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는 것으로 모든 사람들이 너희가 나의 제자인 것을 알리라"(요13:34,35)
지난 9월에 떠난 요한복음의 여행도 이제 한 장을 남겨 놓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곧 대망의 사도행전 여행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요즘 신문을 보면 우울한 소식만 가득합니다. 실업자가 100 만 명이 되었다느니, 정부에서는 사 오십대 장년층 실업 대책을 놓고 고심한다느니.. 그러한 와중에도 정치권에서는 지난날의 정치자금 문제를 놓고 공방전이 치열합니다.
다음부터는 대통령 없는 나라, 국회 없는 나라, 판검사 없는 나라를 만들면 어떨까 싶습니다. 아마 이런 것을 국민투표에 부쳐도 그 지지율이 만만치는 않을 것 같습니다. 사단이 세상을 지배 한 이후 더 이상 세상을 지탱하지 못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중에 세계 최대 철강업체인 프랑스의 유지노르와 룩셈부르크의 아르베드, 스페인의 아세랄리아의 3사 대표들이 지난 19일 통합을 하였다는 소식은 세상이 하나로 통합되어 가는 실제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IMF이후 우리나라에서 거센 반발 속에서 진통을 겪고 있는 구조조정, 빅딜도 결국은 세계통합 구도와 맞물려 있는 섭리현상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대우 자동차는 구조조정을 놓고 화염병 공방전이 일어나고 있는데 대우 신화를 창설했다는 김우중 회장은 도대체 어디로 숨은 것인지....
아마 그의 정신적인 지주인 김용옥 교수는 그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이야 통합이 되든지 말든지 말장난 속의 요지경 구석인 교회의 틈바구니에서 희한한 싸움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제 칼럼 홈페이지에 배너 링크를
걸어 놓은 "NEWS N JOY"의 전병욱 읽기라는 곳을 가시면 흥미로운 글들을 볼 것입니다. 그 유명한 삼일교회 전병욱 목사와 한종호 목사의
결판장입니다.
전병욱 목사는 최근 몇 년 전부터 젊은 세대로부터 비젼과 도전을 부르짖으며 부상된 한국 기독교계의 새로운 별(?)이었습니다. 하도 유명하다고 해서 이요나도 전병욱 로마서 강해집이라고 선전된 파워로마서를 사보았습니다. 무엇이 파워인가하고 아무리 책 전체를 이 잡듯이 뒤져도 파워는 발견하지 못하고 목회를 제대로 못하는 목회자들을 때려잡는 파워를 맛보고 책을 접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의심이 가는 것은 왜 파워 로마서가 베스트 셀러가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해가 안됩니다. 아마 책표지의 정열적인 색깔이 독자들에게는 파워풀 하였나 봅니다.
전병욱 목사는 파워 로마서 서문에서 한국에서 처음으로 "커피숍 채플"을 개척한 나를 한방 때리고 지나갔습니다. 장사가 하도 되지 않아서
저는 진작 때려쳤습니다만... 이 땅의 목회자들 치고 전 목사에게 한방 먹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목회에 성공하지 못한 목사들이 할
말이 있겠습니까마는 우리의 종착역은 결국 주님 앞에 될 것이고 길고 짧은 것은 더 두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는 서문에 "교회를 살리는 책, 그 인봉을 떼며"라고 제목을 달았습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한국 교계의 실상을 폭로하듯이 철퇴를 내리쳐 나갔습니다. 먼저 그는 자기의 설교 로마서가 삼일교회의 체질을 개선하여 80명에서 1천명으로 성장하였다고 서술하였습니다. 이것은 정체된 한국교회의 "부흥"의 근본이라는 취지로 이끌어 갔습니다.
그는 회복을 설명하면서 말씀의 회복은 곧 부흥의 회복이라 역설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오늘에서야 대단한 책을 발견하였구나 생각하고 파워 로마서를 거금 11.000원을 주고 샀습니다만, 나는 유감스럼게도 "파워 로마서"에서 말씀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성경을 이렇게도 아전인수격으로 해설해 갈 수 있는 것이구나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교회의 부흥?을 설명하기 위하여
한국교회사 속에 흘러 내려온 선진들의 발자취를 모두 들추어내어 쑥으로 뜨고 있었습니다.
