 있습니다. 나는 아버지께로 갑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지켜 주셔서 우리가 하나인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17:11)라고 밝히셨습니다. 또 주님은 "내가 그들과 함께 지내는 동안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지켜서 보호하였습니다." 말씀하심으로 예수님의 사역은 아버지의 이름 가운데 있었음을 증명하셨습니다. 또 예수께서는 "그러므로 그들 가운데서는 한 사람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뿐이 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입니다"(요17:12) 말씀하심으로 그의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의 비젼
    이제 예수님의 기도는 장래를 향한 비젼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제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이제 예수께서는 아버지께 돌아가시고 그의 제자들은 남아서 주께서 오실 때까지 그의 사역을 완성하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제자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주께서 갖고 계신 창세 전의 영광에 대해서입니다. 주님은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사람들도, 내가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합니다"(17:24)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의 제자들의 기쁨을 위해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17:13). 주님은 또 세상에 남아 있을 제자들의 존재를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주께서는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기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는 악한 세상에서 그들을 데려 가기를 원한 것이 아니라 악한 세상에 그들이 동화되지 않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지금 세상 가운데서 교회들이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대형교회의 비리들과 각 기도원에서 일어나고 있는 무지몽매의 비리들이 메스콤을 통하여 질타 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문제의 초점은 리더들로부터 시작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진리는 말씀이다
    성경은 가롯 유다에 대하여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라"기록되었습니다. 가롯 유다의 행실이 그러했다면, 오늘날 악에 휘말려 멸망의 길로 달음질치는 그들도 이미 성경에 기록된 대로 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께서 이미 "저희를 진리로 거룩히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니이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악에 빠지면 주께서 하신 일이 모두 무의미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의 악에서 지키는 것은 진리로 거룩하게 되는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진리로 거룩하게 되는 길은 무엇을까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이미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인격체이지만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예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의 것을 가지고 우리에게 알리신다 하셨습니다.(요16:13,14). 따라서 우리가 거룩하게 되는 것은 성경의 말씀 속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악에서 우리 자신을 보전하는 길입니다.


   사랑을 위하여
    예수님은 최종적 기도는 우리를 향한 사랑으로 이어집니다.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삽고 저희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요17:25,26) 하셨습니다. 문맥을 따라 이 말씀을 다시 종합하면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거룩하게 된 제자들로 세상에 아버지의 이름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삼 강조하신 아버지의 이름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그의 이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직함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야훼(Yahweh)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야훼와 화합된 이름으로 '여호와 쉐와'(Jehovah Shewa)의 준말입니다. 'Shewa'의 의미는 구원입니다. 따라서 히브리어의 'Yeshua'는 'Yahweh Shewa'의 준말입니다. 우리는 이 이름을 기억하여야 하며 우리의 삶 가운데서 그 이름을 지켜야 합니다. 아니 그의 이름 가운데 우리의 삶을 이끌고 가야합니다.


   예수의 이름을 불러라!
    당신은 휴혹을 당할 때 그의 이름을 부르신 일이 있으십니까? 고통 중에서(Time of difficulty)그의 이름을 부르신 일이 있으십니까? 위험 중(Time of danger)에서 그를 부르신 일이 있습니까? 그 이름 속으로 피신을 하신 일이 있습니까? 나는 그에게 달려 간 일이 너무 많습니다. 시편을 보면 다윗이 얼마나 여호와 하나님을 찾았는지 우리는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죽음의 늪에서 그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는 기쁨 속에서 그 이름을 찬양하였습니다. 나는 오늘 이 분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나의 당하는 환난에서 능히 구원하실 오직 나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릅니다. 예수께서는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17:11)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여 지켰다"(17:12)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그의 이름 가운데 있을 때 우리는 영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나 우리는 그의 진리의 말씀으로 거룩하여 집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은 그의 이름을 통하여 아버지의 사랑을 나타내는데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