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20:24-25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에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마가복음15장 10절을 보면 부활한 예수를 친견한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던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에게 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셨음을 알렸습니다. 그러나 11절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의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이 말씀을 받는 당신은 어떠하십니까?
만약 이요나가 예수를 만났다면 믿겠습니까? 아마 소천하신 함 목사님께서 만나셨다면 믿지 않으셨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수장격 제자인 베드로에게 먼저 보이지 아니하시고 일곱귀신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에게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이 짖궂인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보았습니다. 제자들은 자기들이 목격한 사실을 그들의 동료들에게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도마는 "내 눈으로 그 손바닥을 보고 못자국에 손가락을 넣어보고,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지 않고서는 믿지 않겠노라"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위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보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요. 우리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보지 않고도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데 그들은 어떠한 말로도 설득되지 않는 것을 볼 때 참으로 답답하기만 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믿지 않기로 작정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려고 했다면 주께서 그의 믿음을 도와 주셨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요3:19)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생활의 방법을 바꾸기 싫어서 믿지 않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예수를 믿으면 담배도 끊어야하고, 술도 마시지 말아야 하고 색스도 즐기지 말아야 하고 거짓말도 하지 말아야 하는데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겠는가? 말합니다.
자기들의 육적 만족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거부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거부하다가도 어떤 기적을 보면 그들은 그것을 보고 허망한 것을 따라 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에게 종말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나 세상을 미혹할 것을 경고하였습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절대적인 불신앙의 희생을 치루어야합니다. 바울은 "악한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거짓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우너함을 얻지 못함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희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경고하였습니다. 진리를 사랑하지 않음으로 그러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자들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선언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어졌나니 스스로 지혜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1:21-23)고 경계했습니다.
아직도 진화론자들은 생명이 생명이 없는 물체로부터 자연발생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1970년 대 영국 천문학자 후레딕 호일은 무생물체로부터 생명의 자연발생할 수 있는 수학적 확립에 대하여 화학의 법칙, 수학의 확립, 열역학의 응용을 통하여 무생물체로부터 생명의 자연발생을 확립하기 위하여는 10의 4만승분의 1, 즉 뒤로 4만개의 0이 오는 계산을 추정하였습니다. 10의 50승분의 1 이하의 확립은 존재할 수 없다고 할 때 10의 4만승분의 1은 인간의 두뇌로 상상도 하지 못할 수치입니다.
인간이 추정할 수 없는 실례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학교에서 우주의 반경은 40억광년 정도라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시
반경 150억~180억광 년 정도라고 수정하였습니다. 최근의 과학의 발견에 의하여 이것은 또 하향 수정되었는데 그러한 주장을 하는 최근의 주장은
우주는 확장하지 않고 계속 축소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창조의
목적
이처럼 진화론자들의 주장은 자신들의 말한 근거를 수시로 변경 수정합니다. 그러나
진리는 변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불변의 원리를 진리라고 하지요. 이처럼 사람이 진리를 일단 거부하고 나면 불합리적인 사람이 되고
맙니다. 모순덩어리가 되고 말지요. 그러나 불신앙의 댓가는 아담과 하와가 치루었듯이 하나님과의 단절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경우
이스마엘을 낳은 후 13년 간 하나님과 단절된 생활을 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우리의 일방적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그에게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은 우리와 그의 통로가 열려 있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우리가 그의 무엇을 아무렇게나해도 하나님이 우리를 받아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내 영혼이 구원받은 것과 내가 하나님과 온전한 교제를 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것입니다. 얼마전 저는 척 스미스 목사님의 왜 은해가 우리의 모든 것을 변하게 하는가? 라는 책을 보았습니다.
아직 한국어로 출판은 되지 않은 채 저의 손에 있습니다만 저는 그 책을 읽으며 발견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처럼 나를 사랑하신 것은 어떠한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의미 없이 창조된 것은 없숩니다, 이 세상의 창조물은 모두 나름대로 하나님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는 먼저 하나님과 교제를 갖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므로 나를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그 하나님의 뜻에 일치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자신을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과의 온전한 교제도 불가능하며 우리의 인생은 무가치하게 됩니다. 따라서 가장 가치있는 인생을 살기 위하여는 그분과의 교제입니다. 그는 우리를 창조하셨고 우리를 기르시는 목자이기 때문입니다.
교제가 단절된
인간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인간이 하나님과 교제를 갖지 못하면 그 무엇인가하고
교제의 관계를 갖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인간은 우주와 관계를 가지려고 합니다. 우선 우주는 신비에 쌓였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산이나 강
그리고 커다란 나무에 관심을 가지고 그와 어떤 관계를 가지려 합니다.
이것이 우상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창조로부터 무엇과 교제를 나누어야 하는 존재로 창조되었고 그 존재는 자신의 수호와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기원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따난 초기의 사람들은 이처럼 자연과 관계를 갖었습니다. 그 후 사람들은 문화를 창조하였고 사람들은 그 문화와의 교류를 통하여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그 문화 속에 학문이 창출되고 지식이 만들어지고 그것은 삶의 생활로 접근해 왔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그 문화와의 교류 속에서
새로운 우상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것은 이제 우리 삶의 형태로 자리 잡아 왔고 그리는 그 삶의 형태 속에서 우리의 마음을 빼앗기고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의 우상의 관점은 이제 문화에서 문명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우상의
변천
문명의 산출인 각종 메카니즘을 통한 오락 게임, 인터넷 등이 새로운 우상으로
사람들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물론 이런 것은 그 민족의 문화와 문명의 속도에 따라 점진적으로 파급되기 있지만 얼마 있지 않아서 온 세상은 물질
만능 속에서 새로운 대상을 찾기에 혈안이 될 것이고 그 결과 그들은 적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된 사람들의
말로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어떤 위치에 와 있을 까요? 아직 일월성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늘의 별이나 산이나 강을 대상으로 아니면 절간의 목상을 대상으로 삼고 있지요. 지식이 팽창되기 시작하면서 요즘은 김용옥 교수의 논어 강좌가 사람들의 흥미가 되고 있음도 또 다른 우상의 흐름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요즘 젊은 세대는 모두 인터넷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물론 인터넷은 우리에게 많은 지식과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만 그 반면 악한 소재들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이러한 중에도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얼마나 커다란 은혜인가요?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무엇을 통하여
교제를 하고 있는가는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분야에서 지식을 필요로 합니다,
사단의
책략
사단의 책략은 하나님의 믿는 사람들로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를 갖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목적을 먹고사는 문제와 연관하여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유명해지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결국 자신이 다른 사람들 보다 높은 위치에 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방법으로 지배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적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교회는 진통을 격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우상적 모임에서 벗어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가운데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주는 지식의 신입니다. 그는 영으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그는 우리로 온전한 믿음생활을 할 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그의 기름부음이 우리에게 함께 하실 것이며 그의 기쁨과 평안이
우리를 온전한 안식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얻고 또 그의 이름으로 새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주는 태초로부터 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신앙은 이로서 비롯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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