한 예를 들면 저질 부흥사들의 "저속한 시도들"(헌금강요, 설교 중 욕설) 에 대하여 논평을 하였고 그 후에 일어난 "제자 훈련운동"에 대하여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교회 내 개혁"에 그쳤을 뿐이라 단정했습니다. 이런 결과 성도들은 "야성상실", "현장의 상실" 현상이 일어났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부흥에 대한 자신의 논지(論旨)를 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논지 속에 그 이름도 유명한 이요나의 친정 집이 들어있었던 것입니다.
가끔 젊은이들로부터 전병욱 목사가 설교 중에 갈보리채플 이야기를 많이 한다는 소리를 듣고 내심 갈보리채플을 이해하는 것 같아서 고맙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파워 로마서 서문에 서술한 내용은 자기 자랑을 하기 위하여 갈보리채플을 끌어다 놓은 것 같았습니다. 마치 그는 어느 혁명가가 집권을 하기 위하여는 최고 통치자를 굴복시키는 것과 같은 설법이었습니다.
김용옥 교수가 노자나 논어를 설법하면서도 꼭 성경을 끌어다가 붙이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것은 장수를 넘어뜨리기 위해서는 먼저 말고삐를 잡은 넘을 넘어뜨리고, 그 다음 말을 넘어뜨리는 과정과도 같았습니다. 즉 자기의 위대성을 설명하기 위하여는 자기 앞에 있는 위대한 존재들과 맛서서 그들을 무너트려야 하는 원리와도 같습니다. 예수님도 그러한 원리에서 사형을 당한 것이지요.
세상의 권세 구조가 모두 이렇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는 부흥에 대한 개념을 설명하면서 1903년 위엘즈의 부흥을 서술하였습니다. 그리고 1907년의 평양 대부흥을 꼽았습니다. 아마 내 생각으로는 평양과 삼일교회와는 일맥 상통하는 뿌리가 얽혀 있을 것 같습니다만 그가 부흥이라고 예증한 두 개의 모델은 집회로 인하여 시장 경제가 마비되는 것에 초점을 놓았습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다음 그는 1960년대 척 스미스 목사로부터 시작된 갈보리채플의 "예수운동"(Jesus Movement)에 대하여 이렇게 서술하였습니다. "그러면 부흥이 아닌 것이 무엇인가 알아보자. 1970년대 미국에서는 척 스미스 목사님을 중심으로 "예수운동"(Jesus Movement)이 일어났다.
이 운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미국의 히피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다. 또한 이 젊은이들이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양 운동이 "커피 하우스"를 중심으로 벌어지게 되었다.
그때에 탄생한 것이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마라나타 싱어즈이다. 이 예수 운동은 대단한 힘을 가지고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 운동은
"교회성장"을 가져왔을 뿐, "교회부흥"은 아니었다. 그 운동의 물결이 교회 울타리 밖을 넘어서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 운동으로 인해 미국
사회가 변화 된 것은 아니었다"(파워 로마서 13쪽)
이 글을 전 세계에 있는 갈보리채플 사역자 3천명과 그의 성도들이 이것을 보면 배꼽이 빠질 것입니다, 한국에서 아직 숨도 제대로 못 쉬는 이요나야 어쩔수 없다지만 일본만 가도 전병욱 목사는 이 말을 당장 취소하여야 합니다. 우물 안 왕 개구리가 자기 동료들에게 세상을 설명하는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습니다.
그가 갈보리채플 사역에 대하여 조금만 관심을 갖고 살펴보았다면 이러한 실수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찬양 운동이 "커피 하우스"를 중심으로 일어났고 그 결과 마라나타 싱어즈가 탄생하였다는 어처구니 없는 말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아마 한국에서 이미 발간된 척 스미스 목사의 갈보리채플 목회사 "Harvest"를 읽어보았다면 아니 1996년 목회와 신학에서 발간한
목회자들을 위한 갈보리채플 특집을 보았어도 이러한 망언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책을 많이 보는 전목사가 어찌 이런 실수를 했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한종호 목사의 말대로 책을 제대로 읽지 않고 수박겉 할기식으로 설교에 인용하기 위하여 앞뒤 큰 제목만 훑어 보기 때문일
것입니다.
먼저 전병욱 목사는 부흥과 성장의 개념을 잘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 국어 사전을 보면 "부흥"이란 "쇠(衰)하였던 것이 다시 일어 남, 또는 쇠하였던 것을 다시 일어나게 함"(동아 새 국어 사전)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러면 "성장"이란 무엇인가? 사전에서 성장이란 "1. 생물이 자라남, 2. 사물의 규모가 커짐" 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전병욱 목사는 파워 로마서 서문에서 사도행전에서의 초대교회(파워 로마서 p.12)에서 일어났던 사건들, 즉 예루살렘 교인들이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주는 일들과 에베소서에서 말씀이 선포되자 우상을 제거하고 마술을 행하던 사람들이 그 책을 모아 태워버린 것(행19장)을 부흥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부흥으로 보아서는 안됩니다. 초대교회의 사건들은 복음의 역사인 것입니다. 에베소 지역은 일찍이 우상이 범람하던
곳입니다. 그곳에서는 복음이 흥하였던 시절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성경을 읽어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일입니다.
초대 교회의 사도들의 사역 속에서 일어난 일들은 사람의 능력이 아닌 주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각 사람들에게 임하여 나타난 교회 속의 성령의 역사입니다. 또한 에베소의 일도 부흥이 아닙니다. 이방에서의 복음의 역사는 오순절 성령 강림이후 교회 탄생과 출발 이후 일어난 성령의 나타나심입니다.
에베소 사람들은 바울에게 성령은 들어본 일도 없었다고 말하였습니다. 부흥이란 그 어원이 쇠하였다가 다시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때 전병욱 목사의 "부흥"에 대한 해설은 지식의 인증을 얻어낼 수 없는 완전 전병욱식 해설이 되고 맙니다. 따라서 1903년 웨일즈에서의 사건과 1907년대의 평양은 복음의 역사 즉 전도로 말미암아 나타난 성령의 역사 속에 나타난 부흥입니다.
성장이 아니라는데 있어서는 공감합니다. 그러나 전병욱 목사가 거론한 갈보리채플의 오늘날까지 있었던 사역이 부흥이 아닌 성장이라고 한 말에
대하여 설명하고자 합니다. 아마 미국에서 살다 온 분들은 오늘날 갈보리채플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그 원인에 대하여 묻는다면 갈보리채플은
초대교회에서 일어난 복음의 역사 즉 성령의 역사가 다시 일어난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미국을 다녀온 모든 목회자들도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목회자들이 갈보리채플의 강해설교에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1960년대 미국 교회는 청교도 정신으로 개척된 이래 200년에 걸쳐 쇠퇴일로에 있었습니다. 전병욱 목사가 지적한 말대로 과대망상증의 부흥사들과 거짓교사들의 활보로 미국 교회는 동성애를 인정할 정도로 타락하고 있었습니다. 교회의 타락은 나라의 정치와 경제에도 동일한 영향을 파급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성도들에게 지도자와 국가를 위하여 기도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1960년대 미국은 정치적인 혼란과 사회적인 혼란이 극심하여 젊은이들이 일터와 학교에서 뛰쳐나와 기존세력에 저항하여 거리를 헤매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느낌입니다.
어차피 있었던 일들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일어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묵묵히 나의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갈보리채플의 개척 역사를 알기 위하여는 여러분들은 이제 곧 한국어로 출간될 척 스미스 목사의 제자 샌디에고 호라이즌 채플 펠로쉽의 "마이크
메킨토시" 목사의 자서전 "회복"을 보시면 그 당시 미국 사회와 교회의 무능력을 실감하실 것입니다. 또한 그 시대에 갈보리채플 사역 속에서
역사한 성령의 능력과 부흥이 어떠하였는가를 가히 짐작할 것입니다.
척 스미스 목사의 증언을 따르면 마이크 메킨토시에 대하여 내가 10년 동안 지켜 본 그는 회생불능의 사람이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또 하나의 캘리포니아 남부일대에서 100여개의 호라이즌채플 펠로우쉽과 함께 갈보리채플 운동인 전도집회 "사랑의 축제"를 이끌어 가는 대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또한 1995년의 미국 타임즈 집계로 미국 내에서 가장 복음적인 최대 교회 25개 중 12개가 갈보리채플이었습니다. 갈보리채플은 교단도 교파도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역자들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은사에 의하여 각 교회를 독립적으로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갈보리채플의 공통분모가 있다면, 성경 전체를 가르친다는 것이며 성령에 의하여 사역한다는 것입니다.
갈보리채플은 신학교가 없습니다, 갈보리채플의 역사가 35년인데 갈보리채플 성경대학의 역사는 30년이라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다.
그 만큼 말씀을 가르치는데 역점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전 세계 교회 가운데서 주일 날 성경을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한절도 빼지 않고
연속해서 가르치는 교회는 오직 갈보리채플 밖에 없습니다.
또한 갈보리채플은 인위적인 사역을 하지 않습니다. 교회성장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도 하지 않으며 헌금을 강요하지도 예배를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또 어떠한 특정 교리를 내세우지도 않습니다. 모든 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성경을 심층연구하고 그 말씀의 능력 가운데 나타나는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함을 원칙으로 합니다.
갈보리채플의 사역자는 현재 3000여명으로 추정되며 95년도 집계에 200여 젊은이들이 소련에 들어가 있다고 합니다. 척 스미스 목사가 말씀을 가르침으로 시작된 갈보리채플은 캘리포니아 일대만도 600여 교회를 개척하였으며, 그들은 사단의 지배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 속에서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갈보리채플의 사역의 중심은 가르침과 사랑의 실천입니다. 우리는 교회 성장에 힘을 쓰지 않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집이라 할 때 인간이 교회를 성장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만약 어떤 목회자가 어떠한 교리나 프로그램 또는 목회방법으로 성장을 하였다면 그것은 부흥도 성령의 역사도 아닙니다.
인간의 방법과 시장 경제 마케팅 전략에서 얻어진 일시적인 성장일 뿐이지요. 오늘날 시장 경제가 무너지는 원인과 결과를 보십시요. 목적과 사명만 있고 진실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부흥은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그에 순종한 믿음의 사람들의 기도와 사랑의 실천이 있다면 절대로 멈추지 않는 거대한 강이 될 것입니다. 에스켈서 47장에 소개되는 강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방법이라면 그 사람이 패달을 밟지 않는 이상 곧 쓰러지고 말 것입니다. 오늘의 대우 김우중 회장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전병욱 목사는 계속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자. 십자가로 나아가자, 세상을 향하여!" 이미 수많은 한국교회들의 뿌리를 썩어버린 것이라고 모두 잘라내고 오직 홀로 독야청청하려던 그의 외침은 더 이상 설득력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베스트 셀러 속에서 외쳤던 모든 말들은 세상 가운데 증거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주께서는 요한계시록 3장에서 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 중 마지막에 소개되는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3:17)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나는 그의 말처럼 그가 이끄는 삼일교회가 무너지지 않는 하나님의 영원한 복음의 전당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더 이상 함께 부름받은 사역자들과 하나님의 교회에 칼날을 휘두르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세우시고 넘어짐이 그의 주인께 있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주께서 하신 말씀을 함께 상고할까 합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는 것으로 모든 사람들이 너희가 나의 제자인 것을 알리라"(요13:34,35) 이 글은 전병욱 목사를 향한 비판이 아니라 충언의 말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